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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쟁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조선 후기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shamora@donga.com 최윤오 <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소농사회론 vs 내재적 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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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사, 도덕을 버리고 역사를 보라

조선후기는 공리적으로 실패한 사회였다. 대신 소농사회는 자본주의 흡수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했다.

한국 역사학의 도덕주의

기독교인들은 인간세상의 종말을 믿는다. 그 날에 예수가 강림하시고 천년왕국이 열린다. 또한 그 날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 선한 사람은 예수와 함께 천년왕국에 머물지만, 악한 사람들은 영겁의 지옥불로 떨어진다. 종교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 중세시절에 사람들은 그들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이같은 종교적인 역사관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역사는 천년왕국을 향하는 고난의 여행길이다. 그리고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기리라.

이같이 목적론적이며 도덕주의적인 중세의 역사관은 근대사회가 되어서도 한동안 맥이 끊이지 않았다. 헤겔의 철학과 역사학을 좌파적으로 계승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그 가장 훌륭한 본보기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인간사회는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인간사회의 역사는 원시공산사회에서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제사회를 거쳐 다시 더 높은 차원의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한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같은 이야기를 똑 부러지게 한 적이 없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마르크스의 권위를 빌리기 위해 그가 그런 주장을 하였다고 단정했다.

특히 러시아혁명 이후의 소비에트역사학에서 그러한 억측이 심했다. 예컨대 스탈린은 인간사회가 위와 같은 다섯 단계를 거쳐 공산주의에 도달하는 것을 두고 ‘철의 법칙’이라고 했다. 절대로 어긋남이 없는, 세계 도처의 어느 지역과 모든 민족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역사발전의 법칙이란 뜻이다. 마치 신의 섭리와도 같이 절대적으로 진리인 이 법칙을 거역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스탈린은 그 자신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숙청해버렸다. 그 자신이 역사의 선을 대변하고 있다는 믿음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근대 역사학은 이같이 목적론적이며 도덕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출발했다. 1920∼30년대 일제 식민지기에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근대 역사학이 수입될 때 마르크스주 의역사학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제국주의가 온 지구상의 약소민족을 식민지로 억압하던 그 당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약소민족의 입장에선 해방의 약속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영향력은 압도적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가 현저히 쇠퇴한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필자까지 포함하여 많은 역사학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펼쳐놓은 구도에서 그의 언어와 논리로 토론하고 논문을 쓰고 있음이 오늘날의 솔직한 실정이다.

역사를 선과 악의 투쟁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도덕주의적 성향도 지금까지 극복되지 않고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식민지로의 몰락, 해방과 뒤이은 남북분단의 지난 세기를 실패의 역사로 단정한다. 이 실패의 역사에서 주역을 담당했거나 조연으로 동참한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반면 그에 저항했거나 불참한 사람들은 역사의 선으로 찬양된다. 이름을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대단히 유명한 어느 역사학자는 얼마 전에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호언했다. “이선생, 식민지기는 독립운동의 역사요, 다른 것은 역사라고 할 수 없어요.” 이러한 도덕주의적 역사관의 도도한 풍조는 심지어 민족분단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건국까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역사로 치부하는 소수의 극단적인 연구자까지 공공연히 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명될 수 없는 ‘역사 발전‘

이제 그러한 목적론적이며 도덕주의적 역사학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도 그러한 비생산적이며 관념적인 역사학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다소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역사에서 필연은 없다고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선과 악도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오로지 불확정적이며 확률론적인 선택과정일 뿐이다. 내외의 상황변화에 대응하여 지도자와 지식인이 유익한 선택을 거듭하면 그 국가는 발전하고 인민의 복지도 증대된다. 반면에 지도자와 지식인이 유해한 선택을 거듭하면 그 국가는 패망하고 인민은 침입자의 노예가 된다. 한 사회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면 그 사회는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 거꾸로 대중의 지적 수준이 높더라도 지도자가 무능하면 마치 흑자도산의 기업처럼 그 사회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한 사회가 그러한 공리주의적 선택에서 실패한 역사를 필자는 19세기 조선왕조에서 발견한다. 당시 조선왕조의 위정자들은 열국이 대치하는 약육강식의 국제정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었으며 중국에 의존함으로써 국체를 보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반면에 세차게 중국에 도전하고 있던 일본의 국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당시 재정규모나 통화량 등의 경제지표에서 일본은 조선보다 무려 20배 규모의 대국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의 위정자나 일반 지식인들은 일본을 바다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야만국으로 간주했다.

사상의 자유가 없었던 것도 조선왕조가 실패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18세기초 노론의 장기집권이 성립한 이래 성리학 이외의 다른 학문이나 사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성리학자 상호간의 활발한 논쟁도 19세기가 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권과 직접적으로 결탁되어 있는 서울의 지식인만이 아니라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퇴계의 사상이 절대적이었던 영남의 경우 19세기말까지 그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약간의 윤색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회가 사상적으로 동맥경화증에 걸리게 되면 그 사회는 조만간 패망하게 마련이다.

일본의 식민지로서 20세기 전반에 우리 민족이 겪은 치욕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공리주의적 선택에서 실패한 결과이지, 일본이 역사에서 강포한 악의 세력이기 때문은 아니다. 필자는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후세에 전할 역사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제가 이 땅에서 펼친 식민지 지배정책을 두고서도 그 때문에 우리의 정상적인 역사 발전이 왜곡되었다든가, 오늘날의 남북분단을 포함한 온갖 역사적 모순이 발생했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역사 발전이란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선험적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앞서 비판한 도덕주의적 역사관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 필자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오 교수와 필자 사이에는 바로 그 점에서 기본 입장의 중대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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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shamora@donga.com 최윤오 <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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