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아내에게 요리를 배우니까 행복합니다!”

  • 글·최영재기자

    입력2006-08-11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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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못말리는 ‘악동’ 조홍규 전의원이 꼼짝 못하는 이가 있다. 바로 부인 김윤경씨다. 바깥에서는 두려울 것 없는 그도 일단 집에만 들어오면 호랑이 만난 여우마냥 꼬리를 내린다. 천하의 싸움닭인 그가 엄처시하에서 떨고 지낸다면 누가 믿을까? 그가 오늘 요리전문가 아내에게서 닭날개 볶음을 배운다.
    한국관광공사 사장 조홍규씨는 소문난 국회의사당 싸움닭이었다. 현역 의원 시절, 의사당에서 몸싸움이 났다 하면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이 나왔다. 이른바 실력저지조, 전투조였던 것이다. 160cm 단신이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조양은이가 키가 커서 잘 싸우는 게 아니다. 싸움은 덩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문지상에도 기록된 유명한 그의 말이다. 그는 싸움실력 뿐 아니라 유머 실력도 대단했다. 여야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촌철살인식 독설과 농담들은 온 회의장을 폭소로 뒤덮곤 했다. 오죽하면 16대 국회에서 “조홍규가 그립다”는 말이 나올까. 실제로 지난 7월 국회 대정부 질의 과정에 그가 속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낭패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1당 수십명’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그가 빠지자 대야 전열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술실력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빼어나다. 한번 술을 마시면 밤을 새워 마시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를 마셨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주량이 얼마입니까?”하고 물으면 “술꾼은 째째하게 술병을 세가며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PC통신 인물란을 찾아보면 주량이 나와 있긴 하다. 그 곳에 적힌 주량이라는 게 ‘막걸리 반 말’이다. 이 대단한 막걸리 실력은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배운 실력이다. 대학 시절 전성기에는 오후 4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막걸리 한말여덟되를 마신 적이 있다고 한다. 진짜 ‘말술’인 그도 몇년 전에 의사 경고를 받고는 술을 삼가고 있다. 그렇지만 삼간다는 것도 눈가리고 아웅식이다. 독한 술 대신 포도주처럼 도수가 낮은 술만 마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이처럼 술 잘마시고 싸움 잘하는 그도 꼼짝 못하는 이가 있다. 바로 부인 김윤경씨다. 그는 일단 집에만 들어오면 호랑이 만난 여우마냥 꼬리를 내린다. 부인에게는 팔이며 어깨를 맞고 정강이를 걷어채는 경우도 많다. 천하의 싸움닭인 그가 엄처시하에서 매맞는 남편이라면 누가 믿을까?



    대구 출신인 부인 김윤경씨는 성격이 괄괄하고 외향적이다. 남편이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돈을 벌어오지 않아 15년 가까이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외국 친구가 많고 견문이 넓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한 탓인지 미술품과 도자기에 조예가 깊다. 그래서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김윤경·조홍규씨 자택을 찾으면 미술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집 전체를 주도하는 분위기는 전통 한옥 양식이다. 집은 양옥이되, 방 천장에는 서까래가 있고, 들창에는 한지가 발려 있다. 이 모든 것이 김윤경씨 작품이다.

    김윤경씨는 요리도 수준급이다. 그의 주방을 들어서면 전문가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보지도 못한 조리 기구가 여기저기 걸려 있고, 세계 각국의 진기한 그릇이 가득하다. 이 수백가지 그릇은 따로 장을 만들어 소중히 모셔 놓았는데, 모두 제자리가 있다. 혹시 누군가가 자리를 바꾸면, 그는 대번에 알아본다. 십오륙년 동안 하나씩 사모았고, 날마다 점검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지간한 이탈리아·프랑스·중국·일본 요리를 직접 해낸다. 타고난 감각과, 눈썰미, 기본기가 있어 어떤 요리라도 한번 맛본 뒤 주방장에게 몇마디 물으면 대번에 집에서 재현해 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운 요리를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것이 그의 취미다.

    그의 손님 식단 짜기는 원칙이 있다. 메인 디시는 새로 배운 외국 요리로 하되, 반드시 한국음식을 곁들인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 된장, 젓갈, 배추김치 같은 전통 저장음식과 맨손으로 무친 나물류를 같이 내는 것이다. 식탁에 올리는 그릇도 기본으로 깔리는 것이 전통 옹기다. 기름기가 많은 외국음식과 맛이 정갈한 한국 음식은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그의 집을 찾는 외국인들도 김윤경씨의 식단을 아주 좋아한단다. 요리 코스가 끝나면 마지막에 반드시 된장찌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한 밥을 대접한다.

    아내는 전문가지만 조사장은 겨우 라면 정도 끓이는 수준이다. 9월9일 조홍규 사장은 아내의 수준급 요리를 하나 배워, 집으로 온 회사 직원들을 대접하기로 했다. 이날 그가 배운 요리는 닭날개 볶음. 일종의 퓨전 요리인데, 기본은 중국요리의 볶음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 요리의 시작은 속이 깊어 오목한 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넉넉히 붓고 센불로 가열한 뒤 납작납작하게 썬 마늘을 볶는 것이다. 마늘이 녹아든 올리브 기름을 만드는 과정이다. 마늘 올리브 기름을 만들면서 옆불에서는 손질된 닭날개를 볶는다. 닭날개는 가열하면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따로 기름을 넣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기름이 나오면, 따라내는 것이 좋다. 닭날개와 마늘은 둘 다 노릇노릇해질 때가지 볶는다.

    다음은 마늘 올리브기름에 준비된 양파와 브로콜리를 넣고 볶는다. 양파와 브로콜리가 적당히 익으면, 이를 익은 닭날개와 섞어 뒤적이며 같이 볶는다. 마지막에는 소스를 넣어 간을 하고, 불을 끄기 직전에 고춧가루를 적당히 뿌린다. 소스는 진간장에 찧은 생강과 설탕을 넣고 끓여서 만든다.

    완성된 음식을 먹으면서 조사장은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결혼 30주년 기념 반지였다. 반지 안쪽에는 ‘하모하뜨’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인지 물으니 ‘한몸한뜻’이란 뜻이고, 부인의 반지에는 그 받침인 ‘ㄴㅁㄴㅅ’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반지는 결혼반지였는데, 찢어지게 가난하던 젊은 시절, 아이 분유 살 돈이 없어 팔았다가 결혼 30주년에 똑같은 것을 장만해 아내에게 선물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음식을 제대로 못만든다고 시종일관 남편을 구박하던 김윤경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반지는 조홍규·김윤경 부부의 30년 사랑과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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