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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대통령과 코미디언

박정희의 홍보맨 김희갑, 전두환의 희생양 이주일

  • 김재화 erobian@erobiannight.co.kr

박정희의 홍보맨 김희갑, 전두환의 희생양 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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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치판에서 ‘쇼’는 ‘속임수’로, ‘코미디’는 ‘저질 실수극’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국회의사당에서는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려도 ‘쇼’나 ‘코미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 그렇다면 왜 한국사람들은 짜증스럽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즐거워야 할’ 코미디에 비유하는 걸까?
  • 어쩌면 한국 정치판의 메커니즘이 코미디언의 세계와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피로를 풀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역할에선 대통령과 코미디언에게 같은 책무가 주어져 있다. 대통령은 코미디언의 대중성과 호감이 필요하고, 코미디언은 또 다른 의미의 권위와 신뢰성을 갖춰야 한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이런 구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일왕의 항복 방송과 함께 맞은 8·15광복.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국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열흘이 지나기도 전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했고 나흘 뒤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이때 천재 시인 박봉우가 외쳤다.

‘산과 산이 마주하고 서 있는 땅을 밟고, 요런 자세로 꽃이 돼서야 쓰겠는가?’

그러나 시대를 날카롭게 꿰뚫어본 지식인의 은유도 우매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때 명진과 박응수라는 코미디언이 미국사람들과 비슷한 하이칼라 양복을 입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게 속지 마라.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

가난에 찌든 반쪽 나라 국민들의 분노는 반일감정으로 표출됐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을 골탕먹이는 코미디는 반세기가 넘게 단골메뉴로 자리를 굳힌다.

북진통일을 외쳤던 이승만 대통령. 하지만 그는 민족 최대의 비극 6·25 전쟁은 막지 못했다. 이승만이 외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지금도 코미디언 지망생들의 성대모사 기본 예문이다. 난리 틈바구니에서도 부패는 극에 달했다. ‘빽’과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불만을 자극했다. 전방에서 총에 맞은 병사들이 ‘빽’ 하는 비명을 지르고 죽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이 무렵 시장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예술인(약장수)’들은 최고위층을 향해 비수와도 같은 유머를 날렸다.

“이승만은 ‘삼신’ 할미라네!”

외교에는 ‘귀신’, 내무에는 ‘병신’, 인사에는 ‘등신’이라는 풍자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거리의 코미디언들이 뿜어낸 독설에 귀기울였다면, 아마도 하와이 망명이라는 불행은 면하지 않았을까?

이승만의 자유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이른바 ‘사사오입’이라는 전대미문의 억지 산술을 유행시켰다. 제적의원 202명 중 3분의 2는 135명인데, 이것은 사사오입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담꾼들은 무대에서 말했다.

“이봐 친구, 꿔간 돈 갚아야지.”

“여기 있네.”

“아니, 60환뿐이잖은가? 난 100환을 빌려줬는데.”

“이 사람, 사사오입 원리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구먼. 60을 반올림하면 100이 되지 않는가?”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주위를 자주 살피는 소심함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가 훔쳐 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밤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유머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선거 때마다 ‘이번 이승만 대통령 선거에 누가 출마한대요?’라는 식의 가치 의식이 실종된 말들이 유행했다. 1인 독주에 혐오를 느낀 사람들은 입담꾼들의 혀를 빌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풍자를 해봤지만, 기득권층은 어용 코미디언을 동원해 ‘갈아봤자 별수없다!’라고 받아쳤다.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으며,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화투 놀이에 ‘나이롱뽕’이라는 게 있다. 같은 패가 석 장이면 다른 사람이 내질 않아도 던질 수 있는 ‘자연뽕’이 된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신익희의 급서와 조병옥의 병사 덕에 ‘자연뽕’을 쳤다.



윤보선과 미스터 빈

윤보선 대통령은 영국에서 공부한 지조 있고 서양식 품위가 넘치는 국제 신사다. 일제시대에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에 밥을 일부러 굶기까지 했다는 강직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영국 신사를 빼닮은 그가 우리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TV에 나오는 영국 코미디 ‘미스터 빈’의 로완 와드킨슨을 왜 닮지 못한 것일까?

