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서부 아프리카 코트 디부아르

  • 만화가 조주청

    입력2005-04-06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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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항구도시 아비장을 흘러가는 방코강의 아침은 세탁부들로 장관을 이룬다.

    서부 아프리카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면 휘파람이 절로 난다. 가나에서 국경을 넘어 코트 디부아르 땅을 밟자 휘파람은 한숨으로 바뀐다. 출입국 관리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에게 돈을 뜯으려고 꼬투리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진땀을 흘리며 출입국 검문소를 빠져나와 이 나라 항만도시 아비장(Abidjan)을 향하여 달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깐, 이번엔 길가의 엉성한 초소에서 길을 막는다.

    한 흑인 여자가 초소 아래 잡초밭에 파묻힌 쓰러져가는 흙집으로 끌려가더니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채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있다.

    내 차례가 되자 후줄근한 군복에 인상이 고약한 군인이 “마약이 밀반입된다는 첩보가 왔다. 모두 벗고 카메라 가방도 열어라”고 한다. 옷을 벗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찍은 카메라 필름도 체크해야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결국은 돈이 문제를 해결했다. 아비장까지 올 동안 세 번이나 이런 낭패를 당하느라 3시간 거리에 5시간이 걸렸다. 하도 화가 치밀어 관계기관에 그들의 공공연한 비리를 고발하려고 했더니 아비장에서 만난 우리 교민이 “그렇게 해서라도 밥먹고 살라고 정부에서 묵인해주는 겁니다”고 충고한다.



    아비장에 입성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배낭여행의 바이블인 ‘Lonely Planet’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 이어 아비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치안 상태가 나쁜 곳”이라고 말한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는 건국의 아버지 우푸에가 초대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아 국민의 신망을 한몸에 받으며 커피 생산 세계 3위, 코코아 생산 세계 1위로 농업 혁명을 일으켜 1970년대 아프리카의 기적이라 일컬어졌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파리’라 불리던 아비장이 오늘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해답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바로 이것이다. 우푸에가 장기 집권하며 철권통치로 일관, 나라가 썩기 시작했다. 내륙에 있는 소읍인 그의 고향, 야무수크로를 어느날 갑자기 수도로 정하고 차관으로 들여온 외화를 그곳에 쏟아부었던 것이다. 1993년 88세 고령의 우푸에가 사망하자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이번엔 쿠데타와 혼란이 반복된다.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세탁물 맡기세요, 세탁물.”

    아비장의 새벽은 골목길을 누비는 세탁부들의 외침으로 깨어난다. 아비장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3km 떨어진 개울 같은 방코강은 이른 아침부터 세탁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파니코스(세탁부)’로 불리는 이곳은 아비장의 명소가 되었다.

    세탁부들은 대부분 부르키나파소, 말리, 라이베리아 등 내전의 와중에 탈출하여 이 나라로 들어온 가난한 이웃나라 피란민들이다. 그들은 무학문맹자들로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 이집 저집에서 거둬들인 갖가지 세탁물을 치부책에 기록하거나 보관증을 써 주는 절차를 무시하지만, 모든 걸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저녁이면 정확하게 세탁물을 집집마다 돌려준다.

    세탁비는 우리 돈으로 상하의 각 85원이고, 한 벌은 170원. 거기에 다림질까지 하면 곱절인 340원이 된다.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 5000원 벌이를 해, 한 달이면 일반 공무원 봉급의 2배나 수입을 올린다.

    아무나 방코강에서 세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코강 세탁조합에 가입을 해야 하고 조합원은 한 달에 5100원(하루 한 벌 세탁비×30)의 하천 사용료를 아비장시에 납부해야 한다. 지금은 조합원이 포화상태인 425명으로 더 이상 신규 가입은 동결됐다. 조합원 면허증이 17만원에 거래된다.

    오전 10시쯤 되면 강 주위의 풀밭은 햇볕에 말리는 알록달록한 세탁물 꽃밭으로 변하고 세탁부들이 빠져 나간 방코강은 멱감는 아이들 차지가 된다.

    그리고 산비탈 여기저기에는 드럼통에 야자유와 재를 넣고 끓여 응고되면 두부 모 자르듯이 토막내어 세탁부들에게 비누를 파는 원시적인 비누공장이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 여행안내

    방코강을 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세탁부의 나라

    빨랫돌과 타이어는 각각 주인이 정해져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서부 아프리카는 아직도 정치, 경제적으로 프랑스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곳으로 가는 길도 파리를 거쳐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아비장에서 단연 첫 번째로 가볼 만한 곳은 방코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세탁부들의 대장판 파니코스 (Fanicos). 이름 아침에 가야한다.

    아비장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식민지시대 수도 그랑바상(Grand Bassam)이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빈약한 유적에 바가지 기념품 가게만 바닷가에 늘어섰다. 토속적인 기념품을 사려면 시내에 있는 코코디 시장(Marche‘ de Cocody)이 훨씬 좋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Dan)족의 목각탈 한 두점은 살 만하다. 또 이 나라의 영어 이름인 아이버리 코스트(Ivory Coast)답게 도처에 상아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였댜. 그러나 도장 하나라도 사지 말 일이다. 파리공항에서 적발되면 구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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