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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해수의 간이역 순례기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 박해수 < 시인 > jockey@donga.com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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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의 노랫말로 유명세를 탄 시 ‘바다에 누워’의 박해수 시인. 그가 역(驛) 순례에 나섰다. 전국 760여 개의 기차역이 지닌 서정을 시로 담아내려 발품을 판 지 일년 남짓. 역마다 시인의 가슴에 투영된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대, 역을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누구나 한번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것이다.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차창에 어리는 산천을 바라보며 시심(詩心)에 젖어본 적이 그 누구에게나 있었으리라.

‘대전발 0시50분’ ‘이별의 부산정거장’ ‘비 내리는 호남선’ ‘비 내리는 고모령’ ‘추풍령’ ‘남행열차’ ‘나그네 설움’ ‘고향역’…. 노랫말과 가락 속에서 1960년대 보릿고개를 넘고,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에 흠뻑 취해 유신의 1970년대 그 질곡의 산을 굽이굽이 넘었으리라.

기차가 달려온다. 청운의 꿈을 품고 경부선 열차로 상경했던 젊은 꿈들은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먼 기적 소리에 첫사랑 연인이 마지막 열차칸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간이역이다.

증기기관차에서 디젤로, 디젤에서 경전철로 숨가쁘게 넘어온 오늘이다. 생각해보라, 칙칙폭폭 울리는 옛 추억을. 기관차의 검푸른 연기 속에 설과 추석을 맞은 고달프고도 즐거웠던 고향열차 차창에 어린 보름달. 삶의 신산(辛酸)한 편린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펄떡거리지 않는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했던 간이역을 뒤로 하고, 산굽이 물굽이 철교를 지나 기차는 떠나간다. 삶의 둥우리를 찾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싣고 기차가 항상 달려가는 곳, 역(驛)은 우리 민족의 애환이 한데 엉겨 인간사(人間事)의 정서가 혼융(混融)되어 만나는 곳, 한과 슬픔이 교접된 곳이기도 하다. 그 역을 따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시의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찬바람 찬 눈을 맞으며 길 떠나는 사람, 길 위에 길이 있으며 역 위에 또 미지의 역이 있으니 사람을 만나고 역을 만나러 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긴다.

인생은 간이역

나는 중·고교 시절을 대구 달성공원안, 밥풀 같은 흰 꽃이 달려 있는 늙은 이팝나무가 서있던 공원 예식장 아래에서 보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그곳에서 자란 내 마음은 줄곧 그리움과 이상향의 동경에 파묻히곤 한다.

달성공원을 나와 북성로 철물전을 지나노라면 대구역이 가까웠다. 대구역엔 광장과 노천 대합실이 있었다. 노천 대합실은 살기 어려웠던 1960년대의 고통이 스민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은 내 시의 감수성을 키워주었고 삶의 눈을 밝혀준 곳이다. 그래서 역사(驛舍)의 풍경들은 한 편 삶의 시였다.

초등학교 시절, 궁핍했던 그 시절의 ‘기차길 옆 오막살이’ 노래는 더욱 애달픈 향수와 역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했다. 호롱불 아래서 ‘바둑이와 철수’ ‘구구단’을 외던 그 시절을 어찌 잊을까. 시커먼 꽁보리밥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한 끼는 거르며, 수도꼭지를 틀어 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궁핍의 극치를. 또한 중학교 시절 이성에 눈 뜰 무렵, 역은 내게 사랑이었고, 목마른 내 시 속의 그리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옛날 그 시절은 비록 가고 없어도 내가 찾아 헤매는 기차역은 그리움과 향수가 살아 숨쉬는 곳들이다.

어쩌면 우리들 인생도 역이 아닐까. 역은 인생, 기차는 ‘나.’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곳, 끊임없이 만나고 떠나가는 삶의 현장이 내가 추구하는 시편들이다. 이럴진대, 시는 활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숨쉬고 움직이며 생동하는 ‘생물(生物)’이라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역이라면 좋겠다/ 사방팔방으로 가도 좋으니까/마음 헛짚어/ 역마살이 끼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도/역은 항상 역으로 거기 그 자리/ 흔들리지 않고 살고 있으니까/누가 가서 흔들어도 / 역은 마음을 달래 주니까/마음 깊어 슬픔까지 데불고/ 마음 길을 찾아/마음 집을 찾아 헤매고 있어도/ 마음 넉넉한 집/간이역을 찾아 내 삶을 다독이며/ 바람까지 데불고/별까지 데불고/ 처자식까지 데불고 헤매어/하늘역까지 가고 싶었다/ 마음 갈래 갈래/그 길이 가장 많고 길어/ 밤을 새워 마음 역을 놓았으나/마음 번지는 마음만 가고 있으니/ 번지도 문패도 없는/마음 역은 어이도 먼가/ 달빛과 별빛을 따라/하염없이 가고 있으니/ 그 소멸을 어이 할까/그 소멸을 어이 할까/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여/내 마음의 행군이여/ 이 저녁 역으로 가는 길에/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기고(시 ‘역(驛)’ 전문)

