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예술가, TV스타, 베스트셀러 작가, 사업가로 활동

세계적 요리사 12인의 성공스토리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4-18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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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공통점은 요리사의 사회활동이 크다는 것이다. 요리사는 때로는 예술가로, 때로는 작가로, 때로는 사회유명인사로 활동한다. 이름난 요리사들은 뛰어난 음식맛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책을 출판하거나 TV에 출연하고 홍보나 레스토랑 확장, 조인트사업 같은 행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영화주인공이 된 요리사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강한 욕구, 식욕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절제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욕구다. 인간이 지닌 음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요리사다. 요리사의 자세는 음식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서 비롯된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고 그것을 만들어 먹는 열의가 생기며 남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맛보게 하면서 황홀한 행복을 느낀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취지로 전문 요리사 세계로 입문하는 이가 상당수다. 물론 전문 직업의식이 없는 요리사들도 간혹 접하는데 그런 이들은 요리세계의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국의 특급 레스토랑 요리사 출신인 필자 또한 모자란 열정 때문에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아직도 음식에 대한 사랑은 남아 있어서 이렇게 음식 세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맛있는 접시는 늪과 같아서 그 속에 한번 빠져들면 헤엄쳐 나오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음식 마니아가 많은 것을 보면 맛있는 음식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요리사들은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찬 마음가짐 이외에도 탄탄한 기본기와 타고난 ‘끼’, 무한한 노력과 다양한 경험을 확보해야 한다. 앞의 요소들이 요리사의 버팀목이 되고, 거기에 운도 따라준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요리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사, 즉 ‘Chef’라는 단어는 어떻게 정의되고 발전해왔는가? 먼저 쉐프(Chefs)란 레스토랑, 호텔, 일반 가정, 공공기관에서 남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일컫는다.

    유럽에서는 기원 전 5세기 경부터 상인 조합인 길드(guild)가 형성된 중세기까지 요리사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앙리 4세가 통치하던 프랑스에서는 요리사의 세계가 다양하게 세분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티쇠르(Rotisseurs)는 말 그대로 메인이 되는 고기를 담당하던 요리사고, 파티시에르(Patissieurs)는 오리나 닭 같은 가금류 고기와 파이·빵을, 비네그리에(Vinaigriers)는 음식 소스와 양념을 만들었고 트레퇴르(Traiteurs)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주방장(Head Chefs=Chefs cuisiniers)으로 결혼 피로연, 명절, 파티와 같은 큰 행사를 주관하고 크고 작은 메뉴를 총괄했다.

    헤드 쉐프들은 고기나 생선을 가지고 훌륭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만들어 내놓아 인정을 받기까지 한곳에서 일했다. 인정을 받고 명성을 얻게 된 헤드 쉐프들은 만인, 특히 다른 요리사들의 존경을 받는다. 중세기에 유명하던 타이유방(Taillevent)이라는 주방장은 귀족 작위를 받기도 했다.

    18세기경부터 요리사의 상징인 하얀색 높은 모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반 보조 요리사와 구분하려는 의도였다. 이웃 나라인 영국에서도 이때부터 메인 요리인 로스트(오븐에서 통째로 오랜 시간 구운 고기)를 담당하던 요리사를 ‘마스터 쉐프’라 칭해 주방의 총책임을 맡게 했다.

    근대로 오면서 요리사 세계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궁중이나 귀족 계급 같은, 특혜받은 층만을 위한 신화적인 요리를 유명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어찌 보면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현대로 오면서 책이나 방송 같은 대중매체를 통하여 일반인들도 쉽게 최고의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로 인해 다른 예술세계와 마찬가지로 마스터피스를 모방하고 표절하여 요리 연습을 열심히 한 요리사들이 특유의 독창성과 표현 방식으로 점점 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지금 세계의 요리사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물론 각 나라가 천차만별이다.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공통점은 요리사들의 사회적 활동이 크다는 것이다. 그저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예술가로, 때로는 작가로, 또 때로는 사회 유명인사로 여러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름난 요리사들은 레스토랑에서 뛰어난 음식 맛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수완을 겸비하여 책을 펴내거나 TV에 출연하며 홍보와 레스토랑 확장, 조인트 사업 같은 행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호주, 미국 등지의 선진 국가에서는 ‘Chef owned restaurants(주방장이 사장을 겸하는 식당)’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 나라의 수많은 요리사는 스타 대접을 받는다. 말레이시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요리사 완 이스마일(Wan Ismail)은 영화 주인공까지 맡았다. 물론 완 이스마일은 단적인 예고 대중에게 얼마나 친숙하게 어필하느냐가 유명 요리사(celebrity chefs)가 되는 길이다.

