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표 파는 여자

  • 글: 정정심

    입력2003-01-02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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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파는 여자
    자리마다 칸막이가 쳐진 어두운 독서실, 취직시험 공부에 지친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들고, 신문의 문화면을 들척이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간 탓에 휑한 독서실이 모두 내 차지다. 그때, 독서실 실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편물 왔어요.”

    우편물이란 소리에 보던 신문을 놔두고 성급히 사무실로 달려갔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반가운 마음에 거듭 인사를 하고 겉봉을 훑어보니 역시 ‘시험정보은행’에서 온 거다. 취직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나에겐 시험정보은행에서 보내오는 수험 정보가 더없이 소중하던 때다. 편지 봉투 윗부분을 손으로 뭉텅 찢어내어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철도 공무원 공채’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다시 한번 보았다. 틀림없는 철도 공무원 공채다. 수송원 150명을 뽑는다는 내용이었지만 수송원이라는 단어는 안중에도 없고, ‘철도 공무원’이라는 단어만 뇌리에 남았다. ‘철도’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기차와 역무원밖에 없던 나이다. 그러나 스물여덟의 나이는 어디라도 들어가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고, 결혼할 상대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할 여유도 없이, 수송원이 뭔지도 모른 채 원서를 냈고, 한 달 간 암기과목을 집중 공략해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필기시험에만 합격하면 면접과 적성검사는 쉽게 통과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여러 명의 면접관들 앞에서 난관을 통과해야 했다. 일렬로 늘어선 책상과 면접관의 날카로운 시선들에 나는 위축됐다.

    “철도에서는 수송원 일을 하다가 남자들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해낼 수 있겠습니까?”

    떨리던 가슴은 그 질문으로 더욱 요동쳤다.

    “예, 물론입니다.”

    속마음을 감춘 채, 나는 당당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에서는 대학 나온 여자도 필요 없고, 머리 좋은 여자도 필요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기운 센 남자를 원하는데 그래도 해낼 자신 있습니까?”

    “예,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면접을 마쳤다. 그러나 면접관들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서글픔이 밀려왔다. 여자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 았고, 더욱이 공무원을 뽑는 건데 어떻게 남자와 여자를 그토록 차별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분하고 억울했다.

    면접에서 떨어졌으리라 체념하고 있었으나 의외로 합격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왜 면접관이 남자를 원한다는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나는 발령을 받았다.

    첫 발령지에 도착해 나는 푸른색의 작업복과 작업모, 그리고 장갑 몇 켤레를 수령했다. 남자 신체에 맞춰 제작된 작업복이라 입을 수가 없었다. 세탁소에서 바지통과 허리를 줄이고 나서야 그럭저럭 입을 만했다. 그런 작업복 차림으로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내가 철도원 기능직 10등급 공무원이란 사실을 실감했고, 수송원이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면접관들이 왜 남자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송원은 역 구내에서 열차를 조성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연결되어 있는 화차와 화차, 객차와 객차를 외부의 물리적인 힘없이 개인의 힘과 요령으로 떼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앞에 달린 기관차를 ‘본무’라 하고, 뒤에 달린 기관차를 ‘보기’라 하는데 이 본무나 보기가 운행 도중 고장이 나면 고장난 기관차를 떼어내고(철도에서는 ‘해방’이라는 용어를 쓴다) 새 기관차를 연결해야 한다. 또한 화물을 싣고 가다가 다른 역에서 화차를 추가로 연결시켜야 할 경우도 있고, 때론 전철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람의 손을 빌어 수동으로 취급해야 하는 순간도 발생한다(전철기란 선로를 전환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차의 진행 방향을 알아서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전철기가 제대로 작동해야 열차가 다닐 수 있게끔 진로가 구성된다).

    이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수송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 구내를 지키는 사람이 바로 수송원인 것이다. 푸른색의 작업복에는 늘 시커먼 기름때가 묻어 있게 마련이고, 열차가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구내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부상은 물론, 면접관들의 말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긴다.

    나는 이런 수송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배려인지 여자라는 이유의 차별인지 모르겠지만 역무원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매표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아침 9시. 교대를 마치고 매표실 의자에 앉는다. 매표실의 투명한 유리를 통해 할머니 한 분의 모습이 보인다. 치맛자락을 치켜올려 검은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숱도 얼마 없는 흰머리를 단정히 틀어올렸다. 머리에 인 커다란 보따리는 할머니의 작은 키를 더욱 짓누르는 듯하다. 할머니가 대합실 의자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창구 앞으로 다가선다. 치마를 허리춤까지 걷어올려 속바지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한 만원권 한 장을 내미는 할머니.

    “서울 완행 반표 하나 주소.”

    할머니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자면 ‘청량리행 특정 통일호 경로표 한 장’이다. 지금은 열차의 등급을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로 분류하지만 할머니에겐 완행이라는 예전의 표현이 더 익숙하신 게다. 청량리행 특정 통일호는 우리 역에서 오후 1시22분에 출발하여 오후 6시50분에 청량리에 도착하는 옛날의 비둘기호 열차다. 작은 역에도 모두 정거하는 탓에 무전여행객들이나 노인 분이 주로 이용한다.

    할머니는 4시간 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두르셨나보다.

    “할머니, 기차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나오셨어요?”

    수작업으로 발매하는 2500원짜리 통일호 승차권에 도장을 쾅 찍으며 할머니께 여쭙는다.

    “집이 촌이라 나오는 버스가 없니더.”

    할머니는 거스름돈을 주섬주섬 챙기며 의자 한 쪽에 자리를 잡더니 보따리를 풀어헤쳐 사탕 한움큼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빨간색 흰 설탕이 묻어 있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맛보던 사탕이다. 보따리를 넌지시 곁눈질해 보니 반찬통이랑 인삼, 참기름, 고춧가루 봉지가 보였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자식 집에 다니러 가시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10시49분 청량리행 새마을호 열차가 떠나고, 11시23분 부전행 통일호도 떠났다. 할머니는 의자에서 보낸 시간이 지루했는지 내게로 다가와 동전을 내밀었다.

    “할머니, 왜 그러시는데요?”

    “새댁이요, 내가 커피 한잔 빼먹고 잡은데 우야면 되니껴?”

