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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는 남방해상로를 거쳐 전해졌다

울산 암각화에 드러난 수메르 신화

  • 조철수·서강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남방해상로를 거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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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암각화 발견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8월1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암각화 국제학술대회’에 고전 신화학자인 조철수교수(이스라엘 히브리대)가 ‘정보의 발생과 그림문자, 그리고 울산암각화의 상징체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조교수는 우리 선사문화의 실체를 밝혀주는 핵심 유적인 울산 암각화가 일정한 스토리를 담은 고대설화이며,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네발 달린 용 그림’ 등이 암각화에 나타나는 것은 인도 및 동남아 해상로를 경유해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한국에 전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철수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하여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한 글을 싣는다. -편집자》
인류 문화 발달에 있어 언어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진 가장 초기 단계의 의사소통 수단은 몸짓이며, 또 다른 정보 교류 방법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석기 시대의 동굴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들소, 사슴, 큰 새 등은 단순히 대상물을 묘사한 개별적 그림으로 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제의(祭儀) 양상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석기 시대에 나타나는 상징 그림들도 대개 보편성을 지니며 여러 집합으로 분별하여 분석할 수 있는데, 특히 암각화에서 그 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살필 수 있다. 종교의례는 집단적으로 거행되는 행사이며,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는 목적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졌음을 청동기 시대 이후의 고대 근동 문헌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암각화를 이해하는 데는 그림 자료와 그림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문헌의 비교가 필요하다.

한국의 암각화 자료는 수효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시대적으로 변천 과정을 추정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경상도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적은 수량의 암각화가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데, 암각화에 보이는 작은 단위의 여러 무늬는 구(舊)유럽(흑해 위쪽 지역)과 중앙 아시아 지역의 신석기 시대 상징 무늬와 보편적으로 비슷하다.

특히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 있는 마름모 물결 무늬, 동심원, 연못과 사슴, 사슴 뿔 위에 있는 동심원 그림, 작은 동물들과 꽃 모양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남자, 뱀 모양과 그 옆에 마름모 모양의 연못 등 몇몇 집합 그림은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도 유사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울산 암각화에 나오는 집합 그림을 중심으로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 대조하면서, 또한 한국의 고대 설화와 비교하여 그림과 문헌의 연결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아래 부분에는 긴 발이 네 개 달린 용 그림이 있다. 네 발 달린 용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바빌론의 이쉬타르 성문에 채색된 돌로 용 모양을 새긴 그림이며, 그 외 많은 원통형 인장에서 용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이렇게 생긴 용은 ‘바다 용’을 가리키는데, 신들의 대적자로 등장한다. 신들의 용사가 바다 용을 무찌르고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이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청동기문화의 산물인 한국 고대 암각화에 메소포타미아의 네 발 달린 용 그림이 나타난 것일까. 이런 연결고리를 직접적으로 밝혀주는 문헌자료는 없다.

해상로를 따라 건너온 수메르 신화

다만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남단의 부족국가들과 서역(인도) 사이에 해상 왕래가 있었다는 흔적은 발견된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돌하루방과 제주도에 있는 것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도 그렇고, 한국의 대표적인 청동기 문화라고 하는 고인돌이 일본, 중국 남동부, 베트남, 태국 동북부, 인도네시아의 자바와 수마트라,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인 이란,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도 나타난다는 점도 그렇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주로 남방의 해양 루트에서 고인돌을 발견할 수 있다.

문헌적 방증으로는 ‘삼국유사’에 전해진 가락국기의 김수로왕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후 1세기 경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동쪽에 있는 아유타라는 왕국의 공주와 혼인했다고 전한다. 아유타국 공주가 가락국까지 배를 타고 와서 그 왕과 혼인하였다는 국가적 행사는, 두 나라가 일회적이 아니라 빈번하게 교류했기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상정할 수 있다.

중국의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에는 서기 120년경에 로마의 곡예사들이 중국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로마 왕이 중국과 사신을 교환하기 원했다고 전한다. 이 당시 로마인들이 중국에 도달하는 경로는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를 경유하는 해로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국의 남쪽 해안 지역과 우리나라 남해안 쪽에서 유사한 문화적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삼국유사에 전해진 김수로왕의 혼인 이야기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잦은 왕래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언어적으로 보아도 인도에서 널리 사용되는 드라비다어와 고대 한국어 사이에 연관된 단어가 수백 개나 되는 것은 서역 문화가 우리 고대국가 문화에 유입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강길운, 韓國語系統論, 드라비다어와 고대 한국어의 어원 연구자료로 1370여 개의 어휘를 제공하고 있음). 특히 벼 농사와 관련된 많은 어휘가 대부분 드라비다어라는 점도 중요하게 지적되는 부분이다.

