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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⑩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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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자는 물론 법학, 정치학, 경영학, 심리학 연구자들에게까지 무한한 상상력과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그 속에 숨은 법적·정치적 코드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요즘 셰익스피어 이름을 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자유라 불렀다’는 책은 ‘그녀’가 누구인지, 왜 그렇게 불렀는지를 명시하기는커녕, 예컨대 유부남을 사랑하면 그의 부인에게 양해를 얻으라는 식의 충고를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셰익스피어식 불륜인지 뭔지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지금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도사다. ‘셰익스피어 섹스 어필’ ‘셰익스피어 인 러브’ ‘셰익스피어를 미워한 여인’ 등의 책이 그렇게 그를 팔고 있다.

사랑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가르쳐주는 세상 사는 지혜’ ‘셰익스피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 ‘셰익스피어가 주는 교훈’ 등의 인생론이며, ‘셰익스피어 매니지먼트’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20세기 경영은 없다’ ‘주식회사 햄릿’ 등의 경영서도 여럿이다.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라는 선(禪)에 관한 책도 있다.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인생살이도, 돈벌이도, 불교도 안되는 세상인가?

‘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책도 있다. 우리가 왜 그를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알고 싶어 샀으나, 셰익스피어 고향집 관광을 안내한 것일 뿐이었다. 이제 외국 문학 연구란 관광안내원에게나 맡길 일인가? 그나마 이 책은 요사이 유행하는 예술순례 안내 정도의 실용성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랄까.

한편 셰익스피어를 동정하는 책도 있다. ‘누가 셰익스피어를 울렸나’라는 책은 수많은 이야기 중 단 몇 쪽에서 셰익스피어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한 사기꾼의 활약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여기 쓰는 글도 그런 사기 행각의 하나가 아니길 빌 뿐이다.

‘장사가 되는’ 소재,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장 최근 책으로 지난 7월 출간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여자들에 대한 글쓰기’라는 것이 있다. 제목만 보고 페미니즘 시각에서 셰익스피어를 논한 책이리라 짐작해 얼른 인터넷으로 주문을 냈다. 그러나 그 책 속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1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명색인에서조차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자 해설에도 제목을 그렇게 붙인 바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롱 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임을 따지자면, 책을 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내 잘못이 더 크겠지만.

뿐만 아니다. 내게는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은 잘못도 있다. 물론 그것을 항상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런 책제목을 보고 바로 의문을 가져 셰익스피어 족보를 뒤질 정도로 나는 불신감에 젖어 있지 않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저 유명한 니체의 누이처럼 뇌리에 박힐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다. 여하튼 이제는 책제목부터 의심해야 하나 보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고전주의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페미니즘 시험’에 합격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이미 많은 글이 쓰여졌고 일부는 우리말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 잘 표현해 ‘여성이 아니었을까’하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페미니즘 관점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에 대해 쓰여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책이나 글들이 수없이 쓰여지고 소개됐다. 그 대부분은 ‘진부’하여, 몇 년 전에는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정신분석학·기호학·해체주의를 뒤섞은 테리 이글턴의 ‘참신’한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마저 번역된 형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책에서 참신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어려웠을 뿐이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민중을 증오한 보수주의자라 하면서도, 다시 읽을 것이 있다면서 어떠니 저떠니 한다. 이 글을 쓰며 참고하기 위해 다시 읽었으나, 역시 책값만 아까웠다. 최근 영미에서 유행하는 셰익스피어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읽은 저작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의 역자 해설만큼은 재미있었다. 역자는 자신이 재직한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과목을 없애자고 주장한 교수의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은 영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란 이름은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 관객이나 독자가 되어 본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위논문 편수는 날로 증가해 ‘기이’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관객이나 독자가 되어 본 적이 있으나, 솔직히 말해 재미가 없었다. 여러 시대, 나라에서 셰익스피어를 다양하게 각색하고 현대화하는 경향에 반해 한국에서는 언제나 고전극을 고집하는 바람에 재미가 더더욱 반감되었다. 이미 신채호는 오래 전에 우리 문화의 그런 원형질 보존 태도를 비판한 바 있으나, 지금도 문화적 재창조를 무시하는 체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연재의 한 꼭지로 셰익스피어를 주제 삼는 것을 무척 망설였다. 그러나 학위논문뿐 아니라 일반 저술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뭔가 써야겠다고 작심했다. 팔리니까 책이 쓰이리라. 여전히 셰익스피어 전공자를 뽑으니까 논문도 쓰이리라. 따라서 기이할 게 없다.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의 역자는 셰익스피어 관련 국내외 출판 현황을 ‘소문난 잔칫집’이라 했지만, 어디 셰익스피어만 그런가? 그가 번역한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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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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