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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투구

  • 김옥채

진흙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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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을 헤매던 자가 돌아오고 있다.

파푸운(Papuun). 호주대륙 위에 도마뱀 모양으로 떠있는 거대한 섬. 태양이 추락하여 정글 한가운데에 곤두박질친다. 빛의 잔해들이 불의 정령을 부르며 칼춤을 추고 가슴을 베는 축제를 벌인다. 그곳에선 사람의 무덤을 찾을 수 없다. 시체를 나누어 먹으면서 고인을 추억하는 식인풍습 때문이다. 배가 고파서 사람고기를 먹느냐는 질문에 아사로 부족의 전사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실제 심각한 단백질 부족 현상을 겪고 있으면서도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 중에 ‘사람고기를 먹다’와 ‘추억하다’는 동일한 음가를 지니고 있다. 그곳에 무덤이 있다면 혹은 그 무덤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 무덤의 주인은 분명 빛의 광기에 휘몰린 시간들의 음산한 주문일 것이다.

마닐라발 비행기는 30분 이상 연착되고 있다.

인천과 파푸운 사이에는 항공노선이 없다. 수도인 ‘포트 모스비’의 잭슨빌 국제공항에서 마닐라까지 왔다가 인천행 여객기로 갈아타야 한다. 14년 전 웅호와 나는 지금과는 반대로 마닐라에서 잭슨빌 국제공항까지 가는 에어 파푸운 여객기로 갈아탔었다.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던 해,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제1기 새시대 국제협력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었다. 분명 민간단체의 프로그램이었지만 삼십 수년 전 칠촌 재당숙의 빨치산 입산경력까지 들추어내고 아무런 설명 없이 해병대에서 두 달이나 지옥훈련을 시켰다. 거기서 오척단구의 웅호를 만났다. 그는 퉁퉁 부어오른 무릎관절을 러닝셔츠로 조여매고서도 호각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했다.

80% 가까이 자진해서 연병장 한가운데 놓인 종을 쳤다. 그 종만 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 미국유학을 떠나고 싶은 가난한 청년들이었다. 선발대상국이 동남아시아 일대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머릿속에 미국만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도 봉사와 헌신과는 거리가 먼 부류였다. 침투용 상륙보트를 머리에 이고 모래밥을 먹으면서 탈출을 꿈꾸었다. 무작정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나고 싶어서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걸러진 후에 우리가 받은 실무교육은 일주일이 전부였다. 언어학을 전공한 웅호는 목공선반의 제원을 외우고 톱날 갈아끼우는 시범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제학과를 나온 나는 농사실무반에 편성되어 일주일 내내 연수원 옆 논에서 피를 뽑는 일만 반복했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필리핀이었다. 아마도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6명 중에서 파푸운을 지원한 사람은 웅호와 나 둘뿐이었다. 우리는 벽에 붙은 명단을 보고서 서로 외면했다. 검도 3단에 차돌멩이같이 단단해 보이던 그도 나를 자신과 똑같이 생겨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처음 비행기를 탄 우리는 똑같이 멀미를 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쪼개질 듯 지끈거렸다. 내내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검푸른 산호섬이 슬그머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이 이십 수년 동안의 시간처럼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파푸운 상공을 날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밖을 내려다보는 순간 기묘한 색상대비가 눈을 찔러왔다. 진초록의 밀림 사이에 언뜻언뜻 비치는 흰 뼈 무더기들. 웅호는 그 자리에서 노란 위액까지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우리에겐 어차피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이 제격이라는 듯 호된 속앓이였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공항청사에 들어섰다. 마중 나온다던 외교성 관리는 고사하고 출입국 관리 직원에게 잡혀 한참을 옥신각신해야 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아닌 황인종을 의심하면서 엄연히 필리핀 주재 대사관에서 발급한 비자마저 외면하는 것이었다. 88올림픽이 열릴 코리아를 선전하는 것보다 10달러의 효력이 훨씬 컸다.

