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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주유원의 일기

제37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 황호민

고속도로주유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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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맞아 동해안 등 전국 유원지에 최대의 피서인파…. 전국 고속도로,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

아련히 들리는 뉴스멘트가 남의 일처럼 귓가에 날아들었다. 정신없이 주유기 손잡이를 옮기는 중에 이마의 땀방울이 모여, 턱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톡 떨어졌다. 땀을 훔치려 고개를 드는 순간, 휴게소 광장을 가득 메운 차량과 구름 같은 인파….

게다가 아직도 꾸역꾸역 몰려드는 차들을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고속도로가 붐빌 때 유난히 바쁜 사람 중 하나가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고달픈 몸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뛰어다니다가 녹초가 돼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주유원들에게 휴일이나 피서철이 주는 뉘앙스란 일반인이 갖는 그것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여름은 경제사정도 어려워졌고 날씨도 예년보다 서늘한 편이라 피서인파가 줄겠거니 기대한 주유원들의 소박한 꿈은, 기가 막히게 날을 잡은 ‘피서철 특별 비상근무’가 시작된 첫날 사정없이 깨졌다. 기름을 넣기 편리하게 차를 잘 대주기만 해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할 터인데, 운전자가 일단 주유소에 들어서면 주유원이 굽신굽신하며 다 해줄 줄 알고 있어 제멋대로 차를 세우는 통에 유도하기도 꽤 힘이 든다. 주유중에 운전석에서 내려 꼼꼼히 지켜보는 야무진 운전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운전석에 그대로 앉아 고개만 쏙 내밀거나 백미러를 통해 확인하고 요금 계산을 한다. 그나마도 뒤에 차가 밀려있건 말건 느릿느릿 행동하므로 우리는 더 안달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주유원이 눈치챌 사이도 없이 차에서 빠져나가 화장실에 가서 한참만에 돌아오면 그 사이 우리는 허둥지둥 그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볼이 부어 있는 다음 차 운전자에게 제 잘못인 양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후진했다가 앞으로 빼도록 부탁한다. 다 정리되면 화장실 갔던 운전자가 의기양양해서 나타나니 얄밉게 보일 수밖에 없다.

“화장실 가시려면 주유 마치고 한쪽에 댄 다음 가셔야지요. 다음 차가 밀리지 않습니까?”라고 책망하면, “오줌 마려서 싸겠다는디 어디 그럴 틈이 있남유? 이건 완전히 생리적 현상이유, 생리적 현상!”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유순서가 어긋나 뒤차가 먼저 끝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수선을 피우는 통에 주유원과 근방의 사람들은 짜증날 수밖에 없다. 그렇듯 차량이 많아지면 더욱 바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가 죽기보다 담담해지는 주유원의 미묘한 표정은 경력이 주는 달인의 징표가 아닐까?

실제로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엔 유독 노년층이 많다. 우리 주유소도 사오십대가 대부분이다. 가끔씩 새파랗게 젊은 애도 들어오지만 며칠 하다가 배겨내지 못하고 나간 자리에 또 다른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어느 고속도로 주유소엔 아예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만 일한다고 한다. 일이 고된 것은 둘째 치고 여기저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연륜이 가미된 무던함이 필요한 것이다.

에어컨 바람에 더위는 까맣게 잊다가 가끔 운동 삼아 한 바퀴 주유소를 돌아보고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것저것 거침없이 지시하는 사무실 사람에게 주유원은 보잘것없는 존재다.

“재떨이 좀 비워주세요”

“오늘 본사에서 감사 나올지도 모르니까 유리창 닦고, 화장실 좀 청소하세요.”

“차가 뜸할 때 대기실에서 잡담만 하지 말고 주유소 바닥에 수퍼타이물을 풀어 박박 문지르세요.”

“고속도로 주유소 평가에서 아주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분발하시고 손님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세요.”

사무실 사람은 나이 든 주유원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애쓴다. 하물며 자기 돈 내고 기름 팔아주는 손님의 태도는 어떻겠는가?

