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숲과 사람이 어우러진 그린토피아

  • 하태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1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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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산촌마을은 풍요롭다. 그렇다고 자연을 사람의 입맛에 맞춰 마음대로 재단했기 때문은 아니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자연으로부터 혜택을 입는 방법을 지혜롭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의 나오카와, 아야, 모로츠카, 우메, 난고 등 5개 산촌마을이 영위하고 있는 ‘생태적’ 삶에 대한 현지탐방 보고서.
    일본 규슈 오이타(大分)공항에서 나오카와촌(直川村)에 이르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의 천국이었다. 오이타현(縣)은 총면적의 73%인 46만㏊가 산림이고 그중에서도 나오카와촌은 산림률 90%를 자랑하는 곳. 인구는 3000명 밖에 안 되는 아담한 마을이다. 휴식의 숲 캠프센터에 여장을 푼 일행은 나오카와가 운영하는 그린파크를 찾았다.

    그린파크에서는 나오카와의 자랑인 6홀짜리 미니 골프장이 눈에 띄었다. 94년 개장했으며 토지 구입비를 포함해 약 8억엔(약 84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주위 경관을 살피는 작업은 물론 골프장 설계 및 관리까지 마을주민이 직접 나서서 함으로써 7억엔(약 73억원)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산업과장 아쯔카리는 “심각한 이농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이 도시에 나가지 않고도 수준 높은 문화,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골프장을 건설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민을 위해 만든 이 골프장은 나오카와 이외의 지역에서도 손님을 끌어들여 마을에 많은 수입을 가져다 준다. 96년 16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 뒤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년 13만∼14만명이 골프를 즐기고 있다. 이용객의 20% 정도는 마을 사람이고 나머지 70% 정도는 인근 마을 사람들. 이용료는 평일 3000엔(약 3만1000원), 주말 4000엔(약 4만2000원)으로 일반 골프장 3분의 1 수준의 저렴한 가격이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 6홀의 미니 골프장이어서 동선이 길지 않아 나이 많은 사람들도 이용하기 쉽다. 또한 이용객이 많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적은 것도 나오카와 골프장의 매력. 인상적인 것은 시설을 설치하는 데 든 재원 중 마을이 부담한 비율은 총공사비의 2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총공사비의 50%를 보조해 주었으며 나머지 50% 중 절반도 현이 부담했기 때문.

    지역주민을 위해 만든 6홀 골프장



    이 밖에도 골프장 옆에는 골프연습장과 잔디 썰매장, 수영장 등 부대시설이 있다. 골프장이 환경오염의 주범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나오카와촌 관계자는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해 최소한의 면적에 골프장을 건설했으며 농약이나 제초제의 사용은 물론 수질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환경오염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대부분의 농촌과 산촌마을에는 귀농자를 위한 주택단지가 마련된다. 이 또한 젊은층에서 심화되고 있는 이농을 막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임대해 주는 제도다. 나오카와의 경우도 30평과 25평짜리 임대주택 38동을 지어 마을을 버리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2층짜리 목조주택으로 월 3만엔(약 31만원) 정도를 지불하면 된다.

    임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오이타현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사용할 경우 1평당 1만엔(약 10만5000원)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입주할 때는 추첨을 실시하고 입주자의 대부분은 신혼부부 등 젊은층이 많다는 것이 마을측의 설명. 인근 사이키시(市)에서 근무하며 촌영주택에 살고 있는 마키구치(牧口·40)는 “시설도 훌륭한데다 집값이 저렴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가정의 하수나 오수 처리에 있어서도 마을 모든 집의 하수가 촌에서 운영하는 오수처리장으로 모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위험이 적다.

