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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불교탑의 최고봉 불국사 다보탑

  • 최완수

세계 불교탑의 최고봉 불국사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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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는 경주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40여 리 떨어진 토함산(吐含山) 서남쪽 기슭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다. 토함산은 통일신라 왕국의 5방(五方) 중심 산악 중 동악(東岳)에 해당하는데, 일찍이 석탈해(昔脫解) 왕이 차지하여 석씨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선덕여왕 때 비담(毗曇)의 반란으로 석씨들이 거의 멸족당하자 그 소유권은 김씨 왕족들에게 돌아간다. 이에 선덕여왕 이후부터 김씨 왕들의 왕릉이 차츰 그곳으로 통하는 길목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드디어 문무왕이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龍堂里) 대종천(大鍾川) 입구 대왕암에 자신의 수중릉(水中陵)을 건설하기에 이르자, 태종 무열왕의 내외 혈손들은 동해구(東海口)로 불리던 감포 일대의 동해안에서 토함산을 거쳐 경주로 들어오는 지역 전체를 차지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문무왕 이후 신문왕이나 효조왕의 왕릉이 모두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일대에 자리잡고, 성덕왕릉은 더 동쪽으로 나가 토함산 서북쪽 줄기가 뻗어내린 양장곡(楊長谷)의 산자락 끝과 조양뜰의 너른 분지가 마주치는 곳에 모셔진다.

경덕왕은 부왕과 모후가 합장되어 있는 이 을 전륜성왕의 왕릉 제도에 합당하게 십이지신상을 곁들인 호석(護石)과 요도(繞道)형 지면석(地面石) 및 돌난간으로 봉분을 장엄하게 꾸민 다음 전륜성왕의 추복사찰답게 완벽한 불사(佛事)의 건립을 기획하였던 듯하다.

일체 대·소승 경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 불국세계를 신라 화엄종의 만법귀일(萬法歸一)과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종지에 입각하여 한 가지 기준으로 융합해내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마치 하나의 태양 아래 산하대지(山河大地; 산과 강과 평야)와 숭산심해(崇山深海; 높은 산과 깊은 바다)가 각자 자태를 마음껏 뽐내며 서로가 서로를 빛내며 어우러지듯이, 일체 경전에서 말하는 불국세계를 신라 화엄의 질서 속에서 한자리에 모두 표출해보려 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신라가 일체 경전에서 얘기하는 그 불국세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자부심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실로 수많은 불국세계를 설정해 붓끝이 닳도록 기록하고 입이 아프도록 말해온 불설(佛說; 부처님의 말씀)의 내용들이 이제야 신라 사람들의 종합적인 불교 이해와 창조적인 조형 정신을 통해 지상에 총체적으로 구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함산 전체를 화엄불국세계(華嚴佛國世界)로 보고 우선 그 서남쪽 산허리에 당시 신라사람들이 가보기를 가장 염원하던 대표적인 불국세계를 한꺼번에 표출했다.

우선 현재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로서 우리에게 무수한 불국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가르쳐주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루어낸 불국세계인 영산정토(靈山淨土)가 있어야 하니,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하는 한 구역의 불국세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가는 과정에 무수하게 죽어간 영가(靈駕)들이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소원하였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가 있어야 하니,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한 대웅전 서쪽 구역이 바로 그 아미타불국토이다.

대웅전 구역 뒤로는 동쪽 언덕에 관음전(觀音殿)이 가장 높게 자리잡고 있다. 사바세계에서나 극락세계에서나 일체 중생들의 고뇌를 해소해주는데 가장 앞장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기 때문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7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루어내는 영산정토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고,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에서 말한 대로 아미타정토에서는 아미타불의 좌협시(左脇侍) 보살로 첫째 보좌역을 맡고 있으며,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도 53선지식 중의 하나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당시 신라 사람들의 관음신앙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구조다.

그 관음전보다 한 단계 낮게 비로전(毘盧殿)이 있어 ‘화엄경’에서 말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일승(一乘)의 화엄 종지로 여러 불국세계를 원융무애하게 조화시켜 제망중중(帝網重重; 제석천궁의 구슬발이 서로 빛을 반사하여 무수한 아름다움을 몇 곱절로 발산하는 것을 일컫는 말)의 효과를 드러내도록 배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당시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던 미륵불의 용화세계(龍華世界)가 빠져 있다. 혹시 지금 법화전 터로 추정하고 있는 극락전 뒤쪽이 용화전(龍華殿) 터로서 미륵불이 하생할 용화세계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불국세계와 중생세계 구분하는 대석단

이렇게 된다면 이 당시 신라사람들이 가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던 모든 불국세계는 이 불국사 대석단(大石壇) 위에 모두 구현된 셈이다. 불국사가 화엄 불국사로 불리며 불국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절로 꼽히는 것은 여러 경전에서 얘기하는 대표적인 불국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우선 불국사를 다른 절과는 비교할 수 없게, 즉 불국사를 불국사답게 만드는 점이 불국세계와 중생세계를 나누어 놓은 대석단의 건설에 있다. 대석단은 전체적으로 보아 2단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사바세계의 정토(淨土)인 영산불국토를 불국사의 중심구역으로 삼기 위해 이 터를 가장 높게 쌓아올리니, 그 아랫단이 백운교(白雲橋) 18계단 높이에 해당하고 그 윗단은 청운교(靑雲橋) 15계단 높이에 해당한다(국보 23호). 이곳이 대석단의 중심으로 정문이 설치된 곳이니, 백운교 18계단과 청운교 15계단 도합 33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자하문(紫霞門)이 나오게 된다.

