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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화제

아름다운 만남! 기독교와 불교의 벽 허물기

  • 김경재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한신대 교수

아름다운 만남! 기독교와 불교의 벽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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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한국 종교간에는 두터운 벽을 허물고 대화를 나누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생명운동과 남북통일을 위해 종단 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종교의 화해와 협력운동의 배경을 살펴본다. 》
2000년 새해 들어 한국 종교계 안에는 종교간의 두터운 벽을 허무는 몇 가지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 대체로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 한국개신교교회협의회 총무 김동완 목사가 ‘부처님 오신 날’에 석가탄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불교계에 보냈다.

천주교 주교단도 역시 그랬지만 개신교단의 그간의 행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는 시민들은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반기는 뉴스였다. 종파를 떠나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이 심산 김창숙 상 수상을 계기로 그분의 묘소 앞에서 유교식 법도대로 큰절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화해의 조짐들 싹트다

서울 수유동 화계사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운동장은 지난 4월 초파일날 불자들의 자동차 임시 주차장으로 활짝 개방하여 세인의 칭찬을 받았는데, 화계사로 올라가는 전신주에 한신대 대학원 학생회가 걸어놓은 석가탄신축하 플래카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똑같은 전신주에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화계사 불자들의 이름으로 성탄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곤 한다.

지난 6월에는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주최한 ‘종교간 대화 35주년 기념출판회’에 한국의 6대 종단 대표들이 축사를 하고 축가도 불러주었으며,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1세기 생명문화와 종교’라는 공동주제를 내걸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한국불교환경교육원, 가톨릭종교문화연구원, 성균관대, 천도교중앙본부 등에서 각각 발제를 맡아 죽어가는 지구 생태계 문제를 두고 진지한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위에서 예로 들어 말한 일들은 서울에서 일어난 수많은 종교간의 벽허물기 사례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같은 정신을 가지고 부산, 전주, 인천, 대전, 광주에서도 종교간의 대화, 협동, 생명문화 창달을 위한 모임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동을 목표로 하는 각종 학술단체나 사회단체를 예로 들면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가톨릭종교문화연구소, 크리스찬 아카데미 등에서는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밝고 좋은 뉴스만 전해오는 것은 아니다. 종교간의 대화, 화해, 협동의 일들이 뜻있는 사람들의 실천적 용기를 통해 전개되고 있는 중에도, 보수적 종교인들 특히 개신교 일부의 배타적 보수주의자들은 동국대 불상을 우상이라 하여 손상을 입히고, 종교간 대화 협동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 비방과 협박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문화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후반에 들어 특히 1960년대 이후 지구촌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종교간의 대화, 협동, 그리고 상호 창조적 변화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그 운동은 점점 더 활발해질 것이며, 한국사회에서는 다소 그 속도가 느리지만 가장 의미 있는 운동으로 확장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어느 특정 종교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해가 갈수록 지구촌과 한 사회의 삶이나 존재방식은 유기체적으로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물어지는 종교간의 벽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가 몇 세기 후에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서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의미 깊은 문명사적 사건 중 특기할 일은 종교간의 대화, 특히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킨 위대한 혼 마하트만이었지만, 인도사회 속에 존재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을 화해시키기 위해 정치적 독립운동 때보다 더 많은 마음고생을 했고, 결국은 종교간의 화해 협동을 설득하는 그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은 과격파 청년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 세계 종교지도자들은, 지구촌에서 함께 숨쉬며 살고 있는 종교간의 대화, 협동, 창조적 변화운동은 미래종교들의 사활이 걸린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현대사회의 삶이 점점 더 유기체적으로 얽혀가고 있기 때문에 종교간에 벽을 쌓고서는 현실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지금은 로빈슨 크루소 시대가 아니다. 아침 밥상에 오른 식량과 반찬은 구체적으로 오늘의 내 생명을 지탱해주는 음식물인데, 그것의 재배 가공 유통 등이 서로 다른 종교인들의 협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극단적인 배타적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우상종교라고 단정하고 자기 종교만이 진리종교라 고집하면서 살고자 할진대, 모르몬교도나 경기도 소사 전도관 종교공동체처럼 따로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은 그들도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서라도 타종교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병이 들면 타종교를 신봉하는 의사에게 자기 생명을 맡기고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하며, 해외여행을 할 때도 나와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기장에게 자기 생명을 맡겨야 한다. 본시 삼라만물이 그렇게 유기적으로 얽혀 발생하고 지탱되는 것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 실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둘째, 교통통신의 발달과 정보화사회의 실현으로 인하여, 인류는 최초로 지구촌 안에 서로 다른 종교문화를 이루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나와 다른 종교문화 공동체 안에도 훌륭한 종교체험, 예술, 윤리도덕체계, 사회정치질서, 과학과 문예가 꽃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20세기에 실현된 새로운 문명의 특징이었다.

