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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시받는 국민가요 '뽕짝'의 마력

  • 송기철·대중음악 평론가

괄시받는 국민가요 '뽕짝'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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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대표’ 대중음악 트로트. 왜색이라 천시받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다. 10대 댄스음악마저 ‘뽕 기운’이 빠지면 히트하기 힘들다는데. 나이 먹을수록 좋아지고 같이 부르면 더 흥나는 ‘뽕짝’의 정서, 트로트의 흡입력. 》
‘뽕짝’ ‘도롯또’.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어 온 트로트 음악에 대한 별칭들이다. 트로트는 분명 한국 대중음악이 안고 있는 ‘애물단지’다. ‘전통음악’이라는 규정을 쉽게 할 수도 없고(그러자니 반대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일제강점기의 잔재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생명력이 참으로 질기다.

우리 앞에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쉽게 인정하기는 싫고, 무시하자니 입 속을 뱅뱅 맴도는 트로트.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1994년, 영국 펭귄 북스가 발행한 ‘THE ROUGH GUIDE- WORLD MUSIC’을 읽다보면 웃지 못할 대목과 만나게 된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들을 정리해 놓은 이 책의 한국 편에는 국악, 사물놀이, 민중음악(포크) 등과 함께 ‘퐁착 록(PONCHAK ROCK)’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36년 동안 받으면서 언어, 역사, 문화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토로또(TOROTTO: 트로트)는 일제강점기가 남긴 유산이며, 일본의 엔카와 동등한 것이다”인데, 이와 함께 이미자, 조용필, 김수철, 이선희 같은 가수들을 ‘퐁착 록’ 뮤지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대중음악 ‘퐁착 록’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읽는 순간엔 불쾌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비교적 한국 대중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음악평론가 가와카미 히데오와 폴 피셔(Paul Fisher) 두 사람이 쓴 이 글은 외국인의 시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보다 객관적인 관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는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트로트의 ‘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그 본질과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 것이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지난 4·13 총선 때 큰 각광을 받았던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의 노래 ‘바꿔(최준영 작곡)’. 그런데 이 노래를 유심히 듣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곡의 리듬은 ‘쿵짝 쿵짝’거리는 이른바 ‘뽕짝 리듬’이다. 테크노 여전사의 노래가 ‘무늬’만 테크노였던 것. 이것은 비단 이정현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가요계를 살펴보면 댄스뮤직, 발라드 구분 없이 소위 ‘뽕 기운’이 담긴 곡들이 강세를 띠고 있고, 또 그래야만 히트한다는 일종의 공식 아닌 공식이 되어 있다.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걸까.

‘뽕 기운’이 담겨야 히트한다?

1996년, 가요계에는 의미 있는 히트곡이 하나 나왔다. 영턱스 클럽의 ‘정(윤일상 작곡)’. 10대 댄스 그룹이 트로트 요소를 가미한 노래를 부르며, 단숨에 인기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트로트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님에도 이들 노래에 담겨있는 은근한 뽕 기운에 여러 세대가 취했다. 아무튼 이 노래의 빅히트 후, 가요계에는 트로트적 요소를 가미한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러한 방식에 일가견을 가진 윤일상, 최준영 등은 지금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대중가요는 일단 사람들이 처음 들었을 때 귀에 쏙 들어와야 한다. 라디오나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온 신경을 집중해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흘러나오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들을 뿐이다. 그래서 쉽게 기억되는 몇 마디가 필수적이다. 바로 그 ‘몇 마디’를 친숙한 트로트 풍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 노래에서 친근함을 느끼고, 쉽게 외워 따라 부르게 된다.

그런 이유로 가요에서 이른바 뽕 기운은 곡 구성에 필수요소가 됐다. 결국 어린 세대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음악 속에도 우리 스스로 짐짓 외면하고 폄해왔던 트로트의 생명력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신세대들조차 트로트를 ‘몸’으로 느낄 줄 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트로트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피부에 와 닿는’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뿐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있어 온 음악이다. 장르 구분이 힘든 가요계에서 트로트만큼 장르적 생명력을 꾸준히 유지해 온 음악도 드물다. 요즘 청소년들 역시 트로트음악의 영향권에서 성장해왔다는 의미다.

지난 90년대 가요계는 댄스음악이 패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IMF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도 댄스뮤직은 쇠퇴하지 않고 살아남아, 이제는 그 자생력을 일정 정도 확보한 상황이다. ‘국적불명’ ‘지나친 10대 위주 음악’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우리 입맛에 딱 맞는 ‘토종 아닌 토종’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불붙기 시작한 댄스뮤직과 트로트의 퓨전 현상이 기여한 바 크다. ‘한국형 댄스뮤직’이라는 새로운 음악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우리 10대, 20대들은 트로트에 거부감보다 친근함을 갖기에 이르렀다.

가요계가 이렇게 변하는 동안 30대 중반 이하 세대의 마음속에도 트로트 정서가 구체적으로 자리잡아갔다. 트로트의 위력은 각종 모임자리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필자 역시 군 복무 시절 그런 경험이 많다. 회식 말미에 이르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트로트 메들리가 시작됐다. 주로 경쾌한 노래들이 이어졌는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제 20대 초반인 젊은 군인들이 웬만한 곡들은 가사부터 리듬까지 줄줄 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 회식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그 절정은 트로트가 장식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트로트 노래들이 일종의 ‘귀 가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래방 열풍도 트로트의 생명력 유지에 큰 공헌을 했다. 1990년대, 노래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그에 초점을 맞춘 단순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곡들이 양산됐다. ‘노래방에서 떠야 노래가 뜬다’는 논리 속에 이런 현상은 가요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내 노래를 불러도 80점을 못 넘었다”는 가수 신승훈의 말처럼 이 알쏭달쏭한 기계는 ‘전 국민의 가수화’를 촉진시켰다.

