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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넘어서

  • 김상순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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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권을 팔겠다는 사람은 나보다 두 살 많았다. 그는 홍콩에서 사업하다 망해 5년 전 빈손으로 호주에 왔다고 했다. 대책 없이 호주에 내렸지만 수중에 있는 몇 푼으로 청소시장에 뛰어들어 지금은 집도 사고 청소권도 세 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청소할 곳은 시내 중심가 금융회사 4층 건물이었다. 계약금 10%를 건네주자 그는 건물 매니저에게 새로운 청소감독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내가 청소권 명의를 확실하게 옮겨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위협적인 말로 내 기를 죽였다.

“청소세계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보통 2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8개월 후인 내년 5월에 재계약을 한다. 만약 원한다면 해주겠다. 그러나 명의 변경까지 2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1000달러가 넘는다. 당신 같은 방식으로는 호주에서 청소권을 살 수 없다. 이 세계가 다 그렇다.”

마피아 영화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래였다. 내가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계약 포기라며 막가는 태도로 돌변했다. 결국 나는 계약금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의 요구대로 은행을 여러 번 들락거려 나머지 3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러나 촌놈 취급까지 당하며 내가 간신히 얻어낸 것은 아무 효력도 없는 한글 영수증과 그의 명의로 된 계약서가 전부였다.

그는 그 후 2주간 더 현장에 나타나더니 발을 뚝 끊고 말았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내 책임이고 내 손익이었다.



한 달 후 청소비를 받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청구 금액에서 20%를 원천징수 후 나머지 금액만 지급하는 것이 아닌가. 청소용품 비용을 제하고 나니 나에게 돌아온 것은 겨우 600달러에 불과했다.

밤잠 설쳐가며 부지런히 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청소였다. 그러나 이런 육체 노동도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일손 확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학생이나 뜨내기들은 잘 해야 한 달을 일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기 일쑤였다. 아무리 단순 노동이지만 초보자는 일주일 정도 요령을 가르쳐야 손발이 맞는다. 세 명이 쉬지 않고 뛰어야 4층 건물을 10시 전에 끝낼 수 있지만, 금요일 주급을 받으면 연락도 없이 그만두는 일이 예사였다. 그러면 월요일에 나 혼자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나는 이런 문제들이 그들과 친해지면 개선될 줄 알았다. 금요일 청소가 끝나면 술도 사주고, 그들이 합숙하는 아파트까지 가서 좋아하지도 않는 고스톱도 함께 쳤다. 그러나 그들은 내 사정은 아랑곳없이 제 마음대로 그만두었다. 그럴 때는 혼자 진공청소기를 등에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카펫을 문지르고 타일을 닦았다.

배를 탈 때 내 침실엔 청소 담당 보이가 따로 있었다. 다국적기업의 중견사원이던 나는 쓰레기통 한번 비운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누가 더럽힌지도 모를 물건을 씻고 닦아 윤기를 낸다. 행여 지적받을까 두려워하면서.

선진국에 이민 와서 여유 있는 삶은커녕 이렇게 남의 변기통이나 씻어내며 평생 살아야 하나. 이런 두려움에 휩싸일 때면 매일유업 중부공장에서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기계가 갑자기 정지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밤 새워 지방까지 배달할 기사들이 줄담배를 피워대며 제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 좋게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고장을 발견하고 다시 생산을 시작했다. 그때 대단한 기술자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 담배를 권하며 쳐다보던 눈빛. 왜 하필 이런 때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서너 달이 지나자 요령도 생기고 그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두루 알게 되어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따가운 햇살에 수목의 진초록이 검게 번쩍이던 2월 초. 가까이 사는 이웃이 우리 집에 모여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 타라무라에 띄엄띄엄 찾아든 한인이 어느덧 열 가구를 넘자 서로 알고 지내자는 취지로 고참인 내 집에서 갖는 간단한 저녁식사였다.

뒤뜰에서 식사를 마치고 취기가 오를 무렵 안방에서 전화가 울어댔다. 예감이란 언제나 무시 못할 존재다.

“석운이 형과 종만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화를 건 것은 한 달 전에 일을 시작한 영어 연수생이었다.

“그럼 아직까지 청소를 시작하지 않았단 말이냐?”

“열쇠조차 주지 않는 걸요.”

“차가 고장났는지도….”

말을 잇지 못하는 내 얼굴에선 이미 술기운이 싹 가셨다. 고물차가 고장나 조금만 늦어도 연락을 빼놓지 않던 그다. 건물 경비원이 전화를 바꿨다.

“청소원이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 근무시간에 늦는다.”