‘미스터 빈’은 자신의 이익이 보이면 다소 치사해 보여도 얄미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땅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다시 집어먹고 교통신호도 눈치껏 위반한다. 하지만 윤보선은 굶어 죽어도 땅에 떨어진 음식은 먹지 않고 빠져 죽어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 선비였다. 정치가의 풍모는 있었으되 정치꾼의 사술은 없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미스터 빈’의 코미디를 접할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났거나, ‘미스터 빈’이 윤보선과 같은 시대에 활동해 그 연기를 보여주기만 했어도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훨씬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윤보선은 63년 10월15일 치른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적은 표차인 16만 표로 박정희에게 패했다. 그 무렵 윤보선은 잠시 ‘코미디언’이 된 일이 있다. “내가 정신적 대통령이야!”라고 외쳤으니까….

윤보선과 박정희가 정권쟁탈전을 벌일 때 왕성하게 활약하던 코미디언 중에 양훈, 양석천 콤비와 서영춘, 백금녀 커플이 있다. 그들은 무대와 영화를 그야말로 종횡무진 누볐다.

국민 희극인 서영춘, 그가 처음부터 대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국도극장의 간판을 그리던 젊은 3류화가 서영춘은 당시 유행하던 극장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배우 한 명이 펑크를 냈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서영춘이 대타로 올라갔지만, 객석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천재 희극인 서영춘의 데뷔 무대는 그처럼 초라했다.

그러나 서영춘은 하늘이 내린 뛰어난 코미디언이었다. 그와 동갑인 현역 코미디언 송해(1926년생)는 지난해 12월19일 전라북도 임실의 예원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고 서영춘 동상 제막식 추념사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아, 영춘이! 그대가 외쳤던 말,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사회를 향한 통렬한 질타였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예언이 되는 교훈이었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없던 시절 아무것이나 잘 먹자는 소리였으이. 뿐인가? ‘살살이’ ‘요건 몰랐을 거다’ ‘배워서 남 주나’ 이 말은 면학을 장려한 말이었고,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푸 없으면 못 마시네’ 이 말 또한 가진 것을 잘 활용하라는 일침 아니었나?”

박정희와 배삼룡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박정희는 코미디언을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했다. 어쩌면 5공정권은 박정희의 수법을 대물림했는지 모른다. 온 국민이 바보로 전락했던 그 시절, 1등공신은 단연 코미디였고 전국민 우민화 작전의 총사령관은 ‘배삼룡’이었다.

당시 배삼룡을 말하는 평가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정호 교수의 글이다.

“근대화의 기차가 시동을 걸고 산업화의 비행기가 이륙 엔진을 켤 때인 70년대에 배삼룡은 각광을 받았다. 한국 현대화의 전위적인 ‘지진아’ 배삼룡은 그의 얼간이 짓으로 우리로 하여금 변화하는 시대를 충격없이 받아들이게 해주었으며, 그의 바보 행위는 우리에게 근대화의 육체노동에서 오는 신체의 뻐근함을 잊게 해주었다. 그에게 위안을 받지 않은 근대화의 기수들이 어디 있을까?”

그랬다. 배삼룡은 도시화되어 가는 시대에 촌뜨기로, 공업화되어 가는 세상에 거름 지고 가는 농사꾼으로, 찬란하게 서구화되어 가는 시절에 짚신 신고 나타난 꼴불견으로 박정희 정권이 펴는 모든 정책을 ‘역설적으로’ 찬미했다.

박정희를 도운 또 한 사람은 ‘합죽이’ 김희갑이다. 정권 홍보로 치자면 그도 배삼룡 못지않은 수훈갑이다.

40~50년대 이산의 한과 모정, 애향을 그리는 대다수의 대중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김희갑은 이미 30대부터 60세 이상의 노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유려한 말솜씨로 라디오 토크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했다. 누군가가 현 사회행태를 따지거나 각종 규범에 나타난 독소조항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에이 모르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었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 말은 중앙정보부 취조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추상 같은 호령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누가 감히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박정희에게 반기를 든단 말인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김희갑에게 먼저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김희갑은 ‘팔도강산 시리즈’로 지방 각 도시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 주는 공보담당 역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당시 ‘팔도강산’을 썼던 방송작가 윤혁민씨의 말을 들어보자.

“모두가 일체감을 갖고 잘살아보자고 하던 때 다른 어떤 목소리도 반역일 수밖에 없었죠. 적어도 박정희 대통령이 삽교천 제방공사 완공식을 끝으로 저세상에 가기 전까지는요.”

