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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공모 당선작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

제36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 당선자: 김진분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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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 잡아봤던 한국의 겨울날씨가 오늘따라 내게 반항하기나 하듯 몹시도 춥다. 문밖을 나서 종종걸음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나갔더니 아직 이른 새벽이어선지 기다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옹송거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버스가 좀 빨리 오려나. 운전기사 아저씨는 배차간격이 20분이라고 했지만, 시간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눈비가 올 때는 40분에서 한 시간씩 기다려야 겨우 버스를 얻어타곤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 가는 곳은 서울 천호동이다. 그전에는 일반과 좌석, 두 가지 버스노선이 있었지만, 승객이 줄어 타산이 안 맞는다며 버스회사가 일방적으로 한쪽 노선을 없애버렸다. 그 바람에 천호동 쪽으로 가려면 하는 수 없이 값비싼 좌석버스를 타야 했다.

천호동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빨라야 한 시간. 그래서 나의 아침은 언제나 숨가쁘다. 다행히 오늘은 좀더 일찍 서두른 덕분에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를 내리기가 무섭게 다시 찬바람을 맞으며 줄달음을 쳤다. 간발의 차이로 순번이 매겨지기 때문에 마음은 늘 이렇게 급하다. 이른 아침이라 차도 행인도 뜸해 천호시장 거리는 한낮과는 달리 한산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하다.

직업안내소 풍경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들어간 곳은 ○○○직업안내소. 이때부터 나는 또 다른 초조와 불안에 부대낀다. 과연 오늘은 내게 일이 주어질까, 그렇다면 무슨 일이 얻어걸릴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교통편도 좋아야 할 텐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소장은 눈알만 돌리며 아는 체를 한다.

“덕소 아줌마! 그 먼 데서 빨리도 왔네.”

그 새 낯익은 길동 아줌마가 반갑다고 소리친다. 여기서는 누구든지 사는 곳이 호칭으로 불린다. 길동 아줌마는 옛날 같으면 ‘할머니’로 불릴 60대 노인이었다. 화장을 짙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이를 가려주진 못했다. 자신의 한 평생이 ‘파출부 인생’이었다는 그녀는 목소리가 굵고 수다스러운 편이지만, 친절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가 내준 자리에 앉아 하릴없이 일거리를 기다리기로 한다.

“젊은 사람이 얼굴이 이게 뭐여. 가꿔야지, 화장기가 너무 없으니까 병색이 나잖아….” 길동 아줌마가 식구처럼 핀잔을 준다. 그때서야 얼굴 살갗이 당기듯 죄어옴을 느낀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간 스킨 로션 샘플을 꺼내 뻣뻣한 얼굴에 쓱쓱 문질러 발랐다.

사람들이 하나둘 직업소개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느새 아침 8시가 됐다. 그새 속속 모인 사람들로 이미 안내소 홀은 만원이다. 앉을 의자가 모자라 다들 꾸부정하게 서 있다. 이때쯤이면 항상 그랬다. 제멋대로 앉거나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서는 누구랄 것 없이 철저히 잘 지켰다. 서로를 감시하는 눈초리가 사납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4번이다. 그 동안 지켜본 바로는 10번 안에만 도착하면 일자리가 날 희망은 있다.

“아이구 속 터져. 일거리 준다는 사람은 없는데, 달라는 사람만 난리들이니 낸들 어떡하란 말이야….”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소장이 툴툴거렸다. 그는 회전의자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고 우리를 둘러본다. 일자리는 적은데, 일을 달라는 사람은 구름떼처럼 모여드니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다.

이런 소장도 처음 가입하는 사람들은 아주 살갑게 반긴다. 이들과 전화상담을 할 때는 그렇게 사근사근할 수가 없다.

“어서오세요. 일자리요? 물론 있지요. 그럼요. 요즘 많이 힘들지요?…”

그리고는 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소개소 찾아오는 길을 상세히 알려준다.

사실은 들어온 일거리가 적은데도 일이 많이 있다면서 사람들을 계속 끌어들인다. 나도 그렇게 이 직업소개소에 발을 들여놓았다. 가입비 5만 원을 내던 날 소장은 내게 따끈한 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 뒤에 알고 보니 커피는 새로 가입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그날만의 특혜였다.

“아줌만 일을 너무 골라”

불황이 이어지다 보니 일자리가 흔치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소개소로 찾아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소장한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연세보다 젊고 세련돼 보인다”느니 “젊었을 때 대단한 미인이었겠다”느니 “대학교수 타입인데, 이런 곳에서 아깝게 썩고 있다”느니 아첨을 떨어댔다. 그런 분위기다 보니 비리라면 비리라고 할 만한 일도 없지 않았다. 가령 적당히 ‘뇌물’(담배나 음식)을 건네면 좀더 가까운 곳, 좀더 깨끗한 일, 좀더 쉬운 일이 떨어지곤 했다.

“잠실! 잠실! 이번엔 누구 차례요? 숯불갈비집 저녁 11시까지….”

