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라크 역사·문화 기행

바빌로니아 제국 부흥 꿈꾸는 인류 문명의 發芽地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바빌로니아 제국 부흥 꿈꾸는 인류 문명의 發芽地

1/7
  • 지금은 전화(戰禍)와 경제제재로 피폐해졌지만, 이라크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최초의 제국인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가 번성한 곳이다. 이슬람 문명을 한껏 꽃피우기도 했기 때문에 이라크 땅에는 인류 역사의 여명기를 빛낸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대부분은 성서에도 언급될 만큼 인류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바빌로니아 제국 부흥 꿈꾸는 인류 문명의 發芽地

아시리아 제국의 도읍지였던 모술 인근의 님누드 궁전 터에는 라마스상(像)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왕국을 지키는 수호신상이다.

그 옛날의 로마처럼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새벽은 무에진 소리와 함께 열린다. 여행자인 필자도 기도시간을 알리는 무에진 특유의 음색과 리듬에 잠을 깼다. 하지만 그 긴 울림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기에 그곳에 머문 20여 일 동안 단 한번도 그걸 탓해 본 적이 없다.

그렇듯 평화로운 도시에서 나는 예기치 않게 이라크 사람들의 목멘 소리를 듣게 됐다. 서울로 전화할 일이 있어 한 푼이라도 아껴볼 생각으로 호텔 전화를 쓰지 않고 사설 전화방을 찾아 암만 시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는데, 바로 거기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말이 전화방이지,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허름한 집에 전화 두 대와 팩스 한 대를 들여놓은 게 전부다.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기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러다보니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주 끊기고 잡음이 많은 전화통 너머로 먼저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그것도 서너 번씩이나. 그런 다음 계속해서 울먹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들이 내뱉는 아랍어 대화를 알아듣진 못했으나, 전화방 주인을 통해 그들이 어디에다 전화를 하고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은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뒷모습에까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인구 2300만의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석유 매장량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석유대국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매우 어렵다. 1990년 8월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벌로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데다, 그 이듬해 1월17일에는 미국이 주도한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이른바 ‘걸프전’)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본 것은 물론, 수도 바그다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해 3월3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종전협정에 서명할 때까지 10만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30만명, 포로는 6만여 명에 이르렀다(지난 10년 간 사망자는 150만명에 가깝다).

그 무렵 많은 이라크인이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요르단으로 살길을 찾아 떠났다. 대부분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이들이었다. 낯선 땅에서 빈털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리의 행상이 고작이었다. 암만의 길거리에서 초라한 행색에 볼품없는 좌판을 벌여놓은 이들은 열에 아홉이 이라크 사람이다.

자신의 삶도 이토록 고달프기 짝이 없는데, 이라크 땅에 남은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끼니도 때우기 힘들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그들의 속은 얼마나 타겠는가. 평온한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린 그 무언가에 대한 사무친 원망, 그래서 가족과 친지를 남겨두고 혼자만이라도 살겠다며 국경을 넘은 데 대한 죄책감….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온몸을 휘감아 자신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리라.

바빌로니아 제국의 영광

내가 요르단 땅을 밟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고향인 이라크로 들어가기 위한 전초단계였다. 이라크에 경제제재가 내려지고 곧이어 터진 걸프전 이후 입국비자를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은 암만 주재 이라크대사관뿐이다. 더구나 1992년 8월 미국이 이라크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서 이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항공기도 묶여 육로 외에는 길이 없는데, 바그다드로 가는 버스와 택시는 암만에서만 출발했다.

이런 형편인데도 굳이 이라크로 들어가려는 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해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영역을 거느렸던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이 태어나 번성했던 곳이고, 한때 이슬람 문명이 꽃을 피웠던 땅이라서다.

나는 1989년 여름에도 이 나라를 찾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문명의 흔적을 보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바람에 그 문명의 기반이 된 일상적인 삶의 편린들은 살펴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 1995년 말, 본격적인 세계문명탐사에 나서면서 그때 미진했던 부분을 채우고자 이라크를 다시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내게 암만의 사설 전화방에서 고향을 등진 이라크인들이 고국의 가족, 친지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이라크의 오늘에 대한 사전 오리엔테이션 같았다. 그 순간 내 뇌리에는 구약 시편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망향가(137장)’가 오버랩됐다.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의 수금(하프같이 생긴 현악기)을 걸었나니…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어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기원전 598년. 지금의 이라크 땅에 자리잡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대왕(재위 BC695∼562)은 유대왕국을 쓰러뜨리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삼아 왕도 바빌론으로 끌고 왔다.

자신의 제국 북서쪽에서 약 1000년 간 서아시아 일대를 주름잡던 아시리아 제국이 무너지기 무섭게 그 빈 자리를 이집트가 차지하려는 것을 본 그는 유럽대륙과의 유일한 교역창구였던 동 지중해변의 팔레스타인과 페니키아 지역만은 그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이집트 침공을 저지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 위해 대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시리아의 멸망으로 모처럼 자유를 얻은 유대인들은 “가만히 앉아 그의 야망 앞에서 희생양이 되진 않겠다”며 이집트와 손잡고 거세게 항거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솔로몬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1만명과 모든 공장(工匠)과 대장장이들이 사로잡혀’(열왕기 24:13), 예루살렘엔 빈천한 자 외에는 남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때를 ‘제1 성전시대’의 종말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국치의 날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또 느부갓네살 대왕을 악의 화신으로 그렸다.
1/7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목록 닫기

바빌로니아 제국 부흥 꿈꾸는 인류 문명의 發芽地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