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가 속삭이는 음악 이야기

“클래식에 빠져보세요. 세상 빛깔이 달라집니다”

  • 송문홍 songmh@donga.com

    입력2005-05-11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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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민들 중 조수미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그 작은 몸 어디서 그런 끼가 나오는지 일단 무대에만 오르면 순식간에 객석을 평정해버리는 카리스마의 성악가, 소프라노로서 가장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밤의 여왕’ 아리아(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를 멋지게 소화해내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정상급 콜로라투라…. 대충 이런 이미지가 대중의 머리 속에 그려진 조수미 아닐까?

    그는 사실상 한국의 ‘문화 대사’ 노릇을 지난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80년대 이래로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를 부착한 자동차가 세계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동방의 조그만 나라를 알려온 것처럼, 한국인 조수미는 전세계를 무대로 한국 예술의 성가를 높여온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그가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리골레토’를 공연했을 때, 현지 신문은 공연비평 기사에 ‘베르디 메이드 인 코리아(Verdi Made in Korea)’라는 제목을 뽑은 적도 있다.

    2000년 한 해 동안 그가 보여준 활약상도 가위 눈부신 것이었다. 3월 LG아트센터 개관기념 무대 이래로 몇 차례 한국 무대에 섰고, 9월 시드니 올림픽 기념행사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테너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노래했으며, 11월에 두 차례 서울에서 가진 리사이틀에서는 인기가수 조성모와 함께 멋진 무대를 연출했다. 그때 입장권은 보름 전에 이미 매진돼버렸다던가? 그는 또 지난 12월10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시상식 축하공연에서도 축가를 불렀다. ‘동분서주’라는 말이 따로 없다.

    2000년 활동 중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에라토 레이블로 발매한 음반 ‘온리 러브(Only Love)’가 12월 초까지 60만장 판매를 돌파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클래식 음반은 물론 팝송 부문까지 포함해 전무후무한 기록. 크로스오버(crossover) 계열의 감미로운 노래들로 채워진 이 음반의 판매기록에 대해서 관계자들은 “앞으로 한동안은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일반인들 귀에 듣기 편한 크로스오버 음반이라지만, 전세계적으로 클래식 음반시장이 줄곧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 나온 이런 기록은 분명 ‘이변’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의 목소리는 2000년 상반기 화제의 TV 드라마 ‘허준’의 주제가에도 실려 전국의 안방에 파고들었다. 이런 그를 놓고 한 신문은 “조수미는 이제 세계적 성악가를 넘어 국민적 엔터테이너로 부상했다”는 촌평을 붙이기도 했다.



    세계적 성악가에서 ‘국민적 엔터네이너’로

    몇 년 전 ‘신동아’ 편집장을 맡았던 이가 조수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기자이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기자가 알기에) 클래식 음악에는 썩 친숙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 이가 호텔 커피숍에서 한두 시간 조수미를 만나고 와서는 담박에 조수미의 ‘열성팬’이 돼버렸다. 그 뒤 몇 달간 그의 출퇴근길 승용차에는 허구한 날 조수미의 오페라 아리아만 흘러나왔다. 오죽했으면 간혹 그 차를 얻어타던 다른 기자들이 “이제 제발 그만 좀 들으시라”고 했을까.

    조수미를 직접 만나 얘기해본 사람들 중에는 그런 이가 많다. 이를테면 조수미는, 단 한 번을 만나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오랫동안 남기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드러내놓고 폼을 잡고 잘난 척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꼴불견이다. 그런데 조수미가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이 오페라 프리마돈나에 대해서 갖는 첫번째 선입견이 도도함과 오만함이라면, 조수미는 그 말에 딱 들어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조수미는 도도하지만, 그 도도함이 상대방에게 거부감으로까지 확대재생산되지는 않으니까.

    조수미가 쓴 책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1997년 출간)를 보면 이런 얘기도 나와 있다. 지휘자 로린 마젤을 처음 만나서 오디션을 받던 때의 일화란다.

    라벨의 곡은 고난도의 멜로디에다 프랑스어로 발음을 정확히 해주어야 하는 난곡 중에 하나다. 다들 발음문제 때문에 애를 먹는 곡인데 나는 자신있게 노래했다. 그 동안 이 곡을 무진장 연습해온 덕이었다.

    첫 연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젤은 노래가 끝나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미는 거의 절대음감을 갖고 있구먼.”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재빨리 대답했다.

    “마에스트로, 저는 거의가 아니라 완벽한 절대음감을 갖고 있습니다.”

    당돌한 내 말에 잠시 당황했던지 놀란 토끼눈을 하던 마젤은 곧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브라보!”

