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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 이야기 ⑧

“이교도도 사람이다!”

식민지배 맞서 싸운 16세기 유럽의 양심 라스 카사스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이교도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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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도 사람이다!”

멕시코 화가 리베라가 그린 라스 카사스. 그가 설교하는 대상은 정복자 코르테스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500주년을 맞아 두 편의 전기영화가 제작됐다. 그중 대작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합작으로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제라르 드 파르듀가 주연한 작품이다. 서양인이 만든 콜럼버스 영화는 대동소이하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웅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콜럼버스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인인가? 특히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고대 그리스인들도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으나, 중세에는 그것이 금기시됐다. 15세기에 다시 그런 학설이 퍼졌다. 가난한 선원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황금의 나라 인도에 닿으리라고 주장했다. 당시 지도에는 아메리카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 잘못된 세계의 모습을 믿고 서쪽으로 항해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옛날부터 존재했고 사람들이 살았으니 ‘발견’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서양인이 처음으로 ‘상륙’한 것에 불과하다. 아니 실상 ‘침략’한 것이다.

콜럼버스는 결코 순수한 탐험가가 아니다. 오직 황금을 찾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당시 이미 인도양 중심의 거대한 무역권이 형성되었는데 서양에서 바다로 그곳을 가려면 아프리카를 우회해야 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탐험하여 황금, 상아, 그리고 흑인 노예들을 사들였다. 당시 아프리카에는 다수의 왕국이 번영했다. 아니 그전부터 아프리카에는 나름의 문명이 있었으나 서양인들은 침략을 위해 미개 야만이라고만 주장했다. 최근 아프리카인들은 자기들의 찬란했던 역사를 열심히 되찾고 있다.

1487년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았다. 그곳은 희망봉이라 이름지어졌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돌면 바로 인도에 갈 수 있으니 아프리카를 도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죄수들을 이끌고 69일의 항해 끝에 그는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 닿았다. 지금도 그곳을 ‘서인도’라고 부르는 것은 콜럼버스가 그렇게 착각했기 때문이다. 인디언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이어 그는 자신이 일본이라고 착각한 쿠바에 닿았다. 그러나 황금궁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서양인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에 영웅으로 금의환향해 ‘인도의 제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두번째 항해는 1500명의 성직자·관리·기술자·식민들이 포함된 식민사업과 기독교 개종을 위한 것이었다. 이로써 아메리카 식민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식민지 총독 콜럼버스는 원주민들로부터 세금 명목으로 황금을 착취했다. 이에 반발한 원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총독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신대륙을 놓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싸우자 교황은 스페인에게 아메리카를, 포르투갈에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나누어주었다. 서양 멋대로의 세계분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근대사의 가장 참혹한 식민지 침략이 불붙었다. 그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그 침략에 합세했다.

콜럼버스에 이어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 왕은 서양인이 가져온 선물을 초라하다고 경멸했으나, 다 가마는 향신료를 싼값으로 사와 항해에 든 비용보다 60배나 남는 장사를 했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적인 황금은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아, 서양은 무역 대신 주민을 죽이고 혹사시키는 식민지경영을 시작했다. 그 결과 멕시코의 아즈텍제국과 페루의 잉카제국이 멸망했고, 유럽은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의 식민지화에 광분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콜럼버스는 그 식민화의 선봉이 된 사람이다.

콜럼버스와 달리 라스 카사스의 전기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그 편린이나마 볼 수 있는 것으로 ‘미션’이 있다. 그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흉악한 식민주의자를 연기하나, 제레미 아이언즈가 연기한 신부에게 감동해 원주민에게 봉사하다 신부와 함께 장렬하게 죽는다. 그 신부는 역사상 최초로 원주민을 옹호한 신부 라스 카사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라스 카사스 역시 본래는 흉악한 식민주의자였다. 영화 속의 신부 또한 본래 그랬는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과거가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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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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