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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안이영노의 공간탐험

유동인구 30만 거대 지하도시 코엑스 몰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기획된 해방구

  • 안이영노 문화평론가

유동인구 30만 거대 지하도시 코엑스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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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 몰.
  • 이곳은 서울 지역의 상권을 뒤흔들고 있는 ‘태풍의 눈’이다. 시장기능과 결합시킨 다양한 이벤트가 젊은 층은 물론 가족단위의 소비자까지 광범위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
압구정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내가 코엑스 몰에 관해 물었을 때 들었던 첫 대답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것은 무척 흥미있는 답이다. 명동 역을 떠나 삼성 역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코엑스 몰이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똑같았다. 거긴 압구정동을 통채로 옮겨놓은 것 같아.

왜 압구정동일까? 물었을 때 그녀의 대꾸는 역시 간결하고 분명했다. 지금 그곳으로 가면 어른은 별로 찾아볼 수 없으니까.

놀라운 일이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관’이라든지 거기 가면 무엇이든지 다 있다고 외치는 코엑스 몰의 광고를 보고, 또 주변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그곳이 젊은이들의 소비 공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받은 느낌은 가족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63빌딩이나 롯데월드처럼 난 코엑스 몰을 생각했던 게다.

북적거리는 여름 휴일 낮. 코엑스 몰에 들어서서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실제 아이들과 젊은이 외의 어른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아이를 업은 젊은 부부, 초등학생과 함께 온 30대 부모를 제외하고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다. 그날따라 내 눈에 20대 젊은 애들만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코엑스 몰은 10여 년 전의 압구정동 거리가 아니다. 압구정동 거리는 거기에 거주하는 중상류층 아이들과 그곳을 관광하고픈 서울 시민들, 그리고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공간이다. 그런데 코엑스 몰을 구성하는 것은 기회를 노리는 영세 상인도, 레스토랑과 숍을 운영하는 부르주아도, 소비에 대해 우호적인 신흥 중산층도 아니다. 이 쇼핑 몰은 전능한 재벌이 창조한 것이고, 몇몇 국제적 기업들이 일구어낸 것이다.

도심의 지하에 커다란 놀이 동산을 온전하게 만들겠다던 롯데월드의 꿈처럼, 그야말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기획이다. 옮겨심듯이 도시를 만든다는 것 자체로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벤트다. 아침에 불을 켠 후로 저녁에 불을 끌 때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지하 세계, 도시처럼 움직이는 커다란 지하 숍. 날마다 벌어지는 ‘도시’라는 이름의 이벤트…. 이 얼마나 엄청난 자본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인가.

70년대의 명동, 90년대의 압구정동

압구정동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고?

옮겨 놓았다는 표현은 옳다. 그러나 압구정동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인 게다. 명동 역으로부터 삼성 역 코엑스 몰을 향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는 이상, 차라리 1970년대의 그 번성하던 명동과 대비해보는 것이 낫겠다.

당시의 명동은 전통적 시장이면서도 아주 모던한 곳이었다. 현대적인 빌딩과 상가 건물 형태를 지닌 채 전통적인 시장이 만들어졌다고 할까. 재래 시장과 현대적 빌딩이 공존하는 곳, 남대문 시장의 수직 상승 꼴, 따라서 명동은 겹겹이 다양한 시대가 중첩된 공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거리, 현대적 건물의 타일 사이로 녹슨 건물이 보이고, 튼튼한 일본식 건물의 금간 벽과 뒷골목의 전깃줄이 깨끗한 1990년대식 건물 사이로 겹쳐 튀어나오는 명동은 마치 지저분하면서도 초현대적인 홍콩과 같은 곳이다.

반면 압구정동 거리는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 교통망이 설계된 것과 같다. 압구정동 역시 1980년대 들어서 모던의 이름으로 자발적인 군집이 진행되었다. 상인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번성한 압구정동. 이곳은 어느 정도 표준화된 틀이 있기 때문에 거리의 모든 숍과 카페들은 한 세트처럼 느껴진다.

코엑스 몰은 바로 이런 것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기능을 기대하면서 롯데백화점을 설계하듯, 거대한 쇼핑의 도시를 계획할 때는 압구정동과 같은 하나의 거리 전체가 불러들일 파급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사고의 스케일로 볼 때 이곳은 분당과 일산처럼 신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개념이다. ‘퍼다 옮겨 놓은’ 신도시처럼 지었기 때문인지, 나에게 이곳은 편리하면서도 썩 편치가 않다. 제주도에 가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민속촌을 보는 느낌이랄까, 제주 성읍 민속마을을 찾아가 사람이 없는 생활을 보고난 느낌이랄까. 관광객으로 찾아갔으나 온전하게 내추럴한 것을 볼 수 없었기에 내심 속은 것만 같은 허탈함이다.