    할 수 없이 매표실을 나와 할머니와 함께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기에 동전을 넣으시고요, 이게 밀크 커피니까 이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

    할머니께 커피를 건네자 무안할 정도로 연신 머리를 숙이신다.

    “고맙니더, 참말로 고맙니더. 늙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니더.”

    종이컵을 두 손에 꼭 쥐신 채 호호 불어대는 할머니의 모습이 주름살과 어우러져 묘한 연민을 자아낸다.

    12시10분이 되어 안동행 새마을호마저 전호기의 흔들림 속으로 사라졌다. 대합실의 할머니를 찾아보니 보따리를 끼고 좁은 의자에 몸을 의지해 잠이 드셨다. 그간의 시간이 지루하셨나보다. 젊은 사람 같으면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새마을호를 탔을 텐데 할머니는 돈을 아끼는 대신 그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고 계셨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의 풍요로움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등지고 살아감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한 날이다.

    노인들과의 실랑이

    내가 근무하는 곳은 작은 읍에 위치해 있다. 농촌이라는 특성상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접한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검붉은 얼굴에 깊이 팬 주름살, 굽은 허리를 지탱해주는 가느다란 지팡이, 혼자서 열차를 타기엔 힘겨워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을 손님으로 맞는다.

    “휴…. 쪼매 있어 보소, 아이고 디다, 휴….”

    역까지 걸어오느라 힘드셨는지 할아버지의 이마엔 군데군데 땀방울이 맺혔다.

    “서울 좌석 있니껴?”

    “예, 할아버지.”

    너무도 힘들어하셔서 더욱 공손히 대답한다.

    “한 장 드릴까요?”

    “좌석으로 하나 주소, 얼마니껴?”

    “6300원인데요.”

    6300원이라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할아버지는 들고 온 누런 봉투에 손을 넣는다. 꺼낸 건 남색의 체크무늬 손수건. 손수건을 느릿느릿 펼치니 그 속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얼굴을 내민다. 엄지손가락에 침을 ‘퉤퉤’ 하고 뱉으시더니 돈을 세기 시작한다. 돈이 넘어감과 동시에 나 역시 마음속으로 그 돈을 세고 있다.

    ‘하나, 둘, 셋….’

    넷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돈을 세다 말고 말을 건넨다.

    “얼마라 그랬니껴?”

    “6300원이요.”

    셋까지 세던 돈을 다시 움켜잡아 처음부터 다시 세는 할아버지. 그사이 세 명의 손님이 할아버지 뒤에 줄을 선다. 할아버지는 천원짜리 여섯 장을 내미신다.

    “할아버지, 300원 더 주셔야지요.”

    “기다리보소.”

    이번엔 바짓주머니에서 거무죽죽한 동전지갑을 꺼내신다. 지갑을 열어 창구 앞 빈 공간에 쏟아붓는다. 십원짜리와 오십원짜리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널브러진다. 다시 세기 시작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기다리는 손님들의 수를 센다. 길어지는 줄과 비례해 내 마음의 조급함이 상승곡선을 탄다. 동전을 다 세고 승차권을 받으셨건만 할아버지는 자리를 계속 지킨다.

    “이거 몇 호차 몇 번이껴?”

    “2호차 35번이요.”

    “몇 시에 도착하니껴?”

    “12시41분이요.”

    몇 걸음 옆으로 물러서던 할아버지가 다시 창구 앞으로 다가온다.

    “이게 2호차라 그렇지요?”

    “예, 할아버지, 2호차 35번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수다스러서 미안하니대이. 늙으면 깜빡깜빡 하니더.”

    할아버지가 창구 앞에서 멀어진다. 긴 한숨과 더불어 나는 다시 다음 손님을 맞는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듣지 못하는 분도 많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할 경우도 빈번하다. 서비스 정신이 모자라서일까, 굳게 마음을 먹었다가도 노인 분을 대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짜증에 나 자신을 추스르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음력 스무 여드렛날, 서울 하나 주소”

    손님으로 붐비는 주말 오후, 승차권을 구입하려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제치고 창구 앞으로 다가오는 육십 전후의 여자 손님 한 분이 있다.

    “서울, 몇 시 몇 시 차 있니껴?”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한다.

    “손님,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이는 여자 손님.

    “이봐요, 나이 든 사람 먼저 해주면 안 되니껴?”

    하는 수 없이 먼저 온 아저씨를 바라다본다.

    “먼저 해주세요.”

    회색 양복 차림의 말끔한 아저씨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건만, 정작 여자 손님은 미안한 기색은커녕 당연하다는 말투다.

    음력 스무 여드레란 소리에 나는 다시 맥이 빠진다.

    “손님, 양력을 말씀하셔야지요, 양력을….”

    “나는 양력 모르니더. 달력 찾아보면 되잖니껴? 좀 찾아보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달력을 확인한 후, 자판 하나하나를 야단스레 두드린다.

    “1만600원입니다.”

    내 소리를 듣자 놀랄 듯 되묻는 손님.

    “뭐 그리 비싸니껴? 반표 안 되니껴?”

    무궁화호 열차에는 30%의 경로 할인율이 적용되건만 언제나 반표로 불린다.

    “경로 대상이 되시나요?”

    “보고도 모르니껴? 눈 놔두고 뭐에 쓰니껴?”

    상황이 이 정도가 되면 신분증 확인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65세 이상이어야만 할인혜택을 받지만 이런 손님에겐 규정을 운운한다는 게 무의미할 뿐이다. 말없이 승차권을 경로로 바꾸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끝내 모자란 3만원

    금전적인 손해 없이 손님과의 단순한 말다툼으로 끝이 나면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새하얀 얼굴, 분홍색 투피스 정장 차림에 검은 핸드백, 거기에 숄까지 둘러 누가 봐도 세련된 여성임을 느끼게하는 손님이 있었다. 여섯 장의 승차권을 구입하고 돌아간 30분쯤 후, 다시 대합실로 들어오는 그 손님.

    “내가 돈을 3만원이나 더 준 것 같네요.”

    “예? 3만원을요?”

    삼만원이란 말에 놀라 손님에게 되묻는다.

    “내 지갑에 분명 만원짜리가 여덟장 있었는데 지금 만원밖에 없어요. 승차권 값을 계산해 보니 4만3000원인데 아까 7만3000원을 줬어요.”

