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울 떠나살기

‘두메 앉은뱅이’로 사는 자유로움 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인제대 김열규 교수의 갯메마을 귀향

‘두메 앉은뱅이’로 사는 자유로움 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2/2
우리집 큰놈의 스승인 매우 이름 높은 미국인 철학자 한 분이 이 곳 을 찾아서 이 재를 넘는 순간, 난데없이 나를 보고 말했다.

”매우 명석한 분이십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무슨 농담을요?”라고 받자 그가 담담히 되받 았다.

”이찬란한 곳을 찍어서 정주(定住)할 자리로 정할 줄 아는 분이니 가요.”

칭송을받은 것은 내가 아니다.중치에서 내다보는 바다의 풍광이 찬양된것이다.이 곳의 조망은 그만큼 절승이다.이 근처 한 대학에서서울로옮겨 간, 한 교수는 최근에 보낸 편지에다 적고 있 다.



‘여름 방학엔 선생님 계신 곳을 다시 찾을 겁니다.중치 넘을 것을 생각만 해도 미리 가슴이 떨립니다.‘

찬양은 이로 그치지 않는다.모스크바에서 찾아온 러시아인 한국학 자는”고르바초프가 여기 연급되었다면 아마도 풀리기를 바라지 않 을 겁니다”라고 둘러 말햇다.때마침 고르비는 풍광 명미하기로 이 름난 흑해의 한 휴양지에서 정치적으로 화를 당하고 있엇던 것이다.

이러니 경치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정남향으로동네 곁에까지 바짝 다가서 있는 좌이산과 그에 이웃한 연봉에는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얼기설기로 나 있다.춘란과 자란 이 자생하여 더러 노략질을 당하는 것을 멧돼지가 막아 주었으면 싶 지만녀석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다만, 이 산짐승들은 ”교수님 저 모롱이로는 가지 마이소.산돼지가 오줌을 하도 많이 눠서 지린 내가 진동하니까요.”

이같이 촌로들의 파적 얘깃거리가 디는 걸로도 착한 이웃 사촌이다. 해서 여기 공간에는 아무데도 칸막이가 없다.금도 그어져 있지 않 다. 보이는 곳은 모두 온통 아무데나 그저 울안이다.사람에게만 그런건 아니다.겨울철 굶주림을 당한 노루가 겨울초(한겨울에도 잎새 푸른 채소의 일종) 밭에서 입가심하고 가면, 족제비는 사시 개 울가를 누빈다.

겨울철 먹이가 귀해지면 나는 집안 뜰 여기저기다가 혹은 돼지 기름 덩이 혹은 땅콩, 혹은 수수해서 각기 그들 구미에 맞을 먹이를 내다 놓는다.사과며 배 따위 과일겁질도 한몫을 하는데, 접시에 담아서 내가는 것이니, 담장 위으 조촐한 상차림에는 새들 손님이 모여든 다.

멧새에다박새며 오목눈이 그리고 직박구리 등은 겨울 내내 찾아드 는데, 더러 곤줄박이와 콩새마저 찾아들면 들 안은 느닷없이 새들의 잔치판이된다.물론 손님보다는 주인이 더 즐거우니 그들은 추호 도 부담스러워 할 것 없다.하긴 하라고 해도 할 그들도 아니니 이 래서 더욱더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첫집들이 손님은 청솔모

그들의아침상을차리고 나면 나는 으레 그들이 멀리 보이는 곳에 좌정하고는 마음으로라도 시중을 든다.그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 먹기에 열중한다는게 그만 농(弄)을 부리고 익살을 떤다.

그걸로 손님들의 보답은 늘 넉넉하다.하면서도 나는 늘 생각한다. 언제 바로 그들 밥상머리에서 주인이 시중 드는 날이 올까?그 궁 리속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다른 새는 몰라도 곤 줄박이에게는요행수가통할지도 모른다고 잔득 기대에 부풀곤 한 다.