    몇몇 잘 알려진 요리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 어떠한 방식으로 식문화를 대중화하는지 알아보자.

    ▲Yan Can Cook

    - Yan can cook, so You can. (얀은 요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요리할 수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의 대표적인 요리쇼로 마틴 얀(Martin Yan)이라는 미국계 중국인이 직접 호스트를 하며 요리 시범을 보여주는 데 코미디언 못지않은 유머와 재담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방영됐다.

    ▲Can’t cook, Won’t cook

    - 영국의 유명 쉐프 여러 명이 번갈아 가며 진행하는 아마추어 참여 프로그램으로 요리를 싫어하는 일반인 두 명을 추천받아 요리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하게 하여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한다는 내용. 연예인보다 입담이 좋은 쉐프들의 위트와 재치가 뛰어나다.

    ▲Tour de Gourmets

    - 프랑스 쉐프의 요리 설명과 함께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독특한 향토 음식 관광도 할 수 있는 정보 프로그램으로 깊이있고 자세한 내용이 알차다.

    ▲BBC Good Food Guide

    - 요리 실연뿐 아니라 식음료에 관한 모든 문제점과 정보를 다룬다. 새로운 식품이나 레스토랑 소개, 요리할 때 생기는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준다. 농수축산물에 대한 시장조사부터 파티 음식 준비까지 시청자들이 보내는 질문과 제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연예인이 진행하지 않고 식음료 전문가들이 맡아 전문성이 돋보인다.

    ▲Master Chefs

    - 영국, 미국, 호주 등지에서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벌이는 라이브 요리 경연 대회다. 각 지역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경쟁자가 세 명씩 시합을 벌이는데 심사위원들은 이들이 만들어낸 요리의 모양과 맛, 요리방법과 독창성 등의 엄선된 심사평을 자세히 말해주어서 다른 요리사에게도 도움이 된다. 결선까지 올라가면 마스터 쉐프 자격을 갖게 되어 식문화 분야에서 자리잡는 이들도 많다.

    ▲Ready Steady Cook

    -영국,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요리쇼로 유명 요리사를 긴장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양 팀이 선택한 두 요리사가, 슈퍼마켓에서 직접 사온 재료를 가지고 온 두 명의 참가자와 30분 내에 요리를 완성한다. 여기서 분초를 다투는 스릴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특히 요리사들은 참가자들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올지 모르기 때문에 탄탄한 요리 실력과 더불어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내는 창조성, 순발력을 지녀야 한다.

    그 외에 차분하게 요리세계를 배울 수 있는 여러 유명 요리 시리즈가 거의 매일 프라임 타임에 방영된다. 그리고 TV에 출연하는 요리사들은 자신만의 비결이 담긴 요리책도 꾸준히 발간한다.

    그들은 요리책에 적혀 있는 용법을 소화하는 요령을 제시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요리사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요리를 배울 수 있다. 이 요리사들은 TV 토크쇼나, 생활 관련 프로그램에 얼굴을 자주 비쳐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구미 선진국은 유명 요리사만 활개치는 세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요리사를 위한 프로그램도 많다. 잡지나 정부, 관련협회가 일 년에 서너 번씩 이벤트와 세미나를 연다. 이 행사들은 이름난 요리사와 일반 요리사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유명·무명 요리사들이 정부 후원과 국민 호응을 받아 음식문화를 이끌며 또 맛있는 요리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요리사들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요리사들의 일과 경험, 특이한 일화를 통하여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일단 요리사들은 입문 과정이 각기 다르다. 첫째가 요리에 흥미를 갖고 요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요리사가 되는 아주 전형적인 케이스다. 큰 호텔에서 근무하는 요리사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여러 해를 넘겨 가며 수업을 받기 때문에 조리법이 일관적이고 경쟁 학생 수가 많아 성공률이 희박하다.

    하지만 일단 노력하는 자세와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큰 레스토랑이나 호텔 레스토랑 견습 기회가 잦아 발탁 기회도 종종 있다. 영국에서 국민 요리사 대우를 받는 게리 로즈(Gary Rhodes)나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알렝 뒤카스(Alain Ducasse), 미국 퓨전 요리의 선두주자 게리 댄코(Gary Danko)가 모두 이 유형에 속한다.

