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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 이야기 ⑧

“이교도도 사람이다!”

식민지배 맞서 싸운 16세기 유럽의 양심 라스 카사스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이교도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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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자신 식민주의자였던 16세기 스페인 신부 라스 카사스.인디오들의 고난을 목도한 뒤 해방의 사도로 변신한다.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이른바 ‘국제법’,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에 맞서 60년을 한결같이 투쟁한 라스 카사스. 그가 살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유린을 보았다면 뭐라 말했을까.
“이교도도 사람이다!”

스페인 식민지배의 참상을 묘사한 드 브리의 그림

9·11 사태 이후 미국이 국제법을 어겼다는 지적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국제법이 엄연히 존재하거늘, 미국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면서 신은 중립이 아니다, 세계 전체의 전쟁이고 문명의 전쟁이다, 제2의 십자군전쟁이다 등의 수식어로 상황을 합리화했다. 이 말을 끝없이 되풀이한 이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문명의 충돌’을 쓴 헌팅턴 등은 과격한 전쟁지지 성명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폭격은 무고한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구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승인을 기다리는 것은 ‘자살행위’에 불과하므로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여기서 ‘악’이란 아프가니스탄만이 아니라 아랍 전체, 심지어 이슬람교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밖의 소위 ‘불량국가’들도 포함된다). 지난 8월1일에도 부시 미국대통령은 요르단 국왕과 회담하기 직전 이슬람을 잘못된 종교라 불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가 말한 ‘중립이 아닌 신’은 오직 기독교의 신을 말한 것이리라. 그리고 ‘잘못된 종교’의 신은 ‘잘못된 신’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국제법 학자들도 그런 주장을 펴, 이제 국제법은 강대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패권주의의 장식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법에 대한 세계적인 잡지로 우리나라 어느 대학 도서관에도 있는 ‘미국국제법저널’에 9·11 직후 실린 논문 ‘세계의 공공질서를 방어하기 위하여’ 머리말에서 라이스만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국제법학자는 오직 승리냐 패배냐가 문제라면서, 민주주의의 적을 괴멸시키는 무기와 새로운 전쟁형태, 그런 무기사용에 대한 국제법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서 나는 나치 이상의 정치적 결단주의를 읽으며, 그가 말하는 국제법이 과연 ‘법’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국제법의 추악한 이면

물론 이런 식의 전쟁 합리화는 처음이 아니다. 전쟁을 도발국 멋대로 자위권 발동으로 합리화한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1968년 레바논 공격과 1985년의 튀니지 공격, 미국의 1968년 리비아 공격, 1993년의 이라크 공격, 1998년의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공격 등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유엔에 의해 자위권 행사라는 추인을 받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역사상 대부분의 전쟁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또 하나의 국제법 파괴는 전시에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인도법과 관련한 것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측 민간인과 포로가 대량 학살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유엔측은 인도법 준수를 요구했다. 또 미군이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NGO가 지적하자 미군측이 NGO에 약간의 돈을 주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포로를 포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 국제적 비난을 샀다. 이제는 국제법상 포로나 민간인에 대한 보호조차 사라지는 것인가?

그래도 국제법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그 효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국제법은 인류 최소한의 양심이란 차원에서 존재해온 것이다. 국제법은 그 자체가 부시가 주장하는 신의 법, 문명의 전쟁이라는 식의 사고에 근거한 것이라 볼 여지가 있다. 그런 말들은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사실 이는 우리가 흔히 ‘국제법의 아버지’ ‘자연법의 아버지’라 부르는 그로티우스(1583~1645)의 법사상에서 이미 등장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제정한 인정법 또는 실정법과 다른 자연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자연법이란 신의 법에서 비롯한 보편법이고, 국제법이야말로 그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것은 고대 유럽으로부터 중세 후기에 이르기까지 국제관계에 의해 귀납·경험적으로 그 존재와 보편성이 논증된 것에 불과하다. 이 경우 ‘국제’니 ‘자연’이니 하는 것은 유럽문명이라는 틀 속의 그것에 불과하고, 그로부터 나온 보편성이라는 것 또한 전지구적 규모의 보편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곧 석가나 마호메트가 아닌 그리스도, 공자나 맹자가 아닌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가 그 전거로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사상 내용의 보편성과 사상 형성 전거의 보편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고, 후자의 결여가 반드시 전자의 결여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로티우스가 인류 보편의 법이라 주장한 국제법이나 자연법의 내용이 동시대 이슬람과의 관계에서도 타당한 것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여러 국민의 법이라는 것도 사실 그리스 도시국가 이래 유럽문명권의 국가적 관행을 전제로 한 것이다. 후대의 국제법 학자들은 자연법학파 국제법의 보편성이 19세기의 법실증주의파 국제법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주장하나, 자연법학파의 보편성 자체가 정말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유럽에 한정된 것이었음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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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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