    첫날 숙소로 활용된 ‘휴식의 숲’ 캠프장도 자연과 어우러진 휴양림이었다. 일반 입장료가 300엔(약 3100원·15인 이상 단체인 경우 150엔)으로 저렴했고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만든 자연 풀장은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캠프장 입구에는 나오카와에서 볼 수 있는 곤충 1000여 종이 전시된 곤충관과 일본의 농업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농업역사 자료관이 설치돼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저녁 7시부터는 나오카와의 토타카(戶高) 촌장 주최로 만찬이 벌어졌다. 캠프장에 모닥불을 피워 구워낸 나오카와 토산 물고기구이 등 맛깔스런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이 자리에서 토타카 촌장은 나오카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골프장을 건설하고 캠프장을 차리고, 귀농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등 촌민의 이농현상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마을을 버리고 도시를 택하는 사람들의 추세를 누그러 뜨리기는 힘들다는 것.

    돌아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더 이상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는 사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휴식의 숲 캠프장에 대한 관리와 운영을 모두 나오카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었으며 나무를 가공한 수공예품 공방의 경우도 주민자치로 운영하고 있어 촌민들의 지역사랑은 남다르게 느껴졌다.

    먹어도 탈 없는 액화천연비료

    다음날인 8월 21일 오전 나오카와촌이 운영하는 농산물 가공공장을 찾았다. 나오카와촌이 지어 촌민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한 이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주체는 33인 생활협의회란 주민자치기구.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며 나오카와에서 나온 원재료를 사용한 과일잼, 과자, 만두, 떡, 된장 등 10여 종류의 물품을 생산한다. 이날 당번을 맡은 구도(工藤·42·여)는 “이곳에서 농산물을 가공해 조그만 수익을 올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나는 것은 이웃주민들과 어울려 신나게 일하고 나오카와를 대표하는 가공음식물을 만들어내는 점”이라고 말했다.

    나오카와 촌민들의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일행은 우메정(宇目町)으로 이동했다. 우메정은 인구가 나오카와촌보다 약간 많은 4000여 명이고 총면적 26만6000㏊ 중 산림면적이 25만2000㏊를 차지하는 곳이다. 99년 새로 지었다는 우메정 청사에 도착하니 고히라이치로(小平一郞) 정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울에 있는 한 학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지난 6월 우메정 주민들이 4박 5일간 한국을 다녀왔다고 인사말을 한 고히라는 우메정의 모토는 ‘리사이클’이라고 설명했다. 99년 지어진 최신식의 우메정 청사도 100% 리사이클한 건축자재라는 것.

    우메정에서는 농가에서 나온 퇴비를 정화해서 천연액화비료로 만드는 축산폐수처리시설(BMW·Bacteria Mineral Water)시스템이 유명하다. 양돈·양계에 의한 분뇨 공해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이 시스템은 가축의 분뇨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물론, 처리가 끝난 분뇨는 천연액화비료가 되어 화학처리된 비료 대신 사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터널도 새로 개통했는데 우메정은 옛날 터널 내에 BMW 시설을 설치했다. 이 또한 우메정이 자랑하는 리사이클방식을 택했다.

    BMW시스템을 통해 액화천연비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각 농가마다 설치된 1차 액화비료 처리시설을 통해 걸러진 가축의 분뇨가 BMW 시스템으로 전달된다. 1차 처리된 분뇨는 4개월간의 처리과정을 거쳐 ▲질소 ▲인산 ▲칼륨 등 비료의 3대 요소를 갖춘 천연액화비료가 된다. 4개월의 처리과정을 거치면 물처럼 마셔도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제된 비료가 된다는 것이 관리자의 설명.

    우메정에는 ‘정말로’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시골로 돌아온 귀농자들이 있다. 8월 21일 오후 우메정 화훼단지 비닐하우스 안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호사카(保坂·47)를 만났다. 도쿄(東京)에서 컴퓨터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다 귀농을 결심했다는 호사카는 “도쿄에서 샐러리맨을 하던 시절보다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우메에서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물가도 비싸지 않기 때문에 생활에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7년째 화훼일에 종사하는 호사카가 처음부터 이런 생활의 여유를 누린 것은 아니다. 화훼기술 부족으로 마음먹은 만큼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도시생활에 젖어 있던 그로서는 시골생활이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동료 귀농자의 도움과 우메정측의 지원이 있어 이제는 본궤도에 올랐다. “아직 결혼을 못 해 적적하다”는 호사카는 “모든 준비는 완벽하니 같이 생활할 신부감을 찾는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일본의 농촌과 산촌마을에 아직까지는 호사카 같은 귀농자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우메정까지 제발로 찾아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계속적인 이농현상에 따른 인구감소와 영농후계자 부족으로 고민하던 우메는 매년 도쿄, 오사카(大阪), 후쿠오카(福岡) 등 3개 도시에서 귀농을 위한 설명회를 가진다.