    이 가운데 게리 로즈를 소개하겠다. 영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젊은 요리사인 그는, 14살 때 레몬 스펀지(lemon sponge) 맛에 매료되어, 켄트 (Kent)에 있는 브로드스테어스(Broadstairs) 요리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서머싯(Somerset) 지방의 톤턴(Taunton)에 있는 캐슬 호텔(Castle Hotel)에 근무했고, 영국 요리사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요리책을 여러 권 발간했고, 인기리에 방영된 그의 요리 시리즈는 영국 전역을 강타하였다. 그 후로 그는 런던의 홀본(Holborn)과 메이페어(Mayfair)에 잘 알려진 시티 로즈(City Rhodes)나 그린 하우스(Greenhouse) 레스토랑을 열었고 그 후에도 영국 전지역에서 뛰어난 맛을 전파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의상과 헤어 스타일, 그리고 동안으로 영국 요리계의 친숙한 오빠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프랑스의 알렝 뒤카스를 보자. 그는 프랑스 서남부의 평범한 농가에서 자라 신선한 요리재료와 심플한 요리법이 몸에 밴 사람이다. 프로 요리사에 입문한 시기는 16살로 근교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그 후 그는 요리를 더 배우기 위해 보르도(Bordeaux)에 있는 호텔 요리학교에 입학하여, 기본기를 다졌다. 요리학교 재학시 미쉘 궤라르(Michel Guerard), 가스통 르노트르(Gaston Lenotre) 같은 유명 요리사의 식당에서 견습을 했고 여러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며 근무하다, 5년이 지난 후 로제르 베르제(Roger Verge)가 경영하는 물랭 드 무쟁(Moulin de Mougans)에서 프로방스식 요리의 참맛을 깨달았다. 그 후 로제르 베르제는 그에게 ‘라 망디에’라는 유명한 식당의 ‘헤드 쉐프’로 채용했다.

    이 레스토랑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또 다른 레스토랑인 ‘라 테라스’를 총괄하게 되었고 1984년에는 두 개의 미슐랭 스타를 따냈다. 지금 그는 현존하는 프랑스 요리사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국제적으로도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꽤 알려져 있고, 2000년에는 일본에 스푼 푸드 앤드 와인 (Spoon Food and Wine)이라고 하는 레스토랑도 열었다.

    가업으로 레스토랑을 물려받은 요리사

    이번에는 미국 퓨전 요리의 대가 게리 댄코(Gary Danko)다. 그는 캐나다 국경 근처 뉴욕의 작은 마을 메세나(Massena) 의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다. 6살이 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코가 빨개진 채 집에 들어와 어떻게 하면 몸을 녹일까 생각하다가 오븐을 사용해 요리를 하면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쿠키를 굽기 시작했고 요리에 빠져들었다. 그 후 그는 어리지만 집안의 요리를 도맡았다. 14살 때부터 근처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웠고 어느 정도 돈을 모으자 유명한 CIA 요리학교에 들어가 정식으로 요리사 수업을 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미국에서 유명했던 마들레인 카망(Madeleine Kamman) 여사의 레스토랑이 있는 뉴욕으로 가 그녀 밑에서 프랑스 정통요리와 미국 ‘신 요리’를 접목한 독특한 방식을 습득했다.

    그의 탁월한 독창성은 80년대 중반부터 입소문으로 알려져 여러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장으로 근무했다. 그 결과 에스콰이어 어워드(Esquire award) 같은, 요리사에게 주는 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는 캘리포니안 퓨전 스타일(Californian Fusion Style) 음식으로 93년에 캘리포니아 최고의 요리사(Best Chef in Cali- fornia)로 인정받기도 했다.

    둘째는 요리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도 타고난 ‘끼’와 재능으로 요리 세계로 입문한 요리사가 있다. 그들은 부모나 가족에게 영향을 받아 가업으로 식당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스 요리의 본고장 리옹(Lyon)의 대표 쉐프 폴 보퀴즈(Paul Bocuse)와 영국의 영재 쉐프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 그리고 하와이의 샘 초이(Sam Choy)가 그 유형에 속한다.

    프랑스 요리사 폴 보퀴즈의 가족은 1765년부터 프랑스의 사온(Saone) 강가에 자리잡은 유명한 식당을 경영해왔다. 그런 가정에서 항상 음식을 접하며 자란 그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5대조 할아버지인 미쉘 보퀴즈(Michelle Bocuse)부터 시작한 작은 카페가 프랑스 리옹을 대표하는 그를 낳았다.

