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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표 파는 여자

  • 글: 정정심

표 파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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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파는 여자
자리마다 칸막이가 쳐진 어두운 독서실, 취직시험 공부에 지친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들고, 신문의 문화면을 들척이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간 탓에 휑한 독서실이 모두 내 차지다. 그때, 독서실 실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편물 왔어요.”

우편물이란 소리에 보던 신문을 놔두고 성급히 사무실로 달려갔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반가운 마음에 거듭 인사를 하고 겉봉을 훑어보니 역시 ‘시험정보은행’에서 온 거다. 취직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나에겐 시험정보은행에서 보내오는 수험 정보가 더없이 소중하던 때다. 편지 봉투 윗부분을 손으로 뭉텅 찢어내어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철도 공무원 공채’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다시 한번 보았다. 틀림없는 철도 공무원 공채다. 수송원 150명을 뽑는다는 내용이었지만 수송원이라는 단어는 안중에도 없고, ‘철도 공무원’이라는 단어만 뇌리에 남았다. ‘철도’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기차와 역무원밖에 없던 나이다. 그러나 스물여덟의 나이는 어디라도 들어가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고, 결혼할 상대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할 여유도 없이, 수송원이 뭔지도 모른 채 원서를 냈고, 한 달 간 암기과목을 집중 공략해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필기시험에만 합격하면 면접과 적성검사는 쉽게 통과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여러 명의 면접관들 앞에서 난관을 통과해야 했다. 일렬로 늘어선 책상과 면접관의 날카로운 시선들에 나는 위축됐다.

“철도에서는 수송원 일을 하다가 남자들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해낼 수 있겠습니까?”

떨리던 가슴은 그 질문으로 더욱 요동쳤다.

“예, 물론입니다.”

속마음을 감춘 채, 나는 당당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에서는 대학 나온 여자도 필요 없고, 머리 좋은 여자도 필요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기운 센 남자를 원하는데 그래도 해낼 자신 있습니까?”

“예,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면접을 마쳤다. 그러나 면접관들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서글픔이 밀려왔다. 여자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 았고, 더욱이 공무원을 뽑는 건데 어떻게 남자와 여자를 그토록 차별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분하고 억울했다.

면접에서 떨어졌으리라 체념하고 있었으나 의외로 합격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왜 면접관이 남자를 원한다는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나는 발령을 받았다.

첫 발령지에 도착해 나는 푸른색의 작업복과 작업모, 그리고 장갑 몇 켤레를 수령했다. 남자 신체에 맞춰 제작된 작업복이라 입을 수가 없었다. 세탁소에서 바지통과 허리를 줄이고 나서야 그럭저럭 입을 만했다. 그런 작업복 차림으로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내가 철도원 기능직 10등급 공무원이란 사실을 실감했고, 수송원이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면접관들이 왜 남자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송원은 역 구내에서 열차를 조성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연결되어 있는 화차와 화차, 객차와 객차를 외부의 물리적인 힘없이 개인의 힘과 요령으로 떼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앞에 달린 기관차를 ‘본무’라 하고, 뒤에 달린 기관차를 ‘보기’라 하는데 이 본무나 보기가 운행 도중 고장이 나면 고장난 기관차를 떼어내고(철도에서는 ‘해방’이라는 용어를 쓴다) 새 기관차를 연결해야 한다. 또한 화물을 싣고 가다가 다른 역에서 화차를 추가로 연결시켜야 할 경우도 있고, 때론 전철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람의 손을 빌어 수동으로 취급해야 하는 순간도 발생한다(전철기란 선로를 전환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차의 진행 방향을 알아서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전철기가 제대로 작동해야 열차가 다닐 수 있게끔 진로가 구성된다).

이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수송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 구내를 지키는 사람이 바로 수송원인 것이다. 푸른색의 작업복에는 늘 시커먼 기름때가 묻어 있게 마련이고, 열차가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구내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부상은 물론, 면접관들의 말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긴다.

나는 이런 수송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배려인지 여자라는 이유의 차별인지 모르겠지만 역무원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매표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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