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박정희의 홍보맨 김희갑, 전두환의 희생양 이주일

  • 김재화 erobian@erobiannight.co.kr

    입력2005-05-03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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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치판에서 ‘쇼’는 ‘속임수’로, ‘코미디’는 ‘저질 실수극’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국회의사당에서는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려도 ‘쇼’나 ‘코미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 그렇다면 왜 한국사람들은 짜증스럽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즐거워야 할’ 코미디에 비유하는 걸까?
    • 어쩌면 한국 정치판의 메커니즘이 코미디언의 세계와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피로를 풀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역할에선 대통령과 코미디언에게 같은 책무가 주어져 있다. 대통령은 코미디언의 대중성과 호감이 필요하고, 코미디언은 또 다른 의미의 권위와 신뢰성을 갖춰야 한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이런 구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일왕의 항복 방송과 함께 맞은 8·15광복.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국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열흘이 지나기도 전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했고 나흘 뒤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이때 천재 시인 박봉우가 외쳤다.

    ‘산과 산이 마주하고 서 있는 땅을 밟고, 요런 자세로 꽃이 돼서야 쓰겠는가?’

    그러나 시대를 날카롭게 꿰뚫어본 지식인의 은유도 우매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때 명진과 박응수라는 코미디언이 미국사람들과 비슷한 하이칼라 양복을 입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게 속지 마라.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



    가난에 찌든 반쪽 나라 국민들의 분노는 반일감정으로 표출됐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을 골탕먹이는 코미디는 반세기가 넘게 단골메뉴로 자리를 굳힌다.

    북진통일을 외쳤던 이승만 대통령. 하지만 그는 민족 최대의 비극 6·25 전쟁은 막지 못했다. 이승만이 외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지금도 코미디언 지망생들의 성대모사 기본 예문이다. 난리 틈바구니에서도 부패는 극에 달했다. ‘빽’과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불만을 자극했다. 전방에서 총에 맞은 병사들이 ‘빽’ 하는 비명을 지르고 죽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이 무렵 시장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예술인(약장수)’들은 최고위층을 향해 비수와도 같은 유머를 날렸다.

    “이승만은 ‘삼신’ 할미라네!”

    외교에는 ‘귀신’, 내무에는 ‘병신’, 인사에는 ‘등신’이라는 풍자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거리의 코미디언들이 뿜어낸 독설에 귀기울였다면, 아마도 하와이 망명이라는 불행은 면하지 않았을까?

    이승만의 자유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이른바 ‘사사오입’이라는 전대미문의 억지 산술을 유행시켰다. 제적의원 202명 중 3분의 2는 135명인데, 이것은 사사오입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담꾼들은 무대에서 말했다.

    “이봐 친구, 꿔간 돈 갚아야지.”

    “여기 있네.”

    “아니, 60환뿐이잖은가? 난 100환을 빌려줬는데.”

    “이 사람, 사사오입 원리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구먼. 60을 반올림하면 100이 되지 않는가?”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주위를 자주 살피는 소심함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가 훔쳐 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밤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유머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선거 때마다 ‘이번 이승만 대통령 선거에 누가 출마한대요?’라는 식의 가치 의식이 실종된 말들이 유행했다. 1인 독주에 혐오를 느낀 사람들은 입담꾼들의 혀를 빌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풍자를 해봤지만, 기득권층은 어용 코미디언을 동원해 ‘갈아봤자 별수없다!’라고 받아쳤다.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으며,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화투 놀이에 ‘나이롱뽕’이라는 게 있다. 같은 패가 석 장이면 다른 사람이 내질 않아도 던질 수 있는 ‘자연뽕’이 된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신익희의 급서와 조병옥의 병사 덕에 ‘자연뽕’을 쳤다.



    윤보선과 미스터 빈

    윤보선 대통령은 영국에서 공부한 지조 있고 서양식 품위가 넘치는 국제 신사다. 일제시대에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에 밥을 일부러 굶기까지 했다는 강직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영국 신사를 빼닮은 그가 우리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TV에 나오는 영국 코미디 ‘미스터 빈’의 로완 와드킨슨을 왜 닮지 못한 것일까?

