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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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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들도 지금 한국에 태어났다면 별 볼일 없었으리라. 자유도, 자치도 제한된, 그래서 다양성도, 보편성도 꽃필 수 없는 이 사막보다 더 삭막한 나라. 암기 천재는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주인공일 수 없다. 그들이 주인공인 한 우리에게 르네상스는 없다. 아니 문화란, 시민이란, 미래란 없다.
르네상스란 단어는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심지어 고급 술집 이름으로도 곧잘 사용된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다. 조금은 ‘고상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장사가 ‘부흥’하라고 붙인 것일까. 여하튼 나는 그 어느 곳의 고객도 아니다. ‘부흥’이란 의미로는 더욱 자주 사용된다. 예컨대 ‘한국 마라톤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다’는 식이다. 물론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그런 르네상스를 이룩한 적이 없다.

르네상스는 흔히 우리말로 ‘문예부흥’이라 번역된다. ‘문예’란 문학과 예술을 뜻하는 듯한데, 르네상스 시기에는 학문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문화 부흥이 이루어졌고,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따라서 문예란 말은 적절치 않다. 또 지금은 그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일제 이후 각 학교에 문예반이라는 것이 있었으나 요사이는 그것도 없다. 나는 어떤 학교의 문예반 출신 문예청년도 아니었다.



나는 ‘르네상스적 인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동아’ 2000년 1월호는 필자를 인터뷰하며 ‘르네상스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관심 분야가 다양한 탓이라고 하나 나 정도의 관심영역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에 너무나 많다. 역사에서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예술과 학문은 물론 정치나 사회생활 전반에서 만능의 창조적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2년 전에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으나, 그 뒤 그런 식의 이야기가 다른 곳에서도 몇 번이나 되풀이되자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연재도 그 인터뷰를 계기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르기에 필자는 르네상스적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르네상스적 인간은 말 그대로 르네상스 시대를 산 인간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부르는 견해는 없다. 그 시대 인간은 대부분 무지한 농민으로서 문화와 관련이 없었으며, 그 중 몇 사람만이 창조적 업적을 남겼다. 그런 소수의 창조적 인간을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역사에서는 그 중에서도 지극히 예외적인 몇 사람의 전인(全人)을 진정한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칭한다. 예컨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72)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이다.

레오나르도야 누구나 알지만 그보다 더욱 전인적인 인물이었던 알베르티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법률가로 출발하여 건축가, 화가, 조각가, 작가, 시인, 철학자, 문학자, 음악가, 자연과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유토피아 이론가 그리고 만능의 스포츠인으로 살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생활의 이상을 체득하고 표현한 전형적 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한 연구와 창조에 몰두한 점에서 다른 르네상스 사람들과 달랐다. 그야말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나 할 수 있었고 또 하고자 했던 무엇에도 거침없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르네상스는 흔히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장식된다. 물론 나는 그런 작품을 만든 적도 없다. 우리는 흔히 그 작품들이 천재적 예술가의 창조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엄청난 권력과 자본이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부자들이 돈으로 흥청댄, 조금은 고상한 한때의 잔치에 불과했다고도 볼 수 있다. 보들레르가 ‘예술은 매춘이다’라고 외친 것처럼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대부분 정권이나 부자를 위해 예술로 봉사했다. 따라서 그 ‘천재’의 ‘창조’라고 하는 점에도 문제가 많다. 여하튼 나와는 무관한 얘기다.

흔히 르네상스의 정신을 휴머니즘, 르네상스 인간을 휴머니스트라고도 한다. 휴머니즘을 인문주의, 휴머니스트를 인문주의자라고도 하고, 이는 특히 최근 인문학 ‘위기’ 문제와도 관련돼 논의되기도 한다. 철학 문학 사학 등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학문의 중심으로 보면서 그 위기를 강조하는 견해다. 르네상스처럼 위대한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절대로 필요한데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하여 망조가 들었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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