소장이 손짓을 했다. 크진 않지만 다분히 권위적인 목소리다. 나보다 훨씬 늦게 온 아줌마가 일거리를 받아 나갔다. 사람들은 그새 여관, 다방, 단란주점 등 여러 일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거리를 골라서 갔다지만, 지금은 너나없이 살기가 빠듯한데다 일거리도 줄어 다들 닥치는 대로 일하는 형편이다.

오늘 나는 여느 날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도 적당한 일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게 맞는 일은 건물 청소나 식당일 같은 비교적 ‘건전한’ 현장노동인데, 이건 내 원칙이 아닌 남편의 뜻이었다. 남편은 내게 여관이나 다방,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엔 절대로 못 나가게 했다. 식당으로 가더라도 손님들을 접대하는 홀보다는 주방 일을 맡으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게 밤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일을 마칠 때쯤이면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기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촛불처럼 타들어가는 조바심을 억누르며 탄식하듯 긴 한숨을 내쉰다. 벌써 11시가 가까웠다. 꼴찌로 도착한 사람들은 일자리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몇 사람만이 줄곧 버티고 남아 있다. 행여나 늦게라도 일거리가 주어질까 요행을 기다려보는 것이다. 오래 기다리다 보면 실제로 뜻밖의 일이 생길 때도 있었다.

소개소 한쪽 벽에는 ‘25일은 회비 내는 날입니다’는 글이 쓰여 있다. 바로 내일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속이 상한다. 이곳에서 파출부 일을 얻으려면 가입비 5만 원을 내고 나서 매달 회비 3만 원을 내야 한다. 그래서 이미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도 1∼2분 차이로 순서가 정해지기 때문에 누구든지 집을 나섰다 하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 도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난로 옆으로 자리를 옮긴 소장은 멸치꾸러미를 헤쳐놓고 내장을 발라내면서 문득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줌만 일을 너무 골라. 가뜩이나 일거리가 적은 요즘에 그러면 일 못해!”

나는 변명처럼 얼버무리며 대꾸했다.

“그게 아니라 형편이….”

소장은 내가 일찍 나왔으면서도 며칠째 허탕을 친 게 좀 안됐다는 눈치다.

이곳 회원들은 한 사람이 한 달 평균 15일 정도 일하면 일을 많이 얻는 편이었다. 소장은 더 이상 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떤 회원들은 번번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일 얻는 날이 한 달에 열흘도 못 됐는데, 이런 회원들은 일이 적다며 다른 소개소로 옮기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소장으로선 회원관리 차원에서 이런 데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즉 ‘기본 일수’는 채워줘야 하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겐 일찍 나와도 일을 주지 않고 “좀 쉬라”며 사정하기도 한다.

여인네들의 反中 감정

새벽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식구들 아침 식탁 차려놓고 달려오듯 도착했건만, 오늘도 공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억울한 마음에 나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한쪽에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구수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콩나물국에 밥 한 술 말아 훌훌 마신 게 전부다.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덕소 아줌만 애가 몇이유?”

나는 순간 멈칫하다가 “둘이예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두렵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있어 나는 가능하면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피치 못해 얘기를 나눌 경우에도 아주 짧게 말을 끝낸다. 이곳에선 아직 누구도 내가 중국동포인 것을 모른다. 눈치채지도 못한 것 같다. 내가 죄인도 아니고, 내 신분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나에 대해선 철저하게 감추고 싶다. 신분이 드러나 공연히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전에 다른 소개소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본의 아니게 중국동포란 사실을 말했다. 이쪽 실정을 너무도 몰랐던 탓이었다. 피부도 같고 생김새도 같았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때부터 단지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노골적으로 따돌렸다. 워낙 일거리가 적다 보니 사람들의 인심이 사납기도 했지만, 텃세까지 심해지자 나는 늘 ‘왕따’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느날인가는 소장이 일자리가 났다면서 가짜라도 좋으니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소장은 “신분증도 없는 사람한테 일을 찾아줬다가 재수없이 단속에라도 걸리면 문을 닫게 될 판인데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이야?”라며 따지듯 내뱉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입심 센 아줌마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리 일자리도 모자라서 안달인데 그깟 중국여자들한테까지 줄 일이 어디 있어?”

“말도 마. 지금 식당이고 어디고 업소마다 교포년들이 한둘씩은 다 들어가 있더라구. 골치야 골치.”

“아무개네 집에서 중국 며느리를 얻었다는데, 반찬이 죄다 중국식이래. 아무 데나 기름 콸콸 부어다 볶아댄다는 거야. 찌개에다가도 식용유를 얼마나 부었는지 느끼해서 못 먹겠대….”

“거기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여기보다 한 30년은 후지다는데.”

마치 중국사람들로부터 숱한 피해를 본 것처럼 ‘반중감정’이 대단했다.

불법체류 동포들이 위조한 주민등록증이나 위장결혼으로 취득한 신분증을 지니고 일자리를 찾으러 직업소개소에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곳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중국동포를 더러 볼 수 있었는데, 그녀들이 나간 등 뒤로는 반드시 무시와 경멸의 말이 뒤따랐다. 머리 모양이 어떻다는 둥 말투가 이상하다는 둥 되놈 냄새가 난다는 둥 하면서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한국 아줌마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나는 결국 그곳에서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입조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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