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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 이야기 ⑧

“이교도도 사람이다!”

식민지배 맞서 싸운 16세기 유럽의 양심 라스 카사스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이교도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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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주장된 자연법적 국제법은 서양 열강에 의한 세계 식민지화 과정에서 서양 열강이 사실상 그 존재를 결정하는 국제질서의 이론적 기초를 부여했고, 나아가 그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예컨대 민법의 선점(先占)이론에 따른 식민지 침략의 정당화, 해양 열강의 공해 자유 원칙이 갖는 이데올로기성 등이다.

이와 같이 그로티우스로부터 비롯한 근대 국제법 이론은 기본적으로 유럽 독립국가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으로 생성되고 발전된 것으로, 그로부터 소외된 객체에 불과한 비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 이상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유럽국가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규범을 다른 나라에 강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이 소위 개화기에 적용받은(실제로는 강제된) 국제법에서도 나타난다. 국제법의 유럽 중심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사실상 변함이 없다.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하여 침략을 합리화하는 여러 조약은 그 모방에 불과하다.

흔히 유럽에서 만들어진 국제법 질서는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달리 국가 평등의 관념을 내포한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국제법은 비유럽 제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후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근거한 합의 위에 적용된 것이 아니라, 전자의 군사력 우월을 배경으로 후자에 강제된 것일 뿐이다. 나아가 비유럽의 여러 민족은 먼저 무력에 의해 지배당한 뒤, 국제법상의 주체성을 부정당하는 형태로 국제법 질서에 편입되었다. 힘에 의한 침략이 먼저였고, 국제법은 그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 단계를 넘으면 다시 비유럽 민족들은 식민지가 이제는 식민지 지배권의 ‘국내’문제로서, 국제법의 규율대상이 아니라는 논리(국제법의 불간섭 영역으로서의 국내사항)에 따라, 국제법상의 논의 대상에서 배제된다.

‘근대 유럽문명에 의한 세계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국제법의 기능은 그로티우스만이 아니라 그의 절대주의적 국제법을 정치적 자유의 국제법으로 바꾸었다고 평가되는 밧텔의 이론에도 그대로 살아있다. 밧텔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고 국가 평등의 관념에 근거한 국제법을 주장했으나, 그 또한 어디까지나 근대 유럽문명이라는 틀 속에서다. 이 역시 강대국이 멋대로 자국 보호에 치우치는 경우 기회주의적으로 애용되는 이론의 하나에 불과하다.



밧텔의 이론은 노동력의 투하에 따른 소유권을 절대화한 로크의 이론에 근거한다. 로크는 재화의 희소성과 인간의 자기보존이라는 행동원리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주장한 홉스의 이론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나, 이 역시 유럽 민족 내부에서만이다. 그것이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온 식민자(침략자 또는 정복자)와 원주민의 사이에 적용되면 전자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식민자들이 자신의 노동관에 따라, 원주민은 자신이 산 땅에 노동력을 투하하지 않았으므로 소유권이 없고, 처음으로 노동력을 투여한 자신들이야말로 정당한 소유자라는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자연법이니 국제법이니 학문이니 사상이니 하며 주장하는 소리들은 사실 원시적인 폭력에 의한 침략과 정복을 합리화하는 어용학설에 불과하다. 서양의 국제정치나 국제법에 대한 논의는 거의 그런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이는 단 한 사람, 라스 카사스(Bartolom de Las Casas·1484~1566)란 스페인 출신 신부뿐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으나, 어떤 책도 그를 르네상스인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를 르네상스 시대의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인류는 하나’라는 신념에 근거해 ‘신세계’ 주민뿐 아닌, 흑인이나 학대받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 존엄·생명·자유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보편인·세계인·행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유럽중심주의의 역사가 갖는 독선을 최초로 지적한 역사가이자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역시 르네상스인으로 불리지는 않으나 르네상스와 함께 근대사를 열었다는 ‘지리상의 발견’의 콜럼버스가 있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역사상 유일한 콜럼버스 제1차 항해에 대한 문헌인 ‘콜럼버스 항해지’는 라스 카사스가 쓴 것이다. 이 책은 콜럼버스의 항해지를 정리한 것이나, 단순한 정리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담고 있다. 예컨대 콜럼버스가 원주민들(나체로,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에게 노동과 서양식 습관을 강요해야 한다고 쓴 부분에 대해, 라스 카사스는 신의 의지를 배반한 파괴행위라고 엄중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길은 전혀 반대였고, 그들에 대한 평가도 양극단을 달렸다. 라스 카사스는 근대 세계를 개척한 ‘위대한 발견자’ 콜럼버스를 스페인의 정복사업을 망치고자 한 ‘과대망상의 매국노’로 평가했다. 19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범세계적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라스 카사스의 기념비가 처음으로 그의 고향 세빌리아에 세워졌으나, 곧 그 얼굴 부분에는 검은 페인트가 칠해졌다. 이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양면적이다. 일반인의 감정만이 아니라 학계의 평가도 여전히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라스 카사스가 소개된 적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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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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