    현재 우메정 화훼단지에는 도쿄에서 온 마쓰모토(松本) 가족 등 대도시 출신 8가족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 중에는 규슈(九州) 제국대 농과대를 졸업한 사람도 있다. 농사경험이 없는 귀농자들을 위해서 우메정 측에서는 1년간 농사기술 등을 전수해주는 연수기회도 준다.

    현재는 농가 1가구당 20a인 화훼면적을 1가구당 30a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농가경영분석 결과 연간 2000만엔(2억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내기 위한 적정 화훼면적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

    오이타현의 두 개 산촌을 견학한 일행은 미야자키현(宮崎縣)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야자키현의 산림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76%에 해당하는 59만㏊. 현 북부에 위치한 미미카와(耳川) 임업지역은 새롭게 조림이 실시된 신흥 임업지역이다. 확대조림의 결과 일본의 대표나무인 삼나무를 중심으로 한 25만여㏊의 인공림이 조성됐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구석구석 도로를 내 생산기반과 유통가공체제에 대한 정비를 마쳤다.

    미야자키의 원목 생산량은 연간 130여만㎥로 전국 3위이지만 침엽수 생산량은 99만㎥로 홋카이도(北海島) 다음이고 삼나무만을 놓고 보면 83만㎥로 일본 최고를 자랑한다. 이와 같이 풍부한 산림자원을 토대로 미야자키현은 북부의 5개 정촌(町村)을 모델권역으로 지정, ‘포레스토피아(숲을 의미하는 포레스트와 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의 합성어) 미야자키’ 구상을 추진중이다.

    미야자키현에 있는 난고촌(南鄕村)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이미 ‘백제의 마을 남향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안내문이 한글로 쓰여 있을 정도. 이 밖에 모든 안내간판에 한국어와 일본어가 병기(倂記)돼 있어 마치 한국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고촌의 지역진흥의 방향이 백제문화의 뿌리를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에 있기 때문. 이미 부여시와 교류를 실시해 양 지역간의 교류가 11회를 넘겼다.

    난고촌에는 백제왕족의 유품과 역사적 전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니시노쇼소인(西正倉院), 부여에 있었던 박물관을 실제 크기로 복원한 ‘백제관’, 부여 낙화암의 백화정(百花亭)을 재현한 ‘연인의 언덕’ 등이 백제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 밖에 매년 음력 12월이면 일본 전역에 흩어진 백제왕족들이 1년에 한 번 재회한다는 전설을 재현한 ‘시와스 축제’가 열린다.

    난고촌 기획관광과 하라다(原田) 과장은 “이농현상이 심화돼 임업이나 농업에 의한 수입이 시원치 않아지기 시작하던 15년 전 백제왕족의 전설을 토대로 백제마을을 기획했다”며 “이전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없었던 마을에 한국인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촌 운영에도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임업의 최후 보루 모로츠카

    한 가지 흠이라면 백제관에 비치된 백제관음상의 모습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제 관음상의 미소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 채 어설픈 형태로 복원해놓아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난고촌 관계자는 “아마추어 작가가 자발적으로 제작한 뒤 백제관에 전시해줄 것을 통사정해 하는 수 없이 전시해 두었다”며 “조만간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산림을 보아온 생태산촌마을 탐방단이었지만 일본 임업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모로츠카(諸塚)의 삼나무 인공조림대가 눈앞에 펼쳐지자 저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울창하게 들어선 산림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밭을 갈 듯이 산림을 경작하는 일본인의 인공조림에 감탄하는 목소리였다.