    건방지다고 보지 않고 내 자신감을 당당함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도 그에게 브라보를 외쳐주고 싶었다. 내 말에 웃어줄 수 있는 그는 나보다 거인임이 분명할 테니까.

    절대음감이란 음(音)의 제자리를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능력인데, 음악을 업으로 삼는 연주자라고 해서 모두가 절대음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절대음감을 가졌다는 건 결국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말과 어느 정도 동의어라는 것이다. 자신은 ‘거의’가 아니라 ‘완벽한’ 절대음감을 갖고 있다는 정정하는 조수미의 당돌함,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수용할 줄 아는 로린 마젤의 포용력, 만약 이들이 음악의 정점에 선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했을까?

    “진짜 연주는 앙코르부터”

    기자가 조수미에 ‘주목’한 것은 지난 3월 LG아트센터 개관기념 연주회 무렵이다. 그때 열렸던 조수미 리사이틀에 직접 갔던 것은 아니지만, 그 공연에 갔던 사람이 공연장 분위기를 전해줬다. 그날 조수미는 노래 사이사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자연스럽게 섞어넣는가 하면, 성악가수로서는 파격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크로스오버 곡들을 불렀다고 했다. 자신은 운전할 때 어떤 음악을 들으며, 혼자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한다는 등 조수미가 들려주는 얘기가 참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기자의 머리 속에 불이 반짝 들어왔다.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로 채워진 인터뷰는 별로 재미없겠지만 대중에 드러나지 않은 조수미의 면모를 탐구하는 인터뷰라면 흥미롭지 않을까? 예컨대, 노래라면 전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조수미가 즐겨 듣는 팝송은 어떤 것일까, 조수미는 자기말고 노래 잘하는 가수로서 누구를 꼽을까, 세계에서 내로라는 음악인들과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등등이다. 무대 전면의 스포트라이트가 밝으면 밝을수록 무대 장막 뒤의 어둠은 더 짙은 것처럼, 대중에 노출된 조수미가 아닌 감춰진 조수미의 진짜 모습을 끌어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사실 이런 얘기는 통상적인 인터뷰로는 끌어내기가 어렵다. 상대를 무장해제시킬 뭔가 특별한 ‘무대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편안한 시간에,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술 한 잔 놓고 신변잡사를 나누는, 그런 식 말이다.

    그러나 그건 기자의 ‘꿈’일 뿐이었다. 조수미의 한국내 매니지먼트사에 그런 요청을 수차례 넣어봤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프리마돈나의 스케줄에서 그런 여유 공간을 만드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지난 5월에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강남 사무실에서 조수미를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음반사, 매니지먼트사, 코디네이터, 방송관계자 등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통에 기가 질려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무튼 기자가 조수미를 만난 건 두 차례, 지난 5월에 30분 정도와 11월에 한 시간 정도였다. 그나마 매니지먼트사가 조수미의 바쁜 일정을 쪼개고 쪼개서 어렵사리 마련해준 자리였다. 두 차례 모두 벌건 대낮에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 꼭대기층 라운지에서 시간에 쫓겨가며 ‘멋없이’ 만났다.

    ─올해는 특히 한국 연주회에서 정통 클래식이 아닌 크로스오버를 많이 불렀지요? 음반도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고….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라면 모를까, 무대에서 크로스오버를 부르는 경우는 사실 굉장히 드물어요. 외국에서는 주로 정통 클래식 곡들로 하지요. 그런데 고국무대에서는 자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크로스오버를 부르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또,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도 제가 부르는 크로스오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LG아트센터 콘서트 때에도 크로스오버를 불렀는데, 청중들이 보기에는 좀 어색했을 거예요. 마이크도 처음 잡아보는 거라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고, 나중에 사람들 말이 ‘조수미씨는 그냥 노래하는 게 마이크를 쓸 때보다 훨씬 성량이 크더라’고 하더군요.”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도 젊은 층이 클래식음악을 점점 멀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잖아요? 조수미씨가 크로스오버를 자주 부르게 된 건 그런 것에 대응해서 뭔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뭐 그런 차원도 있는 겁니까?

    “글쎄,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을 클래식의 세계로 유도하겠다는 뜻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앙코르에 대해서는 참 넉넉한 것 같더군요. 어떤 연주자는 앙코르를 받으면 마지못해서 나오기도 하는데, 조수미씨는 앙코르를 정말로 반기면서 받아들이는 느낌을 준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선 아홉 곡까지 앙코르를 불렀는데요, 뭘. 사실 연주회에서 진짜 연주는 앙코르 곡을 부를 때부터예요. 관객의 반응이란 게 장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다 달라요. 그러니까 앙코르 곡도 그때 그때 관중들 반응을 봐가면서 선정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노래가 아니라 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곡을 불러야 한다는 거지요.”