이 대석단은 동서로 뻗어가며 단 위의 불국세계와 단 아래의 중생세계를 나누어 놓는데, 서쪽으로 이어지면서는 범영루(泛影樓)를 끝으로 그 윗단이 사라지고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아랫단 높이에 전개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랫단 높이를 다시 2단 구조로 나누어 놓으니, 그 아랫단은 연화교(蓮華橋) 10계단 높이에 해당하고 윗단은 칠보교(七寶橋) 8계단 높이에 해당한다(국보 22호). 결국 정문의 백운교 18계단 높이와 같은 평면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 위에 곁문인 안양문(安養門)이 세워져 극락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대석단은 기본적으로 목조건축의 축조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세계 석조건축사상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돌을 쌓아올리는데 돌 쌓는 방법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 나무집 짓는 방법으로 돌을 쌓아올린 것이다. 기둥을 세우고 아래· 위에 방목(枋木)을 끼워 벽면을 만들고 그 벽면을 판석(板石)이나 잡석으로 채워나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러자니 아래·위 단을 나눌 때는 보 끝 형태의 받침돌을 목조건축의 첨차(遮) 형태로 다듬어 빼내기도 하였으니, 극락전 대석단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범영루 돌기둥에서는, 기둥머리를 높여 들보를 쌓아가기 위해 고안된 포작(包作)을 아래위로 맞붙여놓은 목조와 같은 장식성이 석조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목조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결구미(結構美)를 표출해 석조미술 특유의 딱딱하고 냉랭한 기운을 모두 거둬들였다.

이런 석축기법은 백제에서 비롯한 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기법이 신라로 전해져 등으로 계승되다가 이곳 불국사 대석단 축조에 원용되었던 듯하다.

잡석으로 벽면을 채우는 방법은 축조 경험이 그 발상을 도왔을 것이다. 대석단 축조의 발상도 성덕왕릉의 호석을 첨가하는 과정에 얻은 묘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석단 주변에 돌난간을 두르는 것은 성덕왕릉 호석 주변에 돌난간을 두른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난간을 두르는 것은 경계를 표시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금지와 보호의 의미도 있지만 내부를 공개하여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으니, 난간이 있는 자리에 벽을 쳐서 시야를 가리는 것은 난간 설치의 본뜻에 위배되는 것이다. 입체조형예술은 만인에게 시각적 쾌감을 제공하는 데 조형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하문으로 오르는 백운교와 청운교는 계단 밑으로 각각 무지개 문을 설치하여 그 문으로 통행할 수 있게 했는데, 안양문으로 오르는 연화교와 칠보교에서도 연화교 밑에만 무지개 문이 나 있다. 칠보교는 8계단 높이밖에 안 돼 무지개 문을 내기에 너무 낮아서 그랬던 모양이다.

본래 이 대석단 아래에는 칠보연지(七寶蓮池)가 있어 연꽃이 만발했고 그 사이로 배를 띄워 백운교와 연화교 아래 무지개 문으로 드나들었다 하나 아직 그 유구는 발굴을 통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칠보연지는 반드시 이 대석단 밑에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구마라습이 번역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저 국토를 어째서 극락이라 하는가. 그 나라 중생은 온갖 괴로움이 없고 다만 온갖 즐거움만 받으므로 극락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극락국토에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구슬발과 일곱 겹의 가로수가 있는데 모두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서 두루 주변을 에워싸니 이런 까닭으로 저 나라를 극락이라 부르느니라.

또 사리불아 극락국토에 일곱 개의 보배연못이 있어 8공덕수(八功德水; 달고, 차고, 맑고, 가볍고, 깨끗하고, 냄새 없고, 마셔서 탈나지 않는 물, 즉 일급수)가 그 안에 가득하고 못 밑바닥은 순금모래로 덮여 있으며 사방 계단은 금, 은, 유리, 파려()로 합성되어 있고 위에 누각이 있는데 역시 금, 은, 유리, 파려, 자거(), 붉은 구슬, 마노(瑪瑙)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못 속의 연꽃은 크기가 수레바퀴만한데 푸른색은 푸른 빛을 내고 노란색은 노란 빛을 내며 붉은색은 붉은 빛을 내고 흰색은 흰 빛을 내며 미묘하고 맑은 향기를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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