    그의 사례를 보면 프랑스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들은 가업을 매우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외식 사업자인 조르주의 아들인 폴은 ‘페르난드 포엥(Fernand Point)’이나 ‘뤼카스 카르통(Lucas Carton)’ 같은 유명 레스토랑에서 견습을 했다. 견습을 마친 그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역사가 오랜 가족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가족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리옹 지방을 미식가(Gourmet)의 메카로 만들었다.

    한동안 유명하던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요리법과 함께 정통 클래식 프랑스 요리를 재검토하는 데 주력하여 세계인에게 프랑스의 정통요리법을 전파했다. 특히 트러플(truffle)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버섯을 주 재료로 만든 그의 레시피는 8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그의 요리수업을 들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의 요리 천재 제이미 올리버의 사례다. 한국에 제이미 올리버 팬클럽이 있을 만큼, 그의 요리세계는 빼어나다. 그 역시 폴 보퀴즈와 마찬가지로 pub(영국식 선술집 겸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주방을 오가며 네 살 때부터 요리에 친밀감을 쌓았다.

    ‘네이키드 쉐프(naked chef, 발가벗은 요리사)’라는 그의 예명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예명은 그가 어린 나이에 요리세계를 접했고, 그의 음식 재료가 순수하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1999년에 BBC 방송에 시리즈가 나간 이후로 그는 순식간에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단기간에 스타덤에 오른 그의 프로그램은 여러 나라의 유선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고 그 결과 팬 클럽이 각 나라에 형성되었다. 그의 실용적인 요리 방법은 따라하기도 쉬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요리책과 시리즈를 한 번쯤은 보거나 남에게 추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하와이의 요리사 샘 초이다. 미국에서 유명한 요리사 중 드물게 하와이안 스타일을 고집하는 정통파 원주민계 요리사인 그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바와 레스토랑에서 요리 연습을 하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다른 길로 보내고자 대학을 보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요리세계로 돌아와 하와이의 정통 요리법을 지켜 나갔다.

    고집스러운 요리사로 잘 알려져 있는 샘은 여러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탄탄한 실력을 쌓은 결과 1981년 빅 아일랜드 하와이(Big Island of Hawaii)라는 레스토랑을 열게 되었다. 그 후에 도쿄와 괌을 포함한 세계 도처에 식당 여덟 군데를 그의 이름으로 열었다. 마침내 그는 하와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하와이를 오가는 미국 항공 (United Airlines) 비행기를 타면 그가 직접 짜놓은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셋째로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다 잠재해 있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욕구를 발견하고 요리세계로 입문한 늦둥이 요리사가 있다. 이들은 다른 요리사보다 늦게 직업세계로 들어왔다는 단점은 있지만, 나름대로 요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 고전적인 틀을 벗어나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는 특징이 있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려진 미국의 찰리 트로터(Charlie Trotter)와 요리계의 이단아 키스 플로이드(Keith Floyd) , 생선 요리의 대부인 릭 스타인(Rick Stein) 등이 그 유형에 속한다.

    찰리 트로터의 이야기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그는 요리에 대한 숨은 열정을 감출 수 없어 4년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쌓았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유명한 요리사를 찾아가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졸라댔으며, 구할 수 있는 요리책은 다 탐문하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조리법은 정신병자처럼 요리했으며, 유명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한 것만 하여도 셀 수 없을 만큼 힘든 4년을 보냈다.”

    그는 그런 수업을 통하여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가지고 그의 영감을 덧붙여 맛깔나는 대작을 연출해냈다.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요리사로 자리매김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식재료를 고르는 세밀한 감각과 주의다. 그는 미국 방방곡곡에서 내로라하는 상품을 공수해오는데, 예를 들면 인디애나주의 하얀 메추라기, 일리노이주의 유기농법 토마토, 노스 다코타주의 황소 고기, 푸른 채소를 가꾸기로 유명한 존슨 농가의 채소 등 선택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유명한 와인 잡지인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의 음식 관계자는 ‘트로터의 조리법은 마치 재즈를 연주하는 뮤지션의 걸작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찰리 트로터는 음식 전문가와 대중에게 인정받는 요리사로 모바일 트래블 가이드(Mobil Travel Guide), 제임스 비어드 파운데이션(James Beard Foundation) 등 유명한 기관에서 ‘Best Chef’와 ‘Best Restaurant’으로 꼽혔으며 ‘2000년 미국 최고 레스토랑’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요리책과 TV시리즈 외에도 ‘찰리 트로터의 요리세계’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만큼 존경받는 요리사다.

