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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조주청과 함께 가는 지구촌 여행(86)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세계 최빈국, 서부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 만화가 조주청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시골동네 공동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아프리카 말리(Mali)에서 내려와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 국경 검문소를 이렇게 쉽게 통과한다는 것은, 이 나라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말리보다 더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준사막 사헬 지역을, 에어컨도 없는 고물 4륜구동차의 차창을 연 채 흙먼지를 덮어쓰고 내려오느라 눈썹도 정미소 일꾼처럼 하얗게 세버렸다.

이 나라 서울로 가는 길을 묻는 것도 고역이다. ‘와가두구(Ouagadougou)’, 이것이 이 나라 수도 이름이다.

부르키나 파소는 옛이름 오뜨 볼타(Haute Volta)로 희미하게 기억되는 서부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소국이다.

사하라 아래쪽,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혹독한 무더위가 가난의 사슬을 옥죄는데, 설상가상 내륙국이라 바다에 면한 이웃나라를 거쳐야 하는 물류비가 이 나라 경제발전의 싹을 짓밟는다.

프랑스로부터 벗어나 독립국이 됐다지만 거리에 다니는 차는 거의가 르노와 시트로앵이고 공산품도 대부분이 프랑스제라, 경제적으로는 아직도 프랑스에 단단히 예속되어 있는 셈이다.

화폐도 프랑스 식민지였던 주변 일곱 나라와 함께 프랑스 프랑화와의 환율이 100:1인 서부아프리카 CFA프랑을 사용한다. CFA는 프랑화의 동전쯤으로 사용된다.

부르키나 파소는, 말리에서 들었던 세계 최빈국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도로는 잘 정비되었고 아프리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로변 쓰레기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초가 흙집이지만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이 나라 수도 와가두구 시내도 깨끗하다.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와가두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틀을 잡은 것은 상카라(Sankara) 덕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철권통치로 나라를 다스리다 친구의 총에 짧은 생을 마감한 상카라는 아프리카판 박정희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는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정파들이 얽히고 설켜 권력을 잡으려 아귀다툼을 벌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쿠데타는 또 다른 쿠데타를 불렀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상인조합도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파업과 데모는 끊일 새가 없이 이어졌다.

1983년 좌익냄새가 물씬 풍기는 젊은 장교 상카라가 사관학교 동료 세 명과 함께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군 선배인 잔 밥티스라는 군의관을 대통령으로 앉혔다. 허수아비 대통령은 5·16 직후의 장도영 꼴이 된 것이다.

혁명의 열기가 진정되자 군의관 대통령은 물러나고 실권자 상카라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전면에 부상한다. 상카라는 나라 이름을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땅이라는 뜻의 부르키나 파소로 바꾸고, 박정희가 펼쳤던 새마을운동과 흡사한 캠페인을 벌인다.

자기집 앞 자기가 쓸기, 아침10시 정각 전국민이 길거리에 나와 국민체조하기, 도로변집 흰색으로 도색하기, 도로정비….

그때까지 지주들과 보상금 마찰을 빚으며 계속 답보상태에 있던 공항이전 문제도 하루아침에 해결했다. 지주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수십 대의 토목 중장비를 동원, 공항 부지를 밀어버린 것이다.

상카라는 부자들에게 초법적 세금을 직접 부과하고 거부할 때엔 군인이 안방으로 들어가 부자 머리에 총을 겨눴다. 상인조합의 길거리 데모대에는 망설임없이 기총소사해 피바다를 만들었다.

농촌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농지를 개혁하고, 노인들은 일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공동작업을 하게 하고, 모든 공무원을 교대로 농촌에 보내 육체 노동을 하도록 명령하고, 무의촌 농촌마을에 진료소를 설치했다.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그는 야심 찬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세우고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에 버금가는 국토종단철도에 첫 삽질을 했다.

상카라는 박정희가 술을 좋아하던 것만큼이나 축구를 좋아했다. 1987년 10월15일, 상카라는 혁명동지 세 사람과 함께 공을 차게 된다.

그중 한 사람, 기갑부대장 꼼빠오레는 상카라와 형제 이상이었다. 사관학교 시절 가난한 시골 출신 상카라는 부유한 꼼빠오레 집에서 함께 살았다. 상카라가 권력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른 것도 기갑부대를 이끌며 군을 장악하고 있는 든든한 친구 꼼빠오레가 뒤를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는 열기를 더해갔다. 일상사에서 벗어나 사관생도 시절처럼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마음껏 공을 차며 상카라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 쉬는 시간에 얼음물을 마시며 사관생도 시절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 때 화장실 갔던 꼼빠오레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운동복 주머니에서 꺼낸 권총이 불을 뿜었다. 김재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꼼빠오레는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있다.

요즘, 이 나라 국민들에게 상카라 추모열기가 달아오르는 것도 박정희 신드롬과 흡사하다.

쿠데타, 새마을운동, 그리고 피격 ‘아프리카판 박정희’의 나라

신동아 2001년 3월 호

만화가 조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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