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창강(長江)문명의 원류를 찾아서

‘황토’가 ‘찰흙’을 이긴 까닭은?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황토’가 ‘찰흙’을 이긴 까닭은?

1/6
  • 7000년 전 벼농사를 지은 흔적이 발견되면서 세계 고대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한 중국 강남 변방의 작은 나루 허무두(河姆渡). 이곳은 중국대륙의 젖줄 노릇을 하며 황허문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찬란한 문화를 일궈낸 창강문명의 원류다. 산 설고 강 선 허무두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러나 그곳에선 자연과 공존을 추구한 아름다운 고대인들과의 가슴 벅찬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전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까지 주룩주룩 내렸다. 시야가 흐려 사진을 찍기 힘들 것 같아 시후(西湖)로 가는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고 허무두(河姆渡)부터 찾기로 했다.

항저우(杭州) 최대의 명물인 시후는 그리 크지 않은 호수이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터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또한 그 한 쪽에는 허무두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된 저장성(浙江省) 박물관까지 있어 그곳부터 찾는 게 순서지만, ‘하늘’이 그걸 허락지 않으니 항저우의 동부터미널에서 사오싱(紹興)으로 가는 마이크로버스에 몸을 싣는 수밖에 없었다.

터미널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차를 타는 사람이 드물어 ‘이번에는 좀 편히 가나’ 싶었는데, 차가 큰길로 들어서자 승객이 계속 밀려들어 통로까지 가득 차는 바람에 옴짝달싹할 틈도 없었다. 중국엔 과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원을 이루는 마이크로버스를 타보면 누구나 이를 실감할 수 있다.

7000년 전, 벼농사를 짓다

‘여행은 만남’이라 생각하는 터라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 가능하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대개의 경우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여기에서 ‘성공’이라 함은 상대가 호감을 갖고 나를 대해주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귀중한 정보를 얻는 것을 일컫는다. 사실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만큼 얘기를 나누기에 좋은 짝도 없지 않은가.

중국에서도 그랬다. 중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변변찮은 실력으로 메모지에 한자를 써서 내 의사를 전하는데도 중국인들은 기꺼이 대화에 응해줬다. 덕분에 별 탈 없이 중국의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고, 때론 재미난 일도 만들었다.

사오싱으로 가는 차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린진청(林金成)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한자 필담과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베이징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고 사오싱의 한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대뜸 “그럼, 관광지의 지질분석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물론, 전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죠”라고 답했다. 순간, ‘내가 너무 오버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바보짓이 처음 만난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주기도 한다.

그는 내게 사오싱으로 가는 까닭을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허무두란 곳을 아세요? 위야오(餘姚)란 곳에 있는 작은 나루인데, 7000년 전에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져 고고학적으로는 아주 유명한 곳이 됐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황허문명보다 2000년 정도 앞서 문명이 태어난 곳이라 해서 찾아가는 길입니다.”

“사오싱에 산 지 꽤 오래됐지만 허무두란 말은 처음 듣습니다. 선생은 고고학자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명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입니다.”

“아무리 봐도 학생 같지는 않은데요.”

“‘학생(學生)’, 즉 배우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하, 선생은 중국어를 나보다 더 잘하는군요.”

그의 농담에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사오싱에는 볼 일이 없습니까? 그러시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텐데요. 잘 아시겠지만 사오싱은 소설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魯迅)의 고향이라 그의 생가도 남아있고,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생가도 가볼 만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군요. 사오싱에는 ‘난정(蘭亭)’이란 곳도 있죠. 4세기 동진(東晋)시대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시를 짓고 글씨를 썼다는 곳 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곳부터 찾고 싶습니다. 왕희지의 글씨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렇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사오싱을 찾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꼭 사오싱을 찾아주세요.”
1/6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목록 닫기

‘황토’가 ‘찰흙’을 이긴 까닭은?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