    ‘미스터 빈’은 자신의 이익이 보이면 다소 치사해 보여도 얄미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땅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다시 집어먹고 교통신호도 눈치껏 위반한다. 하지만 윤보선은 굶어 죽어도 땅에 떨어진 음식은 먹지 않고 빠져 죽어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 선비였다. 정치가의 풍모는 있었으되 정치꾼의 사술은 없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미스터 빈’의 코미디를 접할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났거나, ‘미스터 빈’이 윤보선과 같은 시대에 활동해 그 연기를 보여주기만 했어도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훨씬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윤보선은 63년 10월15일 치른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적은 표차인 16만 표로 박정희에게 패했다. 그 무렵 윤보선은 잠시 ‘코미디언’이 된 일이 있다. “내가 정신적 대통령이야!”라고 외쳤으니까….

    윤보선과 박정희가 정권쟁탈전을 벌일 때 왕성하게 활약하던 코미디언 중에 양훈, 양석천 콤비와 서영춘, 백금녀 커플이 있다. 그들은 무대와 영화를 그야말로 종횡무진 누볐다.

    국민 희극인 서영춘, 그가 처음부터 대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국도극장의 간판을 그리던 젊은 3류화가 서영춘은 당시 유행하던 극장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배우 한 명이 펑크를 냈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서영춘이 대타로 올라갔지만, 객석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천재 희극인 서영춘의 데뷔 무대는 그처럼 초라했다.

    그러나 서영춘은 하늘이 내린 뛰어난 코미디언이었다. 그와 동갑인 현역 코미디언 송해(1926년생)는 지난해 12월19일 전라북도 임실의 예원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고 서영춘 동상 제막식 추념사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아, 영춘이! 그대가 외쳤던 말,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사회를 향한 통렬한 질타였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예언이 되는 교훈이었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없던 시절 아무것이나 잘 먹자는 소리였으이. 뿐인가? ‘살살이’ ‘요건 몰랐을 거다’ ‘배워서 남 주나’ 이 말은 면학을 장려한 말이었고,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푸 없으면 못 마시네’ 이 말 또한 가진 것을 잘 활용하라는 일침 아니었나?”

    박정희와 배삼룡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박정희는 코미디언을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했다. 어쩌면 5공정권은 박정희의 수법을 대물림했는지 모른다. 온 국민이 바보로 전락했던 그 시절, 1등공신은 단연 코미디였고 전국민 우민화 작전의 총사령관은 ‘배삼룡’이었다.

    당시 배삼룡을 말하는 평가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정호 교수의 글이다.

    “근대화의 기차가 시동을 걸고 산업화의 비행기가 이륙 엔진을 켤 때인 70년대에 배삼룡은 각광을 받았다. 한국 현대화의 전위적인 ‘지진아’ 배삼룡은 그의 얼간이 짓으로 우리로 하여금 변화하는 시대를 충격없이 받아들이게 해주었으며, 그의 바보 행위는 우리에게 근대화의 육체노동에서 오는 신체의 뻐근함을 잊게 해주었다. 그에게 위안을 받지 않은 근대화의 기수들이 어디 있을까?”

    그랬다. 배삼룡은 도시화되어 가는 시대에 촌뜨기로, 공업화되어 가는 세상에 거름 지고 가는 농사꾼으로, 찬란하게 서구화되어 가는 시절에 짚신 신고 나타난 꼴불견으로 박정희 정권이 펴는 모든 정책을 ‘역설적으로’ 찬미했다.

    박정희를 도운 또 한 사람은 ‘합죽이’ 김희갑이다. 정권 홍보로 치자면 그도 배삼룡 못지않은 수훈갑이다.

    40~50년대 이산의 한과 모정, 애향을 그리는 대다수의 대중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김희갑은 이미 30대부터 60세 이상의 노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유려한 말솜씨로 라디오 토크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했다. 누군가가 현 사회행태를 따지거나 각종 규범에 나타난 독소조항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에이 모르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었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 말은 중앙정보부 취조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추상 같은 호령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누가 감히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박정희에게 반기를 든단 말인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김희갑에게 먼저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김희갑은 ‘팔도강산 시리즈’로 지방 각 도시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 주는 공보담당 역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당시 ‘팔도강산’을 썼던 방송작가 윤혁민씨의 말을 들어보자.

    “모두가 일체감을 갖고 잘살아보자고 하던 때 다른 어떤 목소리도 반역일 수밖에 없었죠. 적어도 박정희 대통령이 삽교천 제방공사 완공식을 끝으로 저세상에 가기 전까지는요.”