    ─콘서트 외에도 레코딩, 영화음악, 더욱이 TV 드라마 주제가까지…. 클래식 팬들 중에는 ‘외도’가 너무 잦은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저는 제가 할 수 있으니까 해요. 자신 없으면 안 해요. 저는 저를 잘 알아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마음을 탁 놓아라”

    ─아무튼 올해는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혹시 “사람들이 나에게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그러는 건 아닌가요?

    “저는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저는 계산적이지 못해요. 좋으면 좋고, 아니면 아니고,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아요.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수미씨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대다수 연주자들은 관객들에게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주는 데 반해 조수미씨는 언제나 관객을 압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개인적인 생활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제가 화제의 중심이 돼야 했어요. 주목받는 것을 즐겼고, 그렇지 못한 것을 참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누가 나를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게 싫어요.”

    ─자신의 그런 변화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봤습니까?

    “매니저 말이, 아무래도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다보니까 무대 밖에서는 혼자 있고 싶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거라고 하던데….”

    ─그러나 자기 시간이라는 걸 얼마나 가질 수 있겠어요?

    “그건 때에 따라서 달라요. 공연 때에는 굉장히 바쁘고, 연주가 끝나고 집에서 며칠 보낼 때에는 스위치를 딱 꺼버려요. 음악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에요. 예전에 카라얀이 저에게 얘기할 때,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기 마음을 탁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거든요. 자기도 그걸 65세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저는 아직 그게 잘 안돼요.”

    ─마치 한 분야에서 도통한 사람 얘기 같군요.

    “저는 아직 멀었지요, 뭘. 사실 제 생활이 종교적일 수밖에 없어요. 종교인에게는 종교가 전부인 것처럼, 제게 있어서 종교는 음악이라는 거지요.”

    ─간혹 성악가 이외의 다른 인생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왜 안 하겠어요. 많이 하지요. 몇 달씩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닐 때면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아요. 어디에 가서 겨우 시차적응이 되면 곧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고…. 그런데도 계속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웃음).”

    ─정통 클래식 곡을 할 때와 크로스오버 곡을 할 때 많이 다르지요? 쉽다 어렵다, 편하다 불편하다 등의 차이랄까….

    “녹음으로 치면 클래식이 훨씬 힘들어요. 제 분야니까 기대수준이 있잖아요. 녹음과정에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프로듀서가 이제 그만 됐다고 해도 계속해요. 그런데 크로스오버 음반은 처음 해보는 일이고, 그 분야는 제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번 녹음은 그냥 주변에 맡겨버렸어요. ‘나는 이 노래는 이렇게 해석해서 부르겠다’고 해서 몇 가지 불러 보여주고 ‘그중에서 당신들이 좋은 것으로 골라봐라’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성악가로서는 그렇게 못 해요. 저에게 노래는 본능이거든요. 저는 노래를 본능적으로 해요. 마치 숨쉬고 잠자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음악을 갖다줘도 ‘이건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게 그냥 몸에서 나와요. 그런 게 타고난 음악성 같은 건데, 그건 선생님도 소용없고 트레이닝과도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곡이든 느끼는 대로 해석해요.”

    ─그러면 예컨대 오페라를 할 때 지휘자의 곡해석과 자신의 해석이 다를 때도 있지 않겠어요?

    “그렇지요. 로린 마젤이나 오자와 세이지 같은 대가들과 함께 할 때에도 서로 곡 해석이 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에는 굉장히 당황스럽지요. 그런데 결국은 제가 느끼는 대로 해요. 상대방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은데, 제 몸에선 그렇게 안 나오거든요. 처음에 제가 느끼고 해봤던 식으로 하는 게 확실히 맞아요. 결국 제 고집대로 밀고 나가지요.”

    ─명반이란 건 지휘자와 연주자가 작품 해석과 필링에서 서로 완벽하게 일치할 때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맞추려고 노력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일방적으로 지휘자에게 맞춰주지는 못해요.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그렇게 못해요.”

    ─똑같은 지휘자와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매번 결과는 다르지요?

    “그럼요. 같은 지휘자와 2년 후에 다시 만나서 같은 오페라 작품을 해도 느끼는 건 전혀 달라요. 일반적으로는 파리에서 하는 ‘리골레토’와 런던에서 하는 ‘리골레토’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다르니까 다른 색깔과 다른 퍼스낼리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게 바로 오페라의 매력이에요.”

    ─평소에 쉴 때에도 음악을 듣습니까?

