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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 이야기 (5)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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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가 광장에 세워지자 사람들은 밤마다 여기에 돌을 던졌다. 이유는 불균형이 아니라, 성기가 성인의 그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당시까지 여성상은 성기 표현 없이, 남성상은 소년의 모양새로 만드는 것이 관례였다. 대중이나 교회의 수준이란 고작 그 정도였다. 교회는 이후 ‘최후의 심판’의 성기를 모두 가리도록 명령하는 것으로 그 수준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1508년,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린다. 건축가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에게 실패를 안기려고, 교황을 부추겨 조각가인 그에게 화가의 일을 맡겼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전혀 근거 없다. 한편 소설가 스턴은 미켈란젤로가 그 이유를 레오나르도의 질투 탓으로 여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나 이 역시 근거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작업을 원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대신 라파엘을 추천했다. 그러나 스턴의 책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어쨌거나 무엇이 사실이든 상관없으니 그림이나 보자.

아, 사진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들에게 이 말만은 해야겠다. ‘최후의 심판’은 밑바닥에서 17m 높이의 그림을 올려다 보아야 하기 때문에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건 약과다. ‘천지창조’는 목을 뒤로 완전히 젖혀야만 겨우 눈에 들어온다. 바라보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다. 그렇다고 신성한 성당에서 누워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몇 년간 허리를 완전히 젖힌 상태로 그 그림을 그렸을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면 몇 분의 고생쯤은 괜찮다.

‘천지창조’는 신약성서가 아닌 구약성서를 소재 삼고 있다. 왜 예수의 일생을 그린 신약이 아닌 구약을 택했을까? 많은 학자들은 구약의 내용이 ‘더 인간적’이라는 점을 꼽는다. 미켈란젤로처럼 정말 인간다운, 그토록 모순된 성격을 생각한다면 특히 그러하다. 물론 여기에는 사보나롤라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지성을 얻음으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된다는 비극적 설정에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이고자 노력하는 것에 대한 신의 준엄한 심판에서 미켈란젤로는 신의 잔혹함을 느낀 것일까. 그 비극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모습이 모두 침울하고 슬픔에 잠겨있거나 격앙된 모양새로 그려진 것 또한 그 잔혹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봐야 하리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 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나 뱀의 유혹으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그 자손이 잇따라 죄를 지어 대홍수로 심판받는다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미켈란젤로 이전이나 이후에나 성기가 가려진 채 그려진 것이 보통이나 미켈란젤로는 이를 노출시켰다. 특기할 만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그림들보다 ‘노아의 홍수’에 특히 관심이 간다. 그림 중앙 위쪽에 상자처럼 생긴 노아의 배가 있다. 그 오른쪽에 텐트가 쳐진 좁은 바위가 있다. 그림 왼쪽 밑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고 있는 거대한 대륙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셋의 중간에 폭도들이 탄 보트 한 척이 있다.

종래 노아의 배는 가톨릭 교회, 텐트는 유대 교회, 대륙은 이교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가톨릭 교회를 빼고는 모두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를 공격하는 자들은 당시 교황을 공격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텐트 속 사람들은 물론 대륙의 사람들이나 보트의 사람들조차 모두 사악하다기보다는 인간적 사랑과 물질을 갈구하는 처연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당연히 죽어야 할 인간’이 아닌, 육체와 영혼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야말로 운명의 결정권자라는 르네상스 시대 신플라톤주의적 인간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란 책을 쓴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비코 델라 미란돌라의 제자였다. 그는 ‘인간은 세계의 중앙에 있다’, 즉 인간은 신과 물질의 중간자라 선언하고 물질, 즉 육체에의 집념을 버림으로써 신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고뇌의 인간은 그런 집념의 르네상스 인간들인 것이다.

근육질의 ‘모세’상에 담긴 뜻

한편으로 텐트가 유대교를 상징한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텐트에는 가톨릭 미사의 상징인 포도주 술잔, 고귀한 황색 옷을 입은 신부, 가톨릭 교회의 승리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부를 교황이라 하면 그 텐트야말로 로마 교황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로마 교황청을 부정했다. 1496~98년을 로마에서 보내면서도 몇 차례나 피렌체로 돌아와 사보나롤라의 새 교회운동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 20년 뒤, 루터가 나타났다. 즉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 중앙의 노아의 배는 교황청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물론 미켈란젤로가 루터식 종교개혁에 찬성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천지창조’를 그리고 난 뒤 미켈란젤로는 심신이 완전히 녹초가 됐다. 목은 뒤로 젖혀져 편지 한 장을 읽으려 해도 머리 위에 두고 봐야 할 정도였다. 앞을 볼 수 없어 항상 어딘가에 부딪혔다. 한가지 다행한 점이라면 그림을 완성한 직후 교황이 사망하면서 그야말로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 미켈란젤로는 죽은 교황과 약속한 묘의 조각을 시작한다. 그중 ‘모세’는 완벽한 조각으로 평가된다. ‘다비드’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에게 모세가 홍해를 가른 기적 따위는 관심사 밖이다. 모세는 그저 초인적 의지력과 지혜, 체력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또한 모세는 다비드 이상으로 민족해방의 실현자다. 바자리는 이 ‘모세’상을 보고 많은 유태인들이 가톨릭에 귀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모세’상에는 어딘가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모세 앞에 놓인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모세의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피렌체의 운명에 대한 묘사로 볼 수 있다. 이는 ‘노예’상을 포로가 된 유대인, 또는 외세에 침략당한 이탈리아, 또는 메디치 독재하의 피렌체 민중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연결된다. 아무려나, 인간의 절대성을 믿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원초적 불안과 의혹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건 어떨까.

미켈란젤로가 가난하고 불행한 민중을 동정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동정’ 수준이었고 그들이 폭도로 변할까봐 공포에 떨었다. 그렇다고 군주주의나 귀족주의에 빠진 것도 아니어서 도리어 그들을 경멸했다. 그는 피렌체를 사랑했으나, 후반생에는 그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1529년 미켈란젤로는 공화국 축성 책임자로 일했다. 그러나 이듬해 공화국은 멸망한다. 대예술가란 이유로 침략자로부터 사면받은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묘소를 위한 조각에 매달렸다. 각각 남녀인 ‘저녁’과 ‘아침’, ‘낮’과 ‘밤’이다. ‘아침’은 젊은 여인의 나신상이다. 미켈란젤로는 여성상보다 남성상에 더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되나, 적어도 이것만은 예외다. 그 모습은 환희가 아니라 고통의 시작이다. 이어 노력과 인내를 상징한다는 두 남자 ‘낮’과 ‘저녁’, 그리고 마침내 시든 몸으로 잠든 노녀(老女)로 표현한 ‘밤’이 등장한다. 잠자는 그녀의 얼굴 또한 아픔과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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