구봉서도 어떤 점에서는 본의 아니게 박정희 대대의 2중대 역할을 수행한 코미디언이다. 그는 63년 6월부터 라디오에서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고 날마다 소리질렀다. 이것은 전근대화된 인물에게 가한 일침이요, 산업화로 가는 길에 ‘재를 뿌리는’ 반정부 인사를 향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정권홍보의 선발대로 감히 거론한 배삼룡, 김희갑, 구봉서가 국민의 편에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준 때도 많았다. 좌충우돌하는 방식으로 서민들이 감히 저지르지 못하는 미필적 고의 사고를 내는 것이다. 파출소에서 경찰에게 대든다거나, 돈 많은 부자들을 골려 주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때 서민들은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

전두환과 이주일

닭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왔다. 긴급조치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을 지나 5공화국이 탄생했다. 전두환과 이주일은 동시에 황제로 등극했다.

한 사람은 헛기침이라도 하면 이 사회가 온통 뒤집어졌으니 가위 정치의 연금술사였고, 다른 한 사람의 말은 온 인구에 회자됐으니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상이었다.

이주일은 1972년 ‘하춘화 쇼’의 보조사회자로 따라 다니다가 향단이 역을 맡은 백금녀의 대타를 맡았다. 그의 여장(女裝)은 박장대소 그 자체였다.

쇼무대를 전전하던 이주일이 방송통폐합으로 TBC를 흡수한 KBS 2TV에 등장했다. 당시 코미디 전문 PD 김경태는 “뭔가 보여 주겠다”는 이주일을 믿고 일본의 ‘토요일이다 전원집합’이라는 프로그램의 복사판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전격 기용했다. 그는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2주일 만에 확실하게 떴다.

이 무렵 ‘전두환과 이주일의 공통점 시리즈’가 세간의 화제였다.

1. 데뷔 시기가 같다.

2. 머리가 벗겨졌다.

3. 축구를 좋아한다.

4.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5. 푸른 집에 산다.(청와대/극장식당 ‘초원의 집’)

6. 미국엘 자주 간다.

7. 웃긴다.

8. ‘뭔가 보여주겠다’고 하면서도 보여 주지 못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도 전두환과 이주일을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직 코미디언이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안 되면 국회의원 정도만이라도 지낸 전직 정치인이 코미디언이 되는 세상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이 한 말이다. 그는 대중을 휘어잡은 이주일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전유성의 바람처럼 이주일은 ‘코미디 한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고 정치판을 떠나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코믹 토크쇼’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이주일은 전유성의 희망에 부응한 것일까?

전유성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아마도 이주일이 정치판에서 겪은 숱한 우여곡절 때문 아닐까.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전두환과 이주일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긴 적이 있다. 5공 정권은 이주일의 머리카락을 빗댄 코미디나 저질 오리궁둥이 춤이 현직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건전한 국민정서에 역행하며, 어린이들에게도 위해하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출연 정지령을 내렸다.

세월은 흘렀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주일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그때 이주일은 전두환의 집에 초대되어 업혀 나올 정도로 만취한 일이 있다.

5공이 끝나기 전만 해도 배추머리 김병조는 지적 언어유희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자들에게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소금 뿌려라’ 하면, ‘정의사회 구현’에 불타는 서민들은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김병조는 하이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누구의 눈치도 살필 것 같지 않은 수사법을 구사해 힘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 김병조도 변절하고 말았다. 민정당(민주정의당)을 ‘정을 주는 당’, 통민당(통일민주당)을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말했다가 노도와도 같은 국민들의 힘에 잠시 방송을 떠나야만 했다. 그의 용비어천가는 실로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노태우와 최병서

노태우는 3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내 불안했다. 보통사람의 수수함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대통령 선거 이듬해부터 곤욕을 치렀다. 민심은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노태우의 ‘믿어주세요’는 성대모사의 달인 최병서의 입에서 딴죽이 걸리곤 했다. 노태우는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한 유일한 대통령이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코미디로 삼은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이윤박최돌물깡….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우리 통치권자 계보에 노태우를 ‘물’로 묘사했다. 하긴 일부 코미디언이 ‘물’을 소재로 삼긴 했었다. 나중에 그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밝혀졌을 때 코미디언들은 노태우의 ‘물’을 ‘식은 숭늉’이 아닌 ‘펄펄 끓는 물’로 고쳐 불렀다.

다음은 노태우 대통령을 소재로 한 몇 편 안 되는 코미디.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아는가? 나? 물고문 당한 양심수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한여름에도 오싹 추워지는 말이 물이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나는 홍수로 알거지가 된 수재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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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erobian@erobiann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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