“여기 재떨이 좀 비워주세요.”

주유중 운전석에서 거침없이 내게 들이민 재떨이를 허리 굽혀 받아들어 재를 털어내고 건네주며 바라보니 운전자는 검정 선글라스에 가슴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민소매 차림의 아가씨다. 앳된 얼굴로 담배를 노련하게 피우고 있었다.

“주유소에서 담배 피면 안 되는데요, 손님.”

이런 당연한 주문도 주유원은 오히려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할 판국이다. 그래도 그 아가씬 눈살을 한번 찌푸렸을 뿐 금방 비벼꺼서 별일 없었지만 얼마 전에는 덩치가 인왕산만한 남자손님에게 그 말을 했더니 담뱃불은 끄지도 않은 채,“그럼 그만둬, 이 자식아” 하고 버럭 소리치며 기름도 넣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망연자실한 표정도 잠깐, 공교롭게도 그 광경을 목격한 총무가 나를 부르더니 어떻게 했길래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갔냐, 그런 식으로 일하면 같이 일 못한다는 둥 온갖 말을 퍼부으며 핏대를 올렸다.

일당 3만원

저녁 여덟시 야간조와 교대하는 시간에 근무를 끝낸 조는 홀가분함보다 걱정이 앞선다. 교대와 동시에 그날 판매량을 결산하게 되는데 게이지에 나타난 주유량과 판매 금액을 똑같이 맞추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근무한 주유원이 물어내야 하고 남을 경우에는 역시 똑같이 나누어 ‘담뱃값’이라며 호주머니에 넣는다. 돈 제대로 받으면 모자랄 리 없으리라고 추측하겠지만 실제로 딱 들어맞기가 쉽지 않다. 휴가철이나 명절 등 차가 밀리는 날에는 주간에만 판매금액이 2000만원에 이른다. 주유원 두세 명이 큰 돈을 셈하다 보면 잔돈 거슬러줄 때, 수표 바꿀 때, 카드 결제할 때…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초보자나 아르바이트생이 끼일 때 잘못되어 5, 6만원의 차이가 날 경우가 있는데 역시 그 책임은 고스란히 주유원의 몫이다.

그래서 가끔씩 수고한다며 거스름돈을 받아가지 않는 손님에게나 아예 팁으로 얼마간 내밀고 가는 손님에게는 유난히 정중한 인사를 올리게 된다.

일반 국도변 주유소와 마찬가지로 이곳 주유원에게도 시간제로 급여가 지급되는데 차이가 있다면 용역회사가 고용한 체계이므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이 적용되고 급여통장으로 자동입금된다는 점이다. 시간당 2400원으로 책정해 하루 열두 시간 일하면 3만여 원 받는 셈인데, 마감할 때 5만~6만원을 변상하게 되면 영락없이 ‘돈 물어주려고 취직한 꼴’이 되어버린다. 그런 우리의 가여운 처지와는 반대로 고용하는 업체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적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있으므로 용역회사를 선호한다. 노동조건이나 안전사고 등에 책임이 없고, 반대로 근무가 불성실하면 통보하여 용역회사가 처리하도록 하니 보통 편리한 경영방식이 아닐 수 없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주니 부리는 사람이 마음껏 거드름을 피울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일반회사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받는 불평등한 대우가 큰 이슈로 떠오르는 요즈음, 그보다도 훨씬 못한 조건에서 숨죽이고 있는 용역회사의 근로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튼 우리 주유원들은 능구렁이가 다 되어 여러가지 악조건들을 두루뭉실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종일 기름냄새에 머리가 아프고 살갗이 따가울지라도 일과 후에 몇 푼의 ‘담뱃값’을 손에 쥐고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우리에겐 순수함과 작은 성취에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 그와는 반대로 5000원 이상의 돈을 나누어 물게 되면 볼이 잔뜩 부어 속상해하며 같이 근무한 사람끼리도 서로 ‘네 탓’아니냐는 미묘한 눈길을 보내게 된다.