항구도시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덥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흑인들보다 검고 메마른 피부, 푸석푸석한 곱슬머리…. 그들의 넓게 퍼진 코마저 건조한 기후에 맞춰 진화된 모습으로 비쳤다. 공항 앞길에 즐비한 현대적인 건물들조차 마치 건재약방에 걸린 한약재 같다는 인상을 풍겼다.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었던 우리는 택시승강장으로 향하던 도중에 강도를 당했다. 백주대낮의 노상강도였다. 그들은 넋을 놓고 걷는 우리에게 권총을 들이대며 ‘텐 달러’를 요구했다. 권총보다 무서웠던 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뻘건 피를 쏟아내는 광경은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뼈무더기를 떠올리게 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건 바로 ‘부아이’라는 마약성 음식의 즙이었다. 다카 열매와 대나무, 조개껍질을 함께 삶고 말린 다음에 빻은 하얀 가루를 부아이 열매와 섞은 것을 다시 부아이라고 불렀다. 그걸 씹어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곳에선 애어른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부아이를 질겅거리고 다녔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인숙 수준에 불과한 모텔의 하루 숙박요금이 50달러에 이르렀다. 어떻게 된 계산법인지 하루를 묵으면 50달러고 이틀을 묵으면 110달러, 사흘을 묵으면 190달러를 요구했다.

정부의 담당자는 부아이를 질겅거리며 사흘 만에 나타났다. 유리조각을 씹으며 위협하는 뒷골목 똘마니 같았다. 맨발에 양복차림을 한 그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우리에게 대학을 나왔냐는 질문을 했다. 자신은 최고 명문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다며 젠체했다. 세번째 부인과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참금이 적긴 하지만 얼굴은 예뻐요. 당신들은 아내가 몇 명이나 되지요?”

알아먹기 힘든 피진(pidgin) 계열의 기형적인 영어로 그의 열일곱 살짜리 새 아내에 대해 끊임없이 주절댔다.

“우린 여기에 일을 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강도를 당했고 비싼 물가에 시달리고 있어요. 우리를 빨리 조치해주시오.”

웅호의 말에 그의 안색이 금세 싸늘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 얘기를 하는 것이 그가 자란 동부 브갠빌 섬 부족의 전통이었다. 아내 얘기를 다 듣고서 ‘그런 마누라를 얻은 당신은 무척 훌륭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해야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우리의 태도는 그에게 심한 모욕이었던 셈이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서류를 뒤적이더니 몇 군데 서명을 했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죠? 당신들이 원하면 이 땅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당신들이 지는 것을 알고 있겠죠? 당신들의 안전을 우리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면 일주일 내에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막무가내로 파푸운 지도를 들이밀었다. 가고 싶은 곳을 골라보라는 것이다. 그의 성의없는 태도에 낯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나는 아무 곳에나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피칠갑을 한 입으로 비죽거리며 웃었다. 내가 짚은 땅은 인도네시아의 속주인 ‘이리안 자야’였다. 이 나라가 동서로 동강나 있는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험한 곳을 추천해주시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땅.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서 당신의 도움 따위가 필요없을 정도로 지독한 땅을 말이오.”

그는 매년 새로운 부족이 인류학 학술지에 소개되고 있다는 곳을 가리켰다. 그러나 인류학자들도 들어가길 두려워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픽(Sepic)강 연안의 참브리(Chambri) 지방이었다. 포트 모스비에서 북쪽 해안의 워워크(Wawake)까지 덜덜거리는 세스나 비행기로 갔다가 거기서부터는 엿새 동안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워워크에서 목적지까지는 직선거리로 100km 남짓 밖에 되지 않지만 위험지역을 우회하기 때문에 길은 몇 배로 늘어났다. 돈맛이 단단히 들어있는 짐꾼들조차 참브리 얘기를 꺼내자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결국 통상요금의 두 배를 치르고서야 사람을 살 수 있었다. 그나마 출발당일에는 두 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2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두 개나 넘고 세픽강의 지류가 만들어낸 우각호 늪을 수없이 우회하였다. 외팔이 안내인은 한쪽 손에 든 정글도로 능숙하게 길을 만들어 나갔다. 우리 앞길에 불쑥 끼어든 악어를 가리키면서 희죽거렸다. 저 악어의 친척이 자기 팔을 뺏어갔다고 말했다. 악어는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시위하듯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한 짐꾼이 배낭에서 빼낸 손도끼를 던지자 악어의 정수리에 그대로 박혔다. 우린 악어고기 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타알’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뱀이 풀을 쓰러뜨리고 지나간 자국이 길처럼 뻗어 있었다. 살만 씻겨 내려간 하얀 뼈무덤을 볼 때마다 진저리가 쳐졌다. 거대한 이구아나의 해골이 뜨악하게 나를 쳐다볼 때마다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보았다.