    “제가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예요. 음악은 항상 내 머리 속에 있으니까. 그래서 로마의 저희 집에 있으면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음악에 한번 심취하면 아주 빠져버려요. 이를테면 말러교향곡 5번 같은 것…. 하나에 심취하면 오로지 그것만 들어요. 한 달 내내.”

    ─누가 지휘한 것으로요?

    “(웃음) 시노폴리 음반을 좋아해요. 그 사람이랑 저랑 별자리도 똑같고요….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세요.”

    ─말러교향곡 5번이라면 웬지 조수미씨가 요즘 듣는 곡은 아닌 것 같군요(웃음).

    “한 7, 8년 전쯤 되는 것 같아요.(웃음)”

    ─팝송은 즐겨 듣습니까?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해요. 음악성이나 테크닉이 굉장히 뛰어난 가수예요.”

    ─그냥 쉬거나 즐기기 위해서 듣는 겁니까?

    “아니죠. 연구하면서, 집중하면서 들어요. 머라이어 캐리에겐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도 흉내내기 어려운 음색과 테크닉이 있거든요. 그게 궁금한 거죠.”

    ─혹시 조수미씨가 싫어하는 음악도 있습니까?

    “저는… 모차르트를 굉장히 싫어하거든요(웃음).”

    ─그래요? 그건 뜻밖이군요.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는 분이 모차르트를 싫어하다니….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서 클래식에 처음 입문할 때, 그리고 클래식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마지막에 듣게 되는 음악이라고도 하잖습니까?

    “모차르트를 하려면요, 다른 게 필요없어요. 고급스러운 음악성, 그게 없으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모차르트는 안 돼요. 저는 항상 노래를 하면서도 저에게 그런 게 있는지 의심이 가거든요.”

    ─그 얘긴 모차르트가 조수미씨 같은 세계적인 가수도 소화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말인데….

    “물론 기술적, 기교적으로는 정확하게 하지요. 그런데 거기에 담는 정신적인 거랄까, 그런게 좀 모자라지 않나…. 그래서 모차르트는 잘 듣지도 않아요. 멀미나는 것 같아….”

    ─최근에 ‘밤의 여왕’을 부른 게 언제쯤이었습니까?

    “3년 정도 됐어요.”

    5월에 만난 조수미는 너무 빡빡한 일정 때문인지 다소 지쳐보였다. 그래서인지 답변도 대체로 단답식이 많았다. 그렇지만 30분 남짓한 대화 중에도 조수미라는 사람에 대한 ‘예비지식’에서 벗어난 답변은 없었다. 나이를 더해가면서 한결 원숙해졌지만, 당당함과 자신감은 여전해보였다. 아무튼 짧은 첫 만남은 조수미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만 증폭시킨 결과가 돼버렸다.

    조수미가 권하는 ‘오페라를 즐기는 법’

    그렇게 몇 달이 지나 11월 초순, 예의 그 호텔 라운지에서 다시 조수미를 만났다. 그날은 조수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다음날이었다. 이번에 주어진 시간은 딱 한 시간. 그는 이날도 약간 피곤해 보였다.

    전날 밤 공연에서도 조수미는 청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리아와 가곡, 뮤지컬 히트곡, 가수 조성모와 듀엣으로 부른 가요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 프로그램이 끝난 뒤 조수미는 앙코르네 곡을 불렀다. 그래도 박수갈채가 그치지 않자 조수미는 다시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 불러보고 싶던 노래를 부르겠다”며 그가 선택한 곡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오케스트라의 반주도 없이 부른 찬송이 끝나자 장내를 꽉 채운 3900여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같이 박수를 쳤다. 다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될 때까지.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의 매력이 100% 드러난 무대였다.

    ─어젯밤 공연은 만족스러웠습니까? 오늘도 좀 피곤해보이는군요.

    “서울에 온 이후로 며칠간 좀 아팠어요. 그래도 어제 공연은 재미있었어요. 관객들도 좋아하셨던 것 같구요.”

    ─대중가수와 함께 공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요?

    “그렇지요. 제가 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하는 콘서트는 원래 이벤트성이 강해요. 성악하는 가수로서 좀 힘든 건 사실이지만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좀더 가깝게 느끼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주세요. 근데 좀 힘들긴 하네요….”