경고였다. 나는 불안해하는 이웃들에게 사정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음주 운전을 걱정한 아내가 이웃들을 남겨 놓은 채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도착한 것은 청소가 끝날 시간인 열 시가 지나서였다. 모처럼 마신 술로 다리가 후들거렸고 진공청소기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 화장실은 욕설이 나올 만큼 지저분했고 바닥은 한없이 넓었다.

석운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이민 경찰이 덮쳐 지금 빌라우드 수용소에 있습니다. 방금 취조가 끝나 전화 거는 겁니다. 제가 나가서 모두 해결해 드릴 테니 보석금 1만 달러만 내주십시오.”

맙소사, 그가 체류기간을 넘긴 불법 체류자였다니!

측은함보다 나한테까지 비밀로 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한마디로 보석금을 거절하자 그는 막가는 태도로 저주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가까스로 청소를 끝낸 것은 전산부 직원의 교대가 시작되는 6시경이었다. 근처 커피라운지에서 8년이나 끊었던 담배를 사들고 도로변 나무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피워 물자 하늘과 바다가 뒤섞인 폭풍 자락에 휩쓸려 수장의 공포에 휩싸인 선원에게만 찾아드는 해저의 고독이 밀려들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듯한 이 짓눌림의 무게…. 육지에서도 이런 고독이 찾아든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 갈 생각도 잊고 빈속에 연신 담배를 바꿔 물었다.

“이래도 왕년엔…. 이래도 왕년엔. 이래도….”

호주로 이민 와서 도심 건물이 밤늦게까지 환한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금융과 무역의 발달로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하려면 이렇게 시차를 극복해 일해야 한다고 꿰맞추었다. 그러나 그것이 청소원의 밤일이란 것을 알고 그들의 힘든 일에 동정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내가 어쩌다가…. 호주로 사업이민을 간다는 말에 선망의 눈빛을 보내던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이 험한 꼴을 보면 뭐라고 동정하며 혀를 찰 것인가.

“아이들 학교 데려다 줄 시간이에요”

등뒤에서 흡연을 감히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던 아내가, 담배를 비벼 끄자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넸다. 나는 아침 출근자들에게 내 초라함과 왜소함을 더 이상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험한 풍랑 속에 솟구치는 배처럼 벌떡 일어섰다. 황량한 생각의 되새김질은 어쩌지 못한 채.



메마른 사회

2주일 후, 나는 건물 매니저에게서 유감의 편지를 받았다. 석운의 체포로 어쩔 수 없이 청소가 늦은 사건 후 나는 매니저에게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했다.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그 후로 여러 번 만난 일이 있고 필요하면 언제나 호출하거나 통화할 수 있는데도 편지를 보낸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공문 형식의 그 편지는 보안을 요구하는 전산실 청소를 규정 시간을 벗어나 끝낸 점과 계약이 5월 말로 끝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계약이 끝난다…. 권리금이 날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단 한 번의 청소 불량이 계약 갱신에 이렇게 치명적인가 싶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고 나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불가피했던 사정을 감상적으로 설명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변호를 통해 재고의 여지가 있는가를 은근히 타진했다.

그러나 변호사의 전언은 씁쓸했다. 계약이 종료되는 것은 그날의 청소불량 뿐만 아니라 정부 시책에 어긋나는 불법체류자의 고용,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4명이 아니라 3명의 청소원이 규정 시간보다 일찍 끝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어서 그로서는 재계약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뜨내기 청소원이 예고도 없이 그만둘 때는 내가 작업복을 입고 걸레질을 했다. 그럴 때는 그 시간만큼 임금이 절약되어 내 몫도 커졌다. 인원 보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자연히 내가 몇 주일 계속하기도 했다.

청소시간 단축도 그렇다. 보통 하루 세 시간씩 일하면 일주일에 150달러를 받는다. 이 액수로는 생활비도 모자란다. 따라서 청소원은 한 곳에서 일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고, 그곳을 마치면 또…. 이렇게 동이 틀 때까지 충혈된 눈으로 두세 곳을 뛰어야 생활비를 충당하고 얼마간 저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청소를 10시 전에 끝내야 석운은 청소원들을 싣고 15km 떨어진 슈퍼마켓을 시작할 수 있다. 적은 인원으로 한 시간 일찍 끝내려면 발바닥에 불이 나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다. 싸우듯 고성이 오가고 피워 문 담배는 서너 번 빨면 필터까지 타들어간다.

