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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에로영화 걸작 10선

조작된 관능, 찰라의 쾌락

  • 김의찬·영화평론가

조작된 관능, 찰라의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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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하고 천박하고 끈적거리는 삼류 필름. ‘살 냄새’ 물씬한 섹스의 천국에도 걸작이 있고 거장이 있다. ‘목구멍 깊숙이’부터 ‘젖소부인’까지. 에로 사극, 핑크 무비, 하드코어 포르노의 은밀한 유혹.》
”현실은 포르노를 모방한다.” ‘키카’와 ‘하이힐’, 그리고 최근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만든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야기다. 그가 지은 책의 제목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견지에서 보면 에로영화만큼 현실과 그대로 닮아 있는 장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경험하고 싶고, 경험하게 되는 것을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놓기 때문이다. 바로 ‘섹스’다.

같은 이유로 에로영화는 불경스럽고, 천박하며 싸구려 장르로 대접받는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서구영화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에로영화만큼 국제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며 검열시비에 휘말린 장르는 없다. 왜일까.

에로영화는 모름지기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장르로 치부되며,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금단의 세계를 스크린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싸구려문화에서도 이따금씩 대단한 결과물이 생겨나곤 한다. 오시마 나기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같은 거장들이 비도덕적이고 음탕한 영화를 만들어 평단의 격찬을 받은 적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에로영화에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함의가 충분히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에로영화에도 ‘걸작’은 있는 법이다.

영화역사를 돌아보면 스크린에서 성적 표현이 시도된 것은 영화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1915년 미국에선 오드리 먼슨이라는 여배우가 ‘영감’이라는 영화에 전신 누드로 등장했다. 여성의 성 상품화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물론 본격적인 성인영화가 탄생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엠마누엘’과 실비아 크리스텔

미국에서 최초의 하드코어 포르노는 ‘목구멍 깊숙이’라는 영화였다. 극장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1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성인용 에로영화가 짭짤한 돈벌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회적 반감은 있었다. 당시 뉴욕의 한 극장주는 음란물을 유통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사태를 뒤집지는 못했다. 성적 환상이라는, 금기시되고 억압된 욕구는 어디론가 분출되길 원하며 이것을 권력의 힘으로 일방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서구에서 큰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에로영화는 ‘엠마누엘’ 시리즈다.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여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영화는 당시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미국 흥행작이었던 ‘엑소시스트’가 유럽권에선 ‘엠마누엘’의 인기에 눌려 맥을 못 추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엠마누엘’은 숨겨진 함의도 충분한 영화였다. 여성의 정절, 사회적인 관습과 도덕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국적 에로티시즘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들을 녹여 놓았다. 정숙한 엠마누엘은 비행기에서 낯선 사람과의 섹스를 상상하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마침내 레즈비언과 가까이 지낸다. 한 등장인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사실 ‘엠마누엘’ 시리즈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릇된 도덕적 가치와 금기와 순응을 떨쳐버리라”는 것.

‘엠마누엘’은 첫 편의 흥행 성공과 함께 시리즈물로 계속 이어졌고 에로영화 시리즈의 대명사 같은 존재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시리즈는 훌륭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 유흥을 위한 오락거리이며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는 싸구려물일 따름이다. 하지만 에로영화가 갖는 엔터테인먼트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에로영화에서 섹스는 가볍고 눈요기거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따금 엄숙하기도 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 방법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천하고 싸구려 문화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에로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을 배회하고 비디오 가게의 에로영화 코너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어찌 보면 영화거장들이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에로영화를 택한 건 당연하다. 에로영화를 통해 도덕과 관습에 저항하고, 무한한 일탈을 꿈꿀 수 있으므로. 일본영화의 거장 오시마 나기사도 같은 방법을 택한 바 있다. 흔히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전후 일본영화의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그를 기준으로 “오시마 나기사 이전의 일본영화와 이후 일본영화가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살아 있는 전설의 지위에 올라선 거장인 셈이다.

1970년대에 이 거장은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을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감각의 제국’(원제는 ‘사랑의 고리다’)이 바로 그 영화다. 1976년에 만들어진 ‘감각의 제국’은 일본영화, 나아가 세계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었다. 포르노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역작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과 세계 평단으로부터 “예술의 가치를 지닌 최초의 포르노 영화”라는 인정을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성큼 올라섰다.

거장들이 에로영화를 택한 이유

‘감각의 제국’은 성관계에 탐닉하는 남녀가 살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강박적으로 성관계에 집착하는 한 쌍의 남녀를 통해 인간의 비틀린 성충동을 그려내고 있다. 남녀 배우가 영화에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섹스를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당시 일본에서 공개된 ‘감각의 제국’은 남녀의 성기 부분을 흐리게 하는 기법으로 극장에 공개되었는데 일본 관객들은 삭제되지 않은 원판을 보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로 단체관광을 떠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감각의 제국’에서 여주인공 사다는 유부남 기츠조오와 눈이 맞는다. 그리고 둘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 사다는 남자에게 나이든 게이샤와 섹스하도록 하며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기도 한다. 둘은 때로 더한 쾌락을 얻고자 번갈아가며 서로 목을 조르고, 결국 기츠조오의 육체에 병적으로 몰입하던 사다는 관계 도중에 그를 살해한다. 이 영화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남녀의 육체적 결합을 죽음을 향한 의식으로 표현하면서 ‘성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는 천박하다고 평가되던 포르노영화에 예술적 숭고함을 가미하는 업적을 남긴 셈이다.

일본에서 ‘감각의 제국’ 이후 에로영화와 포르노는 나름의 의미망을 갖춘 대중장르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억압적인 일본 사회를 공격하면서 한편으로 영화적 ‘도덕성’을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걸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정치적인 포르노그라피로 만든 것이 ‘감각의 제국’이라면 서구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3년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 영화는 잔느라는 여성과 얼마전 아내가 갑자기 자살해 실의에 빠져 있는 폴이라는 남성이 벌이는 기이한 행각을 담는다. 잔느는 젊은 애인을 따로 두고 있지만 폴과의 관능적인 관계에 깊이 몰입한다. 둘은 격정적인 섹스를 벌이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지적 허무와 정치적인 냉소주의의 기운을 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유럽에서 학생운동이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을 당시 제작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그런 현실에 대해 반감을 품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영화는 발표 당시 언론의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찬성을 표한 일군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비길만한 명작”이라고 추켜올렸다. 이 영화에 혁명과 체제변혁이라는 꿈이 사라진 뒤 섹스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한 패배자의 쓸쓸한 독백이 배어 있었다.

본격 에로영화는 아니지만 성(性)표현의 문제로 최근 화제를 뿌린 영화가 있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샷’이다. 이 영화는 공개되기 이전부터 니콜 키드만과 톰 크루즈의 에로틱한 장면 등이 세인의 입소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선 한동안 개봉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최근에야 비로소 공개되었다. 기실 ‘아이즈 와이드 샷’엔 충격적인 장면이 있긴 하다. 집단 혼음을 비롯해 마약과 섹스, 그리고 일탈적인 행동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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