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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계엄하 언론검열에 삭제된 시사만화·만평 50선

  • 이민규 <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 >

1980년 계엄하 언론검열에 삭제된 시사만화·만평 5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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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둥이(기사)가 제 역할을 못하면 바늘(만화)로 쑤시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시사만화의 세계. 광주민주화운동과 언론통폐합 조치 등 1980년 신군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촌철살인의 기개로 언론검열에 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시사만화·만평 중 50개를 골라 소개한다. 》
1980년 전두환씨가 이끄는 신군부에 의한 서슬퍼런 언론검열이 한창일 당시, 각 신문에 시사만화를 기고하던 화백들은 담당 기자에게 여러 개의 만화를 건네주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첫번째 만화는 무조건 삭제당하니, 가장 약한 것을 맨먼저 집어 넣고 점점 강도 높은 만화를 들이밀어라....”

마치 ‘금도끼 은도끼‘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헤프닝은 군 검열관과 신문사 화백간의 팽팽한 긴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란한 영상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볼거리에 굶주려하던 21년 전의 그 시절, 신문에 실린 네 칸과 한 칸짜리 시사만화는 대중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그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어 사랑을 듬뿍 받았다.

또 시사만평의 이면에는 깊은 해학과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져 있어 독자들은 그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기도 했다. 특히 계엄령 하의 억압적 상황에서 사전 언론통제가 가혹하게 진행되던 시절에는 글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시사만화가 은유적으로 재치 있게 담아냄으로써 억눌린 시대의 숨통 역할을 했다.

당시 시사만화는 ”몽둥이(기사)가 제 역할을 못하면 바늘(만화)로 쑤시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군부의 시사만화 검열지침

당시 신군부는 시사만화에 대해 ”만약 만화가 쉬게 되면 독자들로부터 관계 부처나 권력기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대국민 안정을 위해서 그날의 시사만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서는 안된다”는 기본정책을 갖고 있었다. 또 시사만화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신문의 경우 현 보도검열이 내용에만 국한됨을 악용, 편집기술을 발휘한 자극선동보도 확대 (1979년 11월 17일 언론통제정책자료 중)”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신문이 시사만평이나 보도사진 등 문자 이외의 다양한 시각적 ‘편집기술‘을 동원하여 검열에 항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군부측은 ‘보도검열단 세부검열지침‘이라는 대책을 세웠다.

신군부는 ① 국가안보사항 ② 공공질서사항 ③ 국익저해 사항과 같은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서 커다란 기사통제원칙을 마련해 놓고 각 분야에 대해서 세부검열지침을 해당 검열관에게 하달했다 ( 참조).

그러나 세부지침이 각 검열관에게 하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효과적‘인 검열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79년 11월 23일 보도검열단이 상부에 보고한 ‘검열통제 지침‘에 따르면 그들의 한계 상황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현재까지 사실보도에 규제가 철저함으로써 검열관의 관심이 소홀한 만화, 만평과 검열관의 판단이 미숙한 기획특집을 통한 간접 비판 및 자극 선동보도 시도 경향...”

그들 스스로 시사만평과 기획특집에 대해서 각 검열관의 언론통제가 ‘소홀‘하고 ‘판단이 미숙‘하다고 자인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시사만화에 대한 검열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알 수 있다.

동시에 많은 시사만화가 검열관이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동아일보에 만평을 기고하던 백인수 화백은 자신의 만평이 계속 검열에 걸리자 검열관이 지겨워서 통과시켜줄 때까지 하루에 예닐곱개의 만평을 그리기도 해 결국 검열관의 ‘항복‘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시사만화 상황

1980년대 초반 언론 환경은 7개의 종합일간지와 5개의 라디오·TV 방송국 그리고 2개의 통신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석간신문은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언론통폐합 이후 조간화), 신아일보(언론통폐합 조치로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됨) 등 5개 신문이 있었고, 조간신문으로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발행되고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네 칸 연재 만화를 ‘고바우‘의 김성환 화백과 계엄 후반부인 1980년 9월부터는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이 맡고 있었고 한 칸 짜리 만평은 백인수 화백이 담당하고 있었다. 중앙일보의 경우 네 칸 연재만화는 ‘왈순 아지매‘의 정운경 화백이, 한 칸짜리 만평은 정운경 화백과 박기정 화백이 번갈아 담당하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김판국 화백이 네 칸 연재만화 ‘청개구리‘를 연재하고 있었고, 서울신문은 윤영옥 화백의 네 칸 만화 ‘까투리여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언론통폐합 조치로 폐간된 신아일보는 김태홍 화백이 네칸 만화와 한 칸 만평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조간신문인 조선일보는 오룡 화백이 네 칸 연재만화 ‘야로씨‘와 한 칸 만평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고 계엄 후반부에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가 동아일보에서 옮겨와 동시에 연재되었다. 한국일보의 경우 안의섭 화백이 네 칸짜리 만화 ‘두꺼비‘와 한 칸 만평을 그리고 있었다.

이렇듯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네 칸 만화를 담당하는 만화가가 한 평 만평도 동시에 담당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검열삭제된 시사만화 분석

1920년 동아일보의 ‘멍텅구리‘로부터 시작된 시사만화는 한 시대의 복잡한 상황을 생략, 함축하여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다음에 제시하는 암울했던 열신을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시사만화들은 단순히 역사적 의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당시 화백들의 선명성과 논평의 예리함으로 인해 현재에도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한다는 사실이 시각적 언어의 놀라운 점으로 다가온다.

삭제된 만화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언론분야는 1979년 10월부터 1981년 1월까지 445일간에 걸친 계엄령 하에서 마치 중세의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지속적인 사전 검열과 아울러 1980년 7월부터 시작된 언론인 강제 해직, 11월의 언론 통폐합 조치는 우리 현대사에서 언론탄압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준다.

정치 분야 역시 광주민주화운동 등 예민환 상황에서 신군부의 강압적인 통치행태로 정국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경제분야의 경우 물가고와 석유파동, 고환율 등 경제불황이 계속돼 민심이 흉흉한 상태였다. 그래서 신군부는 이런 사실들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검열 삭제된 수많은 시사만화들을 ① 언론 ② 정치 ③ 경제 ④ 인물 분야 등 4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대표적인 시사만화에 대한 해석을, 해당 화백의 증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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