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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器의 세계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하고 과르니에리는 강간하라

  • 남효정 < 월간 '스트라드' 편집장 > hcnam@eumyoun.com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하고 과르니에리는 강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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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드 명기(名器)는 모든 현악기 연주자의 꿈이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한껏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대당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는 바이올린과 첼로는 누가 어떻게 만든 악기일까. 명기들은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서울의 한 오케스트라 사무실이 침수되는 바람에 대당 수천만원씩 하는 바이올린 등 고가의 현악기들이 물에 잠겨 큰 피해를 봤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현악기가 그렇게 비싸다는 데 놀랐고, 또 한편으론 그런 값비싼 악기들을 못 쓰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악기 주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악기들은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정말 희귀한 명기(名器)라면 연주자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지, 빈 사무실에 놓아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악기는 물에 잠긴다고 해서 다시 못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현악기를 다루는 모든 연주자들의 꿈은 최고의 악기를 소유하는 것. 그러나 명기의 가격은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물론 진품일 경우).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등 영국과 미국의 유명 경매장에서는 매년 2∼3차례씩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현존하는 세기의 명기들이 거래된다. 최근에는 타리시오라는 업체가 인터넷을 통한 악기 경매를 실시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싼 악기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기라 해도 나이 어린 초보 연주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세계적인 명기를 소유, 연주자들에게 대여해주는 여러 기관들은 연주자의 실력을 확신할 수 없으면 절대로 악기를 빌려주지 않는다. 아무리 명기라도 실력없는 연주자가 6개월만 잘못 다루면 악기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좋은 악기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은 현악기 연주자들의 경우에 특히 강하다. 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악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라 하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좋은 악기를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아무리 좋은 악기, 비싼 악기를 가졌다 해도 그에 걸맞은 재능이 없는 연주자라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올드 명기는 국가적 자산

대개 현악기는 400년 동안 진화하고 400년 동안 퇴화한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악기들은 300∼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악기는 수리를 위해 모든 부분을 분해할 수도 있고, 일부분을 교체하기도 한다. 그래서 300∼400년 전부터 전해온 악기 중에 원래의 재료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악기는 드물다.

악기를 분해할 때는 물에 담가야 한다. 현악기는 각 부분을 조각조각 접착제로 붙여 만들었는데,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수용성 접착제를 사용한다(수용성 접착제는 접착력도 강하다). 따라서 악기가 침수됐다고 해서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기를 한번 분해한 후에는 사람이 큰 수술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약 1년 동안은 제 소리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전 잡지 표지 촬영을 할 때의 일이다. 그 달 표지의 주인공은 명기 중의 명기로 불리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한 스태프가 실수로 악기 앞면 중간 부분에 약간의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건 초대형 사건이다)’이 발생했다. 스튜디오에 있던 전 스태프는 물론, 그 악기의 소유자인 연주자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연주자는 밝은 전등 아래서 악기를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필자와 스태프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악기에는 1m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악기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악기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연주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연주자는 크게 상심했고 촬영도 중단됐다.

“겨우 그 정도를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자신의 몸만큼, 아니 어쩌면 몸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또한 현악기는 워낙 예민해서 작은 부분에 조금만 부조화가 생겨도 음색이 변하고 악기의 가치가 결정적으로 떨어진다.

위에서 ‘사건의 피해자’로 언급한 악기는 시가가 2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악기 표면에 티끌만한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악기의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는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회가 끝나자 마자 연주자의 부모가 무대 뒤로 달려가 연주자보다 악기를 먼저 챙겨 ‘모시고’ 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값비싼 악기를 소유하려는 것을 사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연주자가 100년 이상 된 올드 현악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자산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가 빼앗아간 소중한 고문화재들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생각해보라.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에 퍼져 있는 올드 명기를 하나하나 사들여 지금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기를 소유한 나라가 됐다. 많은 일본 연주자들은 이런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를 무대로 자신감 넘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최고급 명기들 가운데 진품이 확실한 악기는 아시아 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에 3대, 대만에 18대, 일본에 100대 정도가 있다고 한다. 1999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사망한 후 실시된 그의 유품 경매에서 1742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드 윌튼’이 400만∼500만달러(약 52억∼65억원)에 매매가 이뤄져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경우이며, 1998년 가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악기는 1698년작 ‘스트라디바리 요하임 코르차크’로 52만9500파운드(약 10억6000만원)였다. 전문 연주자들을 위한 세계적인 악기시장에서는 4만∼15만 달러짜리가 중·저가대 악기이고, 고가 악기의 가격은 이보다 10배, 혹은 100배 이상 비싸다.