    조수미는 뭔가 말할 듯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중에 주변 관계자는 “무대 세트며 조명, 레퍼터리 구성까지 마음에 차지 않아서 공연 전까지 조수미씨가 하나하나 다시 지시하느라 좀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오늘은 조금 통상적이지 않은 인터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저희 독자들은 대체로 조수미씨가 어떤 사람이라는 기본 지식을 갖고 있으리라고 보고, 조수미씨의 인간적인 측면이나 음악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프리마돈나로서 일반인들이 오페라를 즐기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조언을 좀 해주시지요.v “오페라 팬이 세계적으로도 제한돼 있어요. 사실 오페라는 일반인이 감상하기에는 좀 어려운 게 일단 언어가 문제이고, 스토리가 단순하다지만 17,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는 게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부분입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갖는 감정은 마찬가지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오페라가 참 힘들어요. 레코딩업계에 계신 분들 얘기를 들어봐도 공연이 취소되는 사례가 많고요. 저만 해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리골레토’를 계약까지 한 상태에서 취소됐어요. ‘라크메’ 같은 희귀한 오페라 프로젝트는 음반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요. ‘라 트라비아타’처럼 대중적인 오페라도 5년에 겨우 2만장이 팔릴 정도거든요. 그러니까 제작자가 나서려고 하지도 않고….

    사실 오페라를 듣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오페라극장에 가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음식도 똑같은 것만 먹을 수는 없듯이, 오페라라는 영양분을 섭취하면 인생을 사는 기쁨이 훨씬 커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페라에 관심있는 분들은 먼저 유명한 작품부터 골라서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예컨대… ‘아이다’?

    “그렇지요. 모차르트 작품보다는 푸치니나 베르디 작품처럼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이 훨씬 빨리 가슴에 와닿을 것 같구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나 ‘코지판투테’ 같은 작품은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좀 어려워하세요. 작품의 시대 배경부터가 이해하기 쉽지 않거든요.

    일단은 공연장에 가기 전에 앨범을 하나 사서 들어보는 거예요. 리블레토(오페라 대본)을 미리 한번 읽고 나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해요. 오페라 한 작품을 보는 데 보통 3시간 30분이 걸리는데, 내용을 모르고서 앉아 있기는 참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엔 시간을 좀 투자하셔야지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같은 극장에는 좌석 앞에 전자식 기기가 설치돼 있어서 영어 대사가 자막으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본인이 선택할 일이에요. 오페라 내용을 사전에 알고 왔거나, 음악이나 무대장치, 의상을 보려면 그걸 꺼도 돼요. 미국에서는 이런 게 잘 돼 있어서 오페라 관객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

    -제가 얼마 전에 고대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시즌의 히트작이 ‘나부코’였어요. 최첨단 무대장치로 사이버틱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화제를 모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처럼 오페라를 직접 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뭐냐면, 요즘에는 오페라도 음악 외적인 부분들,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장치 같은 데에만 신경을 쓴다는 거예요. 이건 사람들이 음악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마치 할리우드 쇼를 보러 오는 것 같다니까요.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게 최대 임무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마치 무대에서 부속품처럼 돼버리는 게 참 불만이에요.

    저도 그런 일을 참 많이 당했어요. 특히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역은 그런 일에 적격이지요. 시카고나 아르헨티나 무대에서는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니까요. 밤의 여왕 아리아가 참 어려운 노래잖아요. 고음 영역을 처리하기도 힘든 판에 사람을 공중에 띄워놓고, 어떤 때에는 그네도 태우고, 참 별걸 다 시켜요. 얼마나 트러블이 많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최근에는 ‘밤의 여왕’ 역을 맡지 않는 겁니까? (웃음)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모차르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저도 나름대로는 음악성이 높다고 자신하지만(웃음) 모차르트는 너무 힘들어요. 로시니나 베르디, 도니체티 작품들은 뭐, 별문제 없어요. 그런데 모차르트의 음악을 잘하려면 격조 있는 음악성이랄까,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해요.”

    ─이를테면 정신적으로 어떤 경지에 올라야 가능하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예요. 정신적인 경지…. 품격있는 소리나 아티스트의 인간미라든가 이런 게 완성되지 않고서는 어려워요. 사실 모차르트도 음악적으론 어렵지 않아요. 제가 그걸 왜 못하겠어요? 하지만 아주 고급스러운 인격이랄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해요. 아직 제가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모차르트는 무서워요(웃음).”

    ─조수미씨가 무섭다면 다른 가수들은 어떻겠어요?

    “밤의 여왕 역을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있지만, 사실 저를 만족시킬 만한 연주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조수미씨는 오페라 음반 중에서 어떤 것을 명반으로 꼽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음반은 이탈리아의 미렐라 프렐리가 부른 ‘라보엠’이에요. 자주 듣는 것은 물론 카라얀 음반이 많고요. 오페라는 역시 카라얀의 해석이 가장 정통적이지 않은가 싶어요. 주빈 메타도 최근 안드레아 보첼리와 ‘라보엠’을 녹음했는데, 연습할 때 보니까 카라얀 것을 듣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요즘 한창 뜨는 지휘자들의 작품해석에서 가장 위험한 게, 카라얀이나 게오르그 솔티 같은 과거의 거장들이 가졌던 유연함이 없다는 거예요. 오페라는 심포니처럼 악보 그대로 따라 가지 않고 가수의 개성을 살려주는 여유공간을 많이 줘야 하거든요. 그런 개개인의 역량을 무시하면 듣기에 굉장히 거슬려요. 리카르도 무티가 그런 예인데, 테크닉은 완전무결하지만….”

