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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가장 토속적인 음식이 가장 세계적이다

고려대 민용태 교수의 스페인 스테이크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가장 토속적인 음식이 가장 세계적이다

  • 괴테의 명언 중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말이 있다. 한 문화권의 진면목을 내보일 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여기에 감동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민족의 토속적인 음식은 그 민족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창조물이라 어느 민족이든 공감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토속적인 음식이 가장 세계적이다
“포도주야, 너 잘 만났다.”

그는 포도주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 마치 춘향전의 이몽룡이 내뱉는 “밥아 너 잘 만났다”가 연상된다. 그에게는 가식이 없다. 권위도 없다. 엄숙주의는 더더욱 없다. 코미디언 이경규씨는 그런 그를 “교수님, 교수 맞아요?”하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래도 그는 이 소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민용태(58) 교수가 근무하는 고려대는 무거운 엄숙주의를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학교라서 그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민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민교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왜 그럴까? 그는 웃음과 가벼움을 추구한다. 그것으로 가부장적인 권위와 허식, 억압과 싸운다.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스스로 만드는 금기도 없다. 담배면 담배, 술이면 술, 모두 다 지독하게 즐긴다. 술은 마다하는 술이 없을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포도주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민용태 교수가 포도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요리인 스페인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그가 할 줄 아는 음식은 이 스페인 스테이크와 쌀밥 두 가지뿐이다. 9월9일 일요일 스테이크를 만들던 날, 그는 스페인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제자들을 집으로 불렀다.

스페인식 스테이크는 음식 솜씨 없는 남자들이 손님을 초대했을 때, 직접 만들어서 생색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우선 지극히 간단하다. 한국음식은 조리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손맛이 쌓이지 않으면 남자들이 도전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스페인 스테이크는 쇠고기는 그냥 구우면 되고, 복잡한 소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정통 스페인식이라, 색다른 맛이 있고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음식솜씨를 한껏 자랑할 수도 있다. 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늘과 양파를 듬뿍 쓴다. 마치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울 때, 마늘과 양파를 곁들어 구워먹는 것과 비슷하다. 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와인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조리 과정에도 와인을 쓰고 먹을 때도 와인을 곁들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멋을 낼 수 있다.

샐러드도 쉽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지중해 지역의 음식은 샐러드를 만들 때 소스를 따로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재료가 되는 채소에 올리브유를 적당히 뿌리고, 식성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하면 된다. 먹기 직전에 레몬즙을 뿌리는데, 없으면 식초를 대용으로 써도 좋다.

이 요리의 조리법이다. 재료는 스테이크용으로 판매하는 쇠고기 등심, 올리브유, 양파, 통마늘, 양상추, 브로콜리, 토마토, 레몬 등이다. 재료를 구입할 때 유의할 점은 쇠고기 두께는 1cm가 약간 넘을 정도로 두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스테이크용 쇠고기는 너무 얇은 경우가 많아 두께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럴 때는 주인에게 따로 썰어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스테이크용 쇠고기는 신선하고, 하얀 지방이 붉은 살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 좋다. 지방이 많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지방분이 맛을 낸다. 스테이크는 바짝 굽는 것보다 수분이 촉촉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익히는 것이 가장 맛있다. 두께가 얇으면 속까지 다 익기 때문에 뻣뻣해지고 맛이 덜해진다. 1cm가 약간 넘을 정도의 쇠고기를 센불에 빨리 익히면 가운데 핏물이 약간 남아 있을 정도로 익는데 이 상태가 먹기에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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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는 적포도주에 고기를 재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쇠고기의 누린맛이 줄어들고 전혀 색다른 맛을 낸다. 고기를 적포도주에 재워놓고는 통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흰색의 마늘과 양파가 완전히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 꺼내서, 그릇에 담아 놓는다. 다음은 마늘과 양파를 볶던 그 기름에 고기를 굽는다. 요령은 미디엄(medium)과 웰던(well done)에 따라 다르다. 미디엄은 센불로 한쪽 면을 20% 정도 익히다가, 뒤집어서 60% 정도 익힌다. 안쪽은 약간 덜 익은 상태다. 웰던은 20% 정도 익히고 뒤집어서 속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화력은 중간 정도로 조절해야 표면이 타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 프라이팬 뚜껑을 덮는 것이 좋다.

샐러드는 올리브유를 뿌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레몬즙을 뿌려 낸다. 요리가 끝나면, 익은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고, 그 옆에 미리 볶은 통마늘과 양파를 놓고, 푸른 채소와 토마토로 색깔을 맞추어 담아내면 된다. 이 음식은 민교수가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스페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스페인 친구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정통 스페인 가정식이다. 민교수는 어느 나라 음식이든 ‘진짜’가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그의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스페인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민교수는 경양식집을 찾았다. 그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시켜 먹으니, 양식도 한식도 아닌 것이 이상해서 못 먹겠더라는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정통으로, 토속적인 방법으로 할 때 가장 맛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음식이든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이 최고인 경우가 많다. 민교수는 음식도 계통 없이 이것저것 섞어 놓으면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고 본다.

괴테의 명언 중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말이 있다. 한 문화권의 진면목을 내보일 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여기에 감동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민족의 토속적인 음식은 그 민족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민교수는 스페인 음식 가운데 ‘깨소 까브랄(Queso Cabral)’이란 치즈를 예로 들었다. 이 치즈는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 숙취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인데, 완전히 똥냄새가 난다. 실제로 이 치즈는 염소똥 밑에서 발효한 것이다. 형태는 하얀 순두부 같은 것이 흐물흐물거리는데 여기에 파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 구멍이 구더기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외국인이 경상도의 멸치젓이나 전라도의 홍어회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민교수는 스페인에서 3∼4년 살다 보니, 구역질이 나던 그 치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한다. 이처럼 한 민족이 좋다고 한 음식은 다른 민족에게도 좋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신토불이’식의 폐쇄성으로는 곤란하다. 음식문화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 일본의 수도 도쿄가 세계 음식문화의 백화점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용태 교수는 한국도 문화산업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1세기에는 가장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이 경쟁력이 있다. 얕은 꾀로 전통음식을 패스트푸드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패착이 될 수 있다. ‘기무치’보다는 ‘김치’가 결국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서양에서는 건강 문제 때문에 채식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의 토종 음식은 거의가 채식음식이고 세계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발효음식이 많다. 무한한 잠재력이 우리 토종 음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처럼 전세계에 팔 수 있느냐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민교수의 음식론을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곧 필생의 역작인 ‘세계문화사조의 이해’를 출간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해체주의와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사상의 도학적 학문론을 제시한다. 엄숙한 이성주의에 맞서서 가벼움과 웃음, 자유를 전파하던 민교수가 이제는 동양사상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가장 서양적인 스페인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면서 조선된장과 발효음식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연관된 것일까.

신동아 2001년 10월 호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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