    승차권 값을 잘못 계산한들 3만원이나 더 받았을 리 만무하다.

    “손님, 3만원이나 틀리게 계산했을 리가 없어요. 혹시 다른 데 쓰시고 기억을 못하시는 게 아닌가요?”

    내 말이 끝나자 지갑으로 창구 앞을 내리친다.

    “이봐요, 내가 그 정도의 기억력도 없는 여자같이 보여요?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정말!”

    “손님, 그게 아니라….”

    제복을 입은 입장에선 할 말이 있다고 다 할 수는 없다.

    “내가 지금 돈 안 주고 더 줬다고 우긴단 말이에요?”

    여자 손님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인다.

    “손님, 오늘밤에 마감을 해보면 제가 손님께 돈을 더 받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뭐 이런 아줌마가 다 있어! 난 마감이 뭔지 모르니까 그건 당신 일이고, 빨리 돈이나 내놔요. 분명 내 지갑에는 만원짜리가 여덟장 있었단 말이에요!”

    다른 손님 보기도 민망하고 더 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 3만원을 내준다. 밤이 되어 마감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만원이 모자랐다. 낮에 여자손님에게 내준 돈 3만원이 고스란히 비는 거였다. 그 손님이 아마도 착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그 착각을 증명할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할 수 없이 내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돈을 맞춰놓는다.

    손님의 일방적 공세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이런 날은 돈벌러 오는 게 아니라 돈 쓰러 오는 날이다.

    표 파는 여자
    표를 판다는 것이 단순하게 날짜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을 파는 작업이라면 아마도 순탄한 하루 하루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나 승차권을 파는 일에는 친절과 서비스, 고객 감동과 고객 중심이라는 물리칠 수 없는 원칙이 내재해 있다.

    어느 날,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학생증을 내민다.

    “학생 할인으로 해주세요.”

    학생증을 살펴보니 한국방송대학교, 즉 예전의 방송통신대다. 철도 규정상 방송대나 사이버대, 대학원생은 학생 할인 대상이 아니다.

    “손님, 죄송하지만 방송대생은 학생 할인을 받으실 수가 없는데요.”

    손님의 안색이 싸늘해진다.

    “뭐예요?’○○역에서는 아무 말 없이 해줬는데 왜 이 역만 안 되는 거예요?”

    예상했던 반응이다. 어느 역에서는 되는데 왜 이 역만 안 되느냐는 말은 손님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담당자가 학생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끊어준 것 같습니다. 원래는 할인이 안 됩니다, 손님.”

    여자 손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따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게 어딨어요. 방송대생은 학생이 아닌가요? 그리고 이 역만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예요?”

    그냥 눈 한번 질끈 감고 학생 할인으로 끊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창구 앞에서 손님과 승강이를 벌인다는 건 매표원으로서의 자격미달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유혹은 더 크다. 그러나 나는 손님에게 다시 한번 얘기를 건넨다.

    “손님, 제가 되는데 안 된다고 하겠어요? 정 그러시다면 철도규정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침착하려고 애를 쓰건만 손님에게 난 이미 친절과는 거리가 먼 직원이었다.

    “됐어요. 그냥 끊어줘요.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규정은 무슨 규정이에요. 돈 줄 테니까 빨리 표나 줘요!”

    제시했던 학생증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들어 다시 지갑 속에 넣는다.

    “당신 너무 불친절하게 말을 하네요. 손님에게 좀더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앙칼진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온다.

    “죄송합니다, 손님.”

    내가 불친절하게 말을 한 것인가, 학생 할인이 안 된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손님의 기분이 언짢았던 것인가. 전자든 후자든 손님 앞에서 언제나 나는 ‘죄송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저녁 무렵의 소란

    저녁 8시4분 열차를 보내고 나면 북적대던 대합실도 조금은 한가로워진다. 여유 있게 매표실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지만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아저씨 한 분이 저녁의 한산함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반쯤 잠긴 듯한 눈, 겉옷을 비집고 드러나는 허연 메리야스, 풀어헤친 셔츠 단추. 대합실은 아저씨의 안방이 된다.

    “이봐요, 아지맨지 아가씬지 좀 보소.”

    아저씨가 창구 앞으로 다가서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왜 그러시는데요?”

    눈치를 살피며 간신히 대답한다.

    “테레비 좀 켜주소.”

    “예,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내심 안도한다. 리모컨을 들고 대합실로 서둘러 나간다. 한동안 TV를 보던 아저씨, 다시 나에게로 다가온다.

    “볼륨이 너무 작니더. 소리 좀 키워보소.”

    아무 말 없이 나가 볼륨을 높인다. 매표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으려니 느닷없이 소리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볼륨을 높이라고 했는데 왜 안 높이는 거야!”

    “손님, 제가 방금 전에 소리를 높여 놨는데요.”

    “이게 높인 거야? 소리가 안 들리잖아.”

    드디어 술주정이 시작된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며 마음을 다잡는다.

    “볼륨을 더 높이겠습니다.”

    아저씨가 보는 앞에서 리모컨을 들어 올린다.

    “이제 됐습니까?”

    볼륨을 한껏 높였건만 아저씨의 마음은 흡족하지 않은가 보다.

    “뭐 이런 테레비가 다 있어! 고장난 걸 여기다 갔다놓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곧이어 텔레비전에 대한 분풀이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야. 너 말이야, 이래서 되겠어?”

    “예?”

    뭐가 어떻다는 얘긴지 분간이 안 된다.

    “공무원이면 다야. 공무원이라는 게 뭐 이따위야!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서비스를 이따위로 해서 되겠어?”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안다. 기분 풀이할 대상이 없어지니 아저씨는 아둔한 동작으로 신발을 벗는다. 의자 위에 앉더니 안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낸다. 꿀꺽꿀꺽 수돗물 들이켜듯 마셔댄다.

    “대통령이 내 형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의자에서 떨어질 듯 아저씨의 자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X새끼들아! X같은 세상….”

