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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서울 인사동

도심 한복판에서 느끼는 세월의 더께

  • 글: 민병욱 사진: 박수룡

서울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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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 기와가 어깨를 맞대고 담벼락에선 정이 풀풀 솟지만 인사동은 빠를게 변하고 있다. 편한 바지 같던 동네에 예리한 각이 생기다고나 할까.
서울 인사동

옛것의 향취 어린 인사동 거리. 골목속 숨겨진 풍경이 더 매력적이다.

변덕스러운 건 바람인가 사람인가. 된 바람 한번 몸짓에 우수수 떨어져 뒹굴거나 흩날리는 노란 잎새들. 그걸 밟으며 사람들은 낭만과 멋진 추억을 얘기할까, 아니면 흘러가는 세월에 덧댄 아쉬움과 서글픔을 달래는 걸까.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 좁은 동네에서 우리는 실로 변화무쌍한 감정을 경험한다. 한 집 건너 화랑이요 골동품점이며 전통찻집과 주점이 들어선 그곳 네거리에 부는 바람은 자못 향기롭다. 좌판에 피운 향내가 좋고 구수한 된장찌개와 고향의 전 냄새, 그리고 골동품이 뽐내는 여유까지 버무려 바람은 낙엽과 정을 함께 실어 나른다.

하지만 거기서 한 블록만 나서면 바람은 칼처럼 속살을 파고든다. 운현궁과 탑골공원을 휘감는 바람은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솔잎을 사정없이 날리고 흩날린 그것들은 분풀이하듯 노인들의 뺨을 찌른다. 실없이 지나가버리 세월을 원망하는지 낙엽은 부끄럼도 없이 고궁마당을 뒹군다.

속절없이 잊혀지는 과거

그런데 왜 인사동인가. 시작이 거기이듯 마지막 또한 거기였으면 싶은 고향의 향취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문화 예술이 살아있고 역사 전통이 숨쉬며 멋스런 분위기도 넘쳐나니까? 또는 ‘인사동 사랑’을 신붕의 징표처럼 읊어대는 사람들의 엘리트 의식에 함께 젖고 싶어서? ”꼭 그렇진않다”는 답이 나오지만, 그런 온갖 역설을 다 알면서도 탓 없이 웃을 수 있기에 우린 인사동을 찾는지 모른다.

사실 인사동이 자랑하는 전통과 역사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근세 한국사에서 주목받는 역할을 한 ‘태화관 터’ 는 지금 누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인사동 네거리 서쪽으로 일백 보쯤 거리에 자르잡은, 그렇고 그런 수많은 현대식 건물 중 하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건물입구에 알림돌이 없다면 아무 뜻 없이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매국대신 이완용과 그 무리들이 을사조약 모의처로 사용했던 장소요, 그걸 무효화시킨다는 의미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 바로 태화관이다. 13세기부터 왕족과 세도가들의 집이었고 후궁의 사당도 됐다가 나중엔 요릿집으로 변한 곳이다. 그 터가 지닌 역사의 더께가 무거웠을까, 신식으로 들어앉은 12층 건물은 지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거기서 불과 몇 발짝 옆에 있는 ‘서울 중심 표지석’도 그렇다. 1896년에 놓인 이 기념물은 태화빌딩 옆 하나로빌딩의 자투리 화단에 방치돼 있다. 북악산 남산 인왕산에 둘러싸인 예 서울의 한복판임을 알리는 기념물인데도 차밥 취급이 완연하다. 화감암 표지석 주변엔 쓰다 버린 화분과 철근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박영효 생가 터에 잘리잡은 경인미술관에선 전시실을 새로 들이는 공사가 한창이다. 마당 가득 장비가 널렸고 끊임없이 쿵쾅대는 소음이 운치를 앗아간다. 그 주변 한옥 화랑이나 음식점들은 내부는 물론 겉모습도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는 공사를 연중 벌이지 않는 때가 없다.

‘도시구조와 건축물이 옛 모습 그대로인 서울의 유일한 전통문화 공간’이라는 인사동의 자랑은 물론 아직 유효하다.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여전히 한옥기와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담벼락에선 정이 풀풀 솟는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인사동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헐렁하니 편했던 바지 같던 동네에 점점 예리한 각(角)이 생기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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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병욱 사진: 박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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