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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에서 피어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

‘파격의 미학’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세계

  • 글: 진동선 사진평론가·전시기획자 sabids@hanmail.net

관음에서 피어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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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62)의 전시회 ‘소설 서울 스토리 도쿄’전(11월15일~2월23일)이 화제다. 연예인, 소설가, 시인, 영화감독 등 경력이 다채로운 아라키의 사진 작품은 성(性)을 엽기적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기인(奇人) 아라키의 작품 세계와 그의 굴곡 많은 삶을 살펴본다.
관음에서 피어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

‘A의 일기’

아라키 노부요시는 호기심의 사람이다. 그가 지난 40여 년 동안 펼쳐왔던 사진세계 또한 호기심의 천국이다. 사람들이 그를 일러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여 권의 책, 400회에 이르는 전시를 거치는 동안 변화무쌍하게 그를 이끌었던 것은 여자, 섹스, 사랑, 여행, 죽음 등 삶의 근원에 대한 그의 호기심이었다. 이 호기심은 늘 활화산처럼 에너지를 방출해 왔고, 지금 이렇게 광화문 네거리를 달구고 있다.

물론 단순히 그 때문에 엽기적인 그의 사진에 평단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 스스로 ‘아라키 세계’라고 일컫는 작품세계 안에는 호기심을 뛰어넘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잔혹하고, 메스껍고, 수치스러우며, 여성에게 가학적인 동시에 피학적이고, 변태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가 그의 작품에 감탄하는 것은 그 사진의 이면, 역겨움을 주는 사진의 내면에 ‘아라키라는 한 인물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한 사진가가 걸어온 40여 년 삶의 리얼리티가 그대로 담금질되어 있다.

“나의 사진은 사랑과 죽음”

관음에서 피어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

성적 이미지를 관통하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들. ‘킨바쿠’ ‘에로토스’ ‘Woman in Color’(아래로)

아라키는 사진에 대해 확실한 자기 철학을 갖고 있다. 프랑스 비평가 제롬 상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사진은 사랑과 죽음이며 그것이 어쩌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확언한 바 있다. 자신의 사진과 삶을 관류하는 것이 ‘사랑’과 ‘죽음’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지방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사진 곳곳에 이 ‘사랑’과 ‘죽음’에 관련된 의미의 그물망을 쳐두었다. 예컨대 컬러는 현재고 흑백은 과거라거나, 컬러는 생존이고 흑백은 부재라는 식이다. 컬러는 피어나는 생명이고 흑백은 쇠락하는 소멸이며, 액자 없는 사진은 현존과 생명이고, 액자 있는 사진은 부재와 죽음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사진들을 가리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라 표현해도 좋을 듯싶다. 이를 위해 그가 어떤 소재 혹은 대상을 선택했는지 살펴보자.

그의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소재는 여성과 섹스다. 작품 속에서 여성은 사랑의 대상이자 죽음의 대상이며, 섹스 역시 사랑의 행위이자 죽음의 행위다. 미래를 상정한 현재성은 항상 그의 사진 속에 들어 있다. 사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은 언제나 ‘기억’이다.

‘기억’은 아라키 사진의 중요한 모티브이며 키워드다. 기억이 사랑과 죽음을 잇는 가교, 존재와 부재를 잇는 가교가 되는 것이다. 이 기억의 저장소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고, 섹스가 있고,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다. 그의 사진에서 기억은 현실의 삶과 연계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결국 아라키의 사진은 일종의 일기다. 밖으로 보여주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니라 혼자 느끼고 가슴 아파하기 위해 쓴 내밀한 일기와 같다는 말이다.

매춘을 훔쳐보던 소년의 관음

관음에서 피어난  ‘사랑과 죽음의 랩소디’

‘도쿄 이야기’ 시리즈에서 도쿄는 무표정한 도시로 표현되고 있다. 그 풍경 위에 작가는 여성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킨다.

그를 모델로 했던 영화 ‘도쿄 맑음’은 그가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삶 속에서 사랑과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삶과 사진이 늘 하나라고 말해왔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했다. 이는 그 자신이 지난 40년 간 추구해온 사진의 모습과 삶이 그대로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삶과 동등한 무게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라키는 그 같은 태도를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 60년대 초반부터 자신에 대한 작품을 계속 세상에 내놓고 있는 그는, 항상 변하는 나, 끊임없이 삶 앞에서 요동치는 나, 욕망과 에너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부재로 끝나고 마는 죽음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자신을 표현해왔다. ‘아라키와 모델’ ‘아라키와 시대’ ‘아라키와 풍경’ ‘아라키와 동경’ ‘아라키와 서울’ 등의 모든 작품은 그가 자신의 삶과 마주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어린시절부터 아라키에게 사진은 비밀스런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그가 사진으로 세상을 보았던 출발점은 여성과 성(性)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매춘으로 먹고 사는 동네 누나들을 알고 지냈고, 이들이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장면을 훔쳐보면서 일찍부터 성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이때 형성된 아라키의 관음적인 행동은 지금 그의 사진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장성해 치바대학 사진인쇄과를 졸업한 아라키는 광고대행사에 취직했다가 거기서 평생 예술혼을 지피게 한 아내 요코를 만난다. 이 시절부터 그의 사진과 삶은 도쿄에 뿌리를 내린다. 1970년대 그의 사진은 도쿄의 뒷골목과 유곽, 연극거리, 극빈자 주변까지 어슬렁거린다. 아라키의 시선 속에 도쿄는 붉게 물들어 있다. 거리에 대한 뜨거운 감정, 메마른 디테일과 얼룩, 기억을 한아름 담고 있는 울퉁불퉁한 뒷골목…. 아라키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눈길을 기다리며 구애(求愛)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이 시각 못지않게 촉각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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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동선 사진평론가·전시기획자 sabi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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