그들 눈엔 이렇게 바삐 설쳐대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가끔 휴식도 갖고, 독성 세제를 뿌릴 땐 마스크를 하고 손엔 고무장갑을 끼는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맨손이었고 위험과 불결함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매니저는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다음 입찰에 서류를 갖추어 참가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실적이 전무했고 추천서도 없었다.

마지막 청소를 끝내고 장비를 싣고 철수하던 날 나는 무안을 당하고 말았다. 경비원은 매니저가 전해주라는 물건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내가 그와 처음 대면하던 날 다음 계약 갱신을 위해 가식적인 아부로 선물했던 88서울올림픽 기념우표집이 들어 있었다.

불행은 항상 겹쳐서 찾아들기 마련이라는 말은 두렵다.

8개월간 바둥댔지만 돌아온 결과는 1만 달러의 손해였다. 1만 달러를 벌어도 시원치 않을 처지에 역으로 손해를 보았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었다.

집에 틀어박혀 하는 일 없이 익은 감이 저절로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이민성으로부터 호출 전화를 받았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출당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사업이민자의 동태파악이나 설문조사쯤으로 간주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민성 직원은 두툼한 서류철을 풀었다. 내가 이민 수속을 시작해서 입국까지 오고 갔던 서류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이민 변호사 비용은?”

“은행 잔고는?”

“집은 세를 삽니까, 자가입니까?”

“지금 사업을 시작했나요?”

담담한 어조로 사실대로 대답하던 나는 조금씩 불쾌함을 느꼈다. 이민관도 중간 중간에 혼잣말로 불평을 섞었다. 그런데 이상한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 가는 것이 아닌가? 무슨 범죄 혐의자인 양, 또 내 대답의 신뢰성을 의심해 그때마다 자기가 확인할 대상을 물었다. 한 시간이나 질문해도 사소한 교통법규 하나 위반하지 않은 내게서 그 어떤 것이 나올 리 없다. 그가 실업자 수당을 받느냐고 물었을 때 내 인내는 한계에 도달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다른 사업이민자도 똑같은 설문조사를 받나요?”

“모터 수리공 면허는 무슨 목적으로 했소?”

“아, 그거야.”

외국 면허를 호주 면허로 교환해주는 기관이 있다. 혹시 언제 필요할지 몰라 시간 있을 때 마련한다고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사관이 사업이민자는 사업을 해야지 모터 수리공 면허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 심사관이 이민성에 통보한 것이다. 사업이민자가 모터수리공으로 전락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민관이 내 송금액의 흐름에 초점을 맞춰 질문한 것이 이해가 갔다.

내가 이민 오기 직전 홍콩과 대만에 조직을 둔 갱단에 의한 사기 사업이민 다섯 세대가 적발되어 강제 추방당한 사건이 있었다. 규정 송금액이 부족한 세대에 돈을 고리로 빌려주고 영주권을 받아 입국하면 그와 동시에 돈을 회수해 역송금을 하는 그런 사기이민 사건이다. 사업 대신 모터 수리공으로 생계를 유지할 것으로 단정한 이민관은 나를 이런 사기 사업이민자로 보고 조사한 것이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며칠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관리들과 부딪쳤다. 그때도 나는 당당하게 내 주장을 폈고 내 방식대로 해결했다. 그런 내가 아무 잘못도 없이 이민성 직원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다니….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와 무력감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문득 호주 때문에 중단했던 미국 이민이 탈출구로 떠올랐다.

미국 이민을 결정하고 보니 그토록 선망했던 호주생활이 건조해지고 흥미를 잃어갔다. 미국 대사관에 연락하니 내 파일을 호주로 옮겨 이곳에서 수속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자연히 이민 수속에 가속이 붙었다. 집은 매물로 내놓았고 입항하는 배에 식품을 납품하는 선식 사업으로 성공한 미국 동기생들과 통화도 자주 했다.

대사관 제출서류도 거의 완료되어 가던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한 분이 찾아왔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이민 짐은 일생에 단 한 번 싸는 것도 벅차. 두 번이나 싼 기구한 내 팔자를 보라고. 중남미를 돌다가 미국으로 가지 않고 호주로 먼길을 돌아온 나를 잊었나? 한 번 보따리 싸는 데 5만 달러는 깨지는 거야. 2년 먹고 살 돈이야. 미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엔 달나라로 가려나?”

그토록 열망해온 호주를 떠난다. 그것은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이 팔리지 않아 심각히 고려중입니다.”