청록빛 꿈 깃든 시골역

오르고 내리는 사람, 가고 오는 사람, 인생은 두 정거장 속 승객이다. 우리가 거쳐가는 역들도 삶의 연대기 속 한 징표가 되는 건 아닐까. 인생의 종착역은 오지 말거나 아니면 느리디 느린 완행열차로 왔으면 좋겠다. 인생. 그 삶의 보퉁이를 끌어안은 수신인 없는 편지와 소포는 지난한 덩어리가 되어 옛날 사연 많고 눈물 많은 그 역 안, 추억의 물품 보관함에 외로운 사연만 안고 있을 뿐이다. 눈발과 함께 찬밥을 먹으며 찾은 두계역, 연산역, 논산역을 지나면 연탄불에 라면이 끓었다. 새벽기차를 타고 훈련소 가던 길, 진학을 위해 상경하던 그 길을 우린 모두 기억하고 있다.

시를 쓰는 것은 상상이나 정서에만 매달리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경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은 추억이 많으면 곧잘 잊어버린다. 다시 지난 추억을 되살리기엔 많은 시간과 체험이 필요하다. 때문에 인연은 중요하다. 역은 그 인연을 맺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다.

목월, 지훈 두 시인의 첫 만남 인연도 건천역에서 이뤄졌다. 목월은 초면의 서울친구(지훈)를 만나기 위해 ‘박목월’이라 쓴 깃대를 들고 건천역까지 마중나갔던 것이다.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思考)요, 사고를 통해야만 감각은 인식되어 소멸되지 않는다. 인식과 느낌은 인생을 외롭지 않게 한다.

역으로 가고 오는 길은 그런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심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 역이란 공간은 고집불통이고 삶의 불만자이며, 고독한 판관이요, 떡갈나무의 외로운 가랑잎 같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보면 감상적인 유물(遺物)에 기대어보기도 한다. 역에는 현존하는 역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역들이 공존하지만, 사라진 역을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것은 역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내 시의 심상(心象)이다.

청록색 꿈이 있는 시골역 플랫폼으로 기차가 덜커덩덜커덩 소리내며 다가온다. 논둑길을 지나면서 철길 위로 눈물이 글썽여지던 기막힌 사연들이 기차 곱배처럼 길었던 것은 꽃멀미와 그리운 사랑이 물씬물씬 묻어나오고 푸르디 푸른 삶이 조개탄 불꽃으로 타고 있음이랴.

회자정리(會者定離). 시의 작은 표현을 다듬기 위해 나는 간이역을 찾아나선다. 사람과 사람의 틈새를 비집고 바람 부는 날 마음의 창을 열고….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인 경북의 가장 작은 역, 승부역이나 강원도의 구절리역으로 혼자서 훌쩍 떠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간이역엔 읍·면 단위 마을이 있다. 그곳엔 옥수수 알맹이 같은 순정(純情)한 시심이 살아 숨쉰다. 황량한 갈대밭에 지는 노을을 보고 고즈넉한 사랑의 시를 생각한다.

그럴 때면 헛것을 보고 헛살아온, 안동 헛제삿밥 같은 밥을 먹고 헛것에 눈뜨며 헛것에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달래며 내일의 망상에 오늘을 구겨놓은 것이 못내 마음 아프다. 저녁 기차 소리를 들으며 숯검댕이 얼굴을 한 악동들은 철 모를 희열과 장난으로 철길 같은 인생의 꿈을 키워나갔었는데…. 얼얼한 울음처럼 묵언(默言)으로 자장면 먹던, 자장면 검은 슬픔이 저 산 엉덩이에 숨어 있다. 지평선 끝 철로가 닿는 끝까지 가보고 싶다. 도라산역을 넘어 평양역, 신의주역, 함흥역, 개성역, 사리원역, 대성리역, 국수역, 대광리역…. 북녘 역 있는 곳 그 어디까지라도 찾아가고픈 마음에 시심은 저만치 철길을 앞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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