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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 최완수 <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

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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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비로암(毘盧庵)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에는 보물 제244호 (도판 1)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 식지(食指; 둘째 손가락)를 감싸쥐면서 오른손 엄지로 왼손 식지를 살짝 누르듯 댄 지권인(智拳印)을 짓고 있어 금강계 만다라의 주존으로 등장한 비로자나불좌상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지권인을 지은 비로자나불좌상 형식은 화엄 불국사에서 불국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에 처음 출현한다는 사실은 지난 24회 ‘비로자나불상의 출현’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나왔다. 그래서 불국사 비로전에 봉안된 국보 제26호 (제24회 도판 3)은 지권인을 지은 불상 형식의 시원을 이룬다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그런 비로자나불 형식이 선종의 도입과 더불어 선종사찰의 주불로 영입된다. 이는 깨달음의 목표를 불성(佛性; 불타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의 본질에 두고 있는 선종으로서는 그 불성의 본질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종선의 총본산으로 공인되는 장흥 보림사에서도 이런 양식의 비로자나불상을 본존불로 모시었으니, 헌안왕 2년(858)에서 4년(860) 사이에 만들어지는 국보 제117호 (도판 2)이 그 효시를 이룬다.

이후 이런 비로자나불좌상 양식은 신지식인 선종 이념의 확산과 더불어 참신한 신식 불상양식으로 인식되어 차츰 전국으로 전파되어 나갔던 듯하니, 도 그렇게 만들어진 불상 중 하나였다.

비로자나불상과 통일신라의 왕도문화·변방문화
그 사실은 과 동시에 만들어진 보물 제247호 (도판 3)에서 출현한 보물 제741호 (도판 4)에 새겨진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황수영 선생이 1969년 ‘신라민애대왕석탑기(新羅敏哀大王石塔記)’라는 논문으로 세상에 알린 내용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가 새겨진 사리호는 1966년 전문 도굴꾼들에게 절취되는 과정에 파괴되어 그 파편의 일부가 분실됨으로써 전문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부분만으로도 과 이 만들어진 내력을 짐작할 수 있으니, 옮겨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국왕이 삼가 민애대왕(817∼839년)을 위해 복업(福業)을 추숭(追崇)하려고 석탑을 만든 기록. 대체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설치하면 이익 되는 것이 많다고 한다. 비록 팔만사천 법문(法門)이 있다지만 그중에 마침내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널리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은 탑을 세워 예배하고 참회하며 도를 닦는 것보다 더 넘치는 것이 없다.

엎드려 생각해보니 민애대왕 김명(金明)은 선강(宣康)대왕의 장자이고 금상(今上; 현재 임금인 경문왕)의 노구(老舅; 아버지의 외삼촌, 경문왕은 민애왕의 작은매형인 희강왕의 손자임)이다. 개성(開成) 기미(己未, 839년) 대족월(大簇月, 1월) 23일에 문득 백성을 버리니(돌아가니) 춘추 23세였다.(이하 파손되었으나 추정 가능)

이미 2기(二紀, 24년)가 지나서 복업을 추숭하려고 동수(桐藪; 오동나무 숲이란 뜻이니 동화사를 가리킴)의 원당(願堂) 앞에 석탑을 새로 세운다.(이하 파손으로 문맥 불통)

함통(咸通) 4년(863) 계미 무역월(無射月, 9월) 10일에 기록하다. 한림(翰林) 사간(沙干)인 이관(伊觀), 전지(專知) 대덕(大德)인 심지(心智), 동지(同知) 대덕인 융행(融行), 유내승(唯乃僧)인 심덕(心德), 전지대사(專知大舍)인 창구(昌具), 전(典)인 영충(永忠), 장(匠)인 범각(梵覺).”

여기서는 다만 현재 비로암 대적광전 정면에 서 있는 을 세운 내력만 기록하고 있다. 민애대왕(838∼839년)의 추복을 위해 경문왕(861∼875년)이 석탑을 그 원당 앞에 세운다는 것이다. 그 원당이 현재 대적광전이니, 원당과 함께 이 탑을 조성했다고 보아서 이 탑이 이루어지는 경문왕 3년(863) 전후한 시기에 대적광전에 봉안된 도 만들어졌으리라고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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