분명한 사실은 기원전 25세기에 이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과 인더스 강 유역 사이에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이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인도 쪽으로 전해진 증거들도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10∼6세기에 바빌로니아 왕들이 페르시아 만을 통해 바다 건너로 피신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동쪽으로 전해지는 경로도 볼 수 있다. 또 기원전 4세기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길에서도 서방문화의 전파를 확인할 수 있다.

울산 암각화 뿐 아니라 한국의 고대 신화에 고대 근동의 신화소가 있는 것은 이러한 문화 전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배경을 전제로 울산 암각화의 집합 그림을 구체적으로 해석해보자.

물을 상징하는 물결무늬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는 물결무늬와 물결무늬로 이루어진 마름모 모양이 많다. 물결무늬 자체가 물을 상징한다는 것은 문화의 보편성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명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구(舊) 유럽과 고대 근동의 신석기 시대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결무늬는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 등을 표현한 것이며, 농경사회에서 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건기와 우기가 구별되는 근동 지역의 농경문화에서는 우기에 내리는 비와 지하 암반에 고인 지하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들의 종교제의 뿐 아니라 신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하수는 건기에 생명을 유지시키는 원천이었고, 또한 사제들은 지하수로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진행했다. 고대 근동의 청동기 시대 문헌에 나오는 비를 기다리는 기도문과 마귀를 쫓는 주문(呪文)이 이를 입증한다.

‘지하수의 일곱 아들이 물을 거룩하게 한다. 물을 깨끗하게 한다. 물을 빛나게 한다.’

또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제들이 지하수로 병을 치유하였다는 것은, 의사를 ‘물을 아는 자’라는 단어(수메르어로 ‘아-주’)로 불렀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 나오는 물결무늬는 물의 그림문자다. 토기 등에 단순하게 그려진 것도 있지만 점토로 만든 모신(母神)에 새긴 문양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빗금 무늬가 새겨진 메소포타미아 모신상이 알려주는 정보는, 단순한 빗물과의 관계뿐 아니라 땅의 모신과 고인 물(지하수)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지모신(地母神)은 땅 밑에서 올라오는 지하수나 연못에 고인 물의 생명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또 물결무늬를 겹쳐서 그린 마름모꼴 문양이 모신의 몸체에 그려진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마름모 무늬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수사슴이나 황소가 마름모에 교미하는 장면은 이와 같은 마름모의 상징성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한편으로 땅에 고인 물이나 지하수는 저승과 연관되며 물결무늬 같은 빗금무늬는 뱀의 표상으로도 등장한다. 빗금무늬는 나무빗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대 근동의 장례에 여자 곡(哭)꾼들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는 관습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물결무늬의 그림문자는 다른 요소와 합해지면서 여러 상징체계를 구성한다.

천전리 암각화의 가운데 부분에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큰 뱀과 마름모 모양 연못이 나온다. 뱀은 남성과 관련이 있고 연못은 지하수 및 지모신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으로 전해진 신화에서도 지하수 신, 두 뿔 달린 뱀 모양 저승신, 저승사자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좋은 나무의 주(主)’(닌-기쉬-지-다)라는 이름을 가진 수호신은 뿔 달린 두 뱀을 상징으로 하며, 개인이나 가문의 수호신으로 저승 선신이다.

그리고 수메르어로 뱀을 ‘무쉬’라고 발음하는데 남자 성기와 나무도 같은 발음이다. ‘남자가 여자와 성교하다’는 ‘남자 성기/나무를 박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남자의 성기/나무와 뱀의 발음이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모신의 몸에 빗금/뱀 무늬를 그려 넣어 풍요 다산을 의미한다는 것을 수메르어의 어휘 발달과정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뱀을 표상하는 남성신 닌기쉬지다는 수메르 신화 ‘거룩한 도시 딜문’에서 ‘팔을 치켜드는 새싹 여신’을 아내로 취한다.

다른 신화 ‘인안나의 저승 여행’에 의하면 닌기쉬지다는 포도주 여신이 저승에 내려가 6개월 지내는 동안 그녀의 배우자로 선택된다. 뱀을 표상하는 닌기쉬지다는 치유의 신으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조철수, ‘수메르 신화 1’ 참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화인 아담과 그의 아내와 열매 이야기에 뱀이 등장하는 것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승된 이야기다. 에덴동산의 뱀은 수메르 신화의 뱀 신인 닌기쉬지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조철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참조).

초기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타락한 천사 사마엘이 뱀을 타고 하와에게 다가와서 그녀를 임신시켜 카인을 낳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뱀 신과 여자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통용되었던 몇몇 원통형 인장에 뱀 신이 여자에게 열매를 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서로 꼬고 있는 뱀 두 마리가 치유의 신으로 고대 그리스 세계에 전해졌으며,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기원전 30년 사망)의 동전 뒷면에도 나타난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병원이나 약국의 마크로 두 마리 뱀 문양이 사용된다.

천전리 암각화에 나오는 큰 뱀의 모양과 뱀을 뜻하는 수메르 상형문자 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뱀 대가리 위에 뿔이 두 개 달려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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