    모로츠카는 면적의 95%가 산림지대이고 마을 생산소득의 14%가 임업소득이다. 모로츠카는 산 중턱은 물론 해발 500m가 넘는 산의 정상에 심어진 나무까지도 모두 인공조림이다. 밭을 갈 듯이 경작한다는 의미는 밭을 경작할 때 구획을 지어 구역마다 다른 농작물을 심듯, 산림을 가꾸는 데 있어서도 구역별로 철저하게 관리하는 계획조림을 실시한다는 것. 일본이 오늘날 삼나무 강국이 된 것도 일본 전역의 산간지역에 대한 토양분석을 실시한 결과 삼나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뒤 일본 전역에 삼나무 인공조림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수시로 산에 들어가 산림이 자라는 상태를 체크하고 조림해야 하기 때문에 임업도로도 크게 발달해 1㏊당 50m에 이른다. 우리 나라의 평균 임업도로가 2m에 불과한 것에 비춰볼 때 가히 어마어마한 길이다. 제3섹터 개발방식으로 95년 3월 설립된 우드피아 모로츠카(재단법인)는 산림을 적정 관리하는 젊은 임업노동력의 확보, 임업농가의 육성, 국토보전 등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산림의 적정한 관리를 위한 농림업 후계자 육성을 위해 92년부터 ‘농림업 경영대학’을 설립, 운영중이다.

    아야정(綾町)은 일본 내 그린투어리즘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린투어리즘이란 ‘자연경관이 뛰어난 농촌, 산촌, 어촌 지역에서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연, 생활, 역사, 문화자원을 재발견하고 도시민과의 교류를 통해 산촌과 농촌을 활성화시키는 것. 즉 그린투어리즘은 자연환경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지역환경을 정비하고 야생동식물 등에 대한 보호를 유도할 수 있는 생태적 개념의 관광이다.

    그린투어리즘이 지역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해 해당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창조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산촌과 농촌 등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을 준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일본은 90년대 초반부터 그린투어리즘을 적극 도입하고 나섰다. 아야정도 그와 같은 그린투어리즘 시책에 발맞춰 마을을 중흥한 경우다.

    하지만 아야정의 그린투어리즘 성공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총면적의 80%가 산림으로 덮인 아야정의 60년대 초반 모습은 이농현상과 노령화 현상 등으로 쇠락해 가는 다른 산촌마을과 같았다. 주요한 생계수단이었던 임업은 산업화에 밀려 더 이상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지 못했다. 인구수도 크게 줄었다.

    숲을 지켜낸 아야정 사람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중앙정부는 67년 이 지역 산림을 베어버리겠다고 통보했다. 동백나무처럼 표면이 빛나고 잎이 넓어 경제성이 떨어지는 조엽수림대(照葉樹林帶)를 없애고 삼나무처럼 수익성이 높은 나무로 바꾸겠다는 것. 대다수 주민들은 “당장 일자리가 생겼다”며 정부의 결정을 반겼다. 국유림이기 때문에 지자체는 반대할 권리가 없었다. 마을 의회도 나무를 베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생각이 달랐다.

    자연림이 파괴되면 생태환경이 변하게 되고 다시는 과거와 같은 산 좋고 물 맑은 아야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 당시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에서 이와 같은 ‘순진한’ 생각은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족했다. 일부이지만 자발적인 주민들의 조엽수림 벌채반대에 힘을 얻은 아야정 관계자들은 마을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마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숲을 지켜 나가기로 결의했다. 마을사람들의 단결된 힘은 결국 현과 중앙정부마저 설득하여 결국 정부의 결정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지켜낸 숲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만든 것이 데루하(照葉)대교 였다. 원시림 보전을 위해서는 다리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아야정측은 “다리는 인간과 자연을 잇는 가교로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길이 250m에 수면으로부터 142m에 위치, 보도교(步道橋)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이 다리는 83년 완성돼 아야의 명물이 됐다.

