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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칼럼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모든 날”

31세 말기암환자 김현경씨의 절망속 희망찾기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모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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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탈사이트 다음(www.daum.net)

지난 8월1일, 이 곳 ‘칼럼’란(http://column.daum.net)에 ‘말기 암환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글이 떴다.

‘오늘도 하루 종일 통증과 싸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글은 죽음의 고통과 사투하는 한 젊은 여성의 하루를 담담히 그리고 있었다.

‘통증으로 악악 소리를 질러대다, 요즘 내가 느낀 것을 말하고 싶어져’ 시작했다는 글은 놀랍게도 행간 가득 ‘희망’이었다.

글의 주인공은 김현경씨. 다섯 살배기 아들, 5년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살 위 남편을 둔 서른 한 살의 가정주부다. 1년 10개월 전, 그녀는 직장암 3기 말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수술 후 항문을 꿰매고 장을 끌어내 왼쪽 아랫배에 인공항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암은 재발했고 이제는 폐, 골반으로까지 퍼져 손쓰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그녀가 그렇게 ‘앉지도 눕지도 못할 만큼’ 처절한 통증 속에서 써내려간 글들은 네티즌 사이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정 독자만 3000여 명.

그들은 각기 아픈 사연을 담은 글들을 앞다투어 올려놓았고 김현경씨는 그 하나하나에 짧지만 정성어린 답장을 써주었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위로가 되어주는, 그렇기에 더 감동적인 ‘사이버 스페이스의 기적’이었다.

여기 그녀의 글을 소개한다. 김현경씨는 칼럼 게재를 허락하며 ‘원고료는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는 뜻을 전해왔다.

참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김현경씨의 쾌유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고통도 삶의 이유입니다 2000년 8월 1일

오늘도 거의 하루 종일 통증과 싸웠습니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게 뜨개질도 해보고 보고 싶던 책도 사놓았지만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암이라는, 나와는 평생 상관없을 것만 같던 병을 진단받고 수술을 하고 방사선, 항암치료를 하고 다시 재발, 그러고 나서 한방병원, 이제는 중국의 어느 병원의 약을 먹고 있습니다.

제 병은 직장암입니다. 그것이 이제는 폐와, 골반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느 곳에 퍼졌다고 하는군요. 벌써 1년하고 8개월째입니다. 발견 당시 이미 3기 말이었으니,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합니다.

수술할 때 항문을 꿰매버리고 장을 끌어내어 왼쪽 아랫배에 인공항문을 만들었습니다. 관장으로 세척하고 있지요.

항문 쪽에 통증이 아주 심해서 앉지도 못합니다. 그저 한쪽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의자에 걸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글이 쓰고 싶어졌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통증으로 ‘악악’ 소리를 질러대고, 진통제를 한알이라도 안 먹으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요즘 내가 느낀 것을 말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 인생의 모든 날과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희망도 가져보고 기운도 차려보지만 밤이 되면 몸의 모든 진이 빠져버립니다. 하긴 모든 사람의 하루가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은 남편이 늦는군요. 저는 5세 난 아들과 33세 난 큰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통증에 몸부림치며 이제는 가고 싶다, 죽고 싶다고 소리를 내지르다가 금방 입을 막아버리는 이유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일찍 죽습니다. 아니, 병이 없어도 죽습니다.

이제 제 얘길 해보려 합니다. 만약 건강하시다면 제 글을 읽고 건강에 신경 쓰시고요, 아프시다면 저 사람은 나보다 더하구나 하고 위로받으시길 원합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다시 만나요.

우리 남편은 로봇 태권브이! 2000년 8월 1일

우리 남편은 로봇 태권브이나 마징가, 아니면 메가레인저입니다. 제가 암을 선고받은 날 한 번, 제가 고통받는 것을 처음 보던 날 한 번, 그리고 시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이렇게 세 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오늘도 관장이 안 돼서 고생하다가 짜증을 부리는 내게 그는 현실을 직시하라, 그보다 더 나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통증은 진통제를 먹어라 하고 세 마디 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그가 아주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하지만 질질 짜기 좋아하는 제게 그는 천생연분입니다. 5년 연애하고 학교 다니면서 결혼한 사이니, 사랑은 해볼 만치 해봤겠죠. 하지만, 여러분 아직도 순간순간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중얼거린답니다.

사람은 왜 그리 이중적인지, 통증이 오면 보는 사람 괴로울까 봐 극구 나가라고 하지만 막상 나 혼자 악악 댈 때면 어서 와 손이라도 잡아주길 원합니다.

회사 생활하랴, 어린 아들 친구 되어주랴, 마누라 투정 받아주는 그는 정말 태권브이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죽으면 화장해 달라, 그리고 날 빨리 잊어달라는 내 말에는 화장은 생각해보겠으나 절대 너를 잊을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이 늠름한 남편 때문에 저는 오늘도 하루를 참아냅니다.

오늘 남편이나 아내에게 짜증내거나 화가 나셨나요? 그러면 저를 기억하시고, 그깟것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하세요, 영원히 사랑한다고.

뭉크는 정말로 절규를 알았다 2000년 8월 2일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뭉크 말이에요. 그 괴기한 그림 중에 ‘절규’라는 것이 있죠. 머리털 없는 사람이 머리와 귀를 덮듯이 얹고서 소리지르는 듯한 그림.

지금까지 뭉크가 그런 그림을 그렸구나, 그런 정도였는데 오늘로 그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네요.

통증으로 헉헉대다가 무의식중에 내가 보인 행동이 바로 뭉크의 ‘절규’였습니다.

병에 걸리면 100%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그리고 동감하게 되지요.

뭉크가 암을 앓았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그를 그렇게 절규하게 했는지 궁금해지면서 동정심이 생기더군요.

병에 걸려 좋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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