    허공에 대고 욕을 퍼붓는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주정을 부리더니 어느 순간엔가 잠이 들어 있다. 저녁의 소란함은 늘 그렇게 마무리된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 시각은 24시간제를 사용한다. 오후 1시는 13시로, 새벽 1시는 01시로 표시하지만, 손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0시가 넘으면 날짜가 바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손님이 원하는 승차권과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0시34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무궁화호의 표 확인이 시작됐다. 손님 한 분이 다급하게 창구 앞으로 달려온다.

    “이거 표 잘못 됐다네요. 빨리 바꿔줘요.”

    40대 아주머니의 퉁명스런 목소리에 승차권을 확인해본다. 18일 승차권이 어야 하는데 아주머니는 17일 표를 가지고 있다.

    “내가 예매할 때 분명히 월요일날 울산 달라고 했는데 왜 이따위로 끊어줘요?”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18일 화요일이다.

    “손님,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에요. 자정이 넘었으니까 날짜가 바뀌어 화요일이 맞잖아요. 손님이 예매하실 때 말씀을 잘못하셨네요.”

    그러나 손님은 조금도 물러서는 기색이 없다.

    “빨리 표나 바꿔줘요. 기차 오잖아요.”

    “손님, 이 승차권은 날짜가 지나서 쓰실 수가 없습니다. 새로 끊으셔야 해요.”

    “아줌마, 그런 법이 어딨어요?”

    아줌마라는 호칭이 나오는 걸 보니 불쾌하다는 뜻이다. 손님들은 열에 아홉 기분이 나쁘거나 항의를 할 땐 나를 꼭 ‘아줌마’라 불렀다.

    “열차가 해당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50%라도 환불이 가능한데 이 승차권은 이미 날짜가 지나버렸잖아요, 손님.”

    “그럼 나더러 새로 돈을 내고 끊으란 말이에요?”

    새벽 열차일 경우 두서너 차례 확인을 하고 승차권을 발매하지만 오늘 같은 순간이 더러 생긴다.

    “손님, 달리 방법이 없는데요….”

    메고 있던 핸드백을 열어 만원짜리 한 장을 집어 휙 던진다.

    “여기 있어요. 표 줘요.”

    거스름돈과 함께 승차권을 받침대에 가지런히 얹어놓는다.

    “다음부터 표나 제대로 팔아요!”

    뒤돌아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창구 위의 전자계산기며 가위, 달력, 동전통을 괜스레 매만지며 다시금 정리를 한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비교적 한산한 평일 오전에는 승차권부의 집계를 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공문을 따로 발췌하는 일 등을 한다. 고개를 숙이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손님이 온 걸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 날도 창구의 유리를 툭툭 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웨이브 머리에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바짝 치켜올린 여자손님이다.

    “서울 가는 게 몇 시죠?”

    끝을 한없이 올려, 길게 늘여 빼는 말씨다.

    “10시49분 새마을입니다.”

    “새마을이 제일 좋은 열찬가요?”

    “예.”

    “그럼 특실로 하나 주세요.”

    중앙선은 모든 열차에 특실이 없다. 가끔 특실이 왜 없냐는 손님의 항의에 ‘글쎄요’라는 어정쩡한 답변을 할 뿐, 정작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일반실보다 비싸 이용 승객이 없기 때문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죄송합니다만 중앙선에는 특실이 없습니다.”

    “그래요? 의자는 뒤로 젖혀지나요?”

    “예, 그럼요.”

    제일 좋은 열차임을 밝혔지만 손님은 재차 그렇게 물어온다.

    “얼마죠?”

    “1만4700원입니다.”

    “어머, 그거밖에 안해요? 정말 싸네.”

    가느다란 목소리에 가벼운 탄성까지 덧붙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오천원 더 비싼 새마을호를 피해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편이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손님을 빤히 쳐다본다.

    “나는 비행기는 많이 타는데 기차는 타본 지 오래 됐어요, 호호호.”

    “아, 그러세요.”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며 가볍게 동조한다.

    2만원을 꺼내 놓으며 다시 한마디 덧붙이는 손님.

    “창이 크게 난 쪽으로 주시고요, 열차가 가는 방향에서 왼쪽의 경치를 보며 갈 수 있는 곳으로 주세요. 그리고 옆자리에 사람이 타는 좌석이 좋겠네요.”

    손가락까지 동원해 열심히 설명을 한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열차마다 조성이 달라 손님이 원하시는 내용까지는 여기에서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 정도도 모른단 말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여자 손님은 선글라스를 빼들며 중얼거린다. 일반실 승차권을 건네주며 나는 다시 한번 손님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승차권 사러 왔다가 돈이 모자라는 때도 있고, 더러는 지갑을 분실했다며 승차권을 그냥 달라는 경우도 있다. 너무도 간곡히 부탁할 경우에는 나중에 돈을 받기로 하고 승차권을 그냥 내준다. 물론 매표 대금은 내 돈으로 메워야 한다.

    손님에게 내 계좌번호를 일러주고 돈을 넣으라고 당부하지만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만이 약속을 지킬 뿐이다. 그 날도 훤칠한 키에 점퍼가 잘 어울리는 아저씨 한 분이 창구 앞으로 다가왔다.

    “저기요….”

    아저씨는 선뜻 말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왜 그러시는데요?”

    “저기요, 부탁드릴 게 좀 있어서요.”

    아저씨의 태도로 보아 돈을 빌려달라는 게 틀림없으리라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말씀해 보세요.”

    “풍기에 일행들과 함께 놀러 왔는데 일행이 먼저 가버려서 혼자 남게 됐어요. 그런데 지갑도 없어서….”

    아저씨는 말끝을 흐린다.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저씨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내 계좌번호를 적어준다.

    “승차권 그냥 드릴 테니까 서울 가시면 돈 꼭 보내주세요. 아저씨를 믿고 드리는 거니까 꼭 부탁드려요.”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는 셈 치고 그렇게 손님을 보냈다.

    며칠 후, 낯선 사람에게서 우편물이 왔다. 펼쳐보니 그때 그 아저씨였다. 돈을 보냈으니 통장을 확인해보라는 메모와 함께 이해인 수녀의 시집 한 권이 들어있다.