크레모나, 명기의 본고장

아마티, 가스파로 다 살로,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프란체스코 루제리, 과다니니, 그란치노, 데스토레, 토노니, 몬타냐나, 테츨러, 갈리아노, 고프릴러, 스타이너…. 이들은 현악기 제작의 명장들로 역사에서 언급되는 이름이며, 현악기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고 싶은 올드 악기의 대표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올드 악기라 하면 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악기들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Cremona)를 중심으로 제작된 장인들의 작품은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16세기 초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아마티는 초창기에는 류트와 비올을 제작했으나 후에 바이올린 제작으로 전향, 근대 바이올린의 형태를 확립시켰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바이올린은 아마티의 1566년작 ‘찰스 9세’.

그의 손자인 니콜로 아마티는 기존의 소형 바이올린보다 커 ‘그랜드 아마티’라 불리는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아름답고 독특한 목형(木型)과 천연도료를 사용한 그의 악기는 힘차고 명쾌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니콜로 아마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뛰어난 제자를 길러낸 것. 오늘날 바이올린 명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 두 제작자가 니콜로 아마티의 공방에서 일을 배운 그의 제자들이다.

바이올린의 표준형을 제시한 스트라디바리가(家)의 창시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1660년대 초에 니콜로 아마티의 문하에 들어가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배우고 1665년경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차렸다. 그는 93세까지 장수하면서 70여 년에 걸쳐 바이올린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제작기술을 물려줬다.

스트라디바리의 제작경향은 세 시기에 걸쳐 변화를 겪었다. 1기(1665∼1685)에는 아마티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소형 바이올린을 제작하던 시기인데, 이때 제작된 악기에는 레이블에 ‘아마티의 제자’란 문구를 써 넣었다고 한다. 2기(1685∼1700)는 실험기로, 그는 많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만들면서 악기 형태를 길게 만들어(일명 ‘롱 패턴 스트라드’) 강렬한 울림을 내려 했다. 이는 그전까지 성악가들의 반주를 맡는 데 그쳤던 바이올린이 그 무렵부터 독주 악기로서 두각을 나타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700년 이후의 3기는 독자적인 현악기를 개발, 완성한 시기다. 악기의 크기는 2기 때 만든 것보다 약간 작아졌으나 폭이 넓어 비례 면에서 완벽했고, 곡선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했다. 또한 최상급 천연도료를 이중으로 칠해 무게 있는 광택을 냈다.

스승 아마티의 악기가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시적인 음향을 냈다면 스트라디바리의 것은 전 음역에 걸쳐 균형이 잘 잡히고 더욱 힘있는 음량과 정열적이고도 예리한 음색을 겸비했다. 그는 일생 동안 1100∼1200대의 악기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악기는 바이올린 540여 대, 비올라 12대, 첼로 50여 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디바리는 고전시대 바이올린 제작자 가운데 유일하게 제작도구와 제작본, 모형틀을 남기기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에 비견되는 또 한 사람의 명장은 과르니에리다. 과르니에리 가문에는 아마티의 제자로 가문의 시조인 안드레아 과르니에리에 이어 그의 둘째아들 지우제페 지오반니 바티스타 과르니에리(‘필리우스 안드레아’라고도 불린다)가 가업을 이었다.

필리우스 안드레아의 둘째아들이며 시조 과르니에리의 손자인 바르톨로메오 지우제페 과르니에리는 ‘델 제수’란 별명을 가진 가장 유명한 과르니에리 제작자이다. ‘델 제수’는 ‘예수’란 뜻으로, 델 제수는 레이블에 십자가와 함께 ‘IHS’라는 표식을 넣었는데, 이는 당시 교인들이 사용하던 약자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의미다.

델 제수는 아름다운 음색을 살려내는 자신의 독특한 악기 형태를 개발해 여기에다 울림이 좋은 스트라디바리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평가받는다. 초기의 델 제수 악기들은 크기가 대부분 스트라디바리보다 작다. 그러나 1741년부터 1743년 사이에 제작된 악기들은 풀 사이즈의 그랜드 스트라디바리와 크기가 비슷해진다.

델 제수는 놀랍게도 하나의 모형틀을 사용해 많은 악기를 만들었으며,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해 옆판의 높이를 높게 만들고 아칭(악기를 옆으로 봤을 때 앞뒤판의 곡선)을 풍만하게 했다. 현존하는 델 제수는 약 150대로 추산되지만 전문가들은 이중 100∼120대가 진품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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