    ─그건 지휘자의 권위주의 같은 건가요? 왜 서양에 이런 말도 있잖아요. 남자로 태어나서 해볼 만한 직업이 세 가지인데 지휘자, 잠수함 함장, 잡지 편집장이다, 셋 다 정당하게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데에 매력이 있다는….

    “그렇지요. 자기 해석이 옳다는 자만심 같은 것이겠지요. 물론 과거의 거장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아티스트의 음악성을 충분히 존중해주는 게 명반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페라에 참여하는 여러 연주자를 잘 조화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요즘 나오는 오페라 음반을 보면 대부분 컴퓨터처럼 티끌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녹음한 것들인데, 정작 들어보면 감흥은 예전 것만 못해요. 예컨대 마리아 칼라스 음반을 들어보면 오케스트라나 지휘자가 가수를 떠받쳐주니까 듣는 사람을 확 잡아 끌잖아요?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사회적인 변화인 것 같아요. 할리우드에는 스타 시스템이 있지만, 오페라에는 이제 디비즘(divism·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diva’라고 한다)이 사라졌어요.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고, 고만고만하게 반짝이는 스타들이 여기저기 계약된 오페라 하우스에서 전문적으로 완벽하게 노래하면 그걸로 되는 거지, 옛날처럼 스타가 신 같은 존재로 추앙받던 그런 시대는 끝났다는 거지요.”

    ─마리오 델 모나코가 노래하면 10리 밖에서도 그 노래를 듣고 울었다더라는 식의 전설은 이제 사라진 거군요.

    “그래요. 그런 시대는 간 거고, 오페라를 하는 사람들도 이젠 상업적인 면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됐구요. 옛날에는 아티스트라면 대중에게서 좀 가려지고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지금 만약 옛날처럼 행동한다면 대번에 ‘저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구나’라고 해석하니까, 이젠 그런 균형감각을 지키기가 힘들어졌어요.”

    ─최근에는 오페라 출연보다 리사이틀이 더 많아진 것 아닙니까?

    “확실히 리사이틀이 많아졌어요. 오페라는 몇 년 전만 해도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이제는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출연을 결정해요. 내년에는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리골레토’ ‘호프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누가 지휘하고 출연진은 누구누구며, 어떤 프로덕션에서 기획하는지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에 계약을 해요.”

    ─미국과 유럽의 무대가 좀 다르지요?

    “미국에서 하는 오페라는 유럽과는 좀 달라요. 미국은 정통이 아니라고 할까, 예컨대 분명히 ‘라보엠’을 부를 목소리가 아닌데도 ‘라보엠’을 부르거든요. 가수의 레퍼토리도 유럽과는 많이 달라요. 그래서 메트 무대에는 서도 유럽으로는 진출하지 못하는 미국 가수들이 많아요. 미국에서 하는 오페라가 단점이 참 많은데, 일단 언어적으로 제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부르는 가수가 많지 않아요.”

    ─미국 문화란 게 유럽에서 건너간 건데, 아무래도 유럽보다 훨씬 자본주의화해서 그런가요?

    “일단 미국의 음악교육부터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폭넓게 아는 건 많아요. 레퍼토리가 굉장히 다양한데, 정작 전문분야는 없거든요. 그래서 독일 리트, 프랑스 샹송, 이탈리아 벨칸토를 배우려면 천상 유럽으로 건너와야 해요. 또 정확한 음악해석이 없이 오페라를 마치 쇼처럼 만드는 경우도 많고…. 제 경우엔 내년에 워싱턴과 LA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지휘로 ‘호프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돼 있는데, 도밍고는 음악해석에 철저한 분이라서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요.

    반면에 한국에서 하는 콘서트는 너무 이벤트성이 강해요. 그러면서도 한국 관객들은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클래식 콘서트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근데요, 이건 제 자랑 같지만, 제 경지에 이르면 사실 어떤 것을 하라고 해도 다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평소에 안 하던 걸 했지요. 제가 자신이 없으면 하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조수미가 그런 걸 하면 평소에 클래식음악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조수미라는 개인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나아가 클래식음악을 접하게 되는 길을 터준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대중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에서 열리는 성악 리사이틀을 보면 이른바 ‘갈라(gala) 콘서트’라고 해서 레퍼토리가 백화점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습니까? 청중이 좋아할 만한 곡들을 반드시 포함시키지요. 성악가들은 레퍼토리를 구성할 때 어느 나라 무대냐는 점도 고려합니까?