    많은 이들을 접하다 보니 애정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잦은 친절교육이 무사안일한 내 사고를 바로잡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지만 정작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손님에게서 풍겨오는 인간다움을 맛볼 때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지고, 사람 사이에 오가는 ‘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금요일 카드와의 전쟁

    금요일이 되면 출근길에서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지역에 4년제 대학이 있기 때문에 강의를 마친 많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대합실이 낮 12시를 넘으면서부터 학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철도회원카드를 소지하고 있거나 친구의 카드를 이용해 좌석을 예약해둔 상태라 단말기의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놀림은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철도회원카드는 가입비 2만원만 내면 웬만큼 큰 역에서는 바로 만들 수가 있다. 가입비는 탈퇴시 손님에게 다시 돌려주며 가끔씩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은 대부분 소지하고 있다.

    카드 회원은 인터넷은 물론, 전화 한 통으로도 좌석 예약이 가능하고 5%의 운임 할인 혜택도 받는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가는 학생에게는 여간 유용한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고객에게는 편리한 이 회원카드가 나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요물이다. 나는 금요일을 힘들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회원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손님들이 열차 승차권을 요구하면 단 두 번의 키 조작으로 승차권을 발매할 수가 있다. 그런데 회원카드 소지자의 경우 예약키를 누르고, 회원번호 10자리를 쳐야 하고, 다시 예약 발매, 전송, 발권키를 사용해야 하므로 서너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게다가 학생의 경우, 카드 하나로 제천 1장, 원주 1장, 청량리 3장 하는 식으로 친구 몫까지 같이 예약을 한다. 이럴 땐 제천 1장, 원주 1장 청량리 3장을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 제천 1장을 먼저 빼고, 원주 1장을 다시 빼고, 마지막으로 청량리 3장을 뺀다. 그나마 열차 출발시각을 20~30분 남겨두고 오면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경우 시간에 맞춰 허둥지둥 오기가 일쑤다.

    열차 출발 시각 13시2분. 모니터의 시계를 보니 12시58분이다. 길게 줄을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회원카드로 좌석을 예약해 뒀으니 늦게 와도 입석으로 가야 할 일은 없다. 그러다 보니 출발 시각에 임박해서 대합실로 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기 때문에 금요일마다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신용카드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줄서 있는 사람들을 열차에 다 못 태울까봐 애가 타는데 회원 카드에 여러 장을 예약해 놓고 신용카드로 해달란다. 신용카드 결제는 현금 결제보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회원카드 예약에 신용카드 결제까지…, 정말 손님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순간이다.

    ‘예약된 승차권을 미리미리 찾아야지 이렇게 시간이 임박해서 신용카드 결제까지 요구하면 어떡해요? 정말 짜증나!’

    하지만 마음속 외침일 뿐이다.

    대합실 손님들이 표를 끊고 하나둘씩 플랫폼으로 뛰어 들어가고, 이젠 됐구나 싶어 한숨을 돌리려니 가방을 메고 급히 뛰어 들어오는 학생이 보인다.

    “청량리, 학생이요! 빨리요, 빨리!”

    승차권이 프린터기를 통해 인쇄되어 나오는 동안에도 빨리 달라고 성화다. 늦게 온 게 누군데 빨리 달라고 되레 큰소리냐고 받아치고 싶지만 내뱉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회원 카드를 만들어주는 것도 내 몫이다. 손님에게 신청서를 작성하게 해서 인터넷으로 등록을 한 후, 사용방법에 관해 설명한다. 밤이 되어 하루 수입을 마감할 때도 회원 카드 발매 실적이 있으면 손이 더 많이 간다. 전수금 내역서와 회원카드 일보를 작성하고, 또 그 일보를 별도의 봉투에 넣어야 한다.

    날이 갈수록 회원카드 소지자는 늘어나고 카드를 만들기 위해 역을 찾는 이들도 많아진다. 역장은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손님과 수입이 준다고 큰 걱정인데 정작 담당자인 나는 왜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0시34분 부산행 무궁화호가 갈 때까지 금요일은 학생과의 전쟁이요, 회원카드와의 전쟁을 치르는 날이다.

    이름난 명승지와 특산물이 있는 지역의 역에 근무한다는 건 그렇지 않은 역보다 바쁘다는 걸 의미한다. 평상시에도 문의전화가 많고 관광객으로 붐비기 때문이다. 특히 무슨무슨 축제 등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시청 문화관광과에 의뢰를 해 팸플릿부터 구비해 놓아야 한다. 보통 5월말에서 6월초에 열리는 소백산 철쭉제와 9월말에서 10월초에 있는 풍기 인삼축제 기간이면 한바탕 수선을 치러야 한다.

    새벽임을 잊은 채, 대합실은 야간열차에서 내린 수십 명의 등산객을 맞아야 한다. 관광 열차가 운행되면 수백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도 한다.

    0시33분. 청량리에서 밤 9시에 출발한 무궁화호가 도착한다. 십여 명의 대학생이 두세 사람씩 무리를 지어 대합실로 온다. 시끌벅적함 속에서 그들은 컵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밤의 정적 속에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건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조용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 같지만 가급적 여행객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모처럼의 들뜬 마음이 내 말 한마디로 언짢아질 수 있을 뿐더러 자칫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손님도 있기 때문이다.

    열댓 장의 승차권을 가져와 다른 열차로의 교환을 요구하는 여행객들도 있다. 승차권의 변경, 교환은 한 장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한 장 단위로 일일이 바꾸어야 하므로 매수가 많은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 승차권 8매의 반환 처리를 하고 있는데 같이 온 사람과 다시 창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또다른 열차로 교환을 요구한다. 자연 시간이 걸리니 뒤에 줄서 있는 손님들의 불만이 내게로 쏟아진다. 더군다나 좌석이 없을 땐 더 걱정스럽다. 지역에 사는 손님은 일요일이면 상행 좌석이 매진된다는 걸 알아서 미리 예매를 해두거나 입석을 이용하지만, 여행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좌석 남은 것 좀 있습니까?”

    산에 올라 갔다와서 그런지 손님은 물론, 주위 일행 또한 피곤한 기색이다.

    “죄송합니다. 전열차 입석입니다.”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반복하는 말을 나는 앵무새처럼 다시 내뱉는다.

    “다음 열차도 없습니까?”

    전열차 입석이라 했건만 다시 묻는다.

    “손님, 전열차가 입석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슬며시 짜증이 일기 시작한다.

    “혹시 반환표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요?”

