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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9|경남 거창 정온(鄭蘊 )종택

혁명 기상 충만한 强骨 집안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혁명 기상 충만한 强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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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색 원숭이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뜻의 금원산(金猿山)을 배경으로 한 동계(桐溪) 정온 종택은 그 강강(剛剛)한 기세가 무림 고수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바로 이 집에서 조선 후기 최대의 반란사건 주도자 정희량을 배출한 것을 우연한 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혁명 기상 충만한 强骨 집안
서울에서 볼 때 낙동강을 기준으로 하여 강 왼쪽을 경상좌도라 하고 강 오른쪽을 경상우도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오늘날 경상남도 지역은 옛날에 경상우도로 불렸다. 경상우도에서 손꼽을 수 있는 명가 중 하나가 선조, 광해, 인조의 세 왕대에 걸쳐 활동한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년) 집안이다.

경상좌도의 집안들이 대체적으로 퇴계 이황의 학풍을 계승하였다면 우도의 집안들은 남명 조식의 학풍을 계승하였는데, 동계 정온은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남명의 학풍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동계 정온 종택이 자리잡은 경남 거창은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오는 곳’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산꾼들의 귀띔에 따르면 거창 지역은 산세가 높고 험해서 들어갈 때는 심란하게 보이지만, 지내다 보면 인심도 좋고 먹을 것도 많아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동계 고택은 거창 버스터미널에서 이름난 명승지인 수승대(搜勝臺) 쪽으로 방향을 잡아 택시로 15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수승대 바로 못 미쳐서 좌측길로 접어들면 강동(薑洞)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정면 중앙에 동계 고택이 있다.

동계 고택으로 접근하는 순간 그 주위 산세와 고택에서 풍기는 인상이 범상치 않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무림(武林) 고수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사람마다 각기 풍기는 첫인상이 있듯 집들도 풍기는 인상이 제각기 다르다. 온화한 느낌을 주는 집이 있는가 하면, 장중한 느낌을 주는 집이 있고, 왠지 모르게 풍족하고 여유 있는 느낌을 주는 집이 있는가 하면, 산만하고 칙칙한 느낌을 주는 집도 있다. 나는 답사를 다니면서 집마다 지닌 각기 다른 개성을 비교해 보는 데서 남모르는 재미를 느껴본다.

강강한 바위산인 금원산

그런데 동계 고택에서 ‘무림 고수가 살 만한 집’이라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금원산(金猿山) 때문이다. ‘금색 원숭이 정기가 뭉쳐 있다’는 뜻을 지닌 금원산은 백두대간이 덕유산으로부터 지리산으로 뻗어 내려가다가 중간에 뭉친 산이다. 금원산은 해발 1360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암벽이 노출된 강강(剛剛)한 바위산이다. 오행(五行)으로 보면 화기(火氣)와 금기(金氣)가 4 대 6으로 섞인 화금체(火金體) 산이라 할 것이다.

동계 고택을 마주 바라보았을 때 무엇보다 고택의 좌측 뒤로 4∼5개의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은 금원산이 쳐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숙함 내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문경의 봉암사가 자리한 대머리산인 희양산이 주는 인상과 비슷하다. 양쪽 다 터 뒤쪽으로 높은 바위산이 뒤에 받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아무튼 동계 고택의 태조산(太祖山)에 해당하는 금원산은 함부로 말 붙이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엄숙함과 함께 과묵한 무림 고수의 품격을 풍긴다. 한마디로 강기(剛氣)다.

유명 고택을 답사하는 가운데 금원산과 같은 화금체의 바위산이 조산으로 뒤에 받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도를 닦는 절터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이 사는 집터로는 이런 곳을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의 정기를 흡수하기 벅찬 일반인에게는 금원산과 같은 강기(剛氣)는 단순히 강한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을 ‘때리는’ 살기(殺氣)로 변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기(地氣)가 지나치게 강한 곳에 집을 짓고 살면 밤에 꿈자리가 사납거나, 때때로 가위에 눌릴 때도 있고, 성격이 포악해지거나, 시름시름 아파서 결국에는 병이 드는 경우가 많다. 1∼2년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하더라도 3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버티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장소는 절터나 수도원이 들어서야 제격이고, 그도 아니면 아주 기가 강한 사람만이 그 터의 기운를 누르면서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강한 금원산을 조산으로 하여 동계 고택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양중음(陽中陰)의 이치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주역의 팔괘(八卦) 중에 이괘(離卦; )가 양중음을 상징하는데, 단단한 양의 한가운데 부드러운 음이 내재한다는 뜻이다. 단단한 껍데기 속에 부드러운 속살이 있는 빵과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 이 부드러운 속살에서 묘용(妙用)이 많이 나온다. 동계 고택은 이 속살에 해당하는 자리라고 보면 틀림없다.

금원산에서 시작된 기운은 한참 내려오는 과정에 마침내 그 성난 노기(怒氣)를 풀고 야트막한 흙동산으로 결국(結局)을 이루는데, 바로 그곳에 동계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강함에서 우러나는 부드러움, 이곳이 양중음의 전형적인 자리이며 명당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호남의 3대 수도터 중의 하나로 꼽히는 전북 변산의 월명암(月明庵)도 이런 양중음 자리다.

예리한 필력 상징하는 문필봉

동계 고택의 전체 국세(局勢)에서 또 하나 주목을 끄는 산은 기백산(箕白山). 해발 1320m에 달하는 고산인데, 고택에서 보자면 정면에서 약간 우측 전방에 보이는 산이다. 산이 전체적으로 삼각형이면서 그 끝이 깃발처럼 뾰족하다. 대단히 우람한 문필봉(文筆峰) 모양을 갖춘 산이다. 한국의 오래된 명문가를 보면 집터 아니면 묘터 앞에 거의 문필봉 하나쯤은 발견된다. 답사를 해보면 60∼70%가 그렇다.

기백산은 봉우리 끝이 붓의 그것처럼 뾰족하고 예리해서 그 정기를 받은 사람의 필력(筆力)도 예리하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붓을 받치고 있는 하부구조가 두텁고 웅장해서 뚝심과 자존심도 갖춘 문필이다. 끝만 날카롭고 하부구조가 약하면 외부의 압력에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기백산처럼 두텁고 웅장한 문필봉이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지일관해서 지조를 굽히지 않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동계 고택은 조산인 금원산의 무인적 기질과 안산인 기백산의 문사적 기질이 모두 어우러져 있는 집터가 된다. 문무겸전의 터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금원산과 기백산을 바라보니 400년 전의 동계라는 인물의 성품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고, 이 집안 사람들의 기질도 대강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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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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