하긴 뜰안 출입이 잦은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이사 온 직후의 일, 삼층작은 서고의 창문을 청설모가 기웃댄 적이 있었다.유리창에 닿을 만큼, 가지를 뻗은 키 큰 느릅나무를 타고는 그가 찾아온 것이 다.두 발을 창살에 기대고 머리는 유리창에 들이박고는 방안을 한 참이나 두리번거렸는데, 그가 우리 집들이를 위한 첫손님인 것을 미 처일러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더욱 결과적으로는 진객을 문적박대 아닌, ‘창전박대‘한 거나 다를 게 없엇으니,

‘아유, 서울 살다가 왔다더니 마음 한 번 고약해!”

청성모의이같은 푸념을 듣고는 온 산속 식솔들에게서 인심 날대로 난 거나 아닌지 지금도 궁금하다.

한데 정말 말리고도 못다 말릴 불청객도 이따금 찾아든다.뒤뜰 예 쁜너덜돌담아래의 한 귀퉁이는 이를테면 나의 ‘정원 서실‘ 같은 곳.장대석 바닥에는 돌부처말고도 제법 그럴 듯한 석물들이 서 있 는데다느티나무 고목이며 소나무가 그늘을 던지고 있는 이 작은 공간은사뭇 은근하나.해서 굵은 두 개의 나무 등걸 사이에다 그 물침낭을 매달아 놓고는 오수를 즐기곤 하는데, 웬걸 이따금 능구 렁이가기어들 줄이야.그것도 꿈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하지만 기왕 애기 능금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작은공간인 바에야 뱀은 아 마 나를 위해서라도 여기 바로 또 다른 에덴 동산 하나쯤 차리고 싶 었는지도 모른다.

길짐승,날짐승, 네 발 짐승 할 것없이 수시로 드나드는 집 주인ㅇ 라고해도노상 그들과 이심전심 속내가 통하는 건 아니다.이사 온 지 두 해쯤 되엇을 적에 우연히 바닷가에 나갔다가 물고기들에게 차마못할 짓을 하고 말았다.물깃에 막 내려서는데, 돌모래 밭에 서수없이많은 복어들이 허이연 배를 뒤집고는 헐떡대고 있는 게 아닌가! 더러는퍼덕거리고도 있었다.아! 예삿일이 아니구나! 그렇게 집작한 나는 닥치는 대로 복어를 잡아서는 물에다 던져 넣엇 다.한참을 그래사.땀깨나 흘렸다.

남의 씨를 말리고도

그렇게긴급 구호작전을 편 끝에 동네로 돌아온 나는 고로(古老)들 에게 사뭇 무공담(武功談)이랍시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용궁으로돌아간 복어들이 틀림없이 박씨 아닌 복을 물고 올 겁니 다.”

이렇게 수선을 떠는 나에게 한 분이 말했다.

”그 참, 남의 씨를 말려 놓은 꼴에?”그리곤 한심한 듯, 혀를 연신 찼다. 맙소사! 그게 바로 복어가 산란하는 현장이었을 줄이야!복어는 슬 물을 긑을 물고 물깃에 다다라서는 알맞은 돌모래 바닥에다 알을 낳 는다고했다. 그런 다음 이내 밀물이 몰려들면 드걸 타고 바다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모처럼 목적지에 당도해서 돌모래밭의 산실에서 진통을 하고 있는 복어의 산모들을 모조리 바다로 내쫓는 망측한 짓을 저질렀다면서 그 노인은, ”뭣이 어째 목숨 살려준 값으로 복을 받기 바라다니, 나 원!” 다시금 혀를 찼다.

그런 흉칙한 일이 잇고 한참 뒤, 내가 이 사건을 어느 신문 칼럼에 쓴것을본 그 방면 전문 학자들이 전화를 걸어 왔다.복어가 알 낳는 현장은 매우 귀해서 그들은 일부러 일본까지 가서는 보고 왔다 면서꼭 현장 안내를 해달라고 청햇다.물이 맑고 한적한, 은근한 돌 모래 으물깃만 골라서 산란을 하다 보니 현장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들은 덧붙였다.