밤에 당당해지는 주유원

가을로 접어들면서 소슬한 바람과 들녘의 풍요로움이 깃들어 중부고속도로 오창주유소 역시 오봉산 산자락이 검어지면서 고고한 추야(秋夜)를 맞았다. 부잣집 상차림 뺨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주유소로 내려온 나는 몸이 꽤 가뿐한 상태다. 얼마 전부터 저녁 여덟시에서 다음날 아침 여덟시까지 야근을 하고 있는데 주간에 비하여 차량이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자정이 넘으면 교대로 두 시간씩 눈을 붙일 수 있어 동료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야근 배치는한 주유원이 갑작스럽게 그만두어 시간표가 바뀌는 바람에 주어졌으므로 내심 기분이 만점이었다. 실질적인 본사인 고속도로 관리공단이 제공하는 숙식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다. 우리와 똑같은 급여를 받는 주방아주머니가 풍족한 찬거리로 기량을 뽐내고 주유원 중 유일하게 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 잠자리를 제공받은 나는 과할 정도의 널찍한 방을 쓰고 있는데다 다른 시설도 좋아 지내기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고속도로 주유소의 숙식 수준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물론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의 운영업체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난 그런 곳에 있었다.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작한 야근은 상쾌한 바람결과 함께 점점 깊은 밤을 향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주유원이 겪는 독특한 경험은 주간보다 야간에 많은데 그것은 밤이 주는 여유와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짧은 가시거리 때문이리라. 또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사람을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려놓아 겸손하거나 당당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한낮에 주위에 차도 많고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을 때는 일부 손님이 자기 모습을 과시하려는 듯 큰소리 펑펑 치기도 하지만 일대일 상대를 하는 밤엔 그런 모습이 아주 뜸하다. 반면 숨죽이고 일에만 몰두하는 주유원도 밤에는 행동이 훨씬 당당해진다. 한번은 새파랗게 젊은 운전자가 먹고난 음식 쓰레기를 비닐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툭 던졌는데 건성으로 하여 제대로 들어가기는커녕 비닐봉투가 터지면서 음식물 찌꺼기가 주유소 바닥에 널브러졌다. 젊은 사람이 어디 할 짓이냐고 호통치니 그는 재빨리 내려와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주유를 마치고 젊은이가 수고하시라고 공손히 인사하고 떠날 때, 김형은 한쪽 손만 번쩍 들어서 흔들며, “이, 수고!” 하며 답례했다.

서민들의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열정도 야근 때 훨씬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깊고도 깊은 밤에 수없이 상대하는 농수산물 수송 차량에서 생활의 고단함과 근면함을 함께 느낀다.

“와! 파가 무척 싱싱하네요.”

“맛도 되게 좋아라. 필요하다믄 한뭉텡이 주고 싶은디….”

“말로라도 고맙습니다. 난 여기 이층이 숙소이고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당장은 필요없구만요.”

“그러자. 남자가 객지에서 혼자 살라믄 외로울 때도 많을 건디 괜찮겄소?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으야 할건디.”

파 한단 한단을 기가 막히게 쌓아 적재함이 미어지도록 실은 소형트럭 운전자가 기름 넣는 내게 무척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양반이… 어디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귀 안 먹었으니 작게 말하쇼, 라고 하려다가 엄연히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내가 어찌 손님에게 불평하랴 싶어 꾹 참았다. 아니, 언성을 높이는 대신 오히려 그의 장단에 맞추느라 넌지시 물었다.

“올해 농사 꽤 괜찮지요?”

“죽것당께요. 이건 완전히 인건비 까먹는 거라.”

“그래도 파금이 많이 올랐다고 하데요.”

“그것도 잠간여라. 파뿐 아니라 농작물 가격 어느 것이고 조금 올랐다 싶으면 시상 난리랑께요. 물가 비상대책 어쩌고저쩌고 창고물량 무제한 방출 어쩌고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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