    군대에서 요리배운 키스 플로이드

    이번에는 영국 요리사 키스 플로이드다. 그는 1943년에 영국 서머싯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한 후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다 군대에 입대했다. 군복무 당시 우연히 군대 주방을 담당하게 된 그는, 싸고 다양한 요리재료를 가지고 형편없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한탄하며 요리 실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군에서 많이 먹는 타버린 양고기 로스트와 풀이 죽은 채소 조각들을 지고 다뇨 로마냉(Gigot D’agneau Romarin)이라는 훌륭한 요리로 창조해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요리 세계로 진출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요리 교육을 받지 못했던 관계로 런던과 프랑스를 떠돌며 바텐더와 감자깎이 아르바이트, 접시닦이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프랑스 아비뇽 근처의 작은 마을에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광이던 그는 식당 운영을 그만두고 배를 사서 미디(Midi)지방을 돌아다니며 영국과 프랑스의 음식과 와인을 맛보면서 식음료계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다 1984년, 한 비스트로(bistro)에서 BBC 프로듀서와 만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10분짜리 시리즈인 플로이드 온 피시(Floyd on Fish)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의 시리즈는 18개로 늘어났다. 이후 그는 19권의 요리책을 발간했으며 32개국에서 400만 명의 시청자를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요리세계는 많은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요리법이 주를 이룬다. 또 항상 술 취한 상태에서 강연을 하거나 TV에 출연한다.

    다음은 릭 스타인의 사례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수재로 졸업 후 바다가 너무 좋아 영국 서남부 콘월(Cornwall)에 내려가 나이트 클럽을 운영했다. 그때 술 취한 어부들이 클럽에 모여들어 싸움과 난동을 벌이자 시(市)에서 나이트 클럽 영업 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때 시름에 빠져 있다 생각해 낸 것이 생선과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었다. 워낙 요리에 소질이 있어, 아내보다 주방일을 더 많이 해오던 그는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자, 아시아로 발을 돌려 그곳의 요리법을 들여와 독특한 향과 맛을 대중에게 선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트 클럽 운영 당시 말썽을 피우던 어부들은 그 후에 레스토랑에 생선을 조달하는 공급자로 바뀌었다. 그는 마을에 평화를 찾아주고 관광객을 끌어들여, 콘월 지방을 널리 알리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렇게 세 부류의 요리사 세계를 알아보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설적인 요리의 대가들이다. 간략하게 전하면 타이유방(Taillevent)이라고 널리 알려진 기욤 티렐 (Guillaume Tirel)은 프랑스 요리세계의 선구자로 14세기를 주도했던 당대의 요리 예술가다. 그는 샤를 국왕 4세와 5세, 또한 당시 세력가인 귀족들의 전임 요리사로 정통 왕실 요리를 구축했다.

    전설적인 요리대가

    또 다른 요리사는 18세기에 페이스트리(pastry) 요리사로 명성을 떨치던 앙투앙 카렘(Antonin Careme)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우연한 기회에 당시 정치가이자 권력가이며 타고난 미식가인 샤를 모리스 드 타이랑 페리고르(Charles Maurice de Talleyrand-Perigord)에게 발탁되어 전임 요리사로 일하며 프랑스 페이스트리 베이킹(pastry baking)의 아버지로 자리잡았다.

    또 다른 요리계의 거장으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를 들 수 있다. 그만큼 그는 근대 요리와 레스토랑 운영에서 큰 획을 그었다. 런던의 사보이(Savoy)호텔이나 독일의 칼튼(Carlton)호텔과 같은 유명한 호텔을 연 그는 세계 요리계의 황제로 일컬어지고 있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나는 독일의 황제지만, 당신은 요리사의 황제요”라고 칭송했을 만큼, 그의 음식세계는 예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추모하는 에스코피에 재단도 만들어져 있고, 그의 요리책들은 요리사의 성경과 같다.

    중세와 근대, 현대를 이어 활동하는 요리사들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을 나누어 주는 마술사 같은 전문 직업인이다.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lf)나 조지 버나드 (George Benard) 같은 유명인들은 음식과 요리사에 대해 “우리의 삶은 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 손에 달려 있다” “저녁을 잘 먹지 않고는 생각하고 사랑하고 잠을 잘 수 없다”고 예찬했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그 식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요리사들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때로는 어머니로서, 때로는 예술가로서, 때로는 영양사로 마술의 지팡이를 휘둘러 우리의 혀를 매료시키고 형용하기 힘든 만족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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