    “글쎄요,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 하나 좀 부탁합시다.”

    좌석이 없을 때마다 늘 듣는 얘기다.

    “손님, 반환표가 언제 들어오는지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옆에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내 말을 가로챈다.

    “계속 두드려보면 되잖아요.”

    ‘이보세요! 내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줄 알아요, 자판만 계속 두드리고 있게?’그렇게 쏘아붙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질 것 같지만 나는 꿀꺽 침을 한번 삼킨다. 그럴 용기도 없을 뿐더러 손님을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여행을 좌석도 없이 입석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여행객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한두 장의 반환 승차권을 잡기 위해 조회키를 마냥 두드려주기를 요구하는 그들이 야속하지 않을 수 없다.

    풍기 5일장 풍경

    표 파는 여자
    풍기에는 아직도 5일장이 선다. 끝자리가 3과 8로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이 서고, 인근 주민이 특정 통일호를 타고 장을 보러온다. 많은 이들이 장날에 맞춰 인삼을 사러 오기도 하고, 달래나 냉이 등의 나물을 한 보따리씩 구해와 되팔기도 한다.

    풍기 장 풍경은 옛 시골장 그대로다. 트럭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찐빵과 꽈배기, 야채빵을 볼 수 있고, 길거리 한쪽에서 감자전을 부치기도 한다. 5000원짜리 반바지를 파는 곳에서 아저씨가 골라보라며 아줌마들을 잡아끌기도 하고,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앞에 고추와 상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와 나물을 소복히 쌓아 전을 펼친다. 빨래집게에서 밥주걱까지 잡다한 생활용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음은 물론, 장을 구경하는 이런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재미 또한 만만찮다.

    대개 11시22분 열차로 와서 1시간 남짓 장을 본 후 보따리 몇 개를 손에 든 채 다시 역으로들 몰려온다. 꽃무늬 월남치마 차림의 퉁퉁한 아줌마가 창구 앞으로 다가선다.

    “새댁이요, ‘수철’ 하나 주소.”

    “수철이요?”

    수철역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어 손님에게 되묻는다.

    “수철도 모르니껴? 수철요 수철.”

    투박한 음성으로 ‘수철’을 강조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철역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철도 영업 거리표에 나와 있는 철도 노선을 따라 역명을 짚어본다.

    풍기를 중심으로 위로는 희방사, 죽령, 단성, 단양이요, 아래로는 안정, 영주, 문수, 평은이다. 분명 수철역이라고는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의 음성이 들린다.

    “희방사역 팔면 되니더.”

    알고 보니 희방사역이 위치해 있는 마을 이름이 수철이었다. ‘풍기읍 수철리’였는데 그곳 주민들은 열차를 이용할 때도 희방사란 역명 대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을 대는 것이다. 시내버스를 타듯, 그들에게는 특정 통일호가 편리한 교통편이었던 것이다.

    한 무리의 손님이 더 들어오더니 그중 한 할머니께서 대합실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을 반갑게 응대한다.

    “아제도 오셨니껴.”

    순식간에 대합실은 마을회관으로 탈바꿈하여 그들만의 이야기가 오고간다. 잠시 후, 일행 가운데 흰색의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아저씨 한 분이 창구 앞에 선다.

    “보소, 시간포 한 장 주소.”

    아저씨는 시간표가 아닌 ‘시간포’를 한 장 달라고 하신다. 책상 서랍 속에서 준비된 열차 시각표를 한 장 꺼내 건넨다. 이번엔 다른 분이 다시 창구 앞으로 온다.

    “난도 하나 주소.”

    또 한 장을 내드리니 이번에는 네댓 분이 같이 오신다.

    “난도 하나요.”

    “한장 더 없니껴?”

    정말로 시각표가 필요해서 그런 건지, 남이 하니까, 그리고 얻어가는 데 돈이 안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장날은 열차 시각표의 배부가 많은 날이기도 하다.

    “이번 공개 모니터링에서 우리 역이 꼴찌를 했습니다.”

    전 직원이 모여 간단한 회의를 여는 아침 시간이다. 역장님의 한마디에 직원들은 소리 없이 눈치만 살핀다.

    “공개적으로 평가를 했는데 꼴찌를 했다는 건 개인적 자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냥둬서는 안 됩니다.”

    부역장님의 단호한 말에 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평가대상이 나였던 것이다. 한 개인으로부터 받은 평가를 가지고 자질문제까지 운운한다는 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난 말 한마디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각종 모니터링에서 여러 번 만점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매표원으로서 건너야 할 가장 큰 강이 있다면 아마도 모니터링일 것이다. 본청에서 실시하는 전화 모니터링과 역 모니터링, 그리고 관리역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전화와 역 모니터링이 있다. 전화를 친절하게 받는지, 고객응대를 잘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각 역별로 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매표원 인생은 모니터링 인생’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모니터링의 영향력은 크다. 점수를 잘 받은 개인의 명단도 공개되지만 점수를 못 받았을 때도 공개되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게 된다. 점수를 잘 받으면 박수 한번 받고 끝이지만, 못 받으면 두고두고 역장이나 부역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전화 모니터링에는 일정한 틀이 있다. 인사는 ‘안녕하십니까, ○○역입니다’이어야 하고,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린 후 받으면 반드시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바꿔줄 때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하고, 통화를 마칠 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해야 한다.

    전화 통화 때 흔히 쓰는 ‘~이구요, 잠시만요, 말씀하세요’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 감점이다. 무조건 친절하다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 주어진 틀 속에서 응답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 형식이 어색함을 자아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매표원으로 근무하는 이상, 형식을 이탈해서는 안된다.

    여객 취급을 전혀 하지 않아 문의전화가 거의 없는 조용한 역도 있고, 혼자서 표 팔고 전화 받는 역도 있으며, 표 파는 사람과 전화 받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는 큰 역도 있다. 또한 하루에 10통 미만의 전화를 받는 소속이 있는가 하면, 몇 백 통의 전화를 받는 소속이 있다. 하지만 모니터링에서는 그러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 점이 나를 비롯한 점수 못 받은 사람들의 자기합리화다. 어쩌면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니터링의 문제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모니터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매표실에 있는 한 계속될 것이고, 본청 모니터링 결과에 또다시 마음을 졸여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친절이 몸에 배지 않은 어설픈 매표원이다.

