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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한국영화가 좋다

“보고싶다! 허장강이, 도금봉이”

나의 한국영화 편력기

  • 이계진< 프리랜스 아나운서 >

“보고싶다! 허장강이, 도금봉이”

  • 정말이지 영화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막 흑백 영화가 컬러로 넘어가던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 그때 보았던 그 영화들이 마치 배고픈 날 어렵사리 얻어 먹은 맛있는 음식처럼 머리에,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허장강 선생, 도금봉 여사’라든지 ‘허장강 씨, 도금봉 씨’ 같은 표현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기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우리끼리 부르던 대로 ‘허장강이’와 ‘도금봉이’라고 해야 오히려 걸맞을 듯 하다.

‘한국 영화’ 하면 먼저 그 시절의 조연 배우들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그들이 있어 영화가 더욱 재미있었고, 조연이 주연 배우들과 엇비슷하게 빛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미남·미녀가 아니면서도 개성 연기가 일품인 명배우가 많았던 시절이다.

원주에서 보낸 학창 시절, 우리의 꿈은 영화를 ‘맘대로’ 볼 수 있는 나이가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 걸림돌이 우선 ‘학생 신분’이었다. 빨리 졸업하고 영화를 실컷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 관람 불가’는 말할 것도 없이 ‘중학생 이상 관람가’도 자유롭게 볼 수 없었고 부모를 따라 간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영화 구경은 늘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오직 학교장이 허락한 단체관람만이 유일한 기회였지만 그조차도 주머니에 돈이 없어 못 가던 때였다. 물론 참을성 부족한 친구들은 정학을 각오하고 ‘빠꼼이 짓’을 하기도 했지만.

어서 졸업해서 극장 구경(그 시절에는 영화 구경을 그렇게 표현했다) 좀 실컷 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던 때, 한 친구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2㎝쯤 길어진 머리에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임검석’이 전혀 무섭지 않은 첫 ‘해방의 날’이었다. 두 다리 쭉 뻗고 드러눕다시피 한 채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봤을 것이다. 통쾌무비의 자유다.

당시만 해도 서부극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내가 처음 본 우리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나는 고발한다’였던 것 같다. 김칠성이라는 유들유들한 배우가 얼마나 겁나고 미웠던지 그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 열광한 우리는 극장이 떠나갈 정도로 박수를 쳤다. 반공 교육이 철저하던 시절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학교장이 허락한 단체관람은 그런 반공물과 애국물이 단골이었다. 가끔 문예물이 있었고, 교장 선생님께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요행 서부극이나 오락물을 볼 수도 있었다. 극장에 손님이 안 들 경우 수준 높은(?) 영화도 가끔 단체학생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런 보너스가 주어질 때면 우리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곤 했다.

등하교길에 우리는 집으로 곧장 가는 길을 버리고 ‘시공관’ ‘문화극장’ ‘원주 극장’ ‘군인 극장’이 있는 길을 순례하곤 했는데 이는 극장 간판을 주욱 보기 위함이었다. 황정순과 석금성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성한 간판이었지만 그 영화의 스토리를 상상하기가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지미는 저 영화에서 과연 누구와 결혼할까’ 등등.

본 영화보다 재미있던 예고편

그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반공영화를 볼 때 실수로(?) 틀어준 예고편이 우리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정말 예고편은 우리에게 본(本) 영화에 맞먹는 즐거움이었다. 아니다, 결코 합법적으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짜깁기로 보여주는 특별 보너스였으니 어떤 때는 본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다.

김지미와 최무룡이 막 포옹하려는 장면이나 조석근의 험상궂은 얼굴이 조미령을(최은희였던가, 어쨌든 예쁜 여배우를) 마구 위협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린 죽어도 그 영화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어림없는 결심을 했다. 결국 단체관람도 안되고 정학당할 용기도 없으니 그저 설레는 맘을 달래려 극장 간판이나 쳐다볼 수밖에.

정말이지 영화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막 흑백 영화가 컬러로 넘어가고 있던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 그때 본 그 영화들이 마치 배고프던 시절에 먹던 맛있는 음식처럼 머리에, 가슴에 남아 있다.

엉성하기 짝이 없던 심청전을 보며 우리는 눈물을 철철 흘렸다. ‘엉성하다’는 것은 심봉사가 스님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하는 장면의 뒷산에는 고압선 송전탑이 우뚝 서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우린 그저 심청이 때문에 울었으니.

“오늘 성춘향 보러간다!”