종교를 그 핵심으로 하는 다양한 문명의 가치관, 세계관이 건재한다는 것은 18~19세기까지는 대중이 알지 못하던 사실이다. 19세기까지 다른 대륙, 다른 문명에 대한 지식은 제한되었고, 다른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타종교들은 우상종교거나 우매한 자연종교, 저급한 종교라고 폄훼되었다. 정보·교통·통신수단의 발달은 종교간의 다양성, 관용성, 정보교환, 그리고 실질적 종교인들간의 사귐과 대화를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종교간의 두꺼운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생명체를 위한 협동 필요

셋째, 정신과학의 발달은 자연과학의 발달 못지않게 인류를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보다도 한 단계 더 성숙시켜 역사적 가치의 상대성과 정신과학의 해석학적 한정성을 깨닫게 했다. 인류는 역사 속에 출현한 모든 일은, 종교 철학이념 자연과학 법칙마저도 모두 상대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며 결코 절대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와 역사 사회적 제약성과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제약성은 어떤 특정집단의 주의 주장만이 절대불변한 진리라고 고집하는 독단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를 공유하게 되었다. 진리의 상대성을 알게 됐다는 것은 그 상대적 진리가 진리가 아니라는 말과는 다르다.

다만 붓대롱으로 하늘을 보고서 하늘을 다 보았다고 주장하지 말라는 말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서 달 자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말이다. 빛의 이중성을 알지 못한 채, 실험 결과 빛은 파동임이 밝혀졌으니 빛의 입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거나 그 반대 주장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적 상대성에 대한 인식과 다름, 차이에 대한 관용과 존중의 태도는 20세기 성숙한 인간의 본질이다.

넷째, 20세기에 들어와서 종교간의 대화 협동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대세가 되고 필수불가결한 사항이 된 이유는, 지구촌의 가장 시급한 일들, 곧 지구생명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종교간의 대화 협동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 파괴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환경 보전운동, 빈부차이로 말미암은 지구촌 비인간화 극복과제, 성차별과 난치병과 지역전쟁을 극복하는 과제, 물질만능주의와 정신적 가치의 붕괴로 황폐해진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운동 등은 어느 특정 종교 혼자서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이다.

종교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 진리 속에서 꽃핀다. 참 종교라면 인류가 고통당하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생명을 치유하고 건강할 수 있게 봉사해야 함을 절실하게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하여 종교간의 대화, 협동, 상호 창조적 변화는 취향에 따른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의무가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왜 20세기 후반에 종교간의 벽 허물기 운동이 시작됐으며 시작하여 21세기에 더욱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는지 그 당위성과 필연성에 대하여 네 가지로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종교간의 벽 허물기는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란 종교에 귀의하는 그 사람에게는 ‘궁극적 관심’이 되는 것이며, 자기의 전 존재를 투신해도 후회가 없는 절대적 가치요 절대적 신념체계이기 때문에, 종교간의 대화 협동에 반대하고 독단적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종교간의 대화와 협동정신은 무엇이며, 또 반드시 극복돼야 할 독단주의와 광신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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