    역에 근무해서 좋은 점

    누군가 나에게 역에 근무해서 좋은 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기차가 다니는 역 구내를 바라보는 것을 일순위로 꼽을 것이다. 가까운 듯 먼 듯 보이는 산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주택들, 소리내며 달리는 화물 열차, 그리고 개구리 울음소리…. 아침엔 맑고 깨끗하고, 해질 무렵엔 저녁놀이 발갛게 물든 하늘은 평온함 자체다. 비가 내리는 날엔 플랫폼의 황색 등이 희뿌연 공기와 어우러져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 자연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건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직원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오면 남자 직원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흙을 날라 화단을 만들고, 작은 돌을 주워다 돌탑을 쌓는다. 나무를 가져와 손수 인삼 모형으로 다듬는다. 대합실 한켠에 자리잡은 인공 폭포 안에는 물고기들이 노닌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역사 주위에 만발해 있고, 역 광장엔 작은 오두막이 사람들의 휴식처로서 한몫을 한다. 모두가 지난봄부터 여름 사이 직원들이 만들어놓은 작품이다. 한여름,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바깥에서 땀을 흘리기 시작해 해가 저물 때까지 연장소리를 내며 작업복을 흠뻑 적셨다.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매표실에서 승차권을 팔기가 미안해지는 때가 바로 여름이다. 작은 역에서 여직원을 환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자 직원은 열차를 보내는 철도원으로서의 자기 일 외에 업무 외적인 일을 많이 한다. 역을 가꾸는 일은 물론 겨울철엔 역 안팎에 쌓인 눈을 말끔하게 치워야 하고, 여름철엔 제초제를 뿌려 잡초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 새로 지은 화장실이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쓸고 닦는 것도, 손님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화장실을 단장하는 것도 작은 역에서는 모두 직원들의 몫이다.

    잠시도 매표실을 비울 수 없는 업무의 특수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자들처럼 바깥일을 하기 힘든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일에서는 제외된다. 고객을 위해 역을 단장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지켜보기만 하는 나조차 업무가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나친 고객 중심에 직원들만 시달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작 남자 직원들은 잘 참아가며 묵묵히 일을 해나간다.

    “어마나, 세상에! 역을 정말 잘 가꾸셨네요.”

    빨간색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역을 가꾸는 데 별 보탬이 되지 않았건만 손님들의 칭찬에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거요, 여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직접 다 꾸민 거예요.”

    자랑도 할 겸, 직원들의 노력도 과시할 겸 설명을 덧붙인다.

    “그래요.”

    다른 손님처럼 역시 놀라는 눈치다. 이처럼 손님들과 직접 대면하는 탓에 칭찬을 받는 것도, 불평과 불만을 대하는 것도 모두 내몫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남자 직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남자 직원들이 삽질 한번 안 한다고 나더러 뭐라 그러는 것은 아니건만 여름이 되면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역을 찾는 손님 중엔 관광객처럼 한번 보고 그만인 이도 있지만 안 보이면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이 몇 있다. 껌 파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대합실에서 늘 서성이는 정신병자 영아 엄마, 제천이나 안동으로 인삼을 팔러 다니는 할머니와 아줌마, 토요일마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꼬마둥이 성준이가 바로 그들이다.

    그중 껌 파는 할아버지가 단연 으뜸이다. 허름한 점퍼에 짤막한 통바지, 삐죽삐죽 솟은 몇 안 되는 수염에 벗겨진 머리, 상징이나 되듯 늘 옆에 끼고 다니는 검은색 007가방. 그 가방 속에는 할아버지가 파는 껌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할아버지의 보물 1호인 예금 통장 또한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열차를 타든 안 타든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역을 찾는다.

    “내 오늘 영세민 돈 탔니더.”

    생활 보호 대상자에게 매달 지급되는 돈을 말씀하시는 거다. 그러시며 은행에서 찾아오신 만원 권을 내 앞에서 펼쳐 보인다.

    “할아버지는 좋으시겠네요. 돈도 많으시고.”

    웃으며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안 좋아.”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늘 안 좋다고 말씀하는 할아버지.

    “왜요?”

    “그냥 안 좋아.”

    칠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혼자 사신다. 역에 오래 근무한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엔 혼자가 아니었단다. 부인도 있고, 친척도 있었다는데 부인은 결혼 직후 바로 도망가버렸고, 친척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외로움과의 겨루기에서 지는 날엔 술 한잔으로 마음을 달랜다.

    “할아버지, 또 술 드셨구나….”

    “한잔 했지.”

    “저녁은 드셨나요?”

    “안 먹었어.”

    뒤돌아서서 대합실 가장자리로 발길을 옮긴다. 동시에 할아버지의 외침이 시작된다.

    “이 망할 눔의 세상아!”××년아, 이 ×같은 년아!”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할아버지의 외침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깝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날 찾아오신다.

    “많이 춥지요? 집에 언나 많이 컸지요?”

    이런저런 말씀을 하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콧등이 찡할 뿐이다. 할아버지에겐 역이 떠남을 위한 장소만은 아닌 듯하다. 남들처럼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인생의 마지막 행복을 기다리는 게 아닐는지….

    잠과의 전쟁

    역 근무는 24시간이다. 우리 역의 전체 인원은 16명이지만 2개조로 나뉘어 하루에 8명씩 근무를 한다. 아침 9시부터 근무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 9시가 되어 퇴근을 하고, 하루를 쉬고 난 후 다시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한다. 근무조의 8명은 저녁 9시나 9시 반까지 함께 근무를 하고, 다시 새벽 2시까지 근무하는 초반자와 새벽 2시 이후부터 근무하는 후반자의 두 개조로 분류한다.

    24시간을 꼬박 근무한다는 게 무리가 있어 초반자와 후반자로 나눠 네댓 시간 취침을 한다. 물론, 역마다의 상황에 따라 탄력 있게 조정된다.