이 노래방 열풍은 젊은 세대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기성세대들도 모임 뒤끝이면 너나없이 노래방을 찾아 목청을 돋웠다. 넥타이를 머리에 맨 직장인들은 너나없이 “역시 뽕짝이 최고야!”를 외쳐댔다.

젊은 세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양강 처녀’는 졸지에 ‘국민 가요’가 됐고, 각종 경기장에서는 ‘비 내리는 호남선’이 응원가로 변모해 울려퍼졌다. 김수희는 ‘애모’를 부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고 편승엽의 ‘찬찬찬’은 1990년대 중반 가요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가 지금 듣고, 노래하고 있는 트로트는 서양에서 발생한 것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 이름이 ‘폭스 트롯(fox trot)’인 이 음악은 191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발생했던 춤의 한 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온 뒤에 경쾌했던 박자도 느리게 변했고 노래 자체가 애조를 띠게 됐다. 이러한 일본풍 트로트를 ‘엔카’라고 부르게 됐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에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본래 엔카는 일본이 급속도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메이지 시절, 정부와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거리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쯤부터 정치성은 사라지고 이별, 비, 항구, 욕망, 상심, 그리움 등을 소재로 삼는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엔카는 서양음악과 일본 특유의 정서가 혼합된 일본 최초의 대중음악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일본의 영혼’ ‘일본만의 독특한 발라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카 원조’ 고가 마사오의 고백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트로트는 확실히 일본 음악이다. 그러나 트로트의 뿌리에 대한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음악평론가 겸 작사가인 김지평은 자신의 저서 ‘한국 가요 정신사’에서 ‘엔카의 원조’ 고가 마사오가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 스스로가 “한국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것을 근거로 삼아 트로트 왜색론을 반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의 농악, 타령 등에서도 트로트리듬이 발견된다. 왜색가요 주장은 일본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몇몇 인사에게만 존재하는 유령”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가요에 왜색이 담겨 있음을 지적한 황병기 교수는 “일본 고유의 미야코 부시 음계와 본질적으로 같은 요나누키 단음계를 사용한 일본 가요 스타일을 한국 작곡가들이 그대로 모방하면서 왜색 가요의 조류가 형성됐다”면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로 “민요가 아닌 새로운 대중음악이 필요해진 개화기에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아 주체적인 대중음악을 이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직도 왜색가요가 끈질기게 불리는 것은 그 식민지적 풍화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 준다”며 우려의 뜻을 표하고 있다.

위의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트로트 음악의 ‘왜색논란’은 이 장르의 태생적 약점인 듯하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자발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본 것을 무차별적으로 이식받았다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유입된 외국 음악 가운데 오직 ‘왜색노래’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영미 교수는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트로트가 왜색이라면 광복 후의 양식들은 ‘양색(洋色)’이다. 대중가요의 양색성은 지적하지 않은 채 왜색성만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 대중가요들의 양색성, 미국 대중문화 의존성을 가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제 트로트 양식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완전히 ‘토착화’되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해체 조짐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더 이상 왜색성으로 인한 이식 문화적 효과를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 교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트로트는 이제 쇠퇴의 길에 들어선 듯 보인다. 그러나 오랜 세월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된 그 정서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나이가 들수록 트로트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트로트 속에 우리 정서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정서란 본능적으로 외부에 표출되기 쉬운 감정을 뜻한다. 10대들이 즐겨 듣는 댄스곡 속에서도 굳건하게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정서의 세습, 더 나아가선 세뇌에 가까운 ‘뽕짝’의 무서운 생명력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트로트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그 선호도가 연령과 거의 정비례하는 음악이다. 왜 “30대 중반은 넘어야 트로트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하는 걸까.

50대 이상은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트로트에 익숙하다. 그들의 어린 시절, 내지는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트로트는 이제 익숙함을 넘어 어떤 ‘향수’로까지 탈바꿈한 듯하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50대 이하, 4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연령층이 트로트음악을 선호하는 현상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50대보다는 ‘덜’ 어른이고, 그렇다고 30대 중반 이하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낀 세대’.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잔재를 경험하며 자란 슬픈 세대다.

이 연령층은 도시락보다는 ‘벤또’를, 계단보다는 ‘가이당’을, 머큐로크롬보다는 ‘아까징끼’라는 단어에 더 친숙함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대상들이 어떤 소박한 추억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단지 식민 시대의 잔재로만 몰아붙이기에는 웬지 모르게 정이 가고 심지어 ‘한국적’이다.

물론 누구도 이들에게 그런 정서를 주입한 적은 없다. 그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영향이 단절되지 않고 이들 세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일 뿐이다. 결국 낀 세대들에게도 트로트는 어려서부터 경험한 친밀한 정서의 노래이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음악인 것이다.

사실 트로트에서 시대를 앞서나가는 엄청난 실험정신이라든지 뛰어난 음악적 양식미, 심오한 메시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단지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고 오래 들어온 음악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그 효력이 더욱 강해지는 건 아닐까.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마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 그것은 어떤 장르의 음악에 팬을 끌어 모음에 있어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하게 작용한다. 트로트는 그런 장르 고유의 친화력이라는 가장 큰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90년대를 지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성인음악의 부재와 기능상실도 트로트가 어른들의 음악으로 입지를 굳히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0대에 데뷔해, 20대가 되면 노장 소리를 듣고, 나이 서른이면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가요계의 서글픈 현실 속에서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감성과 호흡할 수 있는 성인음악에 목말라 있다. 마땅히 들을 음악이 없는 우리 대중음악계의 기형적 상황이 그들을 음반시장에서 내쫓고, 그 빈 공간을 트로트가 채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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