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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삶의 질

스톡홀름처럼 살고 로마처럼 먹고 아테네처럼 취하라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스톡홀름처럼 살고 로마처럼 먹고 아테네처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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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도지상주의가 빚어낸 불균형 성장이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개체를 중시하는 디지털 네트워킹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의 질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 마침내 ‘인간 안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질(質)’은 21세기를 리드하는 키워드의 하나다. 그것은 쫓기듯 허둥대며 달려온 부조화의 20세기에 대한 각성이자 삶의 충실화를 향한 욕구의 분출이기도 하다.

‘삶’이란 생물학적인 생명을 뜻하는 동시에 사회학적인 살림살이란 뜻도 갖고 있다. 이것은 다시 ‘사람’이라는 인간 개념을 형성한다. 사람은 문화적 가치를 생산하는 사회적 존재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삶’이란 ‘사람’의 준말이기도 하니 삶의 질 향상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다 지금은 허울이 아닌 알맹이를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이고 모든 개체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킹 사회다. 실질을 숭상하고 개체를 중시하는 이런 시대에 삶의 충실화를 모토로 하는 삶의 질이 화두로 떠올랐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일하는 기계’는 이제 그만

삶의 질은 개체의 차원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개체들의 삶의 질이 국가안보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인데, 1995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개발 세계정상회의에서 ‘인간 안보(Human security)’라는 새로운 개념이 채택된 것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국가안보와 대비되는 인간안보 개념의 등장으로 사회·경제 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이 국가 운영의 기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평화와 질서, 경제활동의 확산, 환경오염 방지, 지구온난화 억제, 질병퇴치, 군비감축과 비핵화, 생태계 보전, 부패방지 등에 대한 개인의 역할과 책임도 커졌다. NGO 활동의 비약적 발전은 이런 요구에 대한 당연한 결과다.

개체의 중시, 경제와 문화의 결합, 성장에서 지속으로 가치가 전환됨으로써 이제 삶의 질 향상은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의 잉글하트는 경제적·물질적 조건보다 만족·즐거움과 같은 주관적 조건이 중시되는 이 같은 가치관의 변혁을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이라 명명했다. 이에 발맞춰 기업은 고객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됐으며, ‘내부 고객’인 종업원의 노동시간도 점차 줄이고 있다.

중국의 수필가 린위탕(林語堂)은 에세이 ‘생활의 발견’에서 인간을 일러 ‘일하는 유일한 동물’이라 했는데, 인류는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가고 있을 뿐 아니라 일을 삶, 재미와 일치시키려 한다. 더 이상 일하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삶의 질 향상의 제일 조건은 바로 ‘일하는 기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질(quality)은 양(quantity)의 상대어이긴 하나 ‘삶의 양’이란 말은 없는데도 삶의 질이란 용어는 왠지 낯설지 않다. 삶의 양적인 측면도 결국은 질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경 인류는 이미 철기를 사용해 상당한 물질적 기반을 구축했으며, 물질적 욕망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바로 그때 자비와 무욕(無慾)을 가르친 석가와 인(仁)과 예(禮)를 내세운 공자, “너 자신을 알라”고 부르짖은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이 동·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나 그런 욕망을 자제할 것과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바깥이 아니라 내면에 있음을 가르쳤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려 했지 국가나 사회, 집단을 들먹이지 않았다. 오직 개인의 삶의 충실화와 내면적 성찰만을 외쳤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체의 중요성을 일깨운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예수를 제외한 3대 성인이 태어나 활약한 기원전 5세기를 일러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출현했다고 해서 ‘인류의 추축(樞軸)시대’라 불렀다. 그는 시대가 그들을 원했기 때문에 그들이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이들보다 약간 뒤늦게 나타난 예수 역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외쳤으니, 삶은 양이 아니라 내면적 가치인 질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일깨운 셈이다.

하지만 산업화에 내몰렸던 지난 세기에 우리는 질보다 양에 매달렸다. ‘잘살아보세’ ‘하면 된다’를 외치며 성장일변도로 내달렸다. 주위를 한번 살펴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여기서 ‘앞’이란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을 말한다. 그들을 보고 베끼는 일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본과 기술이 미약하다는 핑계로 특정부문에 집중 투자해 효과의 극대화를 노리는 불균형 성장을 꾀하다 보니 겉으로 나타난 그럴듯한 결과와는 달리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삶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같은 것은 헌법 조문에서만 살아 있었을 뿐이다. 현실적 여건을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법조문에서 선진국 흉내를 내는 것에 만족했으니 그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일 수밖에 없었다.

복지천국의 ‘좋은 여행’

그나마 불균형 성장 정책이 가진 자에게만이라도 긍정적인 구실을 다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사실은 그렇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질이 조급한 우리였는데, 성장지상주의 경제개발 과정은 ‘빨리빨리 병’을 더 깊게 만들어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균형과 내실을 꾀할 생각은 못 하고 모양만 그럴듯하면 만사가 다 되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말이라도 앞서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은 행동과 따로 놀기 일쑤였다.

남들이 삶의 질을 부르짖고 그걸 이루기 위해 국가와 민간, 개인이 합심해 매진하는 지금도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돈을 벌어도 왕창 벌어 남은 인생을 놀면서 즐기자는 대박의 꿈을 안고 증권회사와 경마장, 도박장과 카지노를 찾고 있다. 이들보다 더 영악한 자들은 힘깨나 쓰는 사람들에게 눈도장이라도 찍히려고 그가 나타날 행사장에 미리 가서 기다리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연기한다. 그 대열에 정치지망생만 있다면 다행일 텐데, 명색이 진리를 탐구한다는 학자라는 사람들도 끼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 재주도 없는 사람은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말고는 달리 택할 만한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는 자신의 생존을 챙기기에도 힘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처지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풍부한 경험과 깊은 통찰력을 가진 친절한 의사였던 알랭은 일상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행복론’이란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식으로 정공법을 취하지 않고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 왜 불행하게 느끼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는 식으로 접근했는데, 삶의 질에 대해서도 이런 접근방식은 유효할 것 같다. 질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인데다 비(非)가시적이므로 ‘삶의 질은 이런 것이다’거나 국민소득처럼 계량화해서 나타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개체의 시대에 있어 삶의 질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인생관 내지 가치관 같은 주관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인자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인권, 환경, 소득수준, 주택, 교통, 의료서비스, 민생치안, 교육의 질, 안전시설, 법질서 준수, 남녀평등, 문맹률, 문화예술의 향유 정도, 인간관계와 가족관계 등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와 복지와 관련되는 요소를 두루 포함시켜 종합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그것들을 지수화해서 국가간 비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질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크발리테트(kvalitet)’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크발리테트는 그들의 말로 ‘질’이란 뜻이다. ‘삶의 질’이란 용어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또 인생을 ‘좋은 여행’이라 생각하고 인생의 안전운행, 쾌적한 여정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그런 그들인지라 지금에 와선 누구나 부러워하는 ‘복지천국’을 구가하고 있다. 복지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사회적 장치를 말하는데, 영어에서 복지를 뜻하는 ‘welfare’도 바이킹들이 즐겨 썼던 ‘좋은 여행’이란 뜻의 ‘velfert’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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