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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書海 유람

‘준비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

  • 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준비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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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위기와 노령화사회 위기는 다음 세대 삶의 질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설사 위기가 닥치더라도 다음 세대가 지혜롭게 대처해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위기는 그런 바람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는 그래서 각별하다.

이번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서 또 한번 수험생 학력저하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비단 수능시험이 아니더라도, 기초단어를 한자로 쓸 줄 모르고 중학교 수준의 수학문제에 쩔쩔매는 대학생도 드물지 않다. 일본도 학력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큰 듯하다. 도쿄대는 그동안 일본 정관계·법조계·경제계의 중추 엘리트를 배출했지만 스스로 문제를 조사·분석·해결하는 창의적 인재를 기르지 못했다는 게 다치바나의 진단이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우선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에 해당하는 문부성을 해체하라고 말한다.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문부성이 앞장서 대학을 이끌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대한 주장도 파격적이다. 폭넓은 사고력을 갖추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암기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출제하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사전, 계산기, 노트북PC 등을 지니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다치바나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대안은 독특한 교양론에 있다. 현대를 스페셜리스트, 즉 전문가의 시대라고 하지만, 다치바나는 앞으로의 시대는 제너럴리스트, 즉 일반적 교양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교양인이란 문학·역사·사상·고전 등을 공부하는 전통적 교양인이 아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제너럴리스트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 능력은 무엇일까? 지식과 정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스스로 조사하고 문서를 제대로 작성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발신하고, 나아가 문제상황을 분석·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치바나는 그런 능력을 반드시 대학에서만 기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대학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유비쿼터스(ubiquitous), 즉 도처에 존재하는 대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디지털 유목민’이 그려낼 세상

마지막으로 직업의 위기가 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 주필을 지낸 군돌라 엥리슈는 ‘잡노마드 사회: 직업의 유랑자들’(문예출판사)에서 직업(job)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nomad)을 일컫는 새로운 용어로 ‘잡노마드’ 개념을 강조한다. 인터넷, 노트북PC 등 최신 정보통신수단과 기기로 무장한 21세기 유목민이 확산되리라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토지에 묶여 있었다. 산업사회에선 기계, 공장, 사무실에 묶였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선 일자리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어디서 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무너졌다. 일에 따라 전세계를 누비는 사람들이 흔해졌다.

저자는 독일 사진작가 알렉산더 슈텐첼을 사례로 든다. 패션사업으로 35세에 백만장자가 된 그는 고정적인 직장, 자동차, 거처가 없다. 1년에도 여러 차례 세계를 여행하는 그의 재산은 노트북PC,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옷 몇 벌뿐. 그에겐 인터넷 홈페이지가 직장이요 집이다.

디지털 유목민, 멋져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기꺼이 그런 삶의 양식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컨대 잡노마드사회는 디지털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노(no)잡노마드’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정보격차 심화에 따른 정보 불평등사회의 그림자마저 엿보인다. 무한경쟁의 냉엄한 현실이 잡노마드 사회의 본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보복지 개념 같은 것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의 꼬리는 그치지 않는다.

연초엔 새 희망을 얘기하거나 덕담을 하는 게 적합하다. 그런데 4권의 책을 통해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재의 우리와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문제들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 했던가. 불안과 위기는 준비하는 개인과 사회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 소개한 책들을 통해 기회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

신동아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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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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