코엑스 몰 입구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주는 복잡함이라는 느낌. 세일 기간에 물건을 사러 오겠다는 분명한 마음을 먹고 오전 10시에 산뜻하게 들어서는 백화점 입구와 같은 깔끔함이 없다. 정처 없이, 특별한 목적 없이 거리를 걷듯 오게 되는 이곳은 그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을 뿐 아니라 입구부터 어지러운 느낌 일색이다.

도대체 코엑스 몰의 입구가 몇 개인 지는 지금 여기를 걷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니, 지상의 여기 저기로 연결된 입구들로 미루어 짐작할 때, 엄밀한 의미로 코엑스 몰이라는 경계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고 딱부러지게 정해진 수의 입구가 있는 것도 아님이 틀림없다.

입구. 뭐랄까. 쾌적하고 문턱 높은 호텔 로비 같은 격조의 공간이 아니다.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대형 백화점이 인파 때문에 북새통이 되어버리듯 이곳 역시 천박한 공간이다. 그리고 대량 소비를 위해 그걸 의도한다. 고급 분위기라는 인테리어 컨셉은 이미 운집할 보통사람을 알고 계획한 것이지, 그 군중들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고급 쇼핑 몰이 격조가 떨어지는 재래 시장의 고객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천박한 북새통’을 예상하면서도 고급의 이미지로 설계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가 들어선 입구는 신축 호텔의 로비. 입구는 이처럼 정숙하고 거만한데,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은 몇 초 후부터 시끌벅적하다. 어떻게 한 공간 안에 엄숙함과 소음이 칸을 하나 사이에 두고 공존할 수 있을까. 잠시 후에 마치 시장 바닥 같은 극장 앞 매표소가 나온다. 호텔 로비에서 금방 맞닿기에 더욱 그 대비가 인상적이다.

새로 지은 인터콘티넨탈 호텔이나 아셈 회의장은 첫 인상부터 대중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그런데 한 겹 안은 정반대다. 코엑스 몰로 들어서는 각각의 입구는 호텔은 호텔대로, 지하철 역은 역대로 저마다의 격조, 품위, 대중성이나 지저분함을 통일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한다. 그야말로 콤플렉스, 이질성의 복합체다. 롯데호텔로부터 롯데백화점, 롯데월드로 연결되는 지하철 역에는 고급 공간과 대중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별되는데, 코엑스 몰에는 그러한 이원적인 통일성이 아예 없는 거다.

코엑스 몰의 지상은 호텔과 국제 회의장 건물에 백화점, 공항터미널, 지하철 역사와 같은 대중적 상업문화 공간을 삽입한 것이다. 그 위에 다시 신축 호텔과 국제 회의장이 들어섰다. 따라서 대중 공간과 상류층 문화의 이질적 혼합이 드러난다. 이른바 포스트 모던의 결정체.

하지만 바글대는 인파들은 구분된 경계를 절대 넘어서지 않는 듯하다. 코엑스 몰을 찾은 대부분의 대중은 호텔 로비나 국제 회의장을 그저 통과할 따름이다.

마치 술래잡기하는 어느 섬 원주민 아이들 같다. 식민지 군 부대와 자신의 마당 사이를 구분 없이 뛰어다니는 영화 속 천진난만한 아이들 말이다. 호텔 로비로부터 코엑스 몰 입구까지 구분없이 뛰어다니는, 천민적 공간과 거만한 고급의 격조를 구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 국제주의적인 느낌을 얻는다.

엄청난 소음과 인파의 급류가 흐르는 코엑스 몰과 그런 분주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여백의 땅인 호텔 로비 사이. 대중 여가의 공간과 권태의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나는 순수한 원주민적인 면을 본다.

땅속에도 문화가 있다.

땅 속. 그토록 깊숙이 지하로 내려가다.

지하철 5호선 보라색을 탈 때마다 난 한강 밑을 달리기 위해 너무 깊게 팠다는 점에 숨이 막히곤 한다. 2호선에서 4호선보다 훨씬 깊어, 항상 5호선은 3계단 이상을 땅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문명은 땅 위를 다 개척하고는 이제 자리가 없어 신대륙으로 가듯 지하로 파고들었다. 4호선까지 이미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파해쳤기 때문에 5호선은 더 깊이 파야만 했을 것이다. 지하 한 두 층 높이에는 이제 남은 땅이 없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보통 지하를 판다고 하면 관념적으로 한 층 정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내려가는 이곳은 단순한 지하 보도가 아니다. 거대한 지하도시처럼 그 안에 모든 것을 갖추어놓고 커다란 입술을 열어 날 맞이하는 자족적인 문명권. 에스컬레이터의 검붉은 손잡이들은 마치 큰 아가리를 갖춘 그 문명의 입술 같다.