    데루하대교는 옛 문화재를 복원한 아야죠(綾城), 경주마 사육의 전통을 살린 마사공원(馬事公苑), 꽃시계 등과 함께 아야의 맑은 공기와 물을 알리는 훌륭한 관광자원 구실을 하고 있다. 결국 30여 년 전 숲을 살린 주민들의 용기 있는 결정은 아야정을 매년 12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그린투어리즘의 명소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숲을 지켜낸 마을 주민들의 저력은 유기농업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미야자키시 등 다른 마을에서 사 먹던 채소를 직접 길러 먹기 위해 73년부터 ‘한평 채소밭 운동’을 펼쳤다. 씨앗을 무료로 나눠주고, 모든 채소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기르도록 했다. 유기농업 개발센터가 유기농산물 인증제를 책임지고, 인분과 음식쓰레기를 비료로 만드는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아야가 유기농업을 시작한 계기는 아야정 주민들의 발병률이 높았기 때문. 의료비용 지출규모가 미야자키현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것은 다른 곳에서 사오는 농작물 때문이라고 생각한 아야정측이 적극적으로 유기농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 3년 정도 지나자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는 채소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외지로 유기농산품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20년이 지난 뒤 아야정은 유기농업의 마을로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유기농업센터는 유기농업을 희망하는 농가에 대한 토양분석을 실시해 주고 토양진단서를 발급한다. 또한 유기농법에 의한 채소재배법을 전수해 주는 등 마을 주민들을 유기농으로 끌어들이는 시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95년 642가구 중 430가구(67%)가 유기농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생산액도 지난해 43억8000만엔에 이르렀다. 유기농업센터 아리무라(有村)는 “아야정 헌장은 정(町)의 기본이념을 ‘자연생태계를 활용하여 키워나가는 지역으로 만들자’로 명시하고 있다”며 “화학비료 농약 등의 합성화학물질 이용을 배제하고, 흙을 자연생태대로 되돌리며, 농산물의 안전과 유전독성 등을 제거하는 농법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산촌마을의 힘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산촌마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란 힘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 탐방에서 둘러본 일본 산간 마을은 우리 나라 산촌보다 훨씬 풍요롭고 자족적인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관은 풍부한 예산지원과 밝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관의 시책에 협조해 모두 하나가 되어 자기 고장을 제일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즉 일본 산촌은 ▲국가의 부(富)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의지와 비전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주변의 풍부한 산림자원 ▲역사문화적 자산이라는 다섯가지 요소를 조화시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산촌의 진흥을 위한 에너지로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 주도의 개발이 결국은 생태를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산촌마을은 자연환경을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 계획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관민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은 우리 지자체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생태산촌 만들기 모임은?

    푸른 숲과 생활의 편리함이 조화를 이룬 산촌을 꿈꾸며

    ‘생태산촌 만들기 모임’(대표 양병이·楊秉彛·서울대교수)은 자연과 조화되고 지속가능한 생산기반을 갖춘 생태적인 산촌을 조성하여 산촌활성화에 기여하고 이를 토대로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단체로 지난 3월 학계와 시민운동단체, 귀농전문학교, 산촌민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설립됐다.

    이 모임이 추구하는 사업내용은 ▲생태적인 산촌 조성을 위한 설계 및 시범마을 만들기 ▲생태관광을 통한 산촌문화의 진흥 ▲도농간 연계를 통한 협력관계 증진 등이다. 산촌의 중요성과 산촌마을의 미래상 등에 대한 교육과 홍보 및 국내외 산촌마을의 연대 및 교류에도 노력한다.

    지난 8월 20일 유한킴벌리와 대한주택공사의 후원으로 처음으로 해외 탐방길에 올라 일본 규슈(九州)지역 오이타현(大分縣)과 미야자키현(宮崎縣)내 다섯 군데의 산촌마을을 살펴보았다. 이번 방문에서는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세워진 친환경적 산촌종합개발의 실체를 살펴보고 일본 산촌주민들의 생태환경적 의식의 형성과정과 사회적 배경을 파악한다는 것을 방문 목적으로 삼았다. 또한 5개 정촌(町村)과 한국의 읍 또는 면 단위의 산촌마을과 민간교류를 맺어 일본 생태산촌 마을의 노하우를 전수 받을 준비도 마쳤다.

