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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요리|정대철 의원의 평양냉면

북한 음식은 실향민의 고향

  • 최영재 기자

북한 음식은 실향민의 고향

  •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향수를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북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냉면은 그 대표적인 음식이다.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다. 북쪽 사람들은 추운 겨울 날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던 냉면맛을 잊지 못한다. 이 냉면맛이야말로 실향민에게는 고향이다.》
분단 55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온겨레를 설레게 했다. 특히 이산가족의 심경은 남달랐을 것이다. 고향 땅에 두고 온 가족을 이제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임진각 통일 전망대에 올라 고향 하늘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이들의 응어리를 달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음식이다. 어린 시절 맛본 북한 음식맛은 이들에게는 고향이다. 그 북한 음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냉면이다.

정대철 민주당 의원은 정치인 가운데 냉면 맛을 잘 아는 사람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의 맛난 냉면집이 궁금하면 그에게 물어보면 틀림없다. 그는 워낙 식성이 좋아 아무 음식이나 잘 먹지만, 냉면 하면 두 그릇이 아니라 세 그릇도 거뜬히 비운다. 아마 그가 이번 정상회담 대표단으로 평양에 갔더라면 체류 일정 내내 냉면만 먹었을 것이다. 그가 즐기는 냉면은 평양식 물냉면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부모인 고 정일형 박사와 이태영 박사가 모두 평안도 출신이다. 아내 김덕신씨(58)도 평양 출신이다.

그런 탓에 냉면은 집안 음식에서도 단골 메뉴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더라도 십중팔구 냉면이다. 대학 1학년인 막내 아들 세준군(20)은 “우리집은 가족끼리 외식을 했다 하면 무조건 평양냉면 아니면 쟁반국수예요.”라고 말했다. 이만하면 냉면이 물릴 만한데 그래도 온가족이 냉면을 곧잘 먹는다.

정의원은 정치인치고는 꽤 요리 솜씨가 있다. 정치인 집에 식객이 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여느 정치인처럼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집에서 곧잘 앞치마를 두른다. 자녀들(2남1녀)도 음식을 곧잘 해먹는다. 이는 부모가 지역구를 쫓아다니느라 끼니를 챙겨줄 여유가 없었던 탓도 크다. 알아서 해결하게 된 것이다.

정의원의 요리 솜씨는 미국 유학 생활 7년 동안 기른 실력이다. 당시 그는 이른바 ‘마누라 장학생’이었다. 아내 김덕신씨는 세탁소일, 도서관 사서일을 하면서 남편 유학을 뒷바라지했다. 아내는 저녁 대여섯시나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미국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의원은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이때 그가 주로 만든 음식은 갈비탕이었다. 70년대만 해도 미국인들은 소갈비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서 소갈비는 아주 싼 식품이었다. 2∼3달러면 살이 골고루 붙은 고급 갈비를 잔뜩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갈비를 압력솥에 넣고 30분 정도 끓인 뒤 가족들에게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너무 자주 먹으면 물리는 법. 갈비탕을 지겹도록 먹고 자란 아이들은 지금도 갈비탕하면 손을 내젓는다.

정의원은 김치찌개 같은 찌개 종류와 국도 솜씨있게 끓인다. 특히 박사 논문을 쓰던 시기(1982∼1984)에는 가족을 한국에 둔 채 혼자서 미국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음식 솜씨가 일취월장했다. 논문 쓰는 기간이라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그는 모든 음식을 직접 해먹었다. 양배추를 사서 김치도 담그고,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되는 대로 끓여 냉장고에 넣고 며칠씩 먹었다고 한다. 이 시절 그는 태국계, 중국계 친구와 방을 같이 썼다. 이 친구들의 요리 솜씨가 수준급이라 그는 처음에는 접시만 닦았다. 하지만 룸메이트를 감동시킨 요리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담근 한국 김치였다.

어릴 때 들인 입맛은 평생 가는 법이다. 그는 어머니 이태영 박사의 음식맛에 길이 든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평안도 출신이라, 김치맛부터 남쪽 지방과 달랐다. 이북 사람들은 남쪽처럼 양념을 많이 한 맵고 짠 김치를 먹지 않는다. 일종의 백김치 비슷하게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고, 간도 싱겁게 하고, 국물을 넉넉히 부어서 담백하게 담근다. 추운 날씨 탓에 그 김치 국물에는 항상 살얼음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시원한 김치맛을 이북 사람들은 ‘쨍’하다고 표현한다. 겨울밤에 이북 사람들은 이‘쨍’한 김칫국에 국수나 밥을 말아 밤참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김칫국에 말아먹는 국수가 말하자면 냉면의 기원이다. 요즘 사람들은 주로 여름에 냉면을 먹지만,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다.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에 말아먹는 냉면 맛이 진짜 냉면 맛이라고 한다. 남도 출신은 더운 여름 뜨거운 닭국에 호박을 썰어 넣은 제물칼국수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다. 이냉치냉(以冷治冷)과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원리다. 냉면은 국물맛이 가장 중요하다. 평양 출신이라 물냉면을 제대로 배운 정의원의 아내는 원래 이북식은 닭고기 삶은 물에 동치미 국물과 쇠고기 삶은 물을 섞어서 만든다고 말했다. 냉면에 들어가는 무도 원래는 동치미 무를 썰어서 만드나, 이것이 없으면, 길쭉하고 얇게 썰어 식초,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한 물에 1시간 정도 담가 놓으면 된다.

정치인이 아내에게 부채 의식을 느낀다는 사실은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다. 정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 김덕신씨의 할머니는 자유당과 공화당 때 무임소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박현숙 여사다. 그런 쟁쟁한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김덕신씨는 정의원 뒷바라지를 하느라 갖은 고생을 겪었다. 정치인 아내 노릇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생활은 아예 단념해야 한다.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그의 집은 주말만 되면 손님이 찾아온다. 모두가 고생한 선거운동원들을 대접하는 자리였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한번에 20명 가량씩 무려 열다섯번 정도나 손님을 치렀다고 하니, 집안 식구들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정의원은 명색이 서울 복판에서 8선을 지냈던 선친 정일형 박사가 있었고, 그 또한 1977년에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 현재까지 5선을 기록하고 있다. 부자가 합치면 13선인 가정이다. 하지만 이는 남편의 일이고 아내 김덕신씨는 69년 결혼한 이래 88년 지금의 집을 마련할 때까지 무려 열 두번이나 이사를 해야만 했다. 정의원이 현재 살고 있는 약수동 집은 낡은 일본식 벽돌집이다. 하지만 이 집의 자그마한 마당에는 아담한 대나무 숲이 있어 울타리 구실을 하고 여러 가지 야생화도 피어있다. 마당 한 켠에는 전통 옹기가 가득하다. 또 이 집에는 거실과 주방 등 집안 곳곳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는 햇빛이 쏟아져, 집안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아내 작품이다.

집안을 둘러보는 사이 어느 새 냉면이 준비되었다. 식탁에는 삶은 닭과 빈대떡이 함께 차려져 있다. “닭고기는 도저히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에요. 손을 써야지.” 정의원이 손으로 닭백숙을 죽죽 찢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그 고기를 냉면 위에 올려 먹는다. 그렇게 먹는 것이 이북식이란다. 닭백숙, 빈대떡. 이 음식들은 모두 평양냉면과 어울리는 북한의 전통음식이다.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는 지금, 이 북한 음식을 먹으며 통일을 기원해볼 일이다.

신동아 2000년 7월 호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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