더 깊이 내려갈수록 드러나는 휘황한 문명의 시장. 쾌적한 에어컨 바람과 동시에 내 가슴을 압박하는 것이 있다. 지하에 건설한 낙원은 한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지하에 건설한 천상은 최소한 그 입구로 들어설 때만은 그것이 지하임을 끔찍할 정도로 각인시킨다. 우리의 산업 문명은 대구 지하철 사고, 높은 데서 추락하는 성수대교, 땅 속에 묻혀버리는 삼풍의 돌무덤을 떠올린다. 고소 공포와 폐쇄 공포가 겹쳐진 듯한 느낌(아니면 지독한 ‘저소 공포’). 아이러니컬하다. 빨려들듯 예쁜, 엄청한 규모의 지하 도시에서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난 광장의 공포 대신 밀폐의 두려움을 아련히 간직한다.

마치 쥘 베른의 ‘타임머신’에 나온 미래의 지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은 문명인 동시에 공포다. 그것은 외계(E.T.)가 아닌 내부에 있는 미지의 세계(I.T.). ‘지상족’은 ‘지하족’의 가혹한 노동으로 인생을 즐기기만 하는데, 가끔은 지하족이 지상으로 올라가 그들을 잡아 먹는다. 시민이라고 부르는 지상의 귀족들이 소비하러 몰려드는 코엑스, 거기에는 가끔씩 그들을 잡아먹는 것들이 있다. 그 이름은 대중 문화, 생활 엔터테인먼트, 페밀리 문화 산업이며, 바로 몰 안에 즐비하게 들어선 점포들이다.

코엑스 몰은 별세계다. 하나의 지하 도시. 전쟁이 나서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를 닫아도, 그 안에서만 살 수 있다는 양 전능을 과시한다. 그러나 거긴 논밭도 공장도 없고, 유통과 소비가 있을 뿐이다.

지하의 별세계는 그 위에 늘어선 호텔, 공항터미널, 백화점, 무역센터와는 무관하게 돌아간다. 전혀 별개의 세계다. 심지어 내가 선 이 위치가 어느 건물 아래인지도 알기 힘들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암기하는 버스 노선이나 이면도로 같은 지상의 교통 체계와는 다르다. 서울 시민 대부분이 지하철 역의 구조를 외우는 대신 표지를 따라 이동하듯, 이곳에 들어오면 표지를 보고 걸어갈 뿐, 아무도 무엇을 외우지 않는다. 그것이 지하 세계의 문화다.

코엑스 몰을 거닐면서 천장을 보았는가. 한번 보라, 얼마나 높고 찬란한지. 우리가 그곳을 즐기는 사이, 우리는 전력의 무한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 하늘에는 인공 별이 무수히 떠있다. 대중 문화의 총아처럼 밝은 조명들이다.

아무도, 단 한사람도 천장을 유심히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태어난 지구별처럼 서울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곳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보다 영화관이 더 재미있는 이유

코엑스 몰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드는 것은, 짓기 전부터 소문으로 퍼진 복합 상영관 시설이다. 메가박스 시네플렉스는 16개의 영화 상영관을 한 곳에 집합시키면서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관”을 표방했다. 내가 케이블 채널에서 본 광고는 국제적 규모를 띤 세계적 명소로 그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슈퍼마켓이 하이퍼마켓이 되듯, 백화점이 쇼핑 몰이 되는 것은 대규모로 더 싸게 많은 것을 얻기 때문이다.

메가박스 시네플렉스에는 1980년대 방식의 ‘전시 파워’ 위에 1990년대 방식의 ‘이미지 소비’가 어우러져 있다. 산업화와 부국의 꿈을 갖게 된 1970년대 수출 드라이브 이후로, 우리 국민들은 세계 최고, 세계 최강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는 동양 최대의 건물을 짓고, 동양 최고 높이의 건물을 올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올림픽을 달성해야 하는 전시 행정의 시대였다. 메가박스 시네플렉스에는 점점 커지는 자본의 힘이랄까, 규모가 커질수록 이윤이 커진다는 규모의 경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그러했던 전시 행위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전시 경제인 것이다.

수출의 시대에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보여주던 규모의 사업은 1990년대 들어서 내수가 증가하면서 국민들이 그러한 전시를 즐기고 환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휘황찬란한 이미지와 상품 디자인 그리고 일대 장관을 소비하는 식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국민들은 이벤트 뿐 아니라 카페와 같은 작은 공간에서도 분위기와 격조와 상표를 소비하고 즐기게 된 것이다.

코엑스 몰에는 규모의 과시와 더불어 그 공간 전체의 초현대적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위세가 자욱하게 배어있다. 따라서 영화 하나 하나보다 영화관 자체를 소비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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