    구봉서도 어떤 점에서는 본의 아니게 박정희 대대의 2중대 역할을 수행한 코미디언이다. 그는 63년 6월부터 라디오에서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고 날마다 소리질렀다. 이것은 전근대화된 인물에게 가한 일침이요, 산업화로 가는 길에 ‘재를 뿌리는’ 반정부 인사를 향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정권홍보의 선발대로 감히 거론한 배삼룡, 김희갑, 구봉서가 국민의 편에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준 때도 많았다. 좌충우돌하는 방식으로 서민들이 감히 저지르지 못하는 미필적 고의 사고를 내는 것이다. 파출소에서 경찰에게 대든다거나, 돈 많은 부자들을 골려 주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때 서민들은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

    전두환과 이주일

    닭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왔다. 긴급조치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을 지나 5공화국이 탄생했다. 전두환과 이주일은 동시에 황제로 등극했다.

    한 사람은 헛기침이라도 하면 이 사회가 온통 뒤집어졌으니 가위 정치의 연금술사였고, 다른 한 사람의 말은 온 인구에 회자됐으니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상이었다.

    이주일은 1972년 ‘하춘화 쇼’의 보조사회자로 따라 다니다가 향단이 역을 맡은 백금녀의 대타를 맡았다. 그의 여장(女裝)은 박장대소 그 자체였다.

    쇼무대를 전전하던 이주일이 방송통폐합으로 TBC를 흡수한 KBS 2TV에 등장했다. 당시 코미디 전문 PD 김경태는 “뭔가 보여 주겠다”는 이주일을 믿고 일본의 ‘토요일이다 전원집합’이라는 프로그램의 복사판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전격 기용했다. 그는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2주일 만에 확실하게 떴다.

    이 무렵 ‘전두환과 이주일의 공통점 시리즈’가 세간의 화제였다.

    1. 데뷔 시기가 같다.

    2. 머리가 벗겨졌다.

    3. 축구를 좋아한다.

    4.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5. 푸른 집에 산다.(청와대/극장식당 ‘초원의 집’)

    6. 미국엘 자주 간다.

    7. 웃긴다.

    8. ‘뭔가 보여주겠다’고 하면서도 보여 주지 못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도 전두환과 이주일을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직 코미디언이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안 되면 국회의원 정도만이라도 지낸 전직 정치인이 코미디언이 되는 세상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이 한 말이다. 그는 대중을 휘어잡은 이주일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전유성의 바람처럼 이주일은 ‘코미디 한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고 정치판을 떠나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코믹 토크쇼’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이주일은 전유성의 희망에 부응한 것일까?

    전유성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아마도 이주일이 정치판에서 겪은 숱한 우여곡절 때문 아닐까.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전두환과 이주일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긴 적이 있다. 5공 정권은 이주일의 머리카락을 빗댄 코미디나 저질 오리궁둥이 춤이 현직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건전한 국민정서에 역행하며, 어린이들에게도 위해하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출연 정지령을 내렸다.

    세월은 흘렀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주일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그때 이주일은 전두환의 집에 초대되어 업혀 나올 정도로 만취한 일이 있다.

    5공이 끝나기 전만 해도 배추머리 김병조는 지적 언어유희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자들에게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소금 뿌려라’ 하면, ‘정의사회 구현’에 불타는 서민들은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김병조는 하이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누구의 눈치도 살필 것 같지 않은 수사법을 구사해 힘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 김병조도 변절하고 말았다. 민정당(민주정의당)을 ‘정을 주는 당’, 통민당(통일민주당)을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말했다가 노도와도 같은 국민들의 힘에 잠시 방송을 떠나야만 했다. 그의 용비어천가는 실로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노태우와 최병서

    노태우는 3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내 불안했다. 보통사람의 수수함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대통령 선거 이듬해부터 곤욕을 치렀다. 민심은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노태우의 ‘믿어주세요’는 성대모사의 달인 최병서의 입에서 딴죽이 걸리곤 했다. 노태우는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한 유일한 대통령이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코미디로 삼은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이윤박최돌물깡….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우리 통치권자 계보에 노태우를 ‘물’로 묘사했다. 하긴 일부 코미디언이 ‘물’을 소재로 삼긴 했었다. 나중에 그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밝혀졌을 때 코미디언들은 노태우의 ‘물’을 ‘식은 숭늉’이 아닌 ‘펄펄 끓는 물’로 고쳐 불렀다.