    “정통 리트 아벤트에 오는 분들은 웬만큼 음악 수준이 있는 분들이지요. 제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창회를 해보면 나라마다 청중들 반응이 달라요. 영국의 위그모어홀 같은 정통 리사이틀 홀에서는 절대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면 안 돼요. 만약에 실수로라도 아리아를 부르면 다음 날 신문에서 엄청 얻어 맞아요. 그런 무대는 바바라 보니처럼 정통적인 리트 가수들이 서지요.

    파리에서라면 아무래도 프랑스어 노래를 절반 정도는 넣는 게 좋아요.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프랑스 사람들이 훨씬 친근하게 받아들이거든요.

    반면 미국에서는 너무 아카데믹한 곡보다는 그 가수가 다양한 장르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느냐를 주로 보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를 그런 식으로 평가하더라구요. 일본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제 경우에는 독창회 할 때마다 레퍼토리 선정하는 데에 보통 2, 3개월이 걸려요. 그때 공부하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는 아직 정통 리트만으로 리사이틀을 한번도 안 해봤어요. 지난 봄에 LG 아트센터에서 이탈리아 가곡, 독일 가곡, 프랑스 가곡을 맛만 보여드리는 식으로 했을 뿐이에요.”

    이탈리아 가곡, 프랑스 샹송, 독일 리트의 차이점

    ─나라마다 전통 가곡들이 있잖아요. 그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이탈리아 가곡과 프랑스 가곡은 스타일부터가 굉장히 달라요. 이탈리아 가곡에서 ‘아리안티카’라고 하는 16, 17세기 노래를 할 때에는 발성법 자체가 벨칸토 창법과는 조금 달라서 목소리가 깨끗하고 바이브레이션이 없어야 해요. 노래는 보통 ABA 형으로 구성되는데, A에서는 똑같은 음이 나오지만 바리에이션이 나와야 해요. 거기서 얼마나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느냐에 따라서 바로크 음악을 잘하는지 평가해요.

    18, 19세기 가곡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레가토와 아질리티예요. 레가토는 숨을 쉬지 않고 음을 길게 처리하는 것, 아질리티는 스케일이나 고음 영역의 테크닉 같은 것인데, 이 두 가지 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반면에 프랑스 샹송에서는 무엇보다 발음이 가장 중요해요. 이탈리아 가곡은 사실 이탈리아 말을 잘 몰라도 상당히 정확하게 부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가곡은 그렇지가 않아요. 제가 개인적으로도 힘들게 생각하는 게 프랑스 가곡인데, 일단 스타일 면에서 감성적이고 로맨틱하면서 동시에 완벽한 발음을 하기가 가장 어려워요.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사람도 프랑스어가 갖는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직 프랑스 가곡집을 못 내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웃음)

    아무튼 외국인이 프랑스 가곡, 예컨대 포레나 뒤파르크를 부르면 모든 게 다 드러나요. 미국인은 프랑스 가곡을 하면 안돼요. 그건 살인적인 행위니까(웃음). 저처럼 귀가 발달하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도 녹음해보면 실수가 너무 많거든요. 그런 건 음악성만으로는 감춰지지 않아요. 그래서 프랑스 가곡은 앞으로 영원히 기피할지도 몰라요(웃음).

    제가 조금 자신있다고 할 만한 게 독일 리트인데, 한국 팬들도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같은 테너는 익숙하잖아요? 제 경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했고, 한국에서도 공부했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문제는 있어요. 예컨대 괴테나 하이네 같은 사람들이 쓴 시의 감흥과 깊이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경험 같은 것, 그건 나름대로 노력해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조수미란 가수가 나오지 않았나요?

    “맞아요. 저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센스를 갖고 태어났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그런 센스만 갖고는 안 되더라는 거지요. 예컨대 바바라 보니를 보세요. 그분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분이 부르는 독일 리트는 정말 완벽해요. 우선 독일어가 완벽하고, 독일 문화나 시에 대한 지식은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이분이 하는 노래는 듣기에 전혀 무리가 없고 기가 막혀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가수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안드레아 보첼리를 좋아해요. 맹인이면서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혹자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너무 가볍지 않으냐고 비판도 하더군요.

