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내가 본 부처, 내가 본 예수

  • 이주향 < 수원대교수·철학 >

    입력2004-11-02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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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종종 절에 간다. 명상도 하고 산행도 하고 좋은 사람도 만난다. 두 달에 한 번, 산사에서의 하룻밤 혹은 이틀밤은 일종의 씻김굿이다. 명상중에는 지금껏 살아온 삶이 전생처럼, 꿈처럼 펼쳐진다. 나는 나를 본다. 뭐가 그렇게 안타까웠는지, 무엇을 그렇게 놓치기 싫었는지, 무엇에 그렇게 쫓겼는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상하고 묘하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들을 좋아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두 내려놓게 되는 땅! 번잡한 일상이 전생처럼 아득히 멀어지고 대신 걷는 일이, 기도하는 일이, 밭을 일구는 일이, 밥을 하고 밥을 먹는 일이 내 일처럼 느껴지는 넉넉한 그런 땅이 있다는 걸 나는 분명히 느낀다. 이 땅에서는 ‘출가’하지 못한 일이 업처럼 충충하게 느껴진다.



    거머쥐는 삶, 내려놓는 삶


    ‘출가’보다도 매력적인 삶이 있었으면 그 삶을 살았을 거라는 실상사의 도법스님. 도법스님의 방은 두 평 남짓에다 그 흔한 전화기조차 없는데, 그의 눈빛 속에는 이 세상이 부럽지 않은 세계가 있다. 그 도법스님이 얼마 전 ‘내가 본 부처’라는 책을 냈다.



    카필라 왕국의 태자였던 싯다르타가 출가하겠다고 하니까 왕국이 발칵 뒤집힌다. 누구보다도 간곡하게 반대하는 부왕에게 싯다르타가 겸손하게 원을 청한다. 한가지 소원만 들어주면 출가의 뜻을 버리겠다고.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면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출가는 크게 버리는 일,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가족도, 직장도, 소유욕도, 명예욕도 모두 버리는 것이니까 피상적으로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워 보일까? 그 모습은 싯다르타의 고행상에 그대로 나타난다. 도법스님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극한의 고행을 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함이었다. 앙상한 얼굴은 영락없이 허허벌판에 버려진 해골 모습이고, 움푹 들어간 눈동자는 물이 고갈되어 버린 천년 묵은 우물 속 같았다. 그런데 누가 싯다르타보다 행복할까?

    한 인간에게 일생동안 목숨 바쳐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일생일대에 목숨을 걸어야 할, 뜻 있는 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의 삶이 그립다. 그 친구는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려 했고, 우리는 거머쥠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사실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 건 싯다르타의 정신일 뿐 아니라 예수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남수 목사와 함께 떠나는 만화성경여행’을 읽고 있으면 그 예수가 분명히 보인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신 예수, 이남수 목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약 2000년 전, 한 구석진 마을의 시골 아낙네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서른이 될 때까지 목수로 일한 남자, 그 남자는 대학이나 신학교 같은 곳엔 가본 적이 없고, 자신이 직접 책을 쓴 적도 없었어. 가족을 거느린 적도, 주택을 소유해본 적도 없었어. 큰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었고, 태어난 곳에서 300km 밖으로는 나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은 만화성경 여행


    그 ‘그런데’에서 출발하는 신약성경여행을 하다보면 그와 함께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건축가가 버린 돌을 모퉁잇돌로 쓰는 주님, 당신은 잘난 사람, 힘 있는 사람을 들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지 않으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 초라한 사람을 들어 아픈 마음, 슬픈 마음, 상처난 마음 위에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잘난 것만 추구하고 힘 있는 것만 추구합니다. 우리의 함정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신 주님, 부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하십시오. 남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부를 폄훼하고 부자를 욕하는 것으로 부를 추구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게 마시고 당신의 일, 사랑의 일을 하는 데는 돈이 조건인 것이 없다는 것을 보게 하십시오.

    지식이 하나님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하십시오. 세상에 배울 게 없는 교만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수준에 떨어지게 마시고 배우면 배울수록 왜 더 넉넉해지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고 왜 더 이기적이 되고 교묘해지기만 하는지,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자주 길을 잃는 건, 돈이 없거나 지식이 모자라거나 건강하지 않거나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많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뭔가 더 갖고 싶다는 욕심, 남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경쟁심리,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었다고 믿는 고정관념, 끝 없는 욕망, 욕망… 그 욕망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하십시오.

    이야기하듯 흘러가는 ‘만화성경여행’은 3권으로 되어 있다. 그 여행은 지루하지 않고 가뿐해서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창세기에서 출발한 여행이 요한계시록까지 다 와 있다.

    그리고 ‘내가 본 부처’는 싯다르타의 일대기가 한 축이고, 그 일대기의 의미를 읽어나가는 도법스님의 시각이 또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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