    다음은 노태우 대통령을 소재로 한 몇 편 안 되는 코미디.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아는가? 나? 물고문 당한 양심수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한여름에도 오싹 추워지는 말이 물이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나는 홍수로 알거지가 된 수재민이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다. 그의 사투리는 시중에서 저절로 개그로 만들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방 순시 도중 연설을 했다. 그는 경제 ‘위기’를 설명하고 그 도시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노라고 역설했다.

    “우리 갱재는 이깁니다.”

    우리 경제가 ‘이길 거’라는 말에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는 국민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힘을 내어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을 ‘강간’ 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 청중은 험악한 표정이 되었다. 환호를 기대했던 김영삼은 의아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라까이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사람들이 뒤집어진기라…”

    야사에 따르면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코미디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도 말한다.

    “YS가 당시 그린벨트를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을 배출한 S대학 출신 아닙니까? 그의 머리를 의심해선 안 되죠.”

    그러나 S대학을 나오지도 못한 젊은 말재주꾼 엄용수, 심형래, 김형곤 등은 ‘밀실개그’를 통해 감히 김영삼의 머리에 자꾸 시비를 걸었다. 김영삼 대통령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 모음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 과정에 사실 여부를 떠나 수많은 루머가 탄생했다. 다음은 그중 하나.

    YS가 클린턴을 만나러 갔다. YS가 ‘Danger!’라는 표시를 보고 “오우, 저 단거를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수행원이 얼굴이 벌게지며 설명하길 ‘G’가 우리말 ‘ㅈ’으로 발음되어 ‘데인저’라고 하자,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Oh, my god(ㅈ).”

    김영삼은 독설로도 유명하다. 그가 당내의 끊임없는 반목을 이겨내며 결국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거칠 것 없고 공격적인 발언 덕분이었다.

    여기서 잠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코미디언에 얽힌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한국에는 애당초 국가원수 모독이란 죄가 성립하지도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갓 쉰을 넘긴 제이 레노는 일개 코미디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미국사회의 그 어떤 명사보다 대중 인기도가 높고, 수입도 천문학적이다. 레노는 NBC-TV의 ‘투나이트 쇼’를 진행하면서 저 유명한 CBS-TV의 명코미디언 겸 사회자 데이비드 레터맨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무엇이 제이 레노라는 밤의 황제를 만들었을까? 바로 클린턴의 ‘공’이었다. 레노의 코미디는 모두가 현실정치를 직설적으로 빗댄 조크였다. 요즘 미국에서는 누군가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을 ‘Clinton-bashing’이라고 부른다. 클린턴 시대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셈이다.

    클린턴과 제이 레노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성추문만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세계 분쟁지역에 평화를 심으려는 활동을 왕성히 해서 2000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물론 우리의 대통령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지만…. 이 무렵 레노는 말했다.

    “A Nobel Prize for Bill? Close but no cigar.”

    우리말로 직역하면 “뭐, 빌 클린턴에게 노벨 평화상을? 하지만 아쉽게 불발로 그쳤네.” 그것 뿐이다.

    그러나 레노의 말을 들은 미국인들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Close but no sigar’는 ‘가까이는 접근했지만 상(시가)을 받지 못했다(아쉽게도 실패했다)’는 관용어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특별부위’에 ‘시가’를 꽂아 피운 엽기적 성행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니 레노의 말을 듣고 그 속에 담긴 이중의 뜻을 알아차린 미국인들이 포복절도할 수밖에….

    레노는 클린턴을 소재로 한 코미디뿐 아니라 클린턴과 르윈스키를 닮은 사람을 발굴해서 이들에게 토막 코미디를 시켰다.

    그들도 일약 유명 코미디언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대통령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코미디 소재가 되는 미국 같은 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5공 당시 탤런트 박용식은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당했다. 또한 드라마에서 가정부 등의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순자’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실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국회 연설에서 유머를 구사하지 않으면 ‘고문’을 했다고 핀잔을 주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 사람들은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 도량도 넓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싶어한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은 암살 당할 뻔한 순간에도 유머를 구사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김대중 후보는 선거전에서 부드러운 유머를 구사해 냉철하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이회창 후보와 차별화 전략을 폈다. 그것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절대적 요소는 아니었어도 최소한 10만표는 얻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과 이경규

    코미디언 엄용수는 두 번의 결혼을 모두 파경으로 끝내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살 맛이 난다고 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열광적인 김대중 지지자다. 엄용수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음성모사를 아주 잘 하는데, 그중에 백미는 역시 김대중 대통령 흉내다.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흉내가 더 쉽다고 한다.

