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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구

둘러대는 韓國語 핵심 찌르는 英語

언어구조와 사고방식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둘러대는 韓國語 핵심 찌르는 英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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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에는 영미인들의 사고방식이 투영돼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영어로 완벽하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어습관에 숨겨진 한국인과 서구인의 삶의 양식을 비교해 보았다.
우리에게 영어는 어떤 존재이기에 초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중·장년까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토록 오랜 기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도 영어를 만나기만 하면 목이 뻣뻣해지면서 주눅 드는 것은 또 무슨 까닭에서인가. 다양한 영어 학습법과 교수법이 등장하고, 영어교육시장도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껏 이렇다 할 묘약은 없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영어 학습의 목표가 바로 서고 그에 따라 효과적인 방책이 수립될 수 있다. 만약 어느 누가 자기의 뜻을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또 남이 하는 영어를 부담 없이 알아듣는다면, 그를 가리켜 영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물론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언어습관의 차이

필자는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SLOOC)에서 국제협력업무를 담당했다. 각국 올림픽위원회(NOC) 대표들로 구성된 ‘서울올림픽대회 준비 상황 점검단’이 방한했을 때 그들을 수행하며 며칠을 함께 지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경기장 시설, 선수촌 운영, 입장권 배분, 등록, 수송, 통역안내, 안전, 통신 등 각 분야의 준비상황을 둘러보았다. 점검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단장인 리처드 팔머(영국 NOC 사무총장)씨는 사적인 자리에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문제는 안내야.”

그는 “지금 단계에서 이를 공식화하기엔 부담이 될 것 같아 미스터 권에게 먼저 귀띔해 주는 것이니 다음 점검 때는 개선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하소연 같기도 하고 불만 같기도 한 그의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서 필자는 그에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필자가 알아들을 수 있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스터 권, 영어를 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 그건 상대방이 무얼 말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대해 신속히, 그리고 정확히 응대하는 것이야. 그런데 그 동안 우리가 만났던 서울의 안내원들은 발음도 좋고 히어링 수준도 괜찮은 것 같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요구 수준을 만족시켜주지는 못했어. 영어는 이해했을지 몰라도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어.

올림픽대회 기간은 무척 바쁜 때라 자신의 요구사항에 대해 길게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상대방의 설명을 차분히 들어줄 수도 없다네. 올림픽 안내원이라면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명확하게 응대해야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서울은 아직 그게 부족해. 이건 아주 구조적인 문제라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솔직히 걱정이 되네.”

그가 우려한 것은 우리와 그들의 언어습관의 차이에 기인한다.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나,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가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가 도래했고 또 우리는 내년에 2002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영어교육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이때에 영어의 언어습관을 제대로 아는 것도 영어학습의 효과적인 방책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팔머씨가 지적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하나는 “Yes”와 “No”로 간단하게 대답하면 될 것을 처음부터 장황하게 설명하려는 우리의 언어 습관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만약 외국인이 “여기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있으면 “Yes”, 없으면 “No”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전화가 설치되지 않아 아직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외국인의 주된 관심사는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는지 없는지이지 왜 설치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집어넣기보다는 사실관계에 충실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그때 만약 안내인이 “No”라고 대답하면 그 외국인의 다음 질문은 “여기서 제일 가까운 인포메이션 데스크는 어디에 있습니까”가 될 것이며, 그때에도 주위에 그런 것이 없다면 “No” 있으면 “Yes”라고 먼저 말하고, “Yes”라고 답했다면 현재 위치에서 그쪽으로 가는 방향과 거리 또는 사인보드의 모양 등을 설명해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설치되지 못한 것이 마치 개인의 잘못인 것처럼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아 상대방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직접적인 회답을 피하고 요령부득(evasive)의 말을 늘어놓는 한국인(물론 일본인들도)의 언어습관은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언어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삶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영어에는 영미인의 삶의 양식이 투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미인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영어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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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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