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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찾아 떠나는 한여름 풍류여행

문배주에서 강쇠주까지 민속주 베스트10

  • 허시명 여행칼럼니스트

문배주에서 강쇠주까지 민속주 베스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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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김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선물한 ‘평양 원산’ 문배주
  • ② 술샘마을의 술샘에서 퍼올린 물로 만든 영월 주천면 더덕주
  • ③ 300년 역사 가진 뱃길 나그네의 술, 충주 청명주
  • ④ 맛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 ⑤ 천년 전설이 담긴 진달래술, 면천 두견주
  • ⑥ 변강쇠의 고향 남원골 강쇠주
  • ⑦ 짙은 향에 강렬한 맛 자랑하는 전주 이강주
  • ⑧ 몰라서 못먹는 명주 찹쌀 해남 진양주
  • ⑨ 전국 시장 넘보는 포천 막걸리
  • ⑩ 벤처기업 배상면주가의 흑미주
술도 옷처럼 제 몸에 맞아야 한다. 추운 지방에서는 도수 높은 술을 마셔 체온을 올린다. 40도가 넘어도 몸 상하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가 보충된다. 더운 지방 사람들은 열이 많기에 자연히 낮은 도수의 술을 찾는다. 도수가 높으면 비지땀을 흘리면서 쩔쩔맨다. 그러니 지방마다 그 지방에 맞는 술이 필요하다. 소주도 제주도에서는 20도가 어울리고 경기 지방에서는 30도, 평양에서는 40도도 괜찮은 게 그런 이치다. 민속주니 전통주니 토속주니 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한여름 여행에서 그 지방에 맞는 우리 술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평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간 문배주

“문배주는 주암산 물로 만들어야 제 맛이지요.”

지난 6월14일 남북정상회담 목란관 만찬장에서, 남쪽에서 준비해 간 문배주를 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희호 여사에게 했던 말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주의 고향은 평양이다. 평양 주암산(酒巖山) 밑의 평천 양조장에서 빚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해서 평천 양조장에서 내는 세금이 평양의 한 해 예산과 맞먹었다고 한다.

현재 문배주를 빚는 이기춘씨(58)는 1951년 1·4후퇴 직전에 아버지 이경찬씨(93년 작고)를 따라 술도가의 트럭을 타고 피란 내려왔다. 북한에는 현재 문배주가 없으니, 문배주까지 함께 피란 나온 셈이다. 이경찬씨는 전쟁이 끝나자 서울에서 다시 술도가를 했는데, 5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곡물로 술을 빚을 수가 없게 되자 그만두고 말았다. 다만 집안 제사 때 조금씩 빚는 정도였다.

문배주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86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90년 6월에 제재가 풀리면서였다. 이기춘씨는 500만원의 빚을 내 헌 보일러를 구입, 서울 연희동 집에서 술을 빚기 시작했다. 조그맣게 출발했지만, 술을 만든 지 두어 달 만인 90년 9월에 행운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남북회담이 열렸는데, 연형묵 총리가 양주말고 남한 술은 없냐고 청하는 바람에 문배주가 식탁에 오르게 된 거였다.

이기춘씨는 술을 증류한 지 이틀 만에 숙성할 겨를도 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평양 손님에게 내민 평양 술이니 자연 화제가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언론에도 널리 소개되었다. 그 뒤로 러시아의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왔을 때 150병을 가져가고, 올해에는 남북정상회담 만찬용으로 470병이 선발대 차에 실려 판문점을 넘어 고향땅을 밟는 행운을 누렸다.

문배주는 북쪽 지방 술이라 독하고, 재료도 독특하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밀 누룩에 쌀술이 대부분이다. 한데 문배주는 조와 수수만 쓴다. 누룩도 조에다가 종국(種麴)을 넣어서 만든다. 조 누룩에 물을 잡아 밑술을 만들고 날이 좋으면 하루, 날이 좋지 않으면 이틀 가량 발효시킨다.

이때 썼던 물이 평양의 주암산 물로, 석회암 지대의 지하수였다. 그래서 이기춘씨는 석회암 지대인 충북 단양에 술 제조장을 지을까 하다가 서울과 너무 멀어 포기하고,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마산리에 마련하게 되었다. 김포의 물은 화강암 암반에서 나오는 물이라 평양에서 빚던 문배주와는 차이가 있다.