안내인은 곧 원주민들이 나타난다고 대꾸했고, 그의 말대로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돌촉을 끼운 긴 창을 든 원주민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통행세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협곡을 지날 때마다 괴성을 지르고 화살을 퍼부으며 나타난 각기 다른 부족들에게 통행세를 물어야 했다. 극락조 깃털로 장식한 부족과 성기에 길다란 막대기를 끼운 부족, 똑같은 모양으로 얼굴문신을 한 부족과 귀를 네모나게 잘라낸 부족….

내 귀에는 모두 같은 말로 들렸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었다. 웅호의 설명에 의하면 천여 개의 언어, 전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이 이 땅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이웃한 부족들의 언어 사이에 한국어와 몽골어 정도의 유사성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몇 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터부인 셈이었다.

“우리는 왜 헛된 것만 찾으려 했을까? 이 길을 다시 걸어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별똥별이 금을 그으며 열대의 밤하늘을 재단하고 있을 때였다. 웅호는 안내인이 농사지은 커피를 마시며 처음으로 자기 속내를 내비쳤다. 새삼스러웠다. 정글을 찾아온 자에게 감상은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안내인은 별똥별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부족 전설을 얘기해주었다. 옛날옛적, 인간이 신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던 시절, 지상의 인간들은 별똥별로 마름질한 옷을 입고 지냈단다. 그 옷이 너무나 입고 싶었던 신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신이 그 말을 들어줄 리 없었다. 신의 핏줄을 타고난 자는 별똥별 옷을 입는 순간 지상으로 추락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었다. 신의 아들은 아버지를 속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몰래 별똥별이 재단한 옷감을 하나씩 걸쳤고 마침내 지상의 인간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휘황한 옷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신의 아들이 자기 옷자락을 휘감는 순간 그는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면서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몹시 상심한 아버지 신은 인간들이 더 이상 별똥별 옷을 입지 못하도록 지상에 닿기도 전에 태워 없애버렸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늘에 오를 수 없었고 하늘의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는 얘기.

지상과 하늘 사이에 기둥을 세우려는 듯 높이 솟은 열대 티크나무 숲을 지나자 마침내 참브리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호수라고는 하지만 서울면적보다 넓어서 수평선이 보일 정도였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호수 근처의 마을까지는 아직도 하루 반나절을 걸어야 했다. 짐꾼들이 휴식시간에 캥거루쥐를 사냥하려고 대나무 숲에서 쥐구멍을 쑤시고 다닐 때였다. 묘한 성대울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짐꾼들이 일순간 모든 행동을 중지했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수백 명의 전사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앞의 여정에서는 보지 못한 엄청난 대열이었다. 하나같이 진흙투구를 뒤집어쓰고 온몸에 하얀 분칠을 했다. 당당한 체격에 쇠붙이 무기를 든 부족이었다. 초라한 가장행렬을 비웃으며 나타난 진짜들 같았다.

맨발로 땅을 구르는 소리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 토해내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마치 메기고 받는 뱃노래 같기도 했다. 삶과 불화가 생겨 끊임없이 뻑뻑거리는 소리…. 소리와 소리가 맞물려 사슬처럼 연결되어 내 목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엎드려 귀를 막아보았지만 녹슨 파이프 안의 진동 같은 괴성들은 내 뇌수 안에 주파수를 맞춘 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두려움을 수신하는 안테나를 부러뜨리고 나선 자가 있었다. 굽은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높고 평탄한 웃음소리. 웅호는 어느새 열대의 소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내리꽂는 스콜같이 거침없고 수직으로 증발하는 수증기처럼 경쾌한 파장의 떨림으로 전사의 노여움에 화답했다. 전사들의 투구 속 공명음이 잦아들었다. 전사들은 웅호를 데리고 역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바람이 역풍으로 몰아쳐도 웅호의 웃음소리는 정글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오래도록 씻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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