    나는 초반 근무라서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해야 한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니 시간상으로 17시간 근무하는 셈이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서라도 15시간의 노동을 견뎌야 한다. 열차는 야간에도 다니기에 매표창구 앞에는 밤에도 손님이 찾아오고, 열차 도착 시각이나 출발 시각을 묻는 문의전화도 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진다. 전화벨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표 끊으러 오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라게 된다. 더군다나 밤 11시가 가까워 오면서부터는 쏟아지는 잠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인간의 본능인 잠과 싸워야 하는 나는 그야말로 처절한 짐승이 된다.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곤함은 잠을 몰아오고, 급기야는 매표실 바닥에 신문지라도 깔고 누웠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상황이 이쯤되면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있다.

    “여기요!”

    손님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매만진다.

    “죄송합니다, 손님.”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으로 범벅이 되어 손님 앞으로 다가선다.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승차권 구입을 마친 손님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커피 한잔을 뽑아준다. 같은 상황이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밤 11시30분경, 승차권을 구입하고 가신 한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역장님 계신가요?”

    “오늘은 부역장님이 근무하시는데요.”

    “그럼 부역장님이라도 바꿔주세요.”

    잠시 후, 매표실로 올라오시는 부역장님,

    “정여사요, 정여사가 너무 불친절하다네요.”

    순간 잠이 확 달아난다. 나에게 졸지 말고 좀더 친절히 손님을 응대하라고 직접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항의를 한다.

    근무시간 내내 친절하게 대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밤이 되면 쏟아지는 잠과 피곤함을 이겨낼 수 없는 게 내 한계다.

    새벽 2시가 되어 교대자들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뜬 듯 만 듯한 눈에 까치집을 지은 머리. 셔츠의 단추를 끼우며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 그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숙직실로 들어간다. 지친 몸을 방바닥에 내던지고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일어나라는 노크 소리에 무거운 몸을 추스른다.

    끊길 듯 이어지는 철도 전화의 벨소리가 울린다. 창구 앞의 손님 때문에 전화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도 전화기는 혼자서 마냥 울어댄다. 열 번 정도 울렸을까. 수화기를 가까스로 집어든다.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정성을….”

    “언니,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는 거야.”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미안하다. 손님 때문에 늦었어. 근데 왜?”

    “언니는 어떡할 건데? 갈 거야, 안 갈 거야?”

    인근 역에 근무하는 발령 동기다. 나이가 나보다 한참 어린 탓에 언니, 동생하며 지내고 있다.

    “글쎄, 오늘 상황을 살펴본 후에 결정해야 될 것 같다.”

    민영화 반대, 근로조건 개선, 해고자 원직 복직을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하기 하루 전날이다. 나도 다른 역 직원들의 정황을 살피느라 시간 날 때마다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눌러대고 있던 참이었다.

    그간 집회와 조끼 착용 투쟁, 사복 근무 등으로 이미 직원들간의 눈치 보기가 심해졌다. 파업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사무실 분위기는 한겨울의 혹한을 연상시켰고, 의견 충돌로 언성을 높이는 일 또한 잦았다.

    다음날 새벽 4시. 근무중 취침시간이었다. 근무자 중 2명이 파업 현장으로 가고 없었다. 아침 9시가 되어 퇴근을 서둘렀다. 파업현장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다. 동료들이 추위 속에서 맨바닥을 안방삼아 지난 새벽을 보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 거창한 목적에서가 아니다. 그것을 논할 만한 이론적 지식도 없을 뿐더러 국가와 국가경제를 생각할 만한 애국자도, 투쟁가도 못 된다. 단지 내 밥그릇은 내가 지킨다는 동료의 뜻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다. 장시간의 노동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의 함성에 동참하는 것뿐이다.

    파업현장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한마디씩 인사말을 던졌다.

    “짤리면 우얄라꼬 왔니껴?”

    “잘 왔니대이.”

    “이제 찍혔니더.”

    설치된 무대에서는 노래와 율동을 비롯한 각종 공연이 이어졌고, 우리는 가사가 적힌 수첩을 찾아가며 귀에 익지 않은 투쟁가를 불러댔다.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끼리끼리 모여 앉아 파업이 끝난 뒤의 일을 걱정했다.

    “징계가 있으려나, 어쩌려나….”

    담배를 피워물며 한 직원이 말을 꺼낸다.

    “벌써 직위해제가 내려왔다는 얘기도 있던데….”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자르기야 하겠어? 까짓 거 자르려면 자르라 그래. 이판사판이지 뭘 그래. 민영화돼서 잘리나 지금 잘리나 그게 그거 아닌가 뭐.”

    어디서 구했는지 새우깡 한 봉지를 내밀며 나이 든 직원 한 분이 말을 받는다.

    “하긴, 민영화되면 남아 있는 사람도 일용직 신세라는데 우리가 그냥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되지.”

    “연가 한번 제대로 쓸 수가 있나, 1년 365일 휴일이 있길 하나, 우리가 인간이냐, 기계지. 한번 뒤집어야 한다니까. 우리 한번 끝까지 가보자. 이왕 이렇게 왔는데.”

    “그럼, 끝까지 싸워야지.”

    세수도 못해 초췌한 얼굴들을 맞대고 불안한 마음을 서로 위로받고 있었다.

    파업은 끝났다. 믿었던 철도노조가 어용이라고 비판하는 자들이 생기고,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자들도 생겼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업무에 임한다.

    또다른 나를 발견하는 자리

    이밖에도 작은 매표실 안에서는 가출한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부모를 볼 수가 있고, 거침없이 포옹하고 입맞춤하는 대학생을 볼 수가 있으며 정처없이 떠돌다 안식처로 대합실을 찾는 노숙자의 안타까운 인생을 볼 수가 있다. 또 몇 백명의 손님을 이끌고 철도 관광을 다녀와 늦은 시각 힘없이 집으로 향하는 여행사 남자 직원의 뒷모습을 볼 수가 있고, 이름난 사찰을 찾아 불공 드리러 오는 아주머니도 볼 수가 있다. 아빠와 함께 배낭을 메고 기차 여행을 하는 초등학생의 들뜬 표정을 볼 수가 있으며 두 손을 꼭 잡고 부석사를 찾는 희끗한 머리의 노부부도 볼 수가 있다.

    나는 매표실을 지키는 표 파는 여자다. 얼마나 많은 나날을 매표실 지킴이로 보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고 하찮아 보이는 내 자리에서 사회를 배우고, 삶을 배우고, 또다른 나를 발견해 나가는 나는 표 파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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