    “그 사람은 클래식이다, 팝이다, 이런 걸 따지기에는 이미 너무 커버렸어요. 세계적인 슈퍼스타이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몇 억이 되는지 모르잖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보첼리가 맹인이라서 동정심 때문에 좋아하겠어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세계적으로 4500만장의 앨범을 팔았다는 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비록 사물을 보지는 못하지만 삶 자체에 대한 행복감이 충만한 사람이고,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리는 사람이에요. 테너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본인도 알지만 공부는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이런 끊임없는 추구는 정말 본받을 만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 이전에 인간적으로 존경스럽고,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주빈 메타의 자필 음악해설

    ─최근 어디선가 조수미씨와 정명훈씨, 그리고 보첼리가 소주와 김치찌개를 즐겼다는 얘기를 본 것 같은데….

    “그건 지난 5월 일본 공연 때 얘기예요. 셋 다 먹는 것 좋아하고 셋 다 소탈해요. 정명훈씨도 이제 음악적인 거인이 됐지만, 사실 무대 위에서나 거인이지 밖에서는 평범하고 심플한 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제 자신을 많이 채찍질해요.”

    ─그게 쉽지는 않지요?

    “명예 때문에…. 주변에 보면 하늘에 붕 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게 자만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잡습니까?

    “저는 선천적으로 완벽주의자예요. 무얼 하든 굉장히 세심해요. 음악은 물론이고요. 연주여행을 다닐 때에도 무대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죄다 직접 들고 다녀요. 콘서트 때에도 음악 외적인 것도 모두 신경을 써요. 사실 어제 리사이틀도 본공연에 앞서 무대에 가봤더니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전체 구성에서부터 곡의 순서, 앙코르 곡의 순서, 2부는 어떻게 하고, 전체 구성을 제가 다시 짜고 프로그램도 확인하고…. 제 자신은 물론이고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아요. 이게 조수미 독창회지 다른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니까 공중에 붕붕 떠 다니는 걸 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온갖 데에 신경을 써서 콘서트를 하고 나면 좀 허탈해지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어제 방송국에서 녹화한 공연실황 테이프를 보고 다시 찍자고 방송국에 전화했어요. 두 차례 공연 중 방송용으로 어제 것을 녹화했는데, 영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물론 방송국도 돈들고 힘들겠지만, 많은 사람이 볼 텐데 가급적이면 완벽하게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일이 하나 끝나면 그건 일단 접어두고 다음 것을 생각해요. 허탈할 틈이 없는 거지요.”

    ─조수미씨의 그런 면은 선천적인 재능에다가 카라얀 같은 거장들을 접하면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부분도 있겠지요?

    “그렇겠지요. 카라얀 같은 거장들과는 단 5분을 얘기해도 거기서 받는 임프레션이 대단해요. 저는 10년 동안 공부해온 것을 단 5분에 받았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그런 대가들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왔을 때, 저는 나름대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그분들이 주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어떤 일이 닥칠 때 준비한다는 게 아니라, 항상 사전에 준비된 상태로 살아온 거지요. 저는 내일 당장 오페라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도 할 자신이 있어요. 그만큼의 준비는 언제나 돼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조수미씨가 만난 음악 대가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이라면 아무래도 카라얀을 꼽겠지요?

    “물론 카라얀이 첫째고, 그 다음은 주빈 메타예요. 그분의 음악적 정열은 참 대단해요. 제가 그분 연주회에 종종 가거든요. 그러면 그분은 연주회 프로그램을 해설하는 내용을 당신이 직접 써서 팩스로 보내주시곤 해요. ‘내일 연주할 심포니는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 나는 그 곡을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최고의 팬 서비스로군요.

    “그렇지요. 저를 그 정도로 올려주신 데에 감격했구요.”

    ─주빈 메타 이외에 조수미씨와 가깝게 지내는 다른 분도 있습니까?

    “사실 음악인들끼리는 서로에 대해서 음악적인 존경심이 없으면 인간관계조차 맺기가 힘들어요. 일단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할까’ 하는 의혹이 생기면 다른 부분도 함께 나누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제가 신인 시절에는 일단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니까 지휘자 말에 고분고분 따랐지만 참 힘들 때가 많았어요. 저도 음악적인 부분은 양보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그래서인지 음악인으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많지 않은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마디, 예컨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가 권하는 방법 같은 것….

    “제가 클래식 음악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인간은 길들여지는 동물’이라는 거예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클래식음악을 들어보셔야 해요. 처음엔 물론 지겹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계속 들어보세요. 자신을 클래식 음악에 길들이는 거지요.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 같은 인스턴트가 아니에요. 그래서 클래식음악에 친숙해지려면 길들어야 하고, 그렇게 길들면 반드시 그만한 보답이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감동을 받게 되고, 미지의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빛깔의 세상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먼저 클래식음악에 자기 자신을 길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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