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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족의 침묵, 라틴족의 수다

  • 권삼윤 문명비평가

에스키모족의 침묵, 라틴족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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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유럽에 살면서도 알프스 이남의 라틴계 민족은 게르만족보다 말이 많다. 같은 아시아에 살면서도 열대지역 주민들은 수다를 즐기고 동북아 쪽 사람들은 극히 말을 아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
네덜란드는 참 특이한 나라다. 그들이 350년간 지배했던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여러 차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식민지배 방식이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과 비교할 때 너무나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곳이 인도네시아였다. 동인도회사는 형식적으로는 주식회사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로부터 외교, 군사, 사법, 행정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아 행사했던 총독부 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카르타 교외에 ‘바타비아’라는 이름의 항구를 건설하고 이 땅에서 나는 커피, 향료, 담배 등을 자기네 나라로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그들은 이런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피지배 국민의 인간성까지 개조하려 했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자카르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우리 교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언어정책

“이곳 학교에서는 운동장다운 운동장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현지인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았죠. 그들의 대답인즉 ‘네덜란드 사람들은 우리 인도네시아 청소년들이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보면 호연지기를 키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네들에게 대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뛰어놀지도 못하게 운동장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인도네시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해 누구나 탐내는 나라였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19세기 말 인도네시아에 어렵사리 들어왔던 미국인 시드모어 여사는 당시 상황을 ‘동방의 정원, 자바’란 책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총독부는 자기네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영국인이건, 미국인이건 어느 누구도 인도네시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그들의 독특한 지배방식이 외부로 새나가 국제문제가 될 소지를 막는다는 게 그 첫째 이유였다. 게다가 그들은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네덜란드인보다 더 우호적이라는 인상을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심어주면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더욱 폐쇄적이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가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네덜란드는 1942년 일본이 이곳을 점령할 때까지 인도네시아인들의 해외여행이나 유학도 철저히 막았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엔 많은 인도인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지만, 인도네시아 사람이 암스테르담에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 무슨 자격증을 땄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배국이 피지배 국민에게 자기네 언어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 보통인데, 네덜란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네덜란드 말을 가르치지 않은 대신 총독부 요원들이 현지 부임에 앞서 자바어를 익혔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인들은 총독부 요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면전에서 흠을 들추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어도 눈만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독부 요원들은 현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효과적인 식민지배 방식인가.

네덜란드인들이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전했던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의 작은 섬 데시마(出島)에 상관(商館)을 열어놓고 그곳 쇼군(將軍)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으면서도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이처럼 혹독하게 굴었던 것이다. 손안에 들어오지 않은 일본에는 웃는 낯을 해야 했지만, 이미 손안에 들어온 인도네시아에게는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식민지배의 1차적 목적은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데 있다. 경제적 이득을 오랫동안, 아니 영구히 취하기 위해서는 피지배 민족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종속적 구조로 만들어놓지 않으면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의 언어를 가르친다. 일본이 우리에게 그렇게 했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또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세계의 언어지도가 딴판으로 변했다. 영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언어(사용인구 3억2200만명)로 부상했고, 스페인어가 그 다음인 세 번째(2억6600만명), 포르투갈어는 여섯 번째(1억7000만명), 프랑스어가 열두 번째 큰 언어로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네덜란드의 언어정책은 특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어가는 말, 되살아나는 말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덕분(?)에 영어를 익히게 되어 이를 통해 민족간, 지역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인도는 여전히 다언어 문화권이다. 인구 10억명이 쓰는 언어가 260개나 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언어당 평균 사용인구는 400만명 남짓 된다. 그러나 벵골어와 힌두어의 사용인구가 각각 1억8900만명(세계 4위), 1억8200만명(세계 5위)이나 되므로 고작 수백 명이 쓰는 언어도 있다. 이중 영어를 포함해서 15개가 공용어다. 인도의 지폐에는 이들 15개 공용어가 나란히 적혀 있는데, 인도 지폐에선 그래서 문자가 바로 세계에 유례가 없는 디자인인 셈이다.