필경 남에게 멸문지하를 입히고 말았으니, 40여년 줄곧 인연을 끊다 시피했다가 고향이라고 돌아와서는 자연과 친하게 지낸다는 게 자 연 파괴를 저지른 것이다.그 뒤로 나는 그 즐겨먹어 마지 않던 복 어를안먹기로 작정했다.복어가 그 독으로 나를 해칠지도 모르 니, 그럴 수박에...

생물들이 그리고 동물들이 내 집 드나들기를 저희 집인 듯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나도산에 또는 바다에 가기를 내 집 드나들 듯한다. 거기울이 있을 턱이 없고 가름이 있을 리 만무하다.무시로 수시 로 드나든다.

좌이산에서 흘러내린 간천(澗川)은 내가 ‘현류동(玄流洞)‘이라고 이 름 붙인곳, 물길 한 켠이 줄기줄기 검정 벼랑이기 때문이다.

물을따라 오솔길을 오르면 풀서리 자갈에서 까치독사도 만나고 능 구렁이도만난다.봄철 이후는 물도 넉넉해서 가재며 장어 그리고 민물게가 지천이고 도롱뇽도 드물지 않다.다슬기를 먹고는 반디 가번성하다.더러 심심치 않게 족제비와 맞닥드리면 그걸로도 공 연히유쾌해진다.장어나 게를 잡아먹고 사는 건지 궁금하지만 그 에게 물어 볼 수가 없다.

새벽일어나는 길로 여기서 흐르는 물부터 마신다.그리고 ㄴ세수 를 하는 것이지만, 여름엔 물론 멱도 감는다.

그 다음, 뒷산 능선을 한참 타고가다가 우거진 솔밭에 아무렇게나 퍼질러앉는다. 겨울 빼고는 윗통을 벗고는 삼림욕을 하기 마련, 송진내와풀향기를 깊게 들이킨다.그 향으로도 마음이 차지 않으 면갈잎새를 엷은 흙까지 뒤집으며 산짐승처럼 발길로 세차게 헤집 는다.

자유의 끝

아! 그 순간 습한 흙내음과 갈잎 내음이 자욱하게 온몸을 감사고 든 다. 어찌그 뿐인가?이 향에 새들으 지저귐이 열리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다시 또 바람에 설레는 나뭇잎들의 물살에 살갗이 젖는다.

초록으로그득한 사각을 후각과 청각 그리고 드디어는 촉각가지 거 들고나서면,나의 온 감각은 삽시간에 푸드덕 날갯짓을 하다가는 이내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든 듯이 가라앉는다.그제서야 선연(鮮姸)한 자극이 아늑한 명묵(瞑默)과 쉬 더불을 수도 있는 곳, 거기가 바로 내 집 뒤, 아침 산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로써 오관 육감이 통틀어서 산기운에 잠긴다.더불어 내가 풀어 진다. 긜곤 이어서 지워진다.풀어져 지워지고 삭아지는 것의 안 식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내가지워진자리에 더러는 가벼이 안개가 피고 더러는 잔 바람이 분다. 나는 안개도 되고 바람도 되어서 그 부는 바람 그 피어오르 는 안개를 느낀다.

그리곤,그것이 장차, 무엇을 위한 연습이고 예감인가를 지레 알아 차리라고 내가 내게 타이른다.그것이 통하면 비로소 나는 나의 몸 둥이,나의살갗이 격리가 아니고 칸막이가 아닌 경지, 공간의 자 유, 공간을 더불은 나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런끝에, 오랜 긑에 눈을 뜬다.하면, 정말이지 흙바닥에서부터 목숨기운이 나뭇진이 뿌리를 타고 오르듯 내 몸 안으로 차고 오른 다. 내게서도 나무가 자라고 봉우리가 뻗쳐오를 것 같은 느낌, 정 말 싱그럽다.

신동아 2000년 6월호

2/2
목록 닫기

‘두메 앉은뱅이’로 사는 자유로움 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