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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삶

일체생활·무소유로 이상세계를 만든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행복낙원촌’사람들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일체생활·무소유로 이상세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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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 집 내 집 따로 없이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사는 마을, 담도 없고 문턱도 없는 집들, 맛있는 음식은 서로 나눠 먹고, 필요한 물건은 네 것 내 것 없이 마음껏 가져가는 마을, 동네 모든 어른이 내 부모고 고을의 모든 어린이가내 아들딸이 되는 마을,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대소사를 의논하고, 기쁜 일은 마을 전체의 경사가 되고 슬픈 일은 서로 덜어 주는 사람들…. 아름다운 동화책에 등장하는 ‘마음 착한 난쟁이들의 마을’에나 그려질 법한 이런 이상세계를 직접 실천하며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 쪽으로 달리다 보면 발안 인터체인지를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 3리에는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그만 농장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입구부터 약간 색다르다. ‘효의 고장’ ‘범죄 없는 고장’이라고 동네를 자랑하는 선전물은 시골 도로를 지나는 길에 드문드문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곳은 ‘돈이 필요 없는 사이 좋은 마을’이라는 푯말을 마을 입구에 세워놓았다. 바로 이곳이 무소유, 무아집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야마기시즘 경향(京鄕) 실현지(實現地)’이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겉모양은 여느 시골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10여 동의 양계축사가 늘어서 있고, 그 옆에 커다란 생활집과 식당, 작업공간, 마을회관 등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다른 마을 사람들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한 식구”

먼저 이곳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한다. 물론 각 가정이 쓰는 방은 따로 있지만 한 지붕 밑에 11가구가 모여 산다. 그리고 식사도 함께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에 있는 식당에 모여 앉는다. 흡사 대학기숙사 같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대개 공산주의를 연상한다. 그러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공동생산은 하되 공동분배는 하지 않는다. 공동소유도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단지 ‘무소유’라고 이야기한다. ‘공동생활’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일체생활’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공동생활이 아니라, 모두 한 식구로 일체가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에게 몇 가구가 모여 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한 식구”라고 대답한다.

이 ‘평범하지 않은’ 마을을 이해하려면 우선 야마기시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본식 이름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야마기시즘이라는 표현은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을 준다. 일본의 한 종교집단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선 야마기시즘은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종교에 의존하고 종교적 가치판단에 의지하는 삶을 멀리한다.

그럼 야마기시즘이란 도대체 뭘까. 야마기시즘은 ‘-ism’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야마기시주의, 즉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제창한 일종의 사상적 지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상적 지향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체계나 이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마기시즘은 ‘어설픈 이론화’를 경계한다.

야마기시즘을 소개한 책자를 보아도 야마기시즘의 취지를 “자연과 인위, 즉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가져오는 것”이라고만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야마기시즘이란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제안하여 유례가 된 ‘행복일색(幸福一色)의 이상사회’를 지칭하는 다른 표현일 뿐, 야마기시라는 주창자를 숭배하는 의미도, 정연화된 사상체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야마기시즘 운동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은 일본인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已代藏 ; 1901 ∼1961). 그는 청소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하나 되어 사이 좋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잠깐 사회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 가진 사람의 재산을 억지로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든지 모든 사람이 노동의 생산물을 똑같이 나누는 방식은 ‘악평등(惡平等)’이라 생각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독특한 양계법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야마기시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50년 9월의 태풍 ‘젠’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으로 들판의 벼가 다 쓰러졌는데 한쪽 논에서만 벼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을 한 농촌 보급원이 발견한 것이다. 신기해서 누구 논인지 알아보니 그곳이 바로 야마기시의 논이었고, 그의 농사법과 양계법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농촌 보급원은 야마기시를 설득하여 농사법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하게 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야마기시의 양계법에 공감하다가 점차 이러한 양계법을 낳은 독특한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이른바 ‘연찬회(硏鑽會)’다. 이 연찬회를 통해 사람들은 밤을 새워 이상사회와 인간성 회복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56년 교토의 어느 절에 162명이 모여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약칭 특강)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특강(特講)은 매월 2회씩 개최돼 현재 전세계에 걸쳐 2000회를 넘었다. 1958년 7월 야마기시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일본 미에현 가스가야마(三重縣春日山)에서 일체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야마기시즘 실현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8개국 50여 곳에 있다.

한국에서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가 시작된 것은 1966년. 1984년엔 실현지가 탄생했다.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에 자리잡고 있어 경기도의 경, 향남면의 향을 따 ‘경향(京鄕) 실현지’라고 부르며, 산안(山岸, 야마기시) 마을, 혹은 산안농장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행복한 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을의 촌장 노릇을 하는 사람은 윤성렬씨(58). 그는 아버지에게 야마기시즘에 관해 들은 후 이상사회의 뜻을 품고 한국에 실현지를 처음 가꾼 사람이다. 윤씨의 부친 윤세식씨(타계)가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전파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당시 야마기시즘은 당국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일단 조사 대상이었습니다.특히 자꾸 모여서 이상사회 무소유 등을 이야기하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습니다.”

윤씨의 전직은 교사다. 그는 젊은 시절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84년 지금의 자리에 실현지를 마련했다. 야마기시즘을 더욱 깊이 알아보려면 그 실현지인 산안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이곳은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산안마을의 주 수입원은 양계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닭을 키운다. 일반 양계장에 가면 역겨운 닭 냄새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이 마을의 양계장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닭들도 닭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탉과 암탉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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