    그러나 엄용수가 제이 레노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비판력이 떨어지는 것이 그 하나다. 우리나라의 코미디에는 네 가지 금지된 영역이 있는데 종교, 군대, 섹스, 정치가 그것이다. 코미디언이 재주가 있더라도 사회적 통념 때문에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창작의 자유’를 운운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DJ는 다변가에 달변가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화술을 지녔다. 많은 독서에서 찾아낸 무궁무진한 정보량이 뒷받침해주는 후천적 기술이겠지만, 정치상황에 맞는 방어적 논리어법이 그의 뛰어난 말솜씨를 만들었다. 김대중은 웃음을 아는 사람이다. 김대중은 영어(囹圄)의 몸일 때도 화초를 길렀을 만큼 꽃 가꾸기를 좋아한다. 꽃에 물을 주면서 인상을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코미디언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바로 김대중이다. 그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에 복귀한 뒤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해 총재로 있을 때였다.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 깜짝 출연해 코미디언 이경규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은 이경규 일행의 예고 없는(그 프로그램은 유명인을 전격 방문하여 인터뷰를 따내는 파격적 방식을 썼다)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맞아주었다.

    이경규 : “총재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코미디언은 누굽니까?”

    김대중 : “바로 이경규씨죠.”

    나중에 이경규가 진짜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김대중은 천연덕스럽게 “이경규씨라고 말하지 않으면 편집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 인연이었을까? 그 뒤로 두 사람은 팬으로 가까워진다. 이경규는 김대중의 지지기반이 아닌 영남권 출신이고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 그런 그가 야당 총재 김대중과 ‘우호적인’ 대화를 길게 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김대중을 ‘코미디를 아는 정치인’으로, 이경규를 ‘정치를 아는 코미디언’으로 느꼈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최양락 팽현숙 부부, 이봉원 박미선 부부를 따로 만나 식사를 한 일이 있다. 이들의 만남은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요청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머감각이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어했던 개그맨 부부들이 원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우연일까?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많은 코미디언이 자발적으로 유세장을 쫓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했다.

    초창기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는 다분히 인신공격적 성격이 짙었다. 코미디언들은 김대중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최근 김대중을 풍자하는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목소리와 분위기에 치중하고 있다. 신세대 개그맨 심현섭이 히트시킨 DJ 성대모사만 봐도 그렇다. 심현섭은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서서 다소 쉰 듯하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를 낸다.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 역시 코미디언의 뜻과는 무관하게 홍보 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수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이른바 ‘개인기’를 선보일 때 김대중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이것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중 곁으로 다가서는 데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 정권과 비교할 때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비틀어 코미디를 만들기는 쉬운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일보했다는 진단이 가능할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유머도 가능하지 않을까?

    몇 사람이 음주운전에 걸렸다.

    이인제 : “젊은 혈기에 한잔 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회창 : “법대로 하세요. 나는 결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안주만 먹었어요.”

    김영삼 : “내가 운전하기 전에는 몰라도 운전대를 잡고는 한 방울도 먹지 않았어요.”

    김대중 : “한잔을 먹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미 술이 깼잖아요? 그래도 딱지를 떼려면 떼요. 나는 절대 보복 안 하니까….”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의 통치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좀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이런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서 어떤 스타일로 넘어갈까?

    이승만 : 넘어가다가 코가 깨진다.

    박정희 : 반만 밀고 간다.

    최규하 : 운다.

    전두환 : 깨부수고 간다.

    노태우 : 누가 데려다 주길 기다린다.

    김영삼 : 뚫고 가는 척하면서 뒤로 넘어 간다.

    김대중 : 한없이 기다렸다 간다.

    코미디는 사회의 반영

    막힌 사회일수록 카더라 통신이나 유비통신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좌에 있는 사람을 평민이 질타하는 사회라면, 그나마 민주주의의 희망이 보이는 게 아닐까?

    기쁨이 웃음을 만들어 내는 필요조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웃음 안에 기쁨이 서식한다는 보장은 없다. 웃음의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슬픔 감추기, 쇠약해진 인간의 몸부림, 모순에 대한 설명, 갈 수 없는 나라를 꿈에 본 여행기, 악마를 감춘 이중성, 라이벌 죽이기, 뒤틀림의 소산, 최고 통치자의 입을 빌려 펼치고 싶은 지도철학…. 어쩌면 우리 시대의 대중은 그런 코미디를 이해하는 대통령을 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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