술이 발효되는 상태를 보아가며 쪄서 식힌 수수를 넣는데, 전체적으로 조와 수수의 비율은 4대 6 가량 된다. 10일쯤 발효시킨 다음 증류기에 넣고 끓인다. 지하실에서 지상까지 이어진 증류 탱크에서 60도 안팎의 온도로 진공 증류된다. 처음 5분 동안에 나오는 술을 ‘꽃술’이라 하는데 예전엔 약으로도 썼지만, 독성이 많아 그냥 버려야 한다. 처음 나오는 술이 68도쯤 되고, 그 뒤로 차츰 도수가 낮아지는데, 마지막에는 알코올 성분이 없는 수증기까지 올라온다. 현재 문배주는 50도, 40도, 25도 3종류가 생산되고 있다.

50도라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술 중에 가장 독한 술인 셈이다. 이기춘씨는 독주(毒酒) 예찬론자다.

“술은 독해야 합니다. 우선 부패할 염려가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좋아져요. 독주는 술의 질을 까다롭게 따진 결과물이지요. 약한 술은 대개 재벌 주류 회사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낸 상품입니다. 일부 학자들이 그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약한 술로 취하려면 많이 먹어야 하니 위나 장에 부담이 갑니다. 독한 술은 조금 먹어도 취합니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는 거죠. 술은 그래야 합니다. 세계의 명주는 모두 독주입니다. 코냑 보드카 스카치를 보세요.”

문배주는 증류되고 나서 1년쯤 숙성 기간을 거쳐야 제 맛이 난다. 무균 상태이긴 하지만 공기와 접촉하면서 무르익는다. 40도의 술이란 곧 40%의 알코올과 60%의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물과 알코올이 치밀하게 섞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증류 소주는 숙성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술의 질이 최고에 도달하면 그 상태로 계속 유지된다. 그래서 오래 된 술일수록 좋다는 말이 생겼다. 그렇게 오래 된 것이라야 도수가 높아도 불쾌하지 않고 부담이 없다.

40도짜리 문배주는 휘발성이 강해서 향을 맡으면 코끝이 찡해온다. 하지만 소주맛은 바다 속 같아서 향만으로는 그 깊이를 감지할 수가 없다. 술을 한 모금 머금으면 독특한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번진다. 코로는 감지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다. 입 속으로 한 마리 물고기가 들어와 휘젓다가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4대째 술을 빚고 있는 이기춘씨는 자존심이 세다. 문배주를 빚기 전까지는 대한항공 기획실에서 20년 간 근무했는데, 그 덕에 외국에 많이 돌아다녔다. “외국 술맛도 많이 보았겠습니다” 하고 묻자, “외국의 유명한 술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문배주는 술 향이 문배나무 꽃 향기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 돌배의 일종인 문배와는 무관하다.

이기춘씨는 “주암산 샘물로 반드시 문배주를 빚어보라”는 아버지의 유언도 있고 하여, 평양에 문배주 공장을 설립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마냥 꿈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2.술이 샘솟았다는 동네, 영월 주천면의 더덕주

문배주가 태어난 평양 주암산(酒巖山)은 술바위산이란 뜻인데, 명주의 고향다운 이름이다. 그 산에 얽힌 전설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위독해서 약초를 구하러 산에 갔으나 구하지 못하고 대신 물을 떠다 드렸다. 물을 마신 어머니는 웬 술이 이렇게 독하냐면서, 그 다음날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게 유래되어 주암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땅 이름에 술주(酒) 자가 들어간 게 또 없나 찾아보았다. 마을의 품격을 배려해서인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한 곳을 발견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酒泉面) 주천리(酒泉里)다. 술샘 마을이라는 뜻이다. 술 기행을 하는데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찾아갔더니, 비석도 있고 전설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술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양반이 가면 약주가 나오고 상놈이 가면 탁주가 나왔다. 하루는 약주가 먹고 싶어진 상놈이 꾀를 냈다. 갓을 쓰고 양반 옷을 입고 양반 걸음으로 샘을 찾아간 것. 하지만 약주가 나올 줄 알고 샘물을 떠봤더니 여전히 탁주였다. 화가 난 상놈은 샘을 향해 돌을 집어던졌다. 그 뒤로 영영 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샘터가 기원이 돼 주천 마을이 생겼다. 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태가 묻혀 있다는 망산 밑 주천강가 샘터에는 지금도 맑은 물이 흘러 나온다.