    생태산촌만들기 모임측은 3박 4일간의 일본 방문기간 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일본산촌마을 진흥전략 및 산촌의 형성과정 ▲일본산촌마을의 그린투어리즘 ▲귀농현상 등 7개 소주제에 대한 보고서를 묶어 책자로 발간할 예정이다. 모임은 이 밖에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산림정책 기본법의 하위법으로 편성될 생태산촌진흥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양병이 교수와 문국현(文國現·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공동운영위원장) 유한킴벌리사장을 비롯해 김선주(金善柱) 건국대교수, 김성일(金星一) 서울대교수, 김재현(金才賢) 건국대교수, 박재일(朴才一) 한살림공동체회장, 성여경(成如慶) 귀농본부 사무처장, 유상오(兪常) 대한주택공사 도시개발기획단 부장, 이명우(李明雨) 전북대교수, 이병철(李炳哲)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이은희(李恩姬) 서울여대교수, 이해경(李海經) 실상사 귀농전문학교 교감, 장우환(張宇煥)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 전영우(全瑛宇)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공동운영위원장, 한대웅(韓大雄) 숲해설가협회 부회장 등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취재후기]만화 ‘토토로’의 고향 우메정(宇目町)

    대자본도 부럽지 않은 지역주민의 마을사랑

    8월 21일 생태산촌마을 만들기 일본 탐방팀을 태운 버스는 잠시 ‘외도’를 했다. 일본 산촌마을을 보는 대신 오이타현(大分縣) 우메정(宇目町)에 있는 ‘토토로 숲’으로 발길을 옮긴 것. ‘토토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감독의 88년 작품 ‘이웃의 토토로’에 나오는 가상의 동물.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 68년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발표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후 30여 년간 ‘빨간 돼지’, ‘명탐정 홈즈’, ‘바람계곡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우편배달부 키키’,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 ‘원령공주’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뒀다. ‘미래소년 코난’도 그의 작품 중 하나.

    이틀 내내 울창한 산림만 보아온 기자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평소 미야자키 감독의 팬이기도 했지만 흔한 편의점이나 생맥주집 하나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두메산골에서 ‘슈퍼스타’ 토토로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이정표를 읽어가며 ‘토토로 숲’이 나오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버스는 좁은 길로만 내달렸다. 심지어 차 두 대가 비껴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길 좌측에 자그마한 버스 정류장 하나가 나타났다. 나무로 짠 틀 위에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슬라브 지붕을 입힌 토토로 정류장은 광풍이라도 불라치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애걔’란 말이 절로 흘러 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둘러본 ‘토토로 숲’은 정말로 보잘것 없었다. 나무판에 미야자키 감독의 캐릭터를 그려 세워둔 정류장과 벤치가 몇 개 있었고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의 나무에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토토로 인형 수백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관리자는 물론 이곳을 설명하는 안내원도 없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중화장실이 하나 마련됐을 뿐이다.

    하지만 기자가 10여분에 걸쳐 ‘토토로 숲’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토토로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잔잔한 즐거움을 전해 주는 듯했다.

    이쯤해서 생태산촌 모임의 안내역을 맡은 우메정의 야나이(柳井) 계장에게 이곳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토토로 숲이라는 것이 야나이 계장의 설명.

    88년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이웃의 토로로’를 보면서 배경이 자신들의 마을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손수 인형을 만들어 주면서 토토로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것.

    이와 같은 소문은 일본 열도 전역에 퍼졌고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우메정의 토토로 숲이 토토로의 고향처럼 알려졌다. 토토로의 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토토로 그림을 가지고 와 이곳에 놓아두었고 크고 작은 토토로 인형이 나뭇가지마다 놓여졌다. 인공적으로 시설물을 설치한 것도 아니지만 많은 날은 5000여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야나이 계장은 “이곳 마을 주민들은 돈을 벌기위해 토토로 숲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와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며 “오히려 산간벽지에 있는 마을을 찾아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일본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어린 자매와 숲의 정령들의 교류를 그린 ‘이웃의 토토로’. 나무와 풀의 정확한 묘사 또는 계절감의 표현 등을 통해 일본 산촌마을의 생태적인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한 토토로의 정령을 사랑하는 우메정 사람들은 토토로의 숲을 가장 ‘생태적’이고 ‘토토로적’으로 꾸며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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