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허허벌판에 세운 ‘밤의 도시’

  • 입력2004-11-12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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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텐산산맥에 눈이 쌓이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좋아서 춤을 춘다. 눈녹은 물이 일년내내 흘러 내리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시내를 벗어나면 막바로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이 가로막는다. 우즈베크에서 발진한 미 전폭기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불바다로 만들고 탈레반 정권이 이에 결사항전을 외칠 때라 각오는 했지만 국경을 통과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빌린 차 운전기사가 눈치 빠르게 여기저기 돈을 찔러서 지뢰밭 같은 국경을 빠져나와 카자흐스탄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열흘 동안 카자흐스탄을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닛산제 패트롤카를 빌렸는데, 차주이자 운전기사는 타슈켄트에 자리잡은 국립병원의 현직 외과의사다. “나라에서 너를 공부시켜 줬으니 나라를 위해 일하라”는 국가의 요구에 의사들은 “막일꾼보다 적은 월급으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란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미국에 군사기지까지 제공한 우즈베키스탄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웃나라가 전쟁에 휩싸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천하태평이지만, 막상 한 블럭 떨어진 카자흐스탄은 더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수많은 검문소에서 수없이 검문을 당하고 엄청난 달러를 뺏겨가며 무려 16시간 만인 늦은 밤에 이 나라 최대 도시 알마티에 도착했다.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팽팽하던 관계는 카스피해 연안에서 석유가 쏟아져나옴으로써 무게 중심이 카자흐스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장날 토끼를 팔러 나온 러시안 소년. 한 마리에 2000원을 호가한다(왼쪽). 카자흐스탄은 이슬람 국가지만 알마티 시내 복판에 금빛 찬란한 러시아정교회 십자가가 하늘을 찌른다.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오자 알마티는 흥청거리며 자본주의의 독버섯들이 여기저기 자라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알마티 밤거리만큼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는 처음이다. 대로에 다닥다닥 늘어서서 술취한 남자들과 흥정을 벌이는 밤꽃들은 러시안에서 키르기스인에 이르기까지 인종도 갖가지다. 싸구려 호텔에 투숙해 식당에 들어섰더니 그곳에도 밤꽃들이 진을 치고 맥주를 마시며 손님낚기에 여념이 없다.

    공무원들의 부패도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심하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 나라의 검문은 안전을 위한 검문이라기보다 돈을 뺏기 위한 검문으로, 외화 소지 검사가 검문의 전부다. 어이없는 트집을 잡다가는 결국 노골적으로 달러를 요구하는 것이다. 수많은 카지노가 분별없는 사람들을 알거지로 만드는 것도 이 나라의 사회문제다.

    알마티는 19세기 중엽 러시아가 이 나라를 지배하며 허허벌판에 세운 도시다. 실크로드의 유적 하나 없이 바둑판 모양의 반듯반듯한 거리에는 러시아의 신흥공업도시 같은 음산함이 서려 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목동 할아버지의 얼굴은 우리 한국인 얼굴을 판박이한 듯하다(왼쪽). 카자흐스탄은 자동차와 마차가 공존하는 나라다.



    알마티를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스텝(나무가 자라지 않는 온대 초원지대)에 말떼와 양떼가 풀을 뜯고 목동들이 채찍질하는, 카자흐스탄 본연의 모습이 금방 나타난다. 가는 길을 동쪽으로 잡으면 우측으로 톈산산맥과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게 된다. 차린계곡을 지나 둔덕에 오르자 새하얀 눈을 덮어쓴 톈산산맥 앞에 국경마을 케겐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적막강산 둔덕 위 길섶에 열두어 명의 카자흐인들이 톈산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세우며 한길 끝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오늘은 시집장가 가는 날. 멀리 300여 km나 떨어진 탈가르 마을로 신부를 데리러 간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신랑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신랑 큰아버지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남자뿐만이 아니다. 이 골짝 저 골짝으로 시집가 벌써 손자까지 둔 여자동창들도 산 넘고 물 건너 다 모였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동창회를 겸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신문가판대의 포르노 잡지는 양반이다. 밤이면 수많은 창녀들이 알마티 거리를 점령한다(왼쪽). 결혼식날 신랑집에서 신부측 친척들이 푸짐한 음식 접대를 받고 있다.

    그들이 타고 온 러시아 자동차 라다의 보닛 위엔 삶은 양고기와 보드카가 차려져 있다. 그들은 먼 나라에서 온 이 떠돌이의 팔을 잡아끌어 보드카 한잔을 안긴다.

    톈산산맥의 흰 눈을 바라보며 맞바람을 맞으며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왼손엔 싸늘하게 식은 양고기 한 점, 오른손엔 보드카 잔을 들고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평생에 그렇게 맛 있는 술 한 잔, 그렇게 맛있는 안주 한 점을 먹어본 일이 없다.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신랑신부가 탄 차와 신부 친척들이 왔다. 케겐의 신랑집에선 신부측 친척들을 위하여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려놓았다. 신부가 신랑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을 지피는 것이다. ‘불같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양치듯이 칠면조를 들판으로 몰고다니며 풀씨를 먹인다(왼쪽). 알마티 시내는 만년설인 톈산산맥에 둘러싸여 스모그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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