‘구름이 흘러가도’ 역시 우리를 밑도 끝도 없이 울린 영화다. 아역 배우들이 누구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대신 조연이던 조미령이 어찌나 좋던지 답장도 없는 팬레터를 꽤 보내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그 영화를 단체 관람할 때 나는 집에 갈 생각도 않고 두 번 세 번을 연속으로 보았다. ‘학생들 다 나가!’라고 고함칠 때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대한뉴스 할 때쯤 다시 숨어들어 오는 것이었다.

또 한편의 잊을 수 없는 영화는 ‘상록수’다. 한창 인기 상종가였던 최은희와 신영균이 주연이었고 허장강이 동네 청년으로 나왔지 아마. ‘동혁’이 타고 오는 버스를 기다리던 ‘영신’은 차가 끊기자 거처로 돌아와 신문지로 깨끗이 도배한 방에서 혼자 쓸쓸해 한다. ‘동혁’은 왜 오지 않는가. 그 때 그 먼길을 걸어 차비를 아껴서 산 종을 들고 신영균이 나타난다. 우리는 또 냅다 박수를 치며 동혁의 멋진 출현에 감격했다. 여학생들이 훌쩍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박수 부대였다. ‘의사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향해 육혈포를 쏘았을 때는 기립박수를 쳤고, 황해나 장동휘, 박노식이 적진을 돌파하거나 일대 몇으로 적들을 때려눕힐 때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특히 그 세 배우는 한창 힘 자랑을 하고 흉내내기를 좋아하던 그 시기의 우리들에게 우상이었으니 주변에는 황해처럼 양미간을 내천(川)자로 찡그리고 다니는 아이도 많았다.

그런 우리를 잘 ‘이용’했던 영화 가운데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라는 영화도 있다. 아마도 자유당의 지원을 받은 선거용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지금에서야 드는 그런 영화다. 그땐 단지 영화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절 직전까지 갈 정도로 좋았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지평선은 말이 없다’ ‘아카시아 꽃잎 필 때’ ‘오부자’ ‘훌쭉이 뚱뚱이 논산 훈련소에 가다’ ‘빨간 마후라’…

아, 그렇다! 단체관람한 영화 가운데 우리의 애간장을 가장 많이 태운 영화가 있다. ‘성춘향’이다. 올 컬러 시네마스코프(!)인 ‘성춘향’은 똑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춘향전’과 대결해서 압승을 거둔 것으로 기억하는데, ‘춘향전’은 김지미 주연에 홍성기 감독이었고 ‘성춘향’은 최은희 주연에 신상옥 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가 우리 고장 원주에 들어왔는데 재미있다고 소문은 난리지요, 극장은 연일 만원사례지요, 상영은 계속 연장이지요…. 50% 할인되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종례시간이면 눈치 빠른 ‘빠꼼이’들이 ‘오늘 성춘향 보러 간다!’는 헛소문을 여러 번 퍼트리기는 했지만, 결국 모두들 이제나 저제나 선생님 입만 쳐다보다가 겨우 종영 며칠 전에야 단체로 보게 된 것이었다. 김희갑도 인기였고, 허장강도 인기였고, 도금봉도 따라서 인기였다. 김진규와 최은희는 물론이거니와.

김승호, 이예춘 같은 명배우들이 버티고 서 있고 이민, 김석훈 같은 미남 배우에 아직도 건재한 남궁원 같은 배우가 사랑 받던 바로 그 시절. 불량한 사운드트랙과 대사가 귀신소리처럼 울던 영화관에 앉아 소변 지린내와 먼지를 대형 선풍기 바람으로 뒤섞어 마시면서도 마냥 행복하던 그 때 그 시절.

아직 나는 ‘공동경비구역JSA’를 보지 못했다.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넘버3’ ‘아름다운 시절’ ‘강원도의 힘’ ‘반칙왕’ ‘주유소 습격 사건’ ‘쉬리’등은 모두 비디오 테이프로 보아야 했다. 이젠 임검석이나 생활지도교사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주머니에 돈도 있지만, 줄서서 극장표 사기가 어려운 직업에다가 예약 문화에 익숙지 못한 성격까지 겹쳐 영화관에 가는 일이 드물다. 물론 시간 없다는 핑계는 당연한 것이 돼버렸고.

다채널TV며 몰려오는 외화에 치여 사경을 헤매던 우리 영화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박수라도 치고 싶다. 뭐니뭐니 해도 영화는 대형스크린에서 봐야 맛이 나는 법이다.

새삼 그 옛날 영화들이 못 견디게 그립다. 새로운 영화에 대한 사랑도 좋지만, 그 시절 그렇게 보고 싶던 촌스러운 영화들을 다시 볼 기회도 가졌으면 좋겠다. 허장강이, 도금봉이, 문정숙이, 박노식이, 황해…. 그 얼굴들 좀 다시 보게.

신동아 2001년 4월 호

이계진< 프리랜스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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