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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 현장 6·최종회

세계에 정신건강법 파는 명상센터 '아쉬람'

인도의 명상산업

  • 안영배 ojong@donga.com

세계에 정신건강법 파는 명상센터 '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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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뿌나의 경제는 오쇼 라즈니쉬 덕에 굴러간다’는 말이 나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쇼 명상 리조트.’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매년 6만명씩 찾아오는 이곳은 ‘영혼의 스승’에서부터 ‘섹스 구루’까지 극단적 평가를 받고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독특한 명상법을 즐기는 휴양소다. 에이즈 검사에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다소 ‘신비스런’ 이곳을 본지 기자가 직접 취재했다.
인도 봄베이에서 남동쪽으로 170km 정도 떨어진 뿌나(Poona, 영어로는 Pune)의 오쇼 아쉬람(명상 집단을 이르는 말). 한때 미국에서 93대의 롤스로이스를 소유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가 1974년에 세운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명상 휴양소다.

기자는 지난해 12월26일 서울에서 오후 비행기로 8시간 날아가 그 다음날 새벽 1시 봄베이공항에 도착한 뒤, 숨쉴 겨를없이 승용차 밴을 잡아타고 5시간 동안 험악한 도로와 운전기사의 아슬아슬한 묘기에 진땀을 흘린 끝에 이곳을 찾았다.

오쇼 아쉬람에서 21세기형 ‘명상 산업(Meditation Industry)’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인구 250만의 뿌나 사람들은 오쇼 아쉬람 때문에 먹고 산다’는 다소 과장섞인 말이 나돌 정도로,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명상과 경제적 측면에서의 관광 수입이 절묘하게 배합된 곳이기 때문이다.

뿌나는 해발 5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자리잡아 울창한 숲에 연중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도시. 이런 환경적 이점과 오쇼의 세계적 명성 때문에, 오쇼 아쉬람은 인도의 수천군데가 넘는 명상소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에이즈 테스트를 받다

뿌나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오쇼 아쉬람의 메인 게이트(출입구)에는 검은 색으로 덧칠한 대문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남녀 외국인들이 이 문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기자는 외국인들 무리에 섞여 별 생각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푸른 눈의 외국인에 의해 그만 제지당하고 말았다. 메디테이션 패스(Meditation Pass, 명상 출입증)가 없다는 것이다.

적갈색 원피스 비슷한 옷을 걸친 이 남자 외국인은 정문 오른쪽에 있는 웰컴센터(Welcome Center)를 손으로 가리키며 거기서 절차를 밟으라고 말했다. 조금 후에야 알게 됐지만 취재를 하러 온 기자라는 신분이 이 수문장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쉬람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얼굴 사진이 부착된 면허증 같은 것을 그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웰컴센터로 가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절차를 밟았다. 아쉬람 출입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더니 이번에는 웰컴센터 안내자가 에이즈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와야만 출입증이 발부돼 아쉬람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메디테이션(Meditation, 명상)과 에이즈 테스트?’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두 단어. 그러나 이번 짬에 에이즈 검사를 한번 받아보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별로 받아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에이즈 검사는 피를 뽑은 당일로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퀵 테스트’와 하루 이틀 뒤에 결과가 나오는 ‘일반 테스트’,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쇠 뿔도 단 김에 빼라 했던가, 일반 코스보다 비싼 루피(인도 화폐 단위)를 물고 퀵 테스트를 밟았다. 웰컴센터 안내자는 오후 4시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오쇼와 그의 아쉬람에 대한 영문 안내책자를 뒤적거리며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극단적 평가받는 오쇼

오쇼는 시인 류시화와 무용가 홍신자의 스승으로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오쇼 라즈니쉬 붐’이 일어 그가 남긴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노자 도덕경 강론’ ‘금강경’ ‘42장경’ ‘우빠니샤드’ 등이 번역 출판된 바 있고, 그의 저서 ‘배꼽’은 140만부나 팔려나가는 초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아마 한 외국인의 저작물이 국내에서 무려 50여권이나 번역돼 나와 있는 것도 오쇼 외에는 찾아보기 드문 예일 것이다.

오쇼는 그 저서나 행동에서 기존의 인습적 사고나 기성체제의 세속적 권위에 순응하고 타협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상 사상가다. 오쇼를 추종하는 쪽에서는 그를 ‘위대한 영적 스승’이라고 하는 반면에 그 반대쪽에서는 ‘이재(理財)와 섹스에 밝은 구루(Guru, 깨달은 사람)’라고 비아냥거린다.

오쇼의 전기에 의하면 그의 정확한 인도 이름은 모한 찬드라 라즈니쉬(Mohan Chandra Rajneesh). 1931년 자이나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시절이던 1952년에 마치 원자폭탄의 폭발 같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며, 1958년 26세의 나이에 대학의 철학교수로 임명된 후 9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1966년 교수직을 사임한 뒤 인도 각지를 떠돌면서 종교 집회나 명상 모임에 초청돼 강연과 논쟁을 벌였다.

그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힌두교 샹까라 교단을 혹독히 비판하는 등 기성 종교를 가차없이 공격했고, 간디의 반현대적 기술반대적 사상과 빈곤을 찬양하는 인도의 뿌리깊은 전통에 독설을 퍼붓는가 하면, 테레사 수녀를 두고 산아제한을 반대하면서 인구증가와 빈곤이 낳은 고아들을 돌봄으로써 가톨릭을 선전하는 위선자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특권계급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설파하는 그는 가는 곳마다 기성체제측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한다.

1968년 오쇼는 봄베이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는 인도 전통의 정적인 명상법이 갖가지 신경증적 증상으로 속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부적합하다며, ‘광란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허용해 카타르시스를 거쳐 사람의 내면이 고요해지도록 유도하는 ‘혁명적인’ 명상법을 내놓았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의 오쇼 추종자들이 널리 실천하고 있는 ‘다이내믹 메디테이션(역동적 명상)’이다. 그 무렵부터 그의 주위에는 일단의 서양인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그는 ‘바그완(Bhagwan, 축복받은 자)’으로 불렸다.

오쇼는 1974년 명상소를 봄베이에서 뿌나로 옮기면서 지금의 오쇼 아쉬람을 건립했다. 70년대 후반 서양인 제자들에 의해 그의 명상법이 세계 각국으로 알려지면서 오쇼 아쉬람은 하루 방문객 2000명이 넘는 기록을 세웠다. 언제나 축제같은 분위기인 동적 명상과 성(性)을 명상의 수단으로 설파하는 오쇼의 가르침은 동양세계에 매료된 서구인들로부터 더욱 폭발적인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쉬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오쇼 측근들의 분열과 오쇼의 건강 문제 등이 겁쳐 오쇼 일행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81년 미국으로 떠난다.

오쇼는 제자들과 함께 미국 오레곤주의 황무지를 개간, 농업공동체를 꾸리면서 다시 급성장한다. 불과 4년만에 그는 90여대의 롤스로이스 차를 마련하는가 하면 대학과 은행 등 기업체를 설립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의 측근이 돈을 횡령하는 사태가 발생, 법정으로 비화되면서 결국 오쇼는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이후 세계 각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1987년 뿌나의 아쉬람으로 돌아왔고, 90년 1월19일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오쇼가 떠난 후 그의 아쉬람은 핵심 제자들에 의해 현재까지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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