주천 마을엔 술 제조장이 하나 있다. 근래에 생긴 더덕주 제조장이다. 94년 9월1일에 영월 더덕 영농법인을 설립했고, 그곳에서 99년 4월1일 더덕주를 처음 생산했다. 조합원은 모두 23명. 술을 시판한 지 1년밖에 안 되지만, 빚지지 않고 자력으로 기반을 닦으며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영농법인 대표인 이재인씨가 더덕을 처음 재배한 것은 20년 전이었다. 군청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땅을 1만평 마련하여 1250평에 더덕을 심었다. 산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심었다. 남들 따라 옥수수, 콩을 심으면 소득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주변에선 미친 놈이라 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농촌진흥청에 가보았으나 재배 기술이 따로 없었다. 강원도 횡성 둔내에 더덕 재배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쫓아가보았으나, 재배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80년에 1250평에서 종자를 7가마 채취했다. 이듬해엔 더덕 상인에게 밭떼기로 950만원에 팔았다. 종자는 1가마에 250만원 받았으니, 순매출이 2700만원이 생겼다. 이웃 농민들은 놀라워했다. 재배를 계속하여 7000평까지 넓혔다. 재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술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이재인씨의 노력으로 더덕 재배 농가가 확산되어, 지금은 평창 정선 영월에 300가구나 되고 있다. 영월에만 100가구쯤 된다.

더덕 재배 농민들이 더덕을 가공 판매하다가 개발한 것이 더덕주다. 더덕 향은 알코올보다도 휘발성이 강하다. 방금 맡은 향도 바람이 한번 불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인지 더덕 향을 맡으면 얼마나 향긋한지 몸도 날아갈 듯하다.

더덕을 넣고 탁주를 담그면 더덕 향은 다 증발해버리고 막걸리 맛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월 더덕 영농조합법인에서는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 주정으로 더덕주를 빚게 되었다고 한다.

더덕은 농약을 칠 수 없는 작물이다. 농약을 치면 뿌리가 녹아버린다. 2년생까지는 병충해가 없는데, 3년째 접어들면 전염성이 강한 검은줄무늬잎마름병이 생겨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강원도 영월처럼 해발 500m 이상에다 통풍이 잘되는 고랭지에서는 병이 별로 없어 다년생 더덕을 재배할 수 있다.

특히 영월 지방의 석회암 지대에서 재배되는 더덕은 섬유질이 발달하여 뿌리가 단단하게 여문다. 작고 마딘 것이 고생하며 자랐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충주 이남에서 자란 더덕은 크게 자라지만 무르기 때문에 맛이 덜하다고 한다. 주천면의 동강 더덕주가 경쟁력이 있는 것은 이런 재료에서 비롯된다.

더덕주는 더덕을 100일 동안 주정에 담갔다가 건져낸 리큐르, 즉 침출주다. 대한주정회사에서 사온 95도의 주정에 지하수를 타서 45도짜리로 만들고 활성탄, 즉 숯에 한 번 걸러 독성을 제거한다. 세척한 더덕을 주정에 담가 100일 동안 우려낸다. 이때 술맛을 강화하기 위해 5가지 한약재를 넣는다.

무슨 한약재를 넣느냐고 묻자, 조합 대표는 멈칫거린다. 비결이라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군청을 통해 술 제조장을 견학하고 싶다는 요청을 하는데, 그중에는 사업 정보를 캐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돼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는 것이 느껴졌다.

더덕주는 30도, 25도, 20도, 15도짜리가 나온다. 25도짜리를 맛봤더니 희석식 소주 냄새가 강하게 났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30도짜리 술을 내온다. 5도 차이인데 술맛이 확연히 다르다. 독한데도 쏘지 않고, 술 안에 담긴 약재 향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비로소 더덕술에 대해 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 대표는 그제서야 이 술을 개발한 기술자가 30도짜리를 전략 상품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1.5ℓ짜리 더덕주에는 4년 이상 된 더덕이 서너 개 들어 있다.

주천(酒泉)이라면 당연히 명주, 그것도 약주나 탁주로 명주가 있어야 될 텐데, 그런 술은 전해오는 게 없다. 다만 그 지명에 부끄럽지 않은 시도가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으니 눈여겨볼 만하다. 문의 033-372-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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