인도의 공용어 가운데는 사용인구가 겨우 2000명밖에 되지 않는 산스크리트도 포함돼 있다.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이 감안됐기 때문이다. 인도의 고전 중의 고전인 장편서사시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그리고 ‘마누법전’ 등이 모두 산스크리트로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주류 언어인 힌두어도 그 뿌리를 캐다 보면 산스크리트와 닿게 되므로 결코 홀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12억명의 중국인들은 뜻글자인 한자를 공유하고 있어 서로 다른 말을 쓰더라도 의사소통을 해낼 수 있다지만 인도인들은 그런 매개체가 없는데도 용케 한 국가를 이루고 산다. 인도는 이런 사정 때문에라도 ‘신비의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한 나라에만도 260개나 되는 언어가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언어가 있을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99년 8월호에 따르면 유사 이래 이 지구상에 등장한 언어는 1만여개이며, 지금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그중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후쯤에는 다시 그중의 절반 정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가 자기 고유의 언어를 배우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언어가 상당수 있음을 그 이유로 꼽았는데, 1200개에 이르는 아메리칸 인디언 언어의 대부분, 아프리카 언어 700개 중 상당수, 그리고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소수 민족 언어가 그럴 운명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긴 세계에서 16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한국어도 국제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면서 공용어의 지위를 흔들려는 주장이 일고 있는 마당에 군소 언어가 그런 운명을 맞을 것이라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대세를 쫓는 무리도 있지만 대세를 거역하며 자기 고유의 것을 지키려는 무리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통합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카탈루냐어를 국어로, 스페인어를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고,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도 간판이나 문서에 바스크어를 먼저 쓰고 스페인어를 그 다음에 쓴다. 프랑스의 브리타뉴 지방에서는 그동안 브리타뉴어를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인구의 20%로 줄었지만,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고유 언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론 지역과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 지역으로 오래 전부터 나눠졌다.

체코어를 쓰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어를 쓰는 슬로바키아는 1992년 별도의 국가로 독립했으며, 슬로베니아 서부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은 비록 소수 민족이긴 하나 이탈리아어 신문을 발행하고 재판에서도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며, 이탈리아어로 학교수업을 받는다. 그 동부의 헝가리인들이 사는 지방에서는 헝가리어가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다. 옛 유고연방에 속해 있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는 다같이 남슬라브계 언어를 사용하지만 독립에 즈음하여 각기 다른 문자를 갖게 됐다.

작은 국가, 소수 민족이 사는 길은 대세에 휩쓸려 자기 고유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지키는 데 있음을 유럽의 여러 나라는 이렇게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성서를 부족어로 번역

한번 생각해 보라. 어머니 품에서 젖을 빨며 배운 고유의 말(이를 우리는 ‘모국어’라고 하지만, 다언어 문화권인 서양에선 ‘어머니의 혓바닥-mother tongue-’이라 한다)을 버리고 ‘표준말’이니, ‘세계공용어’니 하는 것을 쓴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경쟁력을 위해서, 또한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소수에 대한 다수의, 또한 힘있는 자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 똑같은 모습,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나는 어떤 존재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여러 언어를 갖게 됐다고 설명하는 구약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저주라기보다는 차라리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기독교에서는 ‘난 곳 방언’,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언어로’라는 기치 아래, 각 부족어로 성경을 만들어 부족민 스스로 읽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성경 번역사업을 벌이고 있다. 80년대부터 위클리프 성서번역공회가, 아직 제 말로 된 성경을 갖지 못한 부족민들을 대상으로 이 일을 펼치고 있는데, 그 주요 타깃은 아시아다. 그것도 이슬람 세력권인 서아시아다.

이는 이제 기독교가 기성 종교권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포교의 한계선상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현장에선 이들을 ‘실(SIL)’이라고 부른다(그들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의 1095곳에서 1571개 언어 프로젝트를 통해 성경번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파키스탄을 여행할 때 이 일에 종사하는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 이에 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경번역 선교사는 현지 활동에 앞서 상당한 기간에 걸친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며, 현지에 나가서는 철저한 언어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토대로 특정 부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며, 선교사는 그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부족이 자신의 말과 글로 성경을 읽고, 그리하여 외부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교회를 꾸려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말도 했다. 그는 “문자는 없이 말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집한 말들을 컴퓨터에 수록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힘들며, 컴퓨터가 있더라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 이 작업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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