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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書海유람

색은 색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 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색은 색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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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이 낳은 숱한 화제들 가운데 붉은색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인식 변화가 있다. 붉은색은 흔히 색깔론, 레드 콤플렉스, 유혈, 과격, 투쟁 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한국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온 국민이 입는 응원복장 색깔로 거듭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분명하게 획득했다. 이처럼 색(色)은 결코 자연적인 주제가 아니며 문화적·역사적·사회적 주제에 속한다.

색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인식하는 색, 우리가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색으로서만 존재한다. 색의 그런 성격을 잘 보여주는 책이 ‘블루, 색의 역사: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한길아트)다. 고대 서양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파란색이 지녀온 의미의 변천사를 풍부한 그림 자료를 곁들여 설명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파란색은 천대받았다. 파란 눈을 가진 여자는 정숙하지 못한 사람, 남자는 무식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무지개에도 파란색이 안 들어있다고 우길 정도였다. 라틴어나 희랍어엔 아예 청색을 나타내는 단어조차 없었으며, ‘블루’라는 말은 독일어에 연원을 두고 중세 이후에야 등장했다. 그런 파란색이 득세하게 된 것은 중세에 아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하면서 비탄과 애도를 의미하는 색으로 널리 사용되면서부터다.

파란색은 18세기 낭만주의시대에 들어와 결정적으로 ‘승리’했다. 프랑스혁명 즈음엔 진보, 자유, 꿈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이 입은 청색 연미복은 최첨단 패션으로 인기를 끌었다. 20세기 들어 블루진이 자유와 개방의 이미지로 등장하면서 1950년대 이후 파란색은 적어도 서구에서 가장 환영받는 색이 됐다.

색이 지닌 문화사적 의미들

색의 역사를 주제로 다룬 책도 간과할 수 없다. 역사지식과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색채사를 새로 쓰겠다는 의욕을 과시한 ‘색채, 그 화려한 역사’(까치)가 그것이다. 의욕이 의욕이니만큼 읽기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이 책에서 저자 만리오 브루사틴은 뉴턴과 괴테, 즉 과학과 예술을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색채를 기본적으로 빛의 전달작용이라고 볼 때, 뉴턴으로 대표되는 물리학은 빛의 분할을 통해 색채지각작용을 분석하려 했다. 다른 한편 괴테는 색채를 지각하는 주체의 주관성을 인정함으로써 예술가들의 몫을 폭넓게 확보하려 했다. 저자는 빛의 과학, 색의 예술, 색을 만드는 기술 등의 변천사를 종횡으로 넘나든다.

이 책이 아니면 알기 힘든 사실 몇 가지. 고대 희랍에선 주황색 염료를 착색하려 사춘기 이전 어린이의 소변을 사용했고, ‘향긋한 포도주를 마신 술 취한 사람의 오줌’을 쓰기도 했다. 인간이 화학적 방법으로 원하는 모든 색채를 만들어내는 일은 20세기 초에 와서야 가능했다.

색의 문화이론에 해당하는 책으론 ‘색깔 이야기: 공포증과 탐닉증, 그 편견에 대하여’(아침이슬)가 있다. 원제가 ‘색깔공포증’인 이 책에서 저자 데이비드 바츨러는 서구인들이 오랫동안 색의 가치와 의미를 폄훼하고, 이를 낯선 타자(他者)로 여겨왔다고 지적한다. ‘색깔 있는 것’을 원시적·유아적·여성적·감정적인 것으로 여겼으며, 나아가 천박하고 부차적이며 장식적인 것으로까지 여겼다는 것이다.

색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런 관념은 색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과도하게 억압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저자가 말하는 ‘색에 대한 공포’란 색을 타자로 정립시켜놓고 문화 속에서 색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서구에서는 고대 이래로 색이 체계적으로 옆으로 밀려나 비방을 받고, 그 가치와 지위가 격하돼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몇 세대에 걸쳐 철학자들, 예술가들, 미술사가들, 문화이론가들이 색에 대한 편견을 살아있는 것, 선정적인 것으로 부추기고 내세워왔다.

그런데 색에 대한 그 모든 편견들, 선언 형식들, 혐오는 어떤 공포를 숨기고 있다. 그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것이 가져다주는 오염과 타락에 대한 공포다. 이런 식으로 색이 불러올지도 모르는 타락으로 인해 색을 혐오하고 공포스러워하는 현상은 이름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색깔공포증(Chromophobia)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책들이 역사와 예술, 문화이론 등 인문지식의 측면에서 색을 말하는 데 비해 실용성의 관점에서 색을 말하는 책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컬러 비즈니스’(오늘의 책)가 있다. 소비자들의 상품에 대한 첫인상의 60% 정도가 상품 색상에 좌우된다고 보는 저자는 다음과 같은 색깔 마케팅 사례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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