얼마 후, 나는 미국으로 가려던 재이민을 포기했지만 그건 선배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호주 싫다고 미국 가더니 그곳에서도 정착 못하고 돈만 까먹다가 막판에 죽을 고생하더라는 비아냥이 현실적으로 닥쳐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사실 미국 이민 수속을 시작하면서 나는 호주를 떠나게 되어 시원하지는 않았다. 호주에 올 때처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도 없었다. 대신 아내와 아이들을 넋 나간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만 길어졌다. 내가 이들을 또 끌고 다니며 우왕좌왕한다….

아니다. 나는 그 동안 내 집과 이웃 그리고 모든 것이 푸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환경에 정이 들 대로 들었다. 그것은 이민을 결정할 때 내가 가졌던 호주에 대한 환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환상은 깨졌지만 정이 남았다. 그것은 어쩌면 내일의 힘이 되고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원금이 더 줄기 전에 사업을 시작하라

91년 호주는 깊은 불경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실업 수당 수혜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매스컴은 연일 아우성이었다. 울워스 콜스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 청소년 고용증대란 명목으로 주 5일 영업에서 7일 24시간 영업체제로 변모했다. 이런 대형 업체에선 생산자로부터 직접 대량 구매, 소나기식 선전, 화려한 경품행사, 박리다매 같은 영업방식을 취했으므로 이와 대적할 수 없는 소매상들은 설 자리를 잃고 문 닫는 일이 속출했다.

그 동안 소매상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형업체가 문 닫는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에 매상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일 영업으로 바뀐 지금 소비자들은 편리한 주차장과 쾌적한 환경이 완비된 대형 쇼핑센터에서 소위 말하는 토털 쇼핑을 즐기고 있다.

나는 내 사업 규모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조바심에 주말마다 사업 매매 광고를 훑었고 중개인도 자주 만났다.

내가 사업을 찾아 동분서주한다는 걸 알고 나보다 반 년 일찍 이민온 친구가 충고했다.

“작년 시내 중심가에 있는 커피라운지를 깎아서 35만 달러에 흥정했어. 그런데 계약 직전에 미술을 전공한 아내 때문에 포기했지. 붓을 만지던 섬세한 손으로 그까짓 1달러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샌드위치를 싸고 커피를 끓여 날라야 하느냐고 난리였어. 사실 나도 너처럼 줄어드는 원금을 생각하면 앞날이 막막해서 계약하려던 건데 아내는 겨우 커피장사 시키려고 호주까지 끌고 왔느냐며 자기는 한국에 돌아가면 갔지 절대 못한다는 거였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오리발을 내밀었지. 10만 달러 더 깎아주면 계약하겠다고. 물론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욕먹고 상담은 깨졌어. 그런데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내가 제시한 25만 달러에 사라고 연락이 온 거야. 내외가 1년 동안 죽도록 고생해보았자 10만 달러 벌었겠어? 먹고 놀아 10만 달러 번 거지.”

“네 아내가 옳았다. 대금융회사 부장이던 네가 체면이 있지. 하루에 수십억 원을 결재하던 손이 시시하게 동전치기가 뭐니. 동전치기가.”

하마터면 큰 손해 볼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아찔함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에게 뭐라 칭찬해줘야 할 것 같아 내가 건넨 소리다.

그러나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보다 못하다’는 ‘사기’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내 친구는 지난 일 년 동안 특별히 한 일이 없다. 골프 핸디 몇 개 줄인 것을 제외하곤.

내 생각은 다르다. 사업을 했더라면 자산에 손해는 있었을지 몰라도 규칙적인 생활과 내일의 계획으로 우체부 지나가는 것마저 반갑게 기다려지는 정신적 허기는 달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친구의 충고를 무시한 채 사업구상을 구체화했고 급기야 흥정을 시작했다. 10만 달러를 투자해 델리카슨(서양 양념류와 각종 치즈를 파는 일종의 식품점)을 운영하면 주 수입이 1000달러란다. 나는 흥정을 끝냈으나 계약 직전에 포기했다. 아내의 반대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놀고 먹는 게 차라리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내 체력으론 아침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365일을 쉬지 않고 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점포 계약에서 반드시 명심할 사실이 있다. 3년이나 5년 등 장기간 계약하는 임대에서 어떤 이유로든 해약하고 빠져 나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령 장사가 안 돼 권리금을 포기한다 해도 계약기간 세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 실제로 파라마타 지역에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자 그 주위 몇몇 상가는 문을 닫은 채 집세만 물고 있는 형편이다.

내가 계약을 포기하자 중개인은 칼텍스 정유회사의 구내 매점을 소개했다. 이곳은 8만 달러를 투자해 주 600